스가랴


구약 2013-04-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6948.html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 베레개의 아들서 포로된 땅에서 태어났다. 스룹바벨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잇도는 돌아온 최초의 제사장무리에
속해있었다.(느 12:4.16.)
학개와 스가랴는 동시대 사람으로서 둘다 포로된데서 돌아온 이후의 선지자이다. 그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예언을 하였다.
그들은 재건축하는 역사를 위하여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그 땅의 백성을 강화시키고. 동시에 그들에게 다가올 회복과 영광의 소망을 주었다.
 
스가랴는 포로중에 있던 제사장 가족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먼저는 제사장이었고.그 후에 신언자가 되었다.
그는 대략 기원전 520년경 신언자 학개의 시대에 스룹바벨과 함께 유다로 돌아왔다.(스 5:1)
스가랴의 신언은 제사장 직분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매우 많은 말을 했는데
이것은 그의 사역이 제사장 직분에서 비롯되었가 때문이다.
우리는 분발시키는 학개와 같은 신언자들이 필요하지만.그보다 스가랴와 같은 신언자들이 훨씬 더 필요하다.
스가랴가한 신언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는 데 왜냐하면 그가 항상 주님을 접촉하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스가랴서의 열네장은 두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처음의 여덟장이 첫째부분이고 마지막 여섯장은 둘째 부분이다.
첫째부분에는 여덟개의 이상 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회복과 관련된 그리스도께 속한 것들을 보았다.
그다음 둘째부분에서 스가랴는 성전회복 이후인 장래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다.

스가랴서 1장 12절은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스가랴서 1장7-17절까지에서 우리는 한사람이 붉은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들 사이에 서있는 이상을 본다.
붉은 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성취하신 구속을 상징하며, 골짜기속는 포로된 상태의 이스라엘을 말하고
화석류나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포로 상태에 있는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고. 여호와는 그분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집이 그가운데에 건축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슥 1:12.16)

스가랴서 2장 1-13절 까지에서 우리는 손에 측량하는 줄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상을 본다.
측량하는 줄을 가진 이사람은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지 칠십년 후에 여호와 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소유하실수 있도록 예루살렘을 측량하려고 하였다.
영광 후에 곧 포로들의 귀한 후에. 삼일 하나님은 아버지께서 이스라엘을 약탈한 민족들에게 아들을 보내실 것을 결정하셨다.(슥 2:8)

스가랴서 전반부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다섯가지 이상이 있고 (1-6장). 후반부인 9장부터 14장에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상세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에 관한 다섯가지 이상은 첫째 화석류나무사이에 붉은말을 타고 골자기에 서있는 여호와의 천사인 한사람으로 계시되신다.(슥1:7-17)  
스가랴 2:1-2 절은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사람이 척량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 할때에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것을 말한다.

3장9절은 
"만군의 여호와 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돌에 일곱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땽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여기서 누가 하루에 죄악을 제할수있는가  일곱눈을 가진 돌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있다.
 
스가랴 4장2-3절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같은 것이 있고 또 그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에 등잔에는 일곱관이 있고. 그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금등잔대와 올리브나무에 대한 이상이 있다.
스가랴 5장 5-11절에는 에바에 대한 이상이 있다

슥6장 12-13.
만군의 여호와게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의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보좌에 있으리니 이 둘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왕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연결된 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이 씌워진 것으로 확증된다.

스갸랴서 6장 11절부터 13절 까지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두사람으로 예표되신 그리스도는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이 두직분을 소유한 유일한 분이신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때마다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는 분이라는 관념을 붙잡고 있다.
물론 이것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것과 관련된다.
우리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아론으로 예표 되셨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더이상 우리죄를 위해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집을 건축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양식으로서 하나님자신을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른 하나님의 대제사장 이시다.

스가랴는 그리스도에 대해 매우 많이 말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예언하지 않앗으며 그가 말한 것은 모두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항상 주님을 접촉하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스가랴는 그리스도께서 미천한 모습을 가진 이스라엘의 왕 (9:9-10) 이스라엘을 먹이는 그들의 목자로서 (11:7) 이스라엘에게 보냄을 받으셨니만.
미움을 받으셨으며 (12-13절) 공격을 받으셨고 (13:7) 찔리셨으며(12:10) 결과적으로 그것에 의해 그들을 위해 구속을 성취하셨다.(13:1.1:8.3:9)
결국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집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을 적 그리스도의 손으로 부터 구출하시려고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며 (슥 12:1-14:7.12-15)
복원안에서  이땅을 다스리는 왕이실 것이다.(14:8-11.16-21)




영광스러운 교회


은혜로은글 2013-04-0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6667.html
창 2:18-24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내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하와를  어떻게창조하셨는지를 자세히 언급하고 계신다.
창세기2장18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하나님는 아담을 위하여 하와를 지어주셨다. 하와는 아담의 돕는 배필이며 아담옆구리 로부터나와 한몸이 되었다.
교회도 또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와 산출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었다.
 
엡 5:22-23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께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가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할지니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한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1.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2.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
  3.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4.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5.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은 엡 4장에서 새사람인 교회생활과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긴 권면의 말을하고 있다.
 4장과5장에서 바울은 우리의 교회생활과 결혼생활이 사랑에 기초를 두어야함을 말하고있다.
엡 5장은 단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거나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 관한 바울의 권면이 아니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진리나 올바른 실행을 따라산다며 그들의 결혼생활은 빈약할 것이다.
만일 남편과 아내가 서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의 결혼생활은 가련할것이다.

