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로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하는가.


봉사 2012-06-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40554.html
교회역사 전체에 걸쳐서 교회는 은사들에 의해 분열되었지만, 생명의 사역에 의해서는 분열될수 없다. 만약  우리의 관심의 초점이 은사들에 있다면 우리는 분열될것이다. 그러나 은사들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고 우리의 온 관심을 생명의 사역에 둔다면,
하나안에 지켜질 것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면서 늘 사람들과 논쟁하려 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다만 은사만 가진 사람임을 증명한다.
생명의 사역을 가진 사람은 결코 다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은사들과 가르침들에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논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의 초점을 생명의 사역에 둔다면,
우리는 논쟁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은사들과 가르침들은 교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일으키며 지방교회를 무너뜨린다.
지방교회는 오직 생명의 사역에 의해서만 건축될수 있다.  (교회건룩을 위해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체험함. 158쪽)

고린도후서에서는 은사들이 사역으로 대치되는데. 사역은 고난과 소모시키는 압력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함으로 조성되고 산출되고 형성된다.
이서신은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운행하는지. 그리스도 께서 어떻게 우리 존재안으로 분배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표현이 되는지에 대한 본과 실례를 보여 준다. 이러한과정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조성되고.
하나님의 새언약을 위한 사역이 산출된다. 첫번째 서신은 부정적으로 은사들을 다루고. 두번째 서신은 긍정적으로 사역에 대하여 말한다.

교회에는 은사보다 사역이 훨씬더 필요하다. 사역은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지만.
은사는 다만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라는 증거는 은사에 있지않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교통을 체험함으로 산출되고 형성된사역에 있다.(고후 1장 4절 각주1)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은 우리에게 그의 고난을 보여준다.(골 1:24). 우리는 사도바울의 서신에서 그가 고난을 통과하기 전에 계시들을
받은 것을 알수있다. (고후 12:1.7).
그는 먼저 계시들을 받았지만.  이것은 그가 그 계시들을 받은 후 즉시 나가서 유창하게 말하며 그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그가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사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그가 교통한 것은 단순한 가르침이나 그의 은사를 사용한 것일뿐 사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하지않았다는 것을 안다.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계시들을 받은후. 주님은 그를 오븐, 즉 불속으로 넣어 구어지고 고난을 받도록 하셨다.

바울의 글에서 우리는 계시가 먼저이고 .고난이 그다음이라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나서 이두가지로부터 사역이 나왔다.
계시는 반드시 불을 통과해 우리안으로 새겨져야한다. 계시는 고난을 통해 우리안으로 새겨진다. 참된하나님의 사역자라면 고난을 피할수없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명과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의 풍성의 실재를 공급할수 있는 지는 두가지, 곧 우리가 얼마나 많은계시를 받았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르을  받았는지에 달려있다.
 계시에 반드시 고난이 더해져야 한다. 그럴때 사역이 있다. (교회의 역사와 지방교회들.114-115 쪽)


형제운동의 신앙 핵심내용


진리의말씀 2012-05-0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95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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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형제운동’의 신앙 핵심 내용

  
1) 성경에 대하여
모든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완전하게 계시되어 있는 신앙생활의 최종적 권위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어떤 신조나 헌법이나 전통에 우선(優先)하는 것입니다(벧후3:21).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2)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은 만유(萬有)의 창조주로서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한 분이신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십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비밀이기에 만물 가운데 그 유비(類比)를 찾아 볼 수는 없으나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고후13:13).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6~17).
 
 
3) 그리스도에 대하여
(1)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하여 완전하고 영원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히10:10).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2)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지금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대언자(代言者)로 계십니다(고전15:20).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體恤)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4~15).
 

4) 성령에 대하여
성령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며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믿음으로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심령에 내주하셔서 예배하도록 인도하시며, 기도하도록 감동하시며, 전도하도록 힘을 주시며, 봉사하도록 은사를 주시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교회는 모든 활동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복종해야 합니다(고전12:1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5) 구원에 대하여
(1) 오직 믿음에 의한 구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롬3:23). 죄는 유전되어 자자손손(子子孫孫) 모든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각종 죄악은 물론이고 불안과 초조, 은닉과 공포, 전쟁과 소란, 미움과 질투, 질병과 죽음 등, 이 모든 것이 죄가 남긴 유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모든 죄를 담당시키셨습니다(벧전2:24).
 
