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람미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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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아 2:4) 
He brought me into the banqueting house, And his banner over me was love.(S.S.2:4)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하라(아 6:13) 
Return, rerutn, O Shulammite; Return, Return, that we may Gaze at you (s.s. 6:13) 
 
내가 하나님의 질투로 여러분에게 질투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을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순수한 한 처녀로 드리려고 약혼시켰기 때문입니다.(고후 11:2) 
For I am jealous over you with a jealousy of God; for I  betrothed you to one husband to present you as a pure virgin to Christ.(2 Cor.11:2) 
 
아가서는 신성한 로맨스가 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가에서 추구하는 이는 어떤 과정을 통과하여 솔로문의 복사판이자 새 예루살렘의 상징인 술람미가 되었다(아 6:13,4). 여인의 이름인 '술람미' 는 '솔로몬의 여성형인데, 이 이름은 아가 6장 13절에서 처음 사용된다. 이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 하와가 생명과 본성과 형상에서 아담과 똑같듯이(창 2:20-23),  그녀가 생명과 본성과 형상에서 솔로몬과 똑같은 솔로몬의 복사판과 배필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생명과 본성과 형상에서 그리스도와 똑같이 되어 그리스도와 결혼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어울리게 되었음을 상징한다(고후 3:18, 롬 8:29). 솔로몬의 여인은 변화의 다양한 단계들을 통과한 후에 솔로몬의 복사판이 되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단체적인 술람미일 것이다.(신약의 결론, 영문판,4372쪽)


아가서 2


아가서 2012-09-0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19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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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의 내용은 개인적인 믿는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통을 점진적으로 체험해 가는것을 말하고있다.

1장2절-2장7절 만족을 얻기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도록 이끌림.

네 이름이 쏟은향기름 같고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나음으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같구나
네가 일광에 쬐어서거므스름할지라도 훌겨볼지 말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
9절: 내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송이 로구나.

2장8-3장5절  십자가와 하나됨을 통해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부르심을 받음

난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남자들중 내사랑은 수플속 사과나무라.그가나를 인도하여 잔치집 들어갔으니 그의 왼손으로 내머리에 베게로 받쳐주시고 그의 오른손은 그 품에 안아주시니
나의 사랑하는자의 목소리 내게 들린다. 보라 그가 산을 넘어 신속히 달려오누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들사슴으로 우리의 벽뒤에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틈으로 였보는 구나

주님의 연인은 아가서 2장9절에서 내적성찰을 하는 자아인 우리의 벽 안에 있었다. 이벽은 자아 밑바닥에 있다.
그녀의 내적성찰은 그녀를 주님과 분리시킨벽을 만들었다.

3장부터 5장1절까지는  부활안에서 새 창조물로서 승천안에 살도록 부르심을 받음

3장3절: 성중에 행순하는 자를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3장 6절:연기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가지 행품으로 향기롭게하고 거친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인이 옹위 하였는데 다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아가서 4장 7-8절에서 주님은 그분의 연인을 부활안에 있는 새 창조물로서 승천안에 살도록 부르신다.

그러나 아가서 4장8절은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 부터 나와 함께 하고 나와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신다.
레바논은 부활을 상징하는 높은 산이다.
이제 그분은 그녀에게 부활과 승천의 정상인 높은 산으로 그분과 함께 가자고 부르신다.이 높은 산은 부활의 정상. 곧 승천이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살아나셨으며 그런다음 승천하셨다.먼저 우리는 부활을 체험하고 그후에 승천을 체험한다.

4장 7-8.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 부터 나와 함께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꼭대기에서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스닐은 부드러운 갑옷을 의미한다. 갑옷이 단단하지 않고 부드럽다는 것은 원수 사탄이 패배당하고 전쟁이 끝났으며 승리가 쟁취되었음을 상징한다.우리는 부드러운 갑옷을 입고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승리를 누린다.

레바논은 높은산이다.믿는이들에게 승천의 위치에서 내려다 보라는 부르심이다.그분의 신부인 그분의 연인에게 그분과 함께 레바논(승천) 아마나(진리)와 싸움으로 얻은 그리스도의 승리(스닐과 헤르몬)의 가장높은곳에서 그리고 그분의 원수들이 있는 하늘에 속한 장소들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바라보자고 요청하신다.

