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대한 죄


봉사 2012-12-1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3022.html
민 18:1.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비롯하여 너와 함께 있는 네 아들들과 네 집안은 성소와 관련된 죄악을 짊어져야하며.
             너를 비롯하여 너와 함께 있는  네 아들들은 제사장 직분과 관련된 죄악을 짊어져야한다."
         3. 그들은 네가 맡긴 임무와 천막 전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나. 성소의 기구들이나 제단에 가까이 와서는 안된다. 그래야 그들이
             죽지 않고 너희도 죽지 않는다.
고전 11:29. 왜냐하면 그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죄들이 일상적인 죄들이지만 주님의 일꾼에게는 특별한 죄가 있는데  곧 하나님의 일안에서 법하는 죄들이다. 우리는 이일을 특별히 주의해야한다. 일과 관련된 죄는 꼭 교만이나 질투 등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영적인 위치에서 육체가 나오고 . 자아의 뜻이 나오고. 아무렇게나 말하고, 임의대로 주장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다 일과 연관된 특별한 죄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성소에 대한 죄악을 짓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일반적인 죄 외에 성소에 대한 죄악을 더하게 된다. 하나님의 일안에서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과 주권에 관련해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과 나에게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중요한 세가지 항목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첫째. 하나님의일의 시작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여야한다.
둘째. 하나님의 일의 추진은 반드시 그분의 능력에 따른 것이어야하며. 우리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된다.
셋째. 하나님의 일의 결과는 받드시 그분의 영광을 위해야한다. 우리는 이 세가지 요점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실패한다면. 우리는 성소에 대해 죄악을
         범한 것이다. 자신을 말미암아 시작될수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야하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수행할수 있는일이 하나도 없어야 하며. 결국 
         자신의 영광을 얻게 하는일이 하나도 없어야한다. 

나는 지역을 책임지는 형제들에세 묻고싶다. 여러분이 한 지방에 있을때. 어떤일이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이고 또한 그 일자체도 일리가 있으며.
좋은 결과를 낼수 있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가서 그 일을 하겠는가. 아니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가?
분별없이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은 모두 성소에 대해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10) - 팔레스타인 땅(2)


이스라엘여행 2012-12-1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2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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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10) - 팔레스타인 땅(2)


이스라엘 땅은 언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게 되었는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기 전까지 국제사회에서 그 지역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것은 AD 2세기에 일어난 유대인들의 봉기와 관련이 있다. 당시 로마의 속국으로 있던 유대국가는 132~135년에로마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키지만 무참하게 진압되고 만다. 이 봉기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서 일으킨 3번째 봉기였고 봉기를 간신히 진압한 하드리안 황제는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개명하고 유대인과 이스라엘 땅에 대한 관련성을 최소화시키고자 했으며 유대인을 이 지역에서 추방하였다. 이후 이스라엘 땅은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에 해당한다 흔히 팔레스타인(Palestine) 사람을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Philistine) 민족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마도 발음의 유사성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블레셋 민족은 BC 12세기경 크레타섬에서 이주해 온 해양민족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은 AD 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교가 탄생하고 정복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칼을 피해 이주해 온 아랍인들이다.

따라서 블레셋 민족은 유럽인이고 팔레스타인 사람은 아랍인으로 인종적으로 전혀 다르다.

16세기부터 오스만 터키가 지배해 오던 광활한 중동 지역은 1차 세계 대전에서 터키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군에 가담하고 패전국이 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로 분할되었다. 이후 식민지는 요르단,이집트,시리아,레바논으로 분할 독립하고 그 사이에 남게 된 지역이 소위 팔레스타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남게 된 아랍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7세기 이후 이곳에 정착한 이래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인’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1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모인 파리 평화회의에 파견할 팔레스타인 대표 선출을 위한 모임에서 채택된 결의문에서도 이런 내용은 확인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시리아의 일부로 여기며 그곳은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다. 우리는 민족적,종교적,언어적,자연적,경제적,지리적인 면, 즉 모든 면에서 하나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몇 차례 이어진 중동전쟁에서 주변 아랍 형제국들의 배신을 뼈저리게 느끼며 이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으로서의 구별된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지역에서 독립된 아랍국가가 존재한 적이 없다.