그러므로 오직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게 되며 영적 생명을 얻게 됩니다. 선행(善行)은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딛3:5~7).
 
천국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지는 신분으로 가는 나라이지 우리의 선행과 수고의 대가(보상)로 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롬3:20, 행13:39, 딛3:5, 히7:19, 갈3: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2) 영원한 구원
참으로 거듭난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구원받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불변하기 때문이며(히6:17), 그리스도의 구속이 영원하기 때문이며(히10:14), 성령께서 구속의 날 까지 인치셨기 때문이며(엡4:30), 구원받은 자들이 보존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요6:3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6) 교회에 대하여
(1) 성도는 주의 성전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무리들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성전입니다. 따라서 집회장소는 성도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중요하지만 구약시대의 성전처럼 신성시할 대상은 아닙니다(고전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2) 교회는 주의 몸
교회는 한 몸이며 모든 성도는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나 민족이나 신조에 의해 파명(派名)을 달리하고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고전12: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고전1:12~13).
 
(3)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각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받들어 자주(自主), 자급(自給), 자립(自立)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간 교회간에 사랑으로 서로 도와야 하지만, 타 교회를 간섭하거나 다스리는 조직과 제도는 합당치 않습니다(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2~23).

(4) 모든 성도는 제사장
모든 성도에게는 제사장으로서 다양한 은사를 따라 전도, 기도, 교육, 교제, 예배, 헌신, 봉사해야할 의무와 특권이 있습니다(마23:8~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5) 교회의 직임
교회의 직임에는 감독(장로)과 집사가 있습니다. 감독이나 장로는 동일한 직임으로 성도들을 보살피고 돌보는 사람이며(행20:17,28), 집사는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는 일에 힘쓰는 사람입니다. 요컨대 감독과 집사는 사회적 신분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성숙된 인격을 필요로 하는 봉사의 직분입니다(딤전3:1~10).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2~4).

(6) 침례는 최초의 순종
중생을 체험한 사람만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는 주님이 명하셨고(마28:19), 바울이 상세히 교훈했으며(롬6:1-4), 제자들이 순종했던 예식입니다(행2:41, 10:47, 16:33, 18:8). 침례가 결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순종의 첫 발자국이 됩니다. 또한 침례는 어원적으로나 문맥적으로나 교훈적으로 보아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 합당합니다(행8:38~3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7) 성찬을 통한 예배
주의 만찬은 주 예수님의 분부와 사도들의 본을 좇아 매주일 시행하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마26:26~29, 행20:7). 예배는 죄를 위한 제사도, 구원의 방편도, 은혜나 상급의 조건도 아닙니다.
 
또한 설교를 듣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고, 다만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드리는 우리의 심령은 주님께만 향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3~26).

(8) 교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합니다(고전14:34). 또한 여자는 교회에서 너울을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는 시대적 풍조나 지역적 풍속이 아니고 모든 성도의 교회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또한 주 안에서는 신분상 남녀의 차별은 없지만 질서상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갈3:28).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전11:7~10).
 
(9) 교회의 재정
교회의 재정은 감동을 받아 은밀하게 자원하여 드리는 연보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따라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강요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고후9:6~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7) 종말에 대하여
(1) 교회의 휴거
예수님이 오실 때 주 예수님을 믿고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던 성도들은 변화를 받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성전인 교회의 지체된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휴거 될 것입니다(고전15:51~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2) 전무후무한 환난
성도들이 휴거 된 후에는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이 후에도 없을 환난으로, 온 세상에 임할 것입니다(마24:21). 그래서 휴거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자들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13:19).

(3) 주 예수님의 지상재림
큰 환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재림하실 것이며 열방을 심판하신 후, 천년동안 다스리실 것입니다(막13:24~2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20:6).

(4) 최후의 심판
크고 흰 보좌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실대로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곧 불못에서 세세토록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계21:8).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1,13,15).