사자굴과 표범산은 사탄과 그의 부하들이 있는 하늘들의 영역을 말한다.승리가 쟁취되었지만 사탄과 그의 악한세력들은 여전히 하늘들의 영역에 있다.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바라보도록 그분의 연인을 부르신 것은 우리가 반드시  승천안에서 살아 악한 권세자들 보다 훨씬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주님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권능안에서 굳세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를 입고 마귀의 계략에 대항에 서고 구원의 투구와 그영의 검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과 복음의 확산을 위해 항상 영안에서 기도함으로서 사탄과 그의 어둠의 권세에 맞서싸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승천안에서 사는 생활의 실재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십자가안에 머물도록 그분의 연인을 부르신 것처럼(아2:14)그분의 승천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도록 그녀를 부르신다. 

4장9-11.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마음을 빼앗는구나 네 목의 구슬 한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사랑이 어찌 아름다운지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났고 네 기름의 향기가 각종향품보다 승하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4장12-15.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 와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 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번홍화와 몰약과 침향이는그의 즐거움.그는 그의 동산에 와서 귀한 향품 모았네. 꿀송이와 꿀을 먹었네 젖과 포도주 마셨네.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연인을 사랑하는 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주님은 연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의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 온전히 사로잡혀 가고있다.

그분의 연인은 속생명의 여러가지 표현인 여러가지 색갈을 지니고 성숙한 생명의 표현인 다양한 향기를 지닌 식물로 자라게 하는 잠긴 동산이 되었다.이것은 그녀가 주님께 생명이 풍성한 아름다움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우리는 옛사람에 의해 살아서는 안된다. 무엇을 하든 혼안에서 한다면 옛사람안에 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일을 하기전에 먼저 기도함으로 우리의 영안에서 주님을 접촉하여 주님께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 느끼시는지를 여쭈어 보아야 한다. 이것이 영안에 사는 것이다.

우리의 영은 그 영이신 하나님에 의해 하늘과 연결되어있다.그러므로 영안에서 우리는 하늘 안에 즉 승천안에 있다.승천안에 사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영안에서 살고 행하고 움직이고 모든 일을 할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영을 분별하는지를 배워야 한다.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을 모른다면 그리고 어떻게 영과 혼을 분별하는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될수없다.우리는 우리의 영안에서 살때우리는 부활안에 있는 새창조물로서 승천안에 있게 된다.

5장2-6장13절  부활후에 십자가를 통하여 휘장안에 살도록더강하게 부르심받음

5장7절:성중에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볏겨 취히였구나
예루살렘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감당치 못할 병났다고 하려무나.
5장13절:너의 뺨은 향기로운 꽃밭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즙이 뚝뚝떨어진다.

6장3절: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구나
6장4절:내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와같고 너의고음이 예루살렘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6장13-14절:돌아오고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6장4절에서 추구하는 이를 묘사하는 또 다른 비유는 디르사 성이다. 디르사는 고대에 이스라엘왕의 궁이 있었던 성의 이름이다. 이단계에서 추구하는 이는 더 이상 동산이 아니라 성이다.
그녀는 왕이 계신 크고 견고한 성이다. 또한 6장 4절은 추구하는 믿는이를 예루살렘에 비유하신다.
그녀은 예루살렘같이 곱고 아름답다과 말씀하신다.

디르사는 왕이 살았던곳이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셨던곳이었다.
그녀는 백합화에서 동산이 되었고 동산에서 왕이 거하는 성이 되었으며. 왕이 거하는 성에서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는 성이 되었다.

추구하는 이에 대하여 사용하신 또한가지 비유는 아침빛이다.그녀에 대해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기치르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라고 말씀하신다.
그녀는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었음을 계시한다.그것은 왕으로서 생명안에서 다스리는데 까지 생명이 자란것이다.

"이 여인이 누구인가?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기치(旗幟)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하구나." (아 6 :10). 이것은 그녀가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었음을 계시한다
만일 어떤사람이 하늘에속한 초월한 상태에 있지 않고서 스스로 체험이 만하고 자처하여 높은 위치에 서려고 한다면 그는 다만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과시해 보일 뿐이며 그러한 것은결코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못난행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7장1-13절  주님의 일에 동참함
네 키는 종려나무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그가지를 잡으라
나의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아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가서 7장7절은 "네 키는 종려나무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라고 말한다.과거에는 어떤 성장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신장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숙되었기 때문에 신장이 있다.
종려나무는 높고 곧으며 성경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녀가 종려나무같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이 있다는 뜻이다.

아가서 7장11절-12절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분과 함께 그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들 안에서 다른 이들이 움이 돋고 꽃술이 
피고 꽃술이 퍼지도록 부지런히 수고하며 거기에서 사랑하는 분께 사랑을 드린다.
우리가 이런식으로 일한다면 다른 이들이 많은 도움을 입을 것이다.
아가서에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 생명의 성숙이 필요하며 주님과 하나되는 것이 필요하고.
우리의 일이 몸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본다.

