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겟세마네'기름짜는 기계'를 의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기름 즉 성령께서 흘러나오시도록 짓눌리셨습니다(눅22:42~44). 겟세마네는 올리브 산 동쪽 아래 중턱에 있습니다. 겟세마네는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잠들었던 동산입니다. 동산에 올리브 나무들은 나이테가 없어서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없지만 고고학자들은 3천년이 되었을거라고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유다가 예수님께 와서 입 맞추었던 곳입니다(마26:49). 여기서 베드로가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습니다(마26:51). 주님은 여기서 잡히시어 가야바의 법정을 거쳐 새벽에 빌라도에게 가서 재판을 받으셨고 800m 가량 떨러진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마27:2).
마태복음 11장28-30..
수고하고 무거운짐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가. 수고는 율법의 계명과 종교적인 규정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수고를 가리킬뿐 아니라, 어떤일에서 성공하려고 분투하는
수고를 가리킨다. 그렇게 수고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마 11:28-30.에서 우리는 안식하는 길을 본다.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얻게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 온유하다는 것은 반대에
저항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을 높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분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하기 때문에 그분의 명에를 메고 그분에게서 배우면. 그들의 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모든 반대가 운데서도 온유하셨으며. 모든 배척 가운데서도 마음이 겸손하셨다.
만일 우리가 봉사할때 반대를 받는 경우에 대항한다면. 우리는 평안을 갖지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저항하는 대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고.
그 반대가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증언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혼 안에서 안식을 갖게 될것이다.
침례요한은 그의 투옥을 아버지에게서 온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이 없었다. 만일 그의 투옥이 아버지의 뜻에 기인 한 것임을
깨달았더라면 그는 심지어 감옥에서도 안식했을 것이다.(마11:2-3.각주)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무엇인가를 얻기를 기대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안식이 있으셨고.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만족하셨다.
하늘에 속한 왕이신 그리스도는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으며.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몫으로 취하셨고. 어떤 것에도 저항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언제나 안식하셨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배워야하며. 또한 이러한 관점을 가져야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혼안에 안식을 가질 것이다.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의 멍에가 편하고 그분의 짐이 가볍다는것을 그들에게확신을 주셨다.하나님의 경륜에속한 멍에는 짐이 아니라 누림이다.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응답하여 우리의 몸으로 그분께 나아간다. 수고하고 무거운집을 사람들이여 나에게로 오십시요.
주님께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희생제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1925년에 나는 주님으로 인해 구원받고나서 나의 온존재를 주님께 드렸다. 나는 예수님의 멍에를 취했다.그 멍에가 나를 칠십년동안 나를 보호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들이 될필요가 있다.
모든세상사람들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있다. 그들은 매우분주하다.우리는 그분의 본을 따라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그분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여 수고한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에게서 배움으로 우리는 혼의 안식을 얻는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침례를 준적이 있는가.다른 사람에게 처음 침례를 줄때 여러분은 그것을 엄숙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섯차례. 열차례 이후에는 평범한 것이 된다. 주님의 일꾼이 처음 메세지를 전할때에 는 매우 진지 하지만. 메세지를 많이 전하다 보면 점차 그것을 평범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당신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것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간증할수있는 것은 . 나는 성경을 잃을때 마다.
처음읽는 것처럼읽고. 말씀을 전할때마다. 처음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한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속한 그무엇도 평범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신선할 것인지의 여부는 영적인 것들이 우리에게 신선한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떡을 떼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여러분은 처음 떡과 잔을 위하여 축사할때 대단히 엄숙하였고. 하나님앞에서 감히 조금도 느슨하지 못했다.
이때 여러분은 참으로 제사장과 같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에게 있게 된다. 그러난 점차적으로 여러분은 느슨해지며.
영적인 느낌이 그렇게 장중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기도와 경배하는 영이 별로 없게 된다.
여려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능력과 기름 부음을 주지 않스셨음을 알지만. 이전에 그러했기 때문에 오늘도 그렇게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러분은 영적인 신선함을 잃고 생명의 능력을 잃게 된다.
성소 안에는 어떤 새로운 일이 없다. 제사장들이 하는 일은 임재의 떡 (진설명)을 바꾸고. 기름을 더하고. 향을 태우는것 등이며. 날마다 그리고 다달이 항상 동일한 일을 한다. 그러나 조금 잘못하면 성소에 대해 죄악을 범하게 되어 죽음을 당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된 사람은 모두 그의 일을 평범한 것으로 감히 여길수 없었다.
성소에 대한 죄악으로 인한 세가지 결과 혹은 형벌이 있다.
1.생명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즉 사람이 진부하게 된다.
2.영적인 죽음을겪는다. 심지어 질명이나 육신의 죽음이 있을수도 있다.
3.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을것이다. 나는 심판대에서 성소에 대한 죄악보다 더 큰죄는 없을 것이라고 느낀다.
성소에 가까이 가는 죄는 죽음을 초래한다.(민 18:1-7). 성소에 대한 죄악은 사람의 판결을 거칠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서 직접판결하신다. 성소에 가까이
간 사람은 즉시 죽으며 제사장의 심판을 거칠 필요가없다. 평범한 죄들은 반드신 제사장들의 심판을 거쳐야 하지만. 성소에 대한 죄악은 하나님께서
직접죄를 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접 그것을 심판하신다.
민수기는 제사장들의 죄들이 성소에 대해 범하는 죄악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용어를 사용하면 그들의 죄들은 하나님의 일 안에서 범한 죄들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