(5) 성도의 소망
성도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슬픔 중에 위로를 받으며, 주의 오심을 고대하며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습니다(계21:1).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3~14).

(출처 : 송찬호, 19세기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 엠마오 성경학교)


워치만니의 삶과 사역


워치만니 2012-04-2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9202.html

워치만 니의 삶과 사역

 

1. 역동적인 구원

 

16세기 초에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중국으로 갔다. 신실한 수고의 시간들과 의화단사건(Boxer Rebellion)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순교로 촉진되어, 20세기 초 중국에서의 주님의 움직이심은 극적으로 전진되었다. 주님께서 그 “지역에서 자란” 전파자들을 많이 세우셨고 특별히 1920년대에 중국의 새로운 세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많이 얻으셨다. 많은 똑똑한 학생들 중에서 주님께서는 니쑤주(워치만 니)를 부르시고 이 시간 동안 그분의 일을 하도록 장비시키셨다.

영어 이름이 헨리 니(Henry Nee)였던 니쑤주는 1903년 중국 푸저우(福州)에서 제2세대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푸저우 미 조합교회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푸졘(福建)성 북부의 조합주의자들 가운데서 첫 번째 중국인 목사가 되었다. 니쑤주는 태어나기 전부터 주님께 헌신되었다. 아들을 낳기 원했던 그의 어머니는 주님께, “만일 당신이 내게 아들을 주신다면 그를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주님께서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셨고 곧 니쑤주가 태어났다. 훗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가 이미 너를 주님께 드렸다.”고 말씀해 주었다.


구원받기 전에 니쑤주는 말썽꾸러기 학생이었지만 뛰어나게 명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복주에 있는 성공회의 삼일대학(Anglican Trinity College)을 졸업할 때까지 항상 반에서 일등을 하였다. 그는 장래에 대한 커다란 꿈과 계획이 있었고 세상에서 크게 성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복음을 알고 있던 니쑤주는 만약 그가 구원받기 위하여 주님을 영접한다면 또한 그분을 섬겨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얼마간의 몸부림 후에 니쑤주는 고등학생이었던 17세 때 역동적으로 구원받았다. 구원 받은 바로 그 때, 그는 이전에 가졌던 그의 계획을 버렸고, 장래의 성공도 완전히 포기하였다. 그가 간증하기를, “내가 구원받은 저녁부터 나는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가 주님의 위임을 수행하기 위해 그분에 의해 일으켜진 후, 영어 이름은 워치만 니(Watchman Nee:파수 보는 사람이라는 뜻임-역자 주)로, 중국어 이름은 니토셍-징 치는 자의 징 치는 소리를 나타냄-으로 바꾸었다. 그는 새롭게 거듭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자신을 어두운 밤에 일어나 징소리를 발하는 징 치는 자로 여겼다.

 

 

2. 장비와 훈련

 

워치만 니는 신학교나 성경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와 영의 일들과 교회에 관한 그의 풍부한 지식은 성경을 연구하고 영적 서적을 읽어서 습득된 것이다. 스무 가지 다른 방법으로 부지런히 연구하여 워치만 니는 성경에 아주 익숙하게 되었고 빛 비춤을 얻었다. 게다가 그는 초기에 사역할 때 수입의 삼분의 일은 자기 필요를 위해 사용했고, 삼분의 일은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했으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책을 사는데 사용했다. 그는 1세기 이후에 나온 탁월한 기독교 저자들을 거의 모두 다 포함하여, 최고의 그리스도인 서적들을 3000권이 넘도록 수집하였다. 그는 적절한 자료를 택하고, 이해하고, 분별하고, 기억하는, 뛰어난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 눈에 한 권의 책의 요점을 쉽게 붙잡았다. 워치만 니는 교회사를 통하여 유익한 영적 요점들과 영적 원칙들을 모두 수집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그리스도인 생활과 교회 생활에 대한 그의 이상과 실행 안으로 종합했다. 워치만 니는 많은 그리스도인 저자들로부터 많은 빛 비춤과 도움을 받았다. 그 저자들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인 빛 비춤 근원
1.구원의 확신 형제회의 저자인 죠지 커팅(George Cutting)
2.생명 죤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
귀용여사의(Madan Guyon) 전기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전기
기타 신비주의의 저서
3.그리스도 벨레트(J. G. Bellett) 트럼볼(Charles G. Trumbull)
심프슨(A. B. Simpson)
스팍스(T.Austin Sparks)
다른이들
4.그 영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의 그리스도의 영
5.사람의 세 부분(몸과 혼과 영)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
메리 멕도나휴 (Mary C. McDonough)
6.믿음 죠지 뮬러(George Muller)의 자서전
7.그리스도안에 거함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전기
8.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주관적인 면과
영적 전쟁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
9.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의 몸 스팍스(T. Austin Sparks)
다른이들
10.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메리 멕도나휴(Mary C. McDonough)
11.교회 다비(John Nelson Darby)
기타 형제회 교사들
12.예언 고벧(Govett)
팬튼(D. M. Panton)
펨버(G. H. Pember)
기타 형제회 교사들
13.교회사 폭스(John Foxe)
브로드벤트(E. H. Broadbent)
다른이들
14.성경 해석과 다른 일반적인 진리 다비(John Nelson Darby)
형제회