팔레스타인은 시리아 아랍인으로 유대인이 추방되어 비어 있는 이스라엘 땅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이 지역의 권리는 천년 이상 독립국가를 형성해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은 전 세계 분쟁의 핵이라 할 만큼 복잡한 문제이다. 상대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 보다는 평화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유네스코가 전통적인 예수 탄생지를 ‘팔레스타인’에서 위협받고 있는 성지로 선언하였다. 베들레헴의 예수탄생 교회를 ‘팔레스타인’에 속한 위협받는 세계 유산으로 등록하려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시도가 성공하자 이스라엘이 분노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3대 6으로 팔레스타인의 요청을 승인했다. 작년에 유네스코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공식 인정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 성지들이 이제는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일부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기독교인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예수탄생 교회의 공식 관리자들인 아르메니안, 그리스 동방정교, 로마 가톨릭 교회는 PA 주권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 교회 업무에 관한 자신들의 권한에 피해를 줄까 우려해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의 요청에 반대했었다. 하지만 유네스코 투표가 있던 주에 팔레스타인 관리들이 방문한 이후 교회 책임자들은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예수를 자기 민족이라고 주장하다

수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수를 자기 민족이라고 주장해 온 반면, 그의 유대인 정체성과 이스라엘과의 혈연 관계는 부정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과거 예수를 “최초의 팔레스타인 샤히드[순교자]’라고 묘사했으며, 성탄절에는 베들레헴에 대한 국제적 조명을 이용해 예수를 팔레스타인의 영웅으로 선언했다. 그의 계승자들은 이러한 선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번 예수탄생 교회에 관한 유네스코의 선언은 예수탄생 교회와 다른 성지들이 이스라엘의 위협 아래 있다는 팔레스타인측 주장의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관리들은 2002년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 동안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교회가 포위되었던 것을 지적한다.  하지만 사실은 총격과 폭탄 공격으로 극단적 폭력을 감행하고, 기독교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 중 한 곳을 피난처로 삼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범들을 뿌리 뽑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가 베들레헴에 진입했던 것이다. 무장범들은 39일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기독교 성직자들을 인질로 잡고, 교회를 마구 휩쓸었다. 하지만 그것은 10년 전 일이며, 이제 시대가 변했다. 폭력이 진정된 덕분에 최근에는 매년 약 2백 만 명이 예수탄생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통해 세계 유산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팔레스타인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은 역사적으로 예수탄생 교회에 대한 권리가 없다

예수탄생 교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에 건축된 기념교회이다. 135년 로마황제 하드리안은 기독교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예수님 탄생 장소에 아도니스 신전을 건립했다 327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황후는 아도니스 신전을 허물고 이곳에 예수탄생교회를 건립했다. 529년 비잔틴 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565년 현재의 교회를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나이누 황제가 새롭게 지워진 후지금까지 보존되어 왔다. 614년 폐르시안의 침공때 파괴될 뻔 한 큰 위기를 맞는다

당시 폐르시아군은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교회를 파괴하였는데 이 교회만은 그대로 두웠다.

그 이유는 어느 화가가 이 교회에 동방박사를 그려 놓았는데 이들의 복장이 폐르시아 조상들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 교회는 로마 카토릭,그리스 정교회,아르메니아 교회가 공동으로 관리한다. 따라서 시리아 아랍족속인 팔레스타인이 역사적으로 이 교회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오히려 파괴하려고 했던 참략군이었다. 유네스코가 역사성을 부정하고 갑자기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 준 것은 천년 이상 유지해 온 소유권을 탈취하는 행위였다.

    

팔레스타인의 전략은 이 지역에서 유대인의 역사성을 지우려고 한다.