결혼생활은 진리나 실행이 아닌 사랑 위에 기초를 둔다.


벧 3장 1-7절
마찬가지로 아내여러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요. 그러면 말씀에 불순종하는 남편들일지라도 그들은 말씀이아닌
아내들의품행을 통하여 얻어질 것입니다. 남편들은 두려운 마음을 지닌 여러분의 순결한 품행을 눈으로 지켜봅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땋고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는 겉치장을 하지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영의 썩지 않을 장식으로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단장하십시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값진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인들도 이렇게 자신을 단장하고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였습니다.
사라가 이와같이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며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하고 어떤 무서운 일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사라의 딸이 된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여러분 지식을 따라 아내와 함께 살아야합니다. 아내는 더 약한  여성의 그릇으로서
또한 생명의 은혜를 상속받을 사람이니.아내를 존중하십시요.그리하여 여러분의 기도가 방해받지 않도록 하십시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다른 한 부분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가를 알려면 하와에서게 공과를 배워야 한다.
아담이 예표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 아니다. 이책은 하와를 주의 한다.우리가 여기에서 주의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니라 바로 교회가 이사역에서 어떠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가에 있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하와가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창세기의 여자는 예표이고 에베소서5장의 여자는 첫번째 여자의 실체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필히 하와가 있고 교회가 있어야 비로서 그분의 마음을 만족케 할수있다.
그분이 교회를 지으신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교회는 바로 창세기 2장의 하와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지으셨듯이 또한 하와를 교회의 예표로 지으셨다.
그리스도 자신은 절반에 불과하며 그리스도의 또 다른 절반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안목에서 그리스도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에 "이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아담을 위해서 하와를 지으심으로써
비로서 완전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창세기 1장 마지막절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단지 아담만 있거나  또는 그리스도만 있으면 아직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수 없다.











몸의 하나와 생활과 봉사


진리의말씀 2013-04-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6579.html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에 관해 어느정도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몸의 인식이 없거나 부족 할수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자세히 언급하는 4권의 책이 있다.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이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구속과구원 몸인 교회를 산출하는 결과까지
에베소서는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에 관해 말하고있다.

롬12장 4-5
한몸에 많은 지체가 있지만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각 사람이 서로 지체들입니다.
고전 12장 12절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지만 모두가 한몸인 것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12장 26-27절
한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며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여러분 각사람은  그 지체들입니다.
골 1장 18절
또한 그분은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그분이 시작이시며.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나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분자신 께서 만물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은혜를 받아 구원받고 천당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구원의 체험을 하고 난뒤에 주님은 내가 포도나무의 가지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나는 그분의몸의 한지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지체들은 다 몸을 위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약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사는 이기는 자는 
몸을 알고   몸안에 살며 몸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개인의 신령함이나 승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이 몸의 한 지체임을 분명히 깨닫는 사람이다.
자신의 독특함을 나타내며 자신의 신령함이나 거룩함이나 승리를  중심삼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몸을 떠나서 살수있는 지체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지체들과 동역하여  머리를 표현하는 생활을 나타내야한다.
영안에서 유기적인 동역을 통해 그리스도를 살아나타내는 생활이 필요하다. 



다니엘과 세친구들 이름의 의미(히브리어<->바빌론식 이름)


은혜로은글 2013-02-2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4931.html
블로그 > 주님께 으뜸의 위치를 드림..
http://blog.chch.kr/p039303/44903.html

느부갓네살(환관장)이 우상(결국 사탄)에게 연결 시키기 위해 이름을 바꿈.
 
 
다니엘 :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 또는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를 의미하는 ‘다니엘’의 이름은 ‘벨드사살’. ‘벨의 왕자’, 또는 ‘벨이 총애하는 자’.로 바뀌었다 (사 46:1).
 
 
하나냐 : ‘여호와는 친절하시다’, 또는 ‘여호와의 총애하는 자’를 의미하는 ‘하나냐’는 ‘사드락’. ‘태양신에게서 빛을 받았다’.으로 바뀌었다.
 
 
미사엘 : 미사엘’은‘누가 하나님과 같으랴’라는 뜻인데, 그의 이름은 ‘메삭’. ‘누가 사크 여신과 같으랴’.으로 바뀌었다.
 
 
아사랴 :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다’를 의미하는 ‘아사랴’는 ‘아벳느고’. ‘불의 신 느고의 신실한 종’.로 바뀌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히브리어 이름의 의미를 잘 익히고 그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하여


다음세대 2013-02-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4875.html
블로그 > 주님께 으뜸의 위치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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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지연하신다면. 우리는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모두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지나갈 것이고 다음세대가 일어날 것이다.

내가 질문하겠다. 그러면 그때 누가 주님의 일을 계속할 것인가? 여러분은 영적이어서, 심지어 지나치게 영적이어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 라고 말할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다. 주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분께서 직접 책임을 지시든 여러분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시든
그 길은 젊은이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십 년 후에 주님께 유용하게 될 사람들은 오늘날 십 대,  이십대의 젊은이들이다.
오늘날 구원받고 합당한 영적 도움을 받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그들이 장래에 주님께 쓰일 수 있겠는가?
오늘날 주님께 이끌린 젊은이들이 없다면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 우리의 뒤를 이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고
대가 끊기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았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젊은이들의 상태가 좋은가 나쁜가에 관계없이
그들을 사랑할 부담이 생길 것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젊은이가 있는 것이 아무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교회의 장래와 주님의 일을 위하여 젊은 이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