워치만 니는 전 성공회 선교사였던 바버(M.E. Barber)자매를 통하여 이러한 많은 서적들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통해서 그의 초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많이 다듬어지고 온전하게 되었다. 주로 바버 자매와의 교통을 통하여,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온전히 신성한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양육을 통하여, 일보다는 생명을 주의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으로 사는 것에 대하여 배웠다.

 

 

3. 계시와 삶

 

바버 자매와 다른 이들의 교통과 더불어, 성경과 많은 영적 서적을 연구하여 워치만 니는 풍성한 계시를 받았다. 그는 진정으로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였다. 그의 계시의 핵심은 삼중이었다. (1)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을 삶, (2) 부활한 생명을 삶, (3) 그러한 삶의 결과는 교회임. 십자가에 못 박힌 삶과 관련되어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주관적인 방면들을 보고 체험했다. 그는 그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이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사시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또한 주관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져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 비록 그가 사실상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또한 체험적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 안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안에 머무는 것은 옛 사람이나 육체가 십자가를 떠나는 것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머무는 것임을 그는 배웠다. 그러한 체험을 갖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주권적으로 그에게 환경을 안배하시고, 그가 실제적인 십자가를 지게 만드신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워치만 니의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의 사역의 아주 초기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수많은 환경을 안배하셔서 십자가를 지고 자아와 타고난 생명을 부인하여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으로 살게 하셨다. 워치만 니는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분과 함께 부활하였음을 보았다. 그 영의 충만을 가진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생명이 되셨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그는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으심의 형상을 이루실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그는 세상을 버리고 장래를 포기하였으며,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죄로부터 해방되어 사탄을 이겼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주님을 섬기고, 그분을 위하여 일하고 그분의 위임을 완성하였다. 그와 같은 시대에살았던 사람들은 그가 언제나 자신의 타고난 힘을 제쳐놓았음을 증거했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생명이 주님의 일에 개입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감히 사역을 하지 못했다.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을 접촉하고 글을 쓰고 믿는 이들과 왕래하고 일반적인 일들을 처리할 때도, 그는 스스로 행하지 않고 부활 생명으로 행하였다. 그러한 부활 생명을 살았기에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죽음을 맞이한 순교를 통과할 수 있었다.

워치만 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확대와 확장과 표현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부활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생명과 내용이라는 그의 이상은 더욱 전진되었다. 이 이상을 따라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일했을 뿐 아니라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넣어주어 그분의 몸을 건축하였다. 그는 부활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아닌 것들은 교회가 아니란 사실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것도 몸 안에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만 교회를 섬기기를 갈망했다. 그의 사역이 더욱 전진될수록, 그는 믿는 이들과 지방 교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더욱 사역하였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생명과 생활뿐 아니라, 그의 말씀과 사역이 되셨다.