그러나 이 상황은 국제 무대에서 이스라엘을 비 적법화하기 위한 팔레스타인측 노력의 결과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중상을 일삼는 자들에게 유대인들은 아무 상관도 없는 땅을 침략한 이방인인 것이다. 이런 주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땅에 대한 유대인의 역사적, 종교적 연관성을 없애야 한다. 전세계에서 200만 이상 이 교회를 방문한다는 것은 유대인과 예수와의 역사성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성지와 예수와의 허구적인 팔레스타인 연관성은 사실을 허구로 바꾸고,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팔레스타인의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9) - 팔레스타인 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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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9) - 팔레스타인 땅(1) 

 

1. 주후 135년 로마제국은 세번 째 유대인의 봉기를 진압하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추방하였다.

이 후 로마제국은 그 땅을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유대인을 한명도 남김없이 모두 추방하지는 못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전에도 유대인들은 그  땅에서 여전히 살고 있었다. 1890년대 시온주의 열풍이 불기 이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은 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1800여 년간 그 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의 땅을 강탈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2. 유대인들이 이주가 있기 전 팔레스타인 땅은 메마른 사막과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늪지로 덮인 황무지였다. 유대인이 이주하고 나서 팔레스타인은 달라졌다. 
1864년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총 인구 18,000명 가운데 유대인은 9000명(50%), 아랍인은 5000명(28%), 나머지 약 4000명(22%)은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인으로서 유대인이 가장 다수의 주민이었다. 아랍인은 28%에 불과하였다. 추방당하기 전 예루살렘의 유대인 인구는 약 10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1800년동안 팔레스타인이 아랍인의 땅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의 상당수는 그곳에서 수천년 동안 살고 있던 정착민이 아니라 1890년대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과 함께 '고용과 기회의 땅'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해 온 아랍인들이다.

3.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돈을 주고 매입한 땅이다. 늪지와 사막으로 버려진 팔레스타인 땅이 개발되고 지금과 같은 농업 천국으로 바뀐 것은 1890년대 유럽의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를 시작한데서 비롯된다. 유대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이 땅을 매입하기 시작하자 땅 값이 많이 올랐다. 1944년에는 중동지역의 비옥한 땅이 에이커 당 110불에 거래될 때 팔레스타인의 불모지는 무려 1000불에 거래되었다. 당시 이 지역 개발 열풍과 함께 팔레스타인 땅을 소유한 아랍 지주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려 엄청난 폭리를 취한 것을 알 수 있다.

4. 이런 이유로 당시 사우디 메카의 태수인 후세인과 그의 아들 파이잘을 비롯한 아랍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환영하였다. 이들은 선진기술을 갖춘 유럽의 유대인들이 이주해 옴으로써 팔레스타인 땅값이 상승하고 지역 경제가 소생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아랍 지도자들의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는데 고용의 기회가 증가하고 봉급 인상과 함께 삶의 수준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유대인뿐 아니라 많은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팔레스타인 거주 아랍인의 80%가 이때 이주해 온 것이다.

 

5.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강탈한 것이 아니라 고가로 매입한 것이다. 매입가는 당시 이주와 개발열기로 10배 가까운 비싼 땅값이 지불되었다. 예를 들면 알라스카 땅은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를 주고 매입했지만 지금 러시아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1948년 영국이 이 땅에 대한 통치에서 물러 날 때 팔레스타인 땅의 9%가 유대인 소유, 아랍인 소유가 3%, 17%는 버려진 땅, 71%는 영국의 위임통치령에 속했다가 이후 이스라엘에 양도되었다. 아랍인의 소유는 3%에 불과하였다.