8장1절-14절  휴거되기를 소망함
나를 인같이 주 맘에 품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한 것이요. 투기는 음부처럼 잔혹하다네
오 많은 물고 꺼치지 못할 사랑 홍수로도 엄몰못하리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가기 그 실과를 인하여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술람미는 솔로몬의 배필로서 일하며 모든 포도원을 돌본다.이것은 우리의 일이 몸을 위한 것이어야하며
단지 한도시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술람미는 솔로몬의 배필로서 일하며 모든 포도원을 돌본다.(아가 8:11)
이것은 우리의 일이 몸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단지 한 도시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아가 8장은 그녀의 소망이 휴거되는 것임을 계시해 준다.술람미는 여전히 육체가 있다는 사실외에는 모든 방면과 모든 축면에서 솔로몬이 될정도로 생명이 성숙했다.
아가서 8장 2절부토 4절까지 에서 우리는 그녀가 육체로 인한 신음에서 구원받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그녀가 하나님께서 그녀의 몸을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휴거되기를 소망했음을 가리킨다.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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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 14:5) 
I will be like the dew to Israel; He will bud like the lily And will send forth his roots like the trees of Lebanon.(Hosea 14:5)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고도 즐거운고(시 133:1)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others to dwell in unity!(Psa.133:1)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원한 생명이로다(시 133:3) 
Like the dew of Hermon That came down upon the mountains of Zion. For there Jehovah commanded the blessing: Life forever.(Psa.133:3)
 
출애굽기 16장 13절과 14절에서 우리는 만나가 이슬과 함께 온것을 본다.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 작고 둥근 것이 만나였다. 민수기11장 9절도 만나가 이슬과 함께 왔다고 말한다.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분명히 하나님은 이슬이 없이도 만나를 보내실 수 있었다. 만나가 이슬과 함께 왔다는 사실은 분명한 영적 의미를 갖는다.  
 
시편 133편 3절은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말한다. 이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상징한다. 이슬은 비나 눈이나 서리와는 다르다. 이슬은 비보다 부드러우며 서리처럼 차갑지 않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과 23절에 따르면,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다. 구약에서의 긍휼은 결국 신약에서 은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애가 3장에서 긍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주님의 은혜는 아침마다 새롭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가 충만하셔서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가 되신다. 만나는 항상 이 은혜를 수단으로 하여 온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매일의 시작에 아침부흥을 갖도록 격려한다. 우리가 아침에 말씀을 읽는 중에 이슬을 얻을 때마다, 말씀은 참으로 우리에게 음식이 된다. 
 
 만일 우리가 새롭게 하는 이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슬과 함께 오는 만나를 가질 수 없다. 아침 이슬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이러한  이슬, 즉 이러한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매우 메마르다. 만나가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슬과 함께 오는 것으로 인해 주님께 감사한다. 아침에 이슬과 함께 온 만나를 거두는 것에 관해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교리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더 많은 체험을 갖는 것이다.(출 LS 36)


호세아 14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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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 14:5) 
I will be like the dew to Israel; He will bud like the lily And will send forth his roots like the trees of Lebanon.(Hosea 14:5) 
 
호세아서 14장 5절의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라는 말씀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모든 것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와 거룩하게 함과 구속이 되신다. 이슬은 나무와 꽃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이슬이 기초가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백합화와 같이 꽃피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다. 여기서는 백합화가 꽃 피는 것과 레바논의 백향목 뿌리를 함께 연결한다.백합화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은 생명, 곧 믿음과 신뢰의 연약한 생명을  말한다. 백향목은 깊고 감추어진 뿌리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깊은 영적인 뿌리를 갖고 깊이 묻힐 필요가 있음을 예표한다. 
 
