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니.


워치만니 2012-07-16 / 추천수 1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1224.html

그리스도 예수의 신실한 종 워치만 니는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 헌신되었습니다. 아들을 바라며 그의 어머니는 주님께 “나에게 사내아이를 주신다면 내가 그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후 오래지 않아 1903년 워치만 니가 중국의 복주(Foochow)에서 2세대 그리스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총명했을 뿐 아니라 비범한 학생이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반에서 뿐 아니라 전교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워치만 니는 복음을 알았지만 그가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그의 주님으로 영접한다면 그가 반드시 그분을 절대적으로 섬겨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1920년 열 일곱살때 그는 주님을 일생을 다해 섬긴다는 조망을 갖고 구원받았습니다.

워치만 니는 신학교나 성경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성경뿐 아니라 영적인 사람들의 글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와 그 영과 교회에 대하여 뛰어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초기 사역 동안 그는 수입의 삼 분의 일을 들여 팬튼(D.M. Panton)이나 고벳(Robert Govett)이나 펨버(G.H. Pember)나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나 오스틴 스파크(T. Austin-Sparks)나 다비(John Nelson Darby)나 켈리(William Kelly)나 매킨토시(C.H. Mackintosh)와 같은 그리스도인 저자들의 책들을 사보았습니다. 그는 합당한 서적을 고르게 이해하고 분별하고 기억하는데 아주 뛰어난 은사가 있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일세기 부터의 고전적인 기독교 서적들을 포함한 3000여권의 최고의 기독서적을 모아 그 중에서 좋은 성경적 요점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는 영적 지식뿐 아니라 옛 영국 국교회 선교사인 바버자매(Margaret E. Barber)로부터 그의 초기 그리스도인 시절에 많은 영적 함양과 온전케함을 받았습니다.

바버자매와의 이러한 교통과 그의 성경과 많은 영적 책들을 추구함을 통해 워치만 니는 풍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근본적인 깨달음이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완전히 신성한 생명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그의 사역 전체는 일보다 생명을 더 주의하는 것을 배웠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또한 부활의 주관적인 방면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더이상 그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관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 그 영의 충만함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이 되셨음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단순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확대요 확장이요 표현임을 보았습니다. 부활안에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생명이자 내용이시라는 워치만 니의 깨달음은 더욱 전진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이 시대의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로서 그 계시는 주님의 이중의 부담과 위임을 그에게 나타냈는데 먼저는 주 예수의 특별한 간증을 지니는 것이고 둘째로는 지방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사역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가난과 병과 그리스도인들의 강한 반대와 이십년 동안의 힘든 투옥(投獄)생활을 겪었습니다. 그의 계시의 깊이와 사심 없는 고통들은 함께 하여 주님이 그에게 주신 위임에 따라 생명의 풍성한 사역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한 새 언약의 사역을 가져왔습니다.

비록 그가 믿음으로 살고 교회들의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완전히 점유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워치만 니는 괴팍하거나 금욕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1934년 40세의 나이에 주 안에서 자매된 채러티 장(Charity Chang)자매와 결혼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아이는 주시지 않았습니다. 부가적으로, 그는 1939년에 그의 동생의 제약 회사의 운영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얻은 이익으로 그는 얼마간의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돕고 훈련 센터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공장을 주님께 헌금하여 사역의 일을 위해 드렸습니다.

그의 초기 사역때 위트니스 리 라는 젊은 믿는이가 그와 함께 하여 20년간 함께 수고했으며 그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1949년 공산당의 침공으로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니 형제님의 사역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워치만 니는 주님이 그를 중국 대륙에 남아 그분의 간증을 지키고 교회들을 돌보게 하신다고 느꼈습니다. 1952년 공산당은 그를 체포했는데 그때까지 약 400여개의 지방 교회들이 중국 대륙에 세워졌고 동남 아시아에는 약 30개의 지방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한편, 위트니스 리의 사역 아래 대만에 있는 교회들은 증가하고 번창했습니다.

