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가운데 메마른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
마. 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그대는 신언자들을 죽이고.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치는자여.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내가 얼마나 자주 네자녀들 을 품으려 하였습니까. 그러나 너희가 원치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게 되어 버린바 되리라.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제 부터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찬송하십시요! 라고 할때 까지. 여러분은 결코 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의 에 대적하는 그녀의 모든 죄들로 인해 예루살렘을 버리셨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고. 예루살렘에 거주민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분을 찬송하십시오"라고 할 것임을 보여준다.
행 21:20-24
형제님 그대가 아는 대로 유대인들 가운데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모두 율법에 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대에 관하여 전해 듣기로는 이방 나라에 사는 모든 유대인에게 모세를 저버리라고 가르치며. 그들의 자녀들에게 할례도 주지 말고 관습을 따라 행하지도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들은 그대가 와 있다는 것을 들게 될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겟습니까. 그러니 그대는 우리가 말해주는 대로만 하십시오. 스스로 서원한 네사람이 우리에게 있는데.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의식을 행하고. 그들의 비용을 대 주어 머리를 밀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대에 관하여 전해들은 것들이 전혀 사실이 아닐뿐 아니라. 그대 자신도 율법을 지키려 올바르게 행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혼합으로 말미암아 마태복음 24장 2절의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예언은 성취 되었다. 그 해에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는 그의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다. 하나님은 그 당시에 예루살렘의 파괴를 허락하심으로 교회안에 유대교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하셨다.
마 24:15
"그러므로 선지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 황페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으십시오)".
주님은 그 당시에 성전이 세워진장소인 거룩한 곳을 언급한다. 이것은 다시한번 성전이 건축될때 예루살렘 또한 회복될 것임을 가리킨다.
스가랴 14:4
4절: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절반은 북으로.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6절: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신언자 스가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두번째로 다시 오실때 그분은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감람산으로 오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특별한 나라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방땅 갈대아우르에서 불러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고.그땅에서 이스라엘 나라가 시작되고. 그땅에 성전이 건축되고 그땅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죽으셔서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룬 땅이다.
나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는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된것같다. 또,나는 역사가는 아니고 지식은 짧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것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1.예루살렘 성은 높은 고산지대에 건축된것부터 아주 특별하다. 역사를 통해서 본다면 지구상의 모든 큰도시들은 강을 끼고 세워졌다.
물이 없다면 사람이 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성은 해발 740m에 달하는 모리아산에 건축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신언자 갓은 다윗에게 이 곳을 오르난으로부터 사서. 그 곳으로 올라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명했다.(역대상 21:15-28) 모리아산은 결국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시온산이 된다.
2.예루살렘성은 물이 대단히 부족하다. 물저장소가 없다면 살기어려울것이다. 그러므로 곳곳에 물저장소가 있다.
기묘한 것은 그 높은곳에 기혼샘이 있다. 그러나 기혼샘은 성 밖에있으므로 적들이 공격해 들어온다면 사용할수없다. 그러므로 히스기아왕은 앗시리아의 산혜립의 임박한 포위 중에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 하기위해 533m에 달하는 수로를 파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그곳이 실로암연못이다.
히스기아가 산혜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밖의 모든물근원을 막고자하매 그들이 돕더라.(32:2)
히스기야가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역대하 32:30.)
3.이스라엘은 돌이 많은나라이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유대광야가 있는데 돌산이다. 서쪽으로는 지중해가 있고. 식물들이 자랄수있는 옥토라고 말할수있는데. 우기때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또한 지중해에서 올라오는 수중기로 이슬이 많은 지역이다.
반면에 동쪽 사해바다쪽은 연중 거의 비가오지 않고 더운 사막지역이다. 아마 사해사본이 2000년동안 보존될수있었던것도 이런 환경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4.사해도 특별한데 어떻게 민물이 들어가서 바닷물보다 10 배나 짠물이 될수있는지.또 들어오는 물만있는데 넘치지않고 그 수위를 그대로 유지할수있는것도 신기한 일이 아닐수없다. (더운 지역이기때문에 증발한다고한다).
황량한 광야지역에 엔게디 샘이 있는것도 특별하다. 그것도 높은돌산 속 중턱에 있다. 예루살렘 서쪽지역에서 내려온 빗물이 지하수로를 통하여 이곳엔게디에 이르는것같다.
