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다니서 당신과 헤어진후


찬송가 2012-04-0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8791.html

베다니서 당신과 헤어진 후

 

 

 

1.

베다니서 당신과 헤어진 후 그 무엇도 내 빈 맘 못 채워

버드나무에 걸어 놓은 수금을 당신없이 내 어이켜리까

고요한 밤에 나 홀로 있을때 나는 탄식을 참을 수 없어

당신은 너무 먼 것처럼 느껴져 돌아오신다 약속한 시간 가도

 

2.

주 말구유 내 집 생각 지우고 주 십자가 내 욕심 제하네

주 오심 나로 본향 그리게 하니 주님 자신이 내 목적일세

주 여기 없어 기쁨은 맛 잃었네 찬송도 감미로움 잃었네

난 종일 뭔가 잃어버린 것 같아 오 주여 지체말고 어서오소서

 

3.

나 여기서도 주의 임재 누리나 나 깊은 속엔 여전히 부족해

주 날 비추고 사랑으로 감싸도 알 수 없는 불만이 있다네

평안함 속에서도 외롬 느끼고 기쁨 속에서도 탄식 흘러

큰 만족 속에서도 부족 느낌은 주 직접 뵙지 못하기 때문일세

 

4.

고향 떠난 자 속엔 늘 고향 생각 포로의 맘엔 늘 고국 생각

집 떠난 자녀 맘엔 늘 가족 생각 내 맘엔 언제나 당신 생각

주 얼굴 보고픈 나의 이 마음 어느 것돠고 비교 못하리

여기서 주의 모습 볼 수 없어 탄식하며 다만 당신 기다리네

 

5.

잊으셨나요 다시 돌아와서 날 데려가리라고 한 약속

하루가 가고 일년이 또 지나도 당신은 돌아오시지 않네

나 기다림에 지쳐 피곤하여도 당신의 발소리는 멉니다

얼마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그 약속 이루시겠습니까 주여

 

6.

한 세대 또 한 세대 지나가고 기다리던 성도들 잠드네

한 분 또 한 분 이 세상 떠나갈 때 또 한번 당신 기다렸지만

내 주여 왜 여전히 안 오십니까 하늘은 왜 닫혀 있습니까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부족합니까

 

7.

기다려온 날 돌이켜 생각할 때 탄식 참을 수 없어 웁니다

내 간구 듣고 부디 지체 마소서 지금 오셔서 날 만나소서

어서 오소서 교회 부르짖으니 성도들 모두 재촉하오니

이 쌓인 부르짖음 들어주소서 내 주여 제발 지금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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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열개의 말씀들)


진리의말씀 2012-03-3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8374.html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실재이심을 보고자 한다면 119편의 기자처럼율법을 하나님의 증거이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야한다.

우리는 율법을 단지 계명들과규정들과 규례들로 여겨서는 안된다. 율법을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말씀으로 여겨야한다.

율법은 시내산에서 주어졌지만 증거궤라는 작은 궤속에 넣어졌다.(출 25:16) 또 궤는 증거막안에 두어졌다..(출 38:21)

따라서 율법은 증거궤안에 있었으며. 증거궤는 증거막 안에 있었다. 증거와 말씀은 율법의 동의어이다.또한 증거와 말씀은 그리스도의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증거와 말씀과 율법이 그리스도의  동의어 라고 말할수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증거일뿐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요한 복음 1:1절에서는 이말씀이 하나님이고 이 말씀이 그리스도 라는 것을 말한다.

딤후 3:16 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쉰 것이며. 

계19:13절에서는 그분은  뿌린 옷을(피로 물든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고 불립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에서 "십계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열개의 말씀들" 이라고 번역할수 있다.따라서 십계명은 하나님의 10언이다.

율법에는 문자적인 방면과 하나님의 축복들의 실재인신 그영의 방면이 있다.(고후 3:6)

우리가 죽이는 율법을 가질것인지 아니면 생명을 주는 율법을 가질 것인지는 여러분의 태도에 달려있다.

 

율법앞에 올때에 우리의 태도가 문자로 된 계명들을 주의 한다면 우리는 죽이는 문자의 방면에서 율법을 가지게 될것이다.