 

 

4. 부담과 위임

 

워치만 니가 본 신성한 계시는 이중의 부담과 위임을 가져왔다. 먼저는 주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간증을 짊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방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부담과 위임은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부활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지식과 체험의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주님께서는 특별히 그에게 이 진리에 관한 간증을 짊어지게 하셨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에 대한 주관적인 방면과 생명의 원칙과 그리스도의 뛰어남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하여 수많은 말씀을 전하고 기록함으로써 이 부담에 신실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워치만 니의 궁극적인 부담은 단지 개인적인 믿는 이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갈망의 만족을 위하여 지방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지적이고 단체적인 표현을 세우고 건축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보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그가 그분에게서 받은 궁극적인 위임이었다. 1936년 10월 20일에 기록된 그의 개인 간증은 이 위임을 설명해준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은 매우 분명하였습니다. 머지않아 그분이 중국 각처에 지방 교회들을 세우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눈을 감을 때마다 지방 교회들이 산출되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을 섬기도록 나를 부르셨을 때, 그분의 목적은 각지에서 부흥 전도 집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성경 교리를 들려주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또는 나로 위대한 전도자가 되게 하려는 데 있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각지에서 그분 자신을 표현할 지방 교회들을 세우고자 하시며 또한 그를 통해 지방적인 합일의 입장 위에 있는 합일의 간증을 나타내고자 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며,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시는 것은 단지 승리나 신령함 등을 추구하는 개개인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그분 자신께 드려질 영광스런 교회입니다.』

 

 

5. 고난들

 

워치만 니는 교회에 관하여 부인할 수 없는 이상을 보았고, 주님으로부터 명확한 위임을 받았다. 또한 그 이상과 위임에 신실했기에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상이 너무나 분명했고 위임은 너무나 실재이었기 때문에, 버림받고 반대되고 정죄 받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었고, 주님으로부터 받은 위임을 위하여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는 이 위임을 위하여 신실하게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그가 받은 고통과 함께 한 그의 깊은 계시는 주님의 위임에 따른 생명의 풍성한 사역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한 신약 사역이다.

워치만 니는 신약 사역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견디었다. 그가 주님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주님의 위임을 신실하게 성취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그는 일생토록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종종 멸시를 받기도 하였다. 주님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견고하게 싸웠기 때문에, 그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원수의 공격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아래 있었다. 그는 그의 환경 안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를 단지 신성하게 안배된 ‘육체안의 가시’로 여기기보다, 더 중요하게,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시는 수단으로 여겼다. 원수가 공격했고 또 하나님께서 환경 안에서 신실하게 다루셨기 때문에, 워치만 니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 그의 고난의 대부분은 다섯 가지 근원에서 비롯되었다. 빈곤, 질병, 교파,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반대, 감금.

워치만 니의 사역 초기에 중국의 경제적 상황은 매우 어려웠다. 그가 말씀 안에서 본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님의 일의 모든 방면에서 하나님 안에서 순수하고 단일하게 믿음으로 살도록 훈련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고용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초기에 그가 상해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때때로 만토우(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중국 빵을 가리킴-역자 주)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워치만 니는 또한 자주 심각한 질병으로 인해 고난을 당했다. 1922년 초부터 11년 동안, 그를 돕는 아내도 없이 혼자서 고통을 당했다. 이 기간 동안 폐병을 앓게 되었고, 이 병으로 인해 수년 동안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30세였던 1934년에, 그의 참된 “돕는 배필”인 장 핀훼이(Charity Chang)와 결혼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아이를 주시지 않았다. 후에 그는 위에도 문제가 있었고, 심장병의 일종인 협심증도 생겼다. 그의 심장병은 끝까지 치료되지 않았고, 이 심장병으로 언제 죽을지 몰랐었다. 사실 많은 때에 그는 신체적인 힘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부활 생명으로 일했다.

교파라는 그 자체가,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한 몸을 나누는 것이기에 잘못되었다는 그의 믿음도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에 대한 그의 견고한 입장은 교파들에게 대항하는 간증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에게 많은 고난을 야기했다. 어떤 이들은 멸시하고 비평하고 반대하고 최선을 다해 그의 사역을 파괴하려고 했다. 그에 대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하고, 거짓으로 말하였는데, 심지어는 워치만 니조차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묘사한 워치만 니를 나 자신도 정죄한다.”