위에서 본것과 같은 조건을 갖춘땅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옥토가있고. 광야가있고.소금의 바다도있고. 강이없는 높은 산에 건설된도시가 있는땅
아주 특별한 나라.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위한 하나님이 선택하신곳 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 가나안을 젓과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으나. 오히려 우리가 사는 이땅이 더좋은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셨고.그리스도가 이스라엘땅에 오셔서 우리의 구주가되셨다.
이스라엘은 선자자를 죽이고 배척하고 돌로쳤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은 버리셨다. 그로인해 이방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것이다.
주님을 배척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되었을까? 우리는 홀로 코스트 유태인 박물관에 갔었는데. 2차세계대전당시
히틀러에 의해 유럽에서의 유태인들의 비참한 고난의 역사을 보았다.
초기 유럽에서의 유대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유태인해설자는 거의 한시간동안 박물관 안에 시대별로 구분된 로. 구역을 돌며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어떠한 방랑생활을 하였는지 자세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슬픔의 역사를 들었을때.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로마의 통치는 여전히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기원 후 66년 가이사랴에서 일어난 유대인과 그리스인 들과의 충돌은 유대인들에게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항쟁으로 더욱 가열되었다. 67년에 네로황제가 반란을 제지하기 위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대장으로 60000명의 군사를 보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68년까지 체계적으로 요세들을 하나씩 점령해 갔으며.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 유대 사막의 몇개의 요새만 남아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타이터스는 성전산을 장악하고 70년에는 성전을 함락시켰다.
사해 근처에 있는 마사다를 포함하여 세개의 요세가 끝까지 항쟁하였으나 3 년에 걸쳐 정복되었다. 129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에 70년부터 주둔해온 로마 제 10군단만 남겨놓고 예루살렘을 로마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음으로 율사 아키바의 지휘아래 발 코흐바 독립항쟁이 132년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발 코흐바의 군대가 승리하는 듯하였으나. 로마군의 전쟁무기로 하나씩 영토를 차례로 함락시켰다.
134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며 성전의 함락은 사실상 유대인들이 유대지방에서 살수없도록 전멸되었다.
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리스도교와 믿음이 흡사함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율법과 계명. 민족적성격을 지닌 유대교를 따를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반면
그리스도교는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로마의 콘스탄틴황제는 모든제국의 개종을 독려했다.
그의 아들 콘스탄틴 2세와 그의 계승자들은 이에 더욱박차를 가했다.
415년에는 유대사회의 유대원로제를 폐지했다. 634년과 640년 사이에는 이스라엘땅, 시리아와 요르단이 회교도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때의 아랍제국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사마리아인들을 성경의 사람들로 인정하고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을 향한 성지순례도 모든종교에게 허락하여 이도시를 더욱중요하게 하였으며. 11세기초에는 유대종교법의 최고 귄위를 지닌 율사 아카데미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
그리스도교인들도 "거룩한 땅"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일찌기 3 세기부터 순례를 왔다.
800년경 슐레이만대제는 예루살렘에 호스텔과 수도원을 지었으며 11 세기에는 순례객이 수 백명씩 육로로 혹은 바닷길로 운송되었다.
유럽남부로부터 시작한 십자군은 성지를 회교도로부터 해방시키기위해 먼저 콘스탄틴노플까지 출정하였다. 십자군들은 정복한 모든 지역을 요구하는 황제와 의견충돌을 하였다. 십자군원정은 예루살렘으로 계속되었으며 증원부대를 욥바항에 도착하게 하였다.
1099년 7월15일 예루살렘은 십자군의 손아래들어갔다. 1260 년 맘루크 의 벨 사령관은 이라크 시리아 를 정복하교 이스라엘까지 침입한 몽고군을 물리쳤다. 오토만제국의 정복까지 십자군시대를 제외한 약 900년간 회교도의 정권이 계속되었으며 15세기 이후로 중앙 아시아 터키에서 시작된
오토만제국은 갈수록 강해졌으며.1516년에는 시리아 에서 맘루크를 멸망시켰다.
오토만 세력은 남쪽으로 지속된 출정은 일년 후 카이로까지 점령하였다. 전성의 절정이었던 16세기말까지 오토만은 경제발전과 주민의 안전을 발전시켜 그들의 수를 늘리는데 이바지한 안정된 정권체제를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19세기에는 시온주의 운동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조직된 이스라엘사람들이 유대땅에 돌아와 마을이 생겨났으나. 많은 어려움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