 

6.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한 이유는 1947년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오면서 생긴 1차 중동전쟁에서 일어났다. 전쟁 발발로 65만명(유엔은 47만명으로 봄)의 팔레스타인의 아랍인이 인근 아랍국으로 피신하였고 16만명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난민은 아랍인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아랍국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잠재적인 배신자'로 여겨져 81만명이나 강제 추방되었다. 이 숫자는 팔레스타인 난민 65만명을 능가하는 숫자다. 또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그들 스스로 인근 국가로 피신한 것이지만 유대인들은 재산까지 강탈당하고 강제로 쫓겨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뺏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7. 또하나 숨겨져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아랍국에서 쫓겨난 유대인 난민 81만명 중에서 이미 59만명이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흡수된 반면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아랍의 형제국에서 배척당했고 80% 이상이 아직도 난민촌에 거주하며 유엔의 난민 기금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스라엘은 평화협상의 안건으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올리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1948년 건국 당시 작고 가난한 나라였던 신생국 이스라엘이 59만명의 유대인 난민을 받아들였다면 640배나 영토가 더 큰 아랍국은 왜 65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지 못하는가? 

8. 유대인 난민이 아랍국에 두고 온 재산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스라엘에 두고 온 재산에 5배에 달한다. 그 강탈한 재산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자국민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오일 달러로 벌어들인 수억 달러를 테러리스트 지원에 사용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은 왜 소극적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프리카 무슬림들이 이스라엘로 6만명 이상 난민이나 불법으로 이주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난민은 아랍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주장이다. 



[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8)- 시온산


이스라엘여행 2012-12-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29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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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이스라엘 탐방(31) - 시온산

 

(애 5:18-19) 시온 산이 황폐하여 여우가 그 안에서 노나이다 (19)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대하 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시 132: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계 14:1) 또 내가 보니, 어린양께서 시온 산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 예레미야 5장 18절은“시온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라고 말한다. 여우들이 시온산에서 노닐고 있다는 이 구절들을 쓸 때 예레미아는 혼란에 빠졌고 실망했다. 그는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느낌에 따라서 말했다. 애가 4장의 시작에서 그는 이스라엘을 빛을 잃은 정금으로 언급했다.“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그리고 마지막 5장 애가 끝에서 그는 여우들이 시온산에서 노닐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절망을 보여 준다. 시온은 거룩한 땅이었다. 하나님께 시온은 이 땅 위에서 가장 거룩하고 성별된 곳이었다. 어떻게 여우들이 이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서 더욱이 성전이 건축된 곳인 시온 산꼭대기에서 놀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예레미야로 애통케 했다.

2. 5장 19절 전까지는 예레미야가 그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느낌에 따라서 기록했지만, 이 구절에서 그는 그의 인간적인 느낌으로부터 하나님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온산에서 여우가 노니는 것에 대하여 말한 후에, 그는 갑자기 5장 19절에서“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나이다”라고 선포했다. 여우들은 우주 가운데 유일한 것이 아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통치를 행사하신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탔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붙들려 갔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어떠하신가? 여호와께서는 여전하시며, 그분의 보좌는 무너지지 않았으며 결코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3. 신성한 칭호인 여호와는 “나는…이다(있다)”를 의미한다. 그분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영원히 계실 분이시다(계4:8하). 예루살렘은 끝났고, 성전도 끝났고, 이스라엘 땅도 끝났다. 그러나 여호와는 결코 끝나지 않으실 것이다.예레미야의 위치와 관점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여호와로 바뀌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이 상실될 수 있을지라도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오늘은 여우가 시온산에서 뛰놀지 모르지만, 내일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실 것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계신다는 진리를 나타내 준다.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지만, 그분은 결코 끝나지 않으신다.“오 여호와여 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예레미아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하늘과 땅은 끝날 수 있지만, 그분은 유일한 근원이시며, 영원하시다. 모든 세대들이 그분으로부터 나온다.