워치만 니가 받은 고난의 또 다른 근원은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었다. 이 고난은 훨씬 더 심각했다. 그들의 다른 의견과 성숙하지 못함과 무능함과 완악함과 야심과 불순종으로 커다란 문제들을 야기했다. 1922년 워치만 니가 자기 고향에서 교회 생활을 실행하기 시작한지 2년 후에, 그의 동역자에 의해 잠시 동안 추방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성경의 진리를 위해 서서, 인도하는 한 동역자가 교파 선교 단체에서 안수 받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던 대다수의 성도들은 모두 니 형제님 편에 서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그가 자기를 위해 변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타고난 사람으로서의 그에게는 정말 고통이었다.

고통의 마지막 근원은 무고와 감금이었다. 워치만 니는 1952년 3월 공산당 문화 혁명(Communist Cultural Revolution)때에 체포되어 심문 받고, 무고당하여 1956년에 십오 년 형을 선고받았다.

워치만 니는 슬픔과 고난의 사람이었다. 어린양을 따르는 길에서, 그는 모든 고난을 견디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들을 통하여 많은 공과들을 배웠다. 이러한 고난들은 단지 그가 주님을 의지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육체와 자아와 혼과 타고난 생명을 다루는 데에도 유익을 주었다. 이러한 다루심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가르침들이나 교리를 전하지 않았고, 그의 말씀은 그가 고난을 통하여 얻은 실재가 담겨 있었다. 고난을 통해 얻은 체험은 그의 사역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최고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유산은 곧 모든 지방 교회들 안에서 풍성한 유산이 되었다.

그의 고난들은 또한 그가 주님으로부터 한 단계 더 전진된 계시들을 받도록 도왔다. 어떠한 고난들은 종종 상응하는 계시들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그에게 그의 고난들은 주님의 계시가 되었다. 고난을 통하여 정결케 되고 다루심 받고 부서지고 신성한 생명으로 성령에 의해 조성되었다. 고난 안에서 그리스도의 그러한 체험들을 통하여, 바울과 같이 그도 주님의 계시를 받도록 준비되고 적절한 위치에 놓여지게 되었다.

 

 

6. 사역의 수단

워치만 니의 생명의 풍성한 사역은 계시와  고난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분배하여 주신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여덟 가지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복음 전파, 성경을 가르침, 외지에서의 사역, 사람을 접촉함, 사람들과 왕래함, 특별집회를 엶, 훈련을 인도함, 문서의 출판.

워치만 니는 자주 사적으로, 공적으로 말씀을 전했을 뿐 아니라 또한 다작의 저자였다. 그의 출판물들은 전도지와 월간지와 논문과 신문과 책들과 찬송들과 성경 예언의 도표들이 있다. 그의 글들과 정선된 제목들의 항목을 자세히 보려면 출판물을 보라



삼위일체- 한 인격, 세 인격들 논쟁


삼일(삼위일체) 2012-04-2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9201.html
섹션 > 성경자료실
http://chch.kr/kin/25051.html


위트니스 리가 <세 부분인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 하나님>에서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표현한 것이 통합측 최삼경 목사와의 공개 토론시 주된 쟁점 중 하나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또 다른 곳에서는 여러 차례 하나님을 ‘세 인격들’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해된 부분을 분명하게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위트니스 리가 한 인격과 세 인격들을 언급한 본문들

 

-한 인격: 영어 회복역 성경, 창세기 12장 1절 각주 1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관한 기록들은 겹친다. 창세기는 그들을 분리된 세 개인들이 아니라 ‘한 단체적인 인격의 구성원들’(constituents of one corporate person)로 묘사한다.”

 

위 글에서 위트니스 리는 분명히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냥 한 인격이 아니라 ‘단체적인 한 인격’이라고 말한 대목입니다.

 

-세 인격들: 영어 회복역 성경, 출애굽기 3장 6절 각주 1

 

“…더 나아가 하나님이 세 인격들(three persons)의 하나님(15절 참조)이시라는 것은 그분이 이버지, 아들, 그영(마28:19)인 삼일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위 내용은 위트니스 리가 우리 하나님을 세 인격들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2. 한 인격이란 표현이 나오게 된 배경

 

마태복음 28장 19절은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이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고”라고 말합니다. 위 구절에서 언급된 <이름>에 대해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기서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은 단수이다. 그 이름은 신성한 존재의 총체이며, 그분의 인격과 동등하다.”