 이것은 십자가를 예표한다. 백향목은 지면 위의 보이는 부분보다 땅속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백배나 더 많다. 우리의 생활 중에 보이는 것은  얼마이며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은 얼마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은밀한 일이 있는가? 이 때문에 어떤 커다란 계시들은 감추어졌다가 수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사람은 작고 연약한 백합화를 보지만 하나님은 밑에 있는 뿌리를 보신다. 우리의 뿌리는 백향목의 뿌리와 같은가?(웟치만 니 2집 46권) 
 
말씀이 말라 버리는 한 가지 원인은 뿌리가 없는 것이다. 뿌리란 무엇인가? 나무에서 밖으로 노출되어 보이는 부분은 줄기이고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부분은 뿌리이다. 식물의 생명에서 보이는 부분은 가지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뿌리이다. 그러므로 뿌리는 감추어진 생활을 말한다.주님 앞에 뿌리가 없는 사람의 생명은 반드시 마르게 된다. 영적인 방면에서 감추어진 생활이 없이 모든 것이 다 사람 앞에 노출된 사람은 뿌리가 없는 사람이다. 뿌리는 곧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부분이다. 밖에 노출되어 보이는 부분은 뿌리가 아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 자신의 생할 가운데 사람 앞에 보이는 생활외에 주님 앞에서 감추어진 생활이 얼마나 되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만일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밖에 노출된 것 뿐이라면 해가 떠서 우리를 내리쬘 때 우리는 즉시 말라 버릴 것이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감추어진 생활처럼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없다. 어떤 형제 자매가 걸려 넘어지는 것이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주님 앞에서 그의 감추어진 생활에 이미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에게는 뿌리가 없기 때문에, 해가 떠서 그를 내리쬐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마태복음 6장 6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러나 그대는 기도할 때, 그대의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십시오.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그대의 아버지께서 갚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곧 감추어진 생활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곧 뿌리이다. 주님께서 " 은밀한 가운에 보시는 그대의 아버지께서" 라고 하신 말씀은 아주 특별하다. 오! 기도는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도는 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보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웟치만 니 2집 38권)


호세아 14장 5-7절


구약 2012-09-0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19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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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광채는 올리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같이 소생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호 14:5-7) 
 
I will be like the dew to Israel; He will bud like the lily And will send forth his roots like the trees of Lebanon. His shoots will  go forth; And his splendor will be like that of the olive tree, And his fragrance,like that of the trees of Lebanon. Those who sit under his shade will return; They will revive like grain And will  bud like the vine; His renown will be like the wine of Lebanon. (Hosea 14:5-7) 
 
 위의 성경 말씀에서 세번 레바논이 언급된다. 한 번은 백합화와 관련해서 언급되고, 또 한 번은 올리브나무와 관련해서 언급되며, 마지막 한 번은 포도나무와 관련해서 언급된다. 레바논이 강조되는 것은 레바논 산 위에 키가 크고 뿌리가 아주 깊은 백향목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큰 나무를 대표하고, 또한 깊이 뿌리를 박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성경의 이 단락은 한 면으로는 백합화와 관련해서 레바논을 말하고, 또 한 면으로는 올리브나무와 관련해서 레바논을 말하며, 마지막으로는 포도나무와 관련해서 레바논을 말한다. 성경이 이런식으로 말하는 것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백합화가 왜 레바논과 연결되었는가? 백합화는 매우 순수하고 아름답다. 여기에 언급된 백합화는 들에서 자라는 것이지 온실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이 백합화는 원예사의 돌봄 없이 순전히 햇빛과 비와 이슬을 의지해서 자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골짜기의 백합화(아2:1)로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을 의지하여 자란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적 생활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왜 올리브나무가 레바논과 연결되었는가?  사람들이 볼 때 올리브나무는 광채가 조금도 없다. 모란꽃에 광채가 있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광채를 올리브나무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있어서 광채는 표면적인 광채가 아니라 참된 열매라는 것을 계시한다. 올리브나무는 기름을 내는 유실수이므로 올리브 나무의 광채는 그 열매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광채는 그 영의 열매를 맺는 것에 있다. 이러한 열매는 깊은 곳에 뿌리를 박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광채는 올리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세 번이나 레바논을 언급한 것은 우리에게 깊은 생활에 주의하라는 것이다. 이 깊은 생활은(골짜기의 백합화같이) 숨겨진 생활이고,(올리브나무처럼) 겉 모양은 매력적이지 않으며,(포도나무 꽃처럼) 눈에 띄지도 않지만, 이 생활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앙망하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생활이다.이러한 생활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생활이다.(워치만 니,2집 38권) 
 
올리브나무는 올리브기름으로 상징되시는 그 영(눅4:1상,18상, 히1:9)으로 기름 부어지시고 성령으로 충만한 분이신 그리스도(비교 롬11:17,슥4:11-14,계11:4상)를 상징한다. 올리브나무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데 사용되었는데(삿9:9), 이것은 그 영에 의해 행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고(갈 5:16,25) 그 영을 공급하는 이들이 사람을 존귀하게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후3:6, 8).(영어회복역,삿9:8각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