1972년 5월 30일, 그리스도안에서의 믿음과 지방 교회들에 관여함으로 인하여 20년동안 투옥(投獄)생활을 한 후 워치만 니는 그가 사랑하고 목숨을 다해 섬겼던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했습니다. 그가 주님품에 가기전에, 그는 진리의 간증을 위해 종이 한장을 그의 베개 아래 남겨 두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우주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실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노라. 워치만 니.”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부담과 위임에 따라 그리스도의 예수의 신실한 간증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기도의 성취로 그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워치만니의 삶은 온 땅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계시와 공급의 잘 알려진 근원이 되는 사역을 산출했습니다. 62권의 워치만 니 전집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글을 보급하려고 위트니스 리가 설립한 출판사인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www.livingstream.com)-한국 복음서원(www.kgbr.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생애와 사역은 또한 수백 개의 지방 교회들을 산출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풍성하고 신실한 사역들을 통해 전 세계에 2300개가 넘는 지방 교회들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진리의말씀 2012-07-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1127.html
엡4:16.
온몸은 그분에게서 나온 그 풍성한 공급을 해주는 각 마디를 통하여 그리소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거을 통하여
함께 결합되고 함께짜입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서 사랑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
롬 12:4-5
우리가 한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것이 아니니 이와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는것이지만 깨닫지 못하던것을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손이 움직이지않으면 몸이 손해본다.발이 걷지않으면 몸이손해를 본다.
고린도 성도들이나 수세기에 걸친 다른 많은 믿는이들과는 달리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몸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한다.
바울의 의도는 그들을 자기만을 관심하는데서 구출하여 다시 몸을 관심하게 함으로써 더 이상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지 않고 몸의 건축을
위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주적인교회와 지방교회


진리의말씀 2012-07-1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1010.html
한지방교회의 터인 지방은 존재에 있어서 교회를 나누는 것이지 본질에 있어서 교회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들의 존재는 나누어지지만 교회들의 본질은 분리될수없다. 애틀란타에 사는 성도들과 애나하임에 사는성도들이
언제나  한교회로 함께 한장소에 모일수없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들이 나누어지는 것은 존재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존재하기위한 목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이지만 본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애들란타에있는 교회. 애나하임에있는 교회등 모든 지방교회들은 본질에서 한몸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온 지구상에서 한몸일 뿐이다. 우리의 사상은 혁신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지방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의 한부분으로 여겨야한다.

지방적인 면에서 교회는 많은 지방들에서 많은 지방교회들로 표현된다. 하나의 우주적인 교회는 땅위에 
많은 곳들에서 표현되어 많은 지방교회들이 된다. 한지방에서의 교회의 표현은 그 특정지방에있는 지방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 교회는 지방교회들을 통해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한 몸의표현인 지방교회들은 지방적으로 하나이다. 지방교회들이 없다면 우주적인 교회의 실행성은
없을 것이다. 우주적인 교회는 지방교회들 안에서 실현된다.
교회를 우주적으로 아는 것은 반드시 교회를 지방적으로 아는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방교회들을 알고 실행하는 것은 큰진보이다. 결국 성경은 지방교회들로 끝맺는다.(계 1:10-13)

믿는이들인 우리는 오늘날 지방교회들 안에서 살고있다. 사실상 우리는 직접우주적인 교회 안에서 살수없다.
우리가 한 지방교회 안에 살지 않으면서 우주적인 교회안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님은 우주적인 교회를 건축하는 중이시며. 우리 각자는 실지적으로 한 지방교회안에서 살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교회는 표현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교회의 표현을 갖지 않으면서 교회에 관해 말한다면.
우리의 말은 전적으로 이론일뿐 실지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에게 지방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우주적인 교회를 가질수없다.
왜냐하면 우주적인 교회는 모든 지방교회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요한 계시록에는 하나의 완결이있다. 이완결안에서 일곱 등잔대는 모두 사라진다.
첫째 장에서 우리는 일곱등잔대를 보지만. 마지만두장에서는 다만 한성르 보게 된다. 결국 지방교회들은 끝날 것이다.
오직 몸만이 남고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 몸은 이땅에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유일한 장막이되고.
어린양의 유일한 신부가 될것이다.(계 21:2-3)
우리 모두는 이것을 보아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교회들보다 그리스도의 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