4.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망하고 왕과 고관과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갔지만, 그리고 예루살렘은 여우들이 노닐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노닐고 있는 것들 중 어떤 것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결국 모든 여우들은 끝나게 될 것이고 여호와께서는 영원히 존재하실 것이다. 많은 소극적인 것들과 악한 사람들을 다룸에 있어서, 때때로 하나님은 활동할 필요가 없으시다. 어떤 것을 심판하시는 대신에 그분은 기다리신다. 특히 그분은 악한 자들이 죽는 것을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이 하나님의 손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역사상 모든 악한 자들이 어디에 있는가? 느브갓네실이 어디 있는가?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어디 있는가? 히틀러가 어디 있는가? 악한 자들은 모두 죽었다. 인간 역사에 걸쳐서 모든 악한 자는 결국 죽음으로써 끝났다. 영원히 계시는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다만 죽음이 그들 모두를 제하기를 기다리신다. <예레미야 애가 L/S 메시지 4>

5.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드려진 산은 나중에 모리아산이라 불려졌고 결국에는 성전이 건축된 시온산이라 불려졌다(대하3:1). 청년 때 나는 창세기 22장 2절을 읽으면서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주님, 당신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고 그의 아들을 다시 당신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당신은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먼 산까지 여행하라고 요구하셨습니까?』 이삭을 드리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하라고 아브라함에게 요청하신 데 있어서 그분은 귀찮게 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결코 귀찮게 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항상 의미 깊으신 분이다. 결국 모리아산은 좋은 땅의 중심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 산에 매년 삼차 하나님께 번제물을 드리기 위해 올라가야 했다(신16:16, 시32:13).

6.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장소인 모리아산으로 갔다. 창세기 2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실 산 중 하나에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 구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일어나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한 곳으로 가더라』는 것을 본다. 아브라함이 여행을 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분이 택한 산을 그에게 말씀하셨음에 틀림없다. 4절에서, 『제삼 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생각이나 선택에 따라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행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한 것은 성경의 한 중요한 씨이다.

7.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 년에 세 번씩 모리아산에 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들의 번제물을 그곳에서 드리라는 명령을 하셨다. 우리는 모리아산이 시온산이 되고 좋은 땅의 중심이 된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시온산에서 번제물을 드려 하나님을 경배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시온산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생활에서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인 우리는 한편으로 시온산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에 가는 중이다. 22장에서 아브라함이 한 것은 씨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씨의 발전이었고 오늘날 우리는 이 씨가 더 발전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이 씨의 수확물이 되어야 한다. 아마 어느 날 우리는 영원한 시온산에서 아브라함과 악수하며 그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구약의 시온산에 있었고 우리는 신약의 시온산에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여기 영원한 시온산에 있습니다.』

8. 오늘날 하나님의 공급은 어디에 있는가? 시온 산에 있는 교회 생활 안에 하나님의 공급이 있다. 우리 모두는 교회 생활 안에 공급이 있음을 간증할 수 있다. 공급을 누릴 때 우리는 얼마나 이상을 보는지!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 우리는 영원을 본다. 여기 교회 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눈과 우리의 눈에 모든 것이 투명하고 수정처럼 맑으며 불투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종교안에 있을 때 이러한 체험을 가지지 못했다. 그곳에 있었을 때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불투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시온 산에 있는 교회 생활에서 분명한 이상과 함께 충만한 공급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그분은 우리를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우리는 그분을 본다. 하나님의 공급 안에서 모든 것이 투명하다.<창세기 L/S 메시지 57>

Ⅰ. 위치 및 지형

A. 위치 - 오늘날 시온산이라 불리는 산은 예루살렘시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 765m의 언덕을 가리킨다. 이 산의 동쪽은 중앙 골짜기에 의해서 삼면이 경사를 이루고 있다.

B. 어원 - ‘시온’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처음 사용되는 곳은 다윗이 예루살렘의 가나안 원주민이었던 여부스족이 머물던 ‘시온 산성’을 빼앗았을 때이다(삼하 5:7). 하지만 이 '시온'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히브리어의 유사 파생어로 ‘바위’‘산성’, 혹은 '건조한 곳' 등을 의미하는 단어들만 있을 뿐이다.