그러나 모든 계명들과 규례와율례들과 교훈들과 판결들을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내쉬신 말씀으로 받아 들인다면.

우리는 생명을 주시는 영의 방면으로의  율법을 갖게 될것이다.



고화질로 보는 아름다운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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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질로 보는 귀한 작품입니다



고화질로 보는 명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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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2편


구약 2012-03-1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8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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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세지는 부활을 다루고있다.

빌3:17 애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했다.부활를 모른다면 교회를 모르는것이다. 우리가운데 몇몇은 바위틈낭떠러지를 알고있을것이다.

바울은 부활능력을 알고자하는 마음이 있었다.

타고난 은사나 능력이있는 사람으로 남아있지않기를 바라고 부활의 체험안에이으므로 몸을 건축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부활안에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02편의 제목이 고난당하는 한 사람,고통가운데 있는 한사람의 기도라는 것을 말해준다.

왜 시편기자는 고난을 당하였는가.시편기자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이 있는 시온이 파괴되고 황폐하게 됨으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를 하고있다.

 

시편 102편은 세 단락으로 되어있다. 1절부터 11절가지는 첫째 단락으로서 고난과 고통에 관련되며, 12절부터 22절까지는 둘째단락으로서 시온의 재건과 훼파된

성전과 거룩한 성의 복원에 관련된다. 23절부터 28절까지는 셋쩨단락으로서 부활 안에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밝혀준다,

 

시편102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밝혀준다.그리스도는 이땅에 계셨을때 고난 과 고통의 길을 가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시편102편7절: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위의 외로운 참새같으니이다.

눅6:12. 그무렵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셔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리스도가 지붕위에있는 외로운 참새처럼깨어 기도하시기위해 홀로 산에 가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셨다.오직그분의 동반자는 아버지이셨다,그리스도는 외로운분이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구속을 위한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인 교회를 산출하기위한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완결된 그리스도의 고난이 구속을 위한 것임을 알지만 

그분의 고난이 또한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교회를 산출하기 위해 구속을 이루려는 것임을 보아야한다.

 

시편 102편 21-22: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선포하고,예루살렘에서 그분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때에 민족들과 왕국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라고 말한다.

이구절들은 견고하게 세워지고 회복된 시온인 교회를 통하여. 모든 민족들과 왕국들이 여호와를 찬양하고. 경배하게 될것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을 주님께로 돌아가게 할것임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교회를 산출했다. 교회는 황폐하게 되었으며. 또한 복원될것이다. 그런다음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를 계속 존재할수 있게 할 것이다.

시편 102편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다면.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구속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또한 복원을 위한 것임을 볼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구속을 위하고. 그분의 구속은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인 교회를 산출하며. 이 교회는 복원으로 완결될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교회는 복원으로 완결될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교회를 산출했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를 계속 존재하게 한다. 그리도의 죽음을 통하여. 산출된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서 계속 존재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을 통해 옛창조물 전체를 끝내신 후에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서 교회가 산출되었다. 교회는 전적으로 부활안에 있는 한실체이다.

교회는 타고난 것이나 옛창조물에 속한 것이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있는 새 창조물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부활을 통과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수있다.

 

지방교회들 안에 있는 대다수의 믿는 이들이 여전히 타고난 사람안에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안에 있기 위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안에

있을 필요가 잇다. 우리는 지방교회들 안에서 몇몇 좋은동역을 갖고있다. 나는 이렇게 묻고싶다.

이러한 동역이 타고난 생명으로 수행되는 것인가. 아니면 부활안에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부활능력으로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룰필요가있다.(빌3:10)

우리는 모두는 스스로 우리 가운데 있는 동역이 그리스도의 부활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사람에 의한 것인지를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영어에는 그리스도와 부활이라는 명사의 적절한 형용사 형이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 관한 이러한 이상을 전달하기위하여 몇가지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야 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 적이고(Christly),부활적이고(Resyrrectionly),하늘에속한(Heavenly)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세개의 형용사는 성경안에 함축된 사실을 묘사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속하고, 부활에속하며, 하늘에 속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적이고, 부활적이며, 하늘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