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love and not be requited.
Let me serve and not be rewarded.
Let me labor and not be remembered.
Let me suffer and not be regarded.
Let me pour wine, while I drink not.
Let me break bread, while I keep not,
Pour out my life that others be blessed,
Lose my self-life that they be comforted.
I do not seek pity or wishes
I do not seek glory or riches
But I rather be lonely wretched
Be discarded be wrongly treated
With my blood and tears pay the price to gain the crown
On this pilgrim's ground bear all sorrows that abound
For this way you need thread when you live
On the pain which is of your own
Gladly bore or loss as you purpose
That the people around you be composed
I know not how far the future lies ahead
On this path of no retreating I am led
So let me Lord now learn of Your perfect pattern
Suffered wrong, no resentment in return
May You in these tideous dull interim
Wipe away all my tears somber and dim
For You are my solace I learn to know
Let my life be a pleasing fountain flow
I know not how far the future lies ahead
On this path of no retreating I am led
So let me Lord now learn of your perfect pattern
Suffered wrong, no resentment in return
May You in these tideous dull interim
Wipe away all my tears somber and dim
For You are my solace I learn to know
Let my life be a pleasing fountain flow
For You are my solace I learn to know
Let my life be a pleasing fountain flow
유투브에서
by찬송이좋아요
"워치만니의 간증"
1922년 즈음에 대략 일년동안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워치만 니는 도움을 받기 위해 바버 자매를 찾아갔다. 워치만 니와 함께 주님의 의해 일으켜진 몇몇 젊은이들 또한 도움을 받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을 호되게 책망했으므로 대부분은 얼마안가 그곳에 가기를 두려워했다. 그녀의 책망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 형제는 그녀의 다룸이 비(非)이성적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다루심을 받고 나면 그들 모두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때 당시 푸조우에서 매주 금요일 날 교회 일에 대한 교통을 위해 일곱 명의 젊은 형제들이 모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이 니 형제와 한 인도하는 형제사이의 다툼으로 보내졌다. 이 인도하는 형제는 니 형제보다 두 살 위였다.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고, 상대방의 생각을 비판하기를 좋아했다. 때때로 니 형제는 화가 났고, 사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바버 자매를 찾아가서 불평하고, 그 상황을 판단해 줄 것을 부탁하고자 했다. 그러나 바버 자매는 니 형제를 꾸짖으며 말하길: 『성경은 어린 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는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라고 했다.
니 형제는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길,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치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바버 자매는 『일리가 있든 없든 너는 상관할 바 아니다. 성경은 어린 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라고 답하였다. 니 형제는 그 형제와 다툼 후에 이틀을 울고 나서, 그리고 지금 바버 자매에게 책망을 들은 후에 그는 화가 났고, 다시 울었다. 그는 몇 해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다른 형제들이 자기에게 복종해야 할 것인데 하면서 원망했다. 한 번은 니 형제보다 나이가 위인 그 형제가 후에 어떤 논쟁에서 훨씬 더 연장한 자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니 형제는 이번에는 자신이 명백히 옳고, 그의 동역자는 틀렸다고 느꼈다. 이번은 자신이 승리 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바버 자매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그 동역자가 틀렸든지 그렇지 않든지 별개의 문제이다. 네가 내 앞에서 너의 형제를 참소하는 동안 너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인가? 어린양과 같은사람인가?네가 한번말해봐라』라고 말했다. 후에 니 형제는 『그것이 그녀가 말한 전부이다. 나는 정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해 나는 내 인생의 몇 가지 가장 귀한 공과를 배웠다.』라고 간증했다. |
댓가없이 사랑케 하소서 보상없이 섬기게 하소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여 나로 고난 받게 하옵소서
나는 마시지 못할지라도 나로 포도주 붓게 하소서
나를 잃어 그들 위로하며 나를 쏟아 축복케하소서
동정이나 도움구치 않고 영광이나 부 구치 않아
비참하고 외롭더라도 버림받고 멸시받아도 나그네길의
슬픔 모두 참으며 면류관 위해 댓가 지불하리라
주님 당신이 자기 땅에서 그러한 길 가셨듯이
우릴 위하여 주가 기꺼이 모두 잃은바 되셨듯이
오 앞길이 얼마 남았나 몰라도 되돌아 가지 않고 갑니다
부당한 고통 받아도 원망 안한 주의 본 배우게 하옵소서
주여 참담한 시련 당할 때 나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주가 내 위로 되심 누리며 나로 생명샘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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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가 본 신성한 계시는 이중의 부담과 위임을 가져왔다. 먼저는 주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간증을 짊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방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첫 번째 부담과 위임은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부활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지식과 체험의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주님께서는 특별히 그에게 이 진리에 관한 간증을 짊어지게 하셨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에 대한 주관적인 방면과 생명의 원칙과 그리스도의 뛰어남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하여 수많은 말씀을 전하고 기록함으로써 이 부담에 신실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워치만 니의 궁극적인 부담은 단지 개인적인 믿는 이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갈망의 만족을 위하여 지방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지적이고 단체적인 표현을 세우고 건축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보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그가 그분에게서 받은 궁극적인 위임이었다. 1936년 10월 20일에 기록된 그의 개인 간증은 이 위임을 설명해준다: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은 매우 분명하였습니다. 머지않아 그분이 중국 각처에 지방 교회들을 세우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눈을 감을 때마다 지방 교회들이 산출되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을 섬기도록 나를 부르셨을 때, 그분의 목적은 각지에서 부흥 전도 집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성경 교리를 들려주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또는 나로 위대한 전도자가 되게 하려는 데 있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각지에서 그분 자신을 표현할 지방 교회들을 세우고자 하시며 또한 그를 통해 지방적인 합일의 입장 위에 있는 합일의 간증을 나타내고자 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기능을 발휘하며,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시는 것은 단지 승리나 신령함 등을 추구하는 개개인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그분 자신께 드려질 영광스런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