C.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시온'은 그들이 잃어 버린 조국의 땅 전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시온’이라는 말에서 유대인들이 거룩한 땅, 곧 이스라엘(팔레스타인)로 귀환하고자 하는 운동을 가리키는 ‘시오니즘(Zionism)’이 파생되었다.

D. 다음은 시온산의 범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이다

1. 다윗성(City of David): 사실 시온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동적인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다윗이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고 말한다(삼하 5:7).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다윗 도시와 시온 산이 동일 장소인 동쪽 산비탈이라고 주장한다. 이 곳의 발굴을 통해 시온 산성의 하부 구조가 발견 되었는데, 견고한 돌로 쌓아져 있었다. 시온산성은 철기 시대 당시로서는 가장 큰 건축 구조물이다.
2. 성전산: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성전과 자신의 궁전을 다윗성 북쪽에 세웠다. 오늘날 이곳을 성전산이라 부른다. 이사야서(60:14), 시편(20:2, 50:2, 51:1)에서는 성전산이 시온으로 등장한다.
3. 산마루: 1세기경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다윗 도시가 서쪽 ‘산마루’에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Ⅱ. 시온산의 위치에 대한 논쟁

A. 현재 시온산 - 오늘날의 시온산은 구약시대에 부르던 곳과는 다른 곳에 있다. 왜 현재의 장소가 시온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4세기 이후의 기독교 전승에 근거하면 이 위치에 세워진 ‘시온 교회’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의해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가까이 이 산을 시온산이라고 불러 왔기에 지금도 유대인은 물론이고,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다.

B. 서쪽 산마루 - 흔히 예루살렘 구 도시 서쪽 산마루를 시온산이라고 부른다. 약 100 - 150년 전만 하더라도 학자들은 서쪽 산마루에 다윗의 도시가 위치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윗왕의 무덤이 시온산에 있다는 전승에 그 어떤 이의도 달지 않았다. 성전산(시온)은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70년에 파괴될 때까지 남아 있었다. 로마가 도시를 파괴한 후, 1세기 사람들은 다윗성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에 궁금해 했다. 그러나 그들은 화려하였을 다윗 성이 동쪽 산비탈 아래쪽에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다윗 도시가 서쪽 높은 산마루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된다.

C. 다윗성 - 탐험가들과 고고학자들의 조사는 전통적인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1838년 미국의 에드워드 로빈슨은 예루살렘 동쪽 산비탈 아래에 있는 기혼샘 근처에서 히스기야 터널을 발견했다. 이 터널은 기혼샘의 물길을 바꾸기 위해 건축되었고, 다윗성 안으로 연결 되었던 것임이 밝혀졌다. 수십 년에 걸친 발굴을 통해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이 점령하였던 여부스 족속의 도시 즉, 다윗성(삼하 5:7)이 위치한 곳은 서쪽 산마루가 아닌 동쪽 산비탈임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 동쪽 산비탈인가하는 이유는 기혼 샘에서 넘쳐나는 물이 동쪽 산기슭을 타고 흘러내려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서쪽 산마루가 여전히 시온산이라고 불리지만, 다윗성은 동쪽 산비탈에 위치해 있었음이 틀림없다.

D. 시온은 요새, 성채의 뜻으로 기드론 골짜기의 남쪽 절벽을 가르켰다. 이후 예루살렘 남쪽 등성이 전부를, 이어 예루살렘 전부(시편 126:1)를 말하고 포로시대에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르키는 의미로 발전하였다(렘 31:6). 즉 시온산은 하나님의 백성, 예루살렘, 그리고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또한 계시록 14장에서는 재림하는 예수님이 14만 4천명과 함께 시온산에 서있는 장면이 나온다. 즉 재림의 장소가 된다. 현재 유대인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의 수는 약 1만 5천명이다. 14만 4천명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80년에 약 500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14만 4천명이 다른 영적인 의미일 수도 있다. 14만 4천이란 숫자는 12(구약의 12지파)x12(신약의 12사도)x1000(완전수)를 뜻한다. 즉 어떤 수가 완전히 찬 것을 의미한다.

