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44:10-11---레위사람도--내성소에서 섬기며 성전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섬기리라. 그들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과 다른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섬기게 되리라.
15-16. 사독의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내게 가까이 나아와 나를 섬기되 ...그들이 내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상에 가까이 나아와 나를 섬기며
롬 3:20.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기 때문이며.
고전 1:29. 어떤육체도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과연 여러분은 믿는이들을 섬기는가. 아니면 주님을 섬기는가. 과연 여러분은 일을 할때 일을 주의 하는가. 아니면 주님을 주의 하는가. 여기에는 큰차이가 있다. 성전을 섬기는 것과 예수그리스도을 섬기는 것은 크게 다르다.
우리가 알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섬기고 있고. 일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와 상앞에 있지않고 바깥뜰에 있을 뿐이다.
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섬기지만 주님은 섬기지 않는다. 주님께서 오늘날 찾으시고 계속 오늘날까지 원하시는 섬김은 진정으로 그분자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일을 하는 것이아니다. 물론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밭을 경작하는 것도 중요하고 양무리를 목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분은 그분의 종이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섬길수 있다니! 이 어떠한 줄거움인가.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두 부류로 나누셨다. 비록 그들 모두가 레위 지파이고. 다 하나님께 속했으며. 다 한지파안에 있었지만. 그들중 대부분은
성전안에서만 섬길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사독의 후손이었던 소수의 다른 한 무리는 레위 지파였지만 "나" 곧 여호와를 섬길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성전을 섬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교회을 위하여 열심을 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고.교회를 도울 책임을 지며 열심을 내어 형제들의 일꾼과 종이되어 힘을 다해 형제자매를 도우며
각처에서 바쁘게 움직일 때. 교회가 발전하고 일이 흥왕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여 교회의 인수가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하게 된다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전을 섬기는 것이다.
나는 성전을 섬기는 것이 있을뿐아니라 이것보다 더깊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천성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본성에 따르면 그는 복음전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복음을 전할때 기쁘고 자신이 주님을 섬기도 있다고 느낀다.그러난 사실 그는 성전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서도 흥미를 느낄수있는 부분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일에는 육체에 매력적인 부분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앞에 수고하고 섬긴많은 일들이 그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성전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섬긴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사람을 인도하여 주님께 돌이키게 하는 것보다 더 깊으며. 믿는 이들을 주님께 헌신하게 하는 것보다 더깊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찻으시는 것은 결코 활동적이며 드러나는 봉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며.
믿는 이들을 더욱 영적이게 하고 더욱 진보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무엇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무엇이 성전을 섬기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도록 은헤을 구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분"이다.
행전 13장에서 신약의 일의 유일한 원칙이 있다.사람들이 주님을 섬길때에 성령은 비로서 그들을 보낼수있다. 오직성령만이 사람을 보내어 일을 하게 하실수있는 권위가 있다.
구약에서 성막 주위의 봉사를 생각해 보라. 레위인들은 바깥마당에서 봉사했고. 제사장들은 바깥마당과성소에서 봉사했으며. 성소에서 제사장들은 임재의 떡을 진열하고 등잔을 손질하고 향을 피웠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성소 안에서 대제사장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섬겼다. 지성소에서 섬기는 사람은 감추어진 만나를 누린다. 감추어진 만나란 무었인가.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사이에 간격이 없을때.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그리스도의 몫이다.
계2:17. 귀가 있는 사람은 그 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이 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를 주고. 또 힌 돌을 줄것이다. 그 돌 위에는 받는 사람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새이름이 적혀있다.
오늘날 우리는 버가모 교회와 똑같은 상황에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임재로 부터 벗어났다. 변절된 기독교뿐아니라 심지어 소위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역시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져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것들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버가모 교회의 상황을 이긴 사랑스런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임재안에는 그리스도의 특별한 몫이 간직되어있다.
버가모 교회의 상태를 이기는 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의 일반적인 실행으로부터 자신을 분별시키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다른 어떤 것도
섬기지않고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추어진 만나. 즉 그리스도의 특별한 몫에 대한 누림을 가지며.
그리스도의 임재에서 멀리 벗어난 모든 사람이 맛볼수없는 그리스도께 속한 무어가를 누린다.
만일 여러분이 제사장이라면 성소 안에 있을수 있으며 바깥마당에서 봉사하는 레위인 보다는 하나님과 더 가깝다. 그러나 비록 여러분이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아직 지성소에 있지는 않다.
따라서 여러분과 하나님사이에는 여전히 간격이 있다. 여러분이 감추어진 만나를 누리기 원한다면 여러분과 하나님사이에 어떤 간격이 없어야한다. 여려분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모든간격은 반드시 제거되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봉사를 더 조금밖에 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