생명의말씀 2012-07-1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0977.html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그분에게서 배우도록 훈련시키셨다.
마태복음 14장19절은 그분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시고. 또한 그것들을 축복하시려고. 하실때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보심으로써 음식을 축복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보신것은 그분께서 그분의 근원이신 하늘에계신 그분의 아버지를 우러러 보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분께서 자신이 축복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음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성경독자들은 이것을 주님께서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행하신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우신 본을 볼 필요가 잇다. 우리는 그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우러러
보셨으며. 제자들앞에서 떡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축복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축복하신 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할것인지를 말씀하셨다. 의심할바없이 그분께서 행하신 것은 제자들이
그분에게서 배워야하는 본이었다.

우리가 얼마만큼 할수있든지 간에 우리는 여전히 보내시는 분. 곧 근원으로부터 오는 축복이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곳에 말씀을 전하도록 초청받은 한 동역자는 수년동안 주님을 위해 말해왔으므로 말씀 전하는 법을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이런종류의  태도를 떨쳐버리고 우리 자신이 근원이 아님을 깨달아야한다.
우리 자신으로 부터는 축복이 오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할수있고. 무엇을 해햐할지 아무리 잘 알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을 신뢰함으로서우리가 하는일에 그분의 축복이임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아야한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음


봉사 2012-07-0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0810.html
요 7장 18절  :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그 사람은 참되며, 그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주님은 그분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다 . 나는 니 형제님과 약 이십년간 함께 있었다.
워치만니형제님은 동역자들과 관련해서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동역자들 가운데 야심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야심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할때 항상 야심이 있다.

한 형제는 장로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있을수 있다. 장로가 되기 위하여 그는 먼저 집사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집사가 되는 것은 장로가 되기 위한 예비 단계이다. 우리는 모두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며 같은죄, 같은 질병에 걸려있다.
여러해 동안 나는 우리가운데 많은 동역자들이 야심으로 쓸모없게 된 것을 보았다. 주님의 긍휼로 나는 나의 자아와 나의 의도를 처리하는 비결을
배웠다. 이러한 비결의 도움으로 나는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처리할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자아와 목적과 야심이 우리의 일에서 파괴하는 세마리의 "큰 벌레"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서
항상 주님을 위해 쓰임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항상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의 목적을 거절하며, 우리의 야심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갖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이 세가지. 즉 자아가 없고. 목적이 없고, 야심이 없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의 목적을 거절하며,
우리의 야심을 버림으로써 그분을 위해 수고 하며, 일하는 것만을 알아야한다. 자아와 목적과 야심은 우리안에 있는세마리의 뱀이나 전갈과같다.
우리는 그런것을 미워하기를 배워야 한다.

요 7장18절에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그 사람은 참되며,
      그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있었다. 

마 14장19절 "무리를 돌려 보내신 후에. 그분은 기도하시러 홀로 산에 올라가셨고 밤이 되어도 거기 혼자 계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있은후에 주님은 그기적의 결과안에 머물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 홀로 산에서 아버지와 함께하시며,
      기도 하셨다. 만약 우리가 어떤곳에서 큰성공을 이루었을때.우리는 바로 그곳을 떠나겠는가. 아니면 성공 안에서 그것을 누리기 위해
      머물겠는가. 우리는 주 예수님으니 본을 따라야 한다.
      그분은 자신이 행하신 놀라운기적의 결과에 머물지 않고 대신에 기도 하시러 산에 올라 가셨다.
      
      홀로 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깊다.이것은 주님께서사람들이 자신이 기도하려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알리셨다면 사람들이 그분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분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시기위해 홀로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