Ⅲ. 시온산의 변천사
BC 1,000년 시온산(성전산)의 땅은 다윗이 은 50세겔(약 0.6kg)을 여부스사람 아라우나에게 주고 산
               곳이며 이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었다(삼하24:18-25).
BC. 960년 솔로몬 성전(제 1성전)이 성전산 위에 건축되었다.
BC.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었다.
BC. 516년 스룹바벨 성전(제 2성전)이 완공되었다.
BC. 164년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더럽혀 놓은 스룹바벨 성전을
정화하였다(수전절).
BC. 20년 헤롯 대왕이 스룹바벨 성전을 새로 증축하는 대공사를 시작하
였다(헤롯 성전).
AD. 26년 예수님께서 성전을 방문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이 성전을
짓는데 46년이 걸렸다고
            말하였다(요2:20). 이 공사는 알비누스(AD
64)때까지 계속되었는데, 84년이 걸린 대규모 건축
           공사였다.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헤롯 성전을 불태우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도록 파괴하였다
           (마24:2). 이후로 성전은 두 번 다시
세워지지 못하였다.
AD.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전의 성전 터 위에 기독교 말살 정책으로
주피터 신전을 세웠으며, 이
           신전은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에 의해서
사용되다가
AD. 614년에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파괴당하였다.
AD. 691년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The Calip Abd al Malik)에 의해서
바위 돔이 세워졌다.
AD. 715년 아브드 알 말리크의 아들인 칼리프 알 왈리드(Calip al-Walid)에
의해서 알 악사(Al Aqsa)
            사원이 세워졌다.
AD. 1099년 십자군 시대에 바위 돔을 기독교 성전로 사용하였다. 알 악사
사원은 십자군 왕의 임시
           궁으로 사용되었었다.
AD. 1187년 십자군이 이슬람교도인 살라딘에게 패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슬람교
건축물로 사용되고 있다.
AD. 1267년 람반(Ramban)이 시온산에 회당을 세움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예루
살렘에서의 유대인 공동체
              가 활발히 활동하였다. 근거는 없으나 언제
부터인가 다윗 무덤이 이곳에 생겼고 유대인들의 다윗
              무덤 순례는
12세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AD. 15세기 기독교인들은 다윗 무덤 위층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이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로 인해 시온산에서 추방되
었고 건물은 이슬람교도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AD.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시온산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방문을 위해
시온산으로 오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 '교황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시온산 지도

                                             시온산 전경

                                                     시온문

                                            기혼샘에서 실로암연못까지(히스기야 수로)

                                                  예루살렘 전경



고린도후서 5.6.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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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에서 화목을 말하며 6장에서은 구원을 말한다. 그러므로 6장 2절에 언급된 구원은 사실상 화목을 가리킨다.
고린도후서 6장1절에서 "그리고" 는 이구절이 앞의 내용의 연속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5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들로서
화목의 사역을 위임받았다고 말한다. 이구절부터 7장 마지막까지에서 바울은 어떻게 일했는 지를 말하고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우리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추천합니다. 곧 우리는 많은 인내를 하고 환난과 궁핍과 곤경에 처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난동을 당하고 수고하고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였으며. 영광과 모욕 악평과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속이는 사람들 같으나 진실하고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있고 슬퍼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의 믿는이들은 어린아이들 같았기 때문에(6장13절) 그들의 속내는 사도들을 향하여 좁아졌다.(12절)
어린 아이들은 그 감정이 매우 좁기 때문에 자신들을 교정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이 상한다.
고린도후서 6장13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호소하기에 이른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의 믿는 이들이 마음을 넓혀. 사랑안에서 자신을
받아주기를 원했다.

고후 7:2-3. 마음을 넓혀 우리를 받아들이십시오.우리는 아무도 괴롭힌 적이 없고 아무도 해롭게 한적이 없으며.아무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 믿는이들은 신약의 사역자들이 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