 

위 설명과 위 세 인격들에 대한 언급에 따르면, 위트니스 리는  삼위 중 어느 한 인격 또는 삼위가 구별없이 뭉뚱그려진 한 인격의 의미가 아니라, 단수의 이름으로 지칭되는 신성한 존재의 총체의 의미로서 한 인격을 말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가 <인격>을 강조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단지 하나의 <어떤 능력>이나 <어떤 본질>만이 아니라 <한 인격체>라는 말입니다.

 

3. 한 인격, 세 인격들 표현에 대한 대조적인 반응들


위에서 보았듯이 위트니스 리는  삼위 하나님과 관련해서 ‘한 인격’ 이란 말도 했고 ‘세 인격들’ 이라는 말도 한 것은 사실입니다. 동일한 사실을 놓고 미국의 저명한 이단 변증기관인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는 위트니스 리가 말했던 한 인격은 사실상 골로새서 2장 9절의 한 신격(Godhead, 데오테스)의 의미이며, 이 한 신격 안에 한 본성을 공유하는 세 인격들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상호내재 하신다는 의미임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통합측 최삼경 목사는 위트니스 리가 삼위를 세 인격들로 말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한 인격이라고 말한 부분만을 크게 강조한 후 양태론 이단이라는 결론 쪽으로 무리하게 끌고 가다가 오히려 자신이 세 영들의 하나님을 믿는 삼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거의 완벽히 치료하는 방법정리(추천)


일반상식 2012-04-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9108.html
블로그 > 신성하고 인간적인
http://blog.chch.kr/cbuchon/39068.html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거의 완벽히 치료하는 방법정리*

 

요즘에 컴퓨터의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이러스 악성코드이다. 이것을 돈을 들이지 않고 거의 완벽하게 치료하는 법을 없을까?  여러 pc들에 생기는 다양한 현상들을 치료하면서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부각되고있다.

 

 이 탭이 복구되었습니다. 라는 흔한 익스플로러 에러도 거의 다 바이러스와 악성코드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정리해보자

 

1.먼저 v3lite을 다운받아 설치하여 검색해서 치료해보자


 

2. 알약을 다운받아 설치하여 검색해서 치료한다.

-왜냐하면 v3가 잡아내는 바이러스도 있고 못잡아내는 바이러스도 있는데 알약을 사용하면 상호보완작용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테스트 결과 v3에서 못잡은 바이러스를 알약이 잘 치료해주는것도 보았고 알약에서 발견못하는 바이러스을 v3가 잡아내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그렇다고 위 2가지를 모두 설치하면 컴터가 상당히 느려지므로 치료후에는 다시 둘중 하나만 남기는것이 좋다


 

3.먼저 제가 올린글 악성코드을 무료로 치료하는 법을 참조해서 치료해보자

http://cafe.chch.kr/cbuchon/43559.html
- 상당히 강력함을 느낄수 있으실 것입니다. v3와 알약으로 잡아내지 못하던 많은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잡아줍니다.


 

 

4.바이러스와 악성코드의 주범이 p2p사이트와 온라인게임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v3 removal tool(v3가 설치나 실행되지 않을 때에 방법이라는 글에첨부되어있음)과 알약removal tool(아래에 첨부하였음)을 사용하면 위에서 잡히지 않던 바이러스도 치료할수 있습니다.

 

5.마지막으로  Malwarebytes' Anti-Malware프로그램을 이용해치료해보자-온라인게임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를 잡는데는 탁월하다고 전해진다. 아래첨부하였으므로 2개를 모두다운받아 알집으로 풀어서 설치하면 업데이트후 진행된다.  

 

이렇게 해도 완벽히 다 잡아내지는 못할것이다.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악성코드와 바이러스에는 조금 부족하기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위 방법들로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웹서핑과 문서 작성이 위주인 분들에게는 위의 방법으로로 거의 완벽하게 바이러스와 악성코드를 잡아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