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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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광야


과거의카르도(상가길.사진앞에 있는 기둥이 실제기둥임)

위에있는 그림들은 4-5세기 비잔틴시대의 카르도 이다.
갈릴리 바다



우리는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했다. 숙소 호텔로 가는 버스에서 부터 어린아이처럼가슴이 설래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 예수님이 사셨던 이스라엘땅에 왔기때문이었다.

우리를 인도한 형제님들은 이번여행이 다만 물질적인 유적지를 보는것이 아님을 교통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장소는 그냥지나치고 영적이고 역사적인 장소를 통해서 주님의 움직이심을 보고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에 따른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다음날 숙소에서 부터 4-5킬로 떨어진 욥바로 걸어갔다. 욥바는 가장오래된 항구도시중의하나였다.  신약성경에서의 욥바는 베드로가 죽은 과부 다비다를 살린 곳이고.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자기의 이상을 본곳이다. 구약에서는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레바논 백향목이 반입되었던 곳이라고한다.

다음날 유대에 열성당원들이 로마에 마지막 까지 항전했던곳인 마사다로 갔다. 가는 길에 처음으로 보는 광경에 놀랐는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마사다까지가는 길은 황량한 사막지대였고. 산은 돌산으로 풀한포기 자랄수없는 척박한 땅이었기때문이다. 왼편으로는 사해바다를 보았는데.         구약에서는 소금의바다(창 14:3. 수 3:16). 아라바의 바다(신 3:17).  동쪽바다.(겔 47:18.욜 2:20).그리고 "바다"(겔 47 1:-11).로 언급된다.   

이곳은 해면보다 423 미터 낮은 지표상 최저점이라고한다. 날씨는 연중계속 덥고. 비가오지않는다고했다. 그러나 이곳엔 엔게디 샘이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가이샤라 갔었다.

지중해 해변에 있고.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96키로미터 떨어져 있다. 로마의 아구스도황제(옥타비아누스)가 이땅을 헤롯대왕에게 하사하였다.기원전 25년부터 13년 사이에 헤롯은 이곳에 광대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로마식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로마황제(가이사)를 기념하여 이름을 가이사랴라고 명명하였다고한다. 이도시는 세워지자마자 로마 장관들이 머무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는 로마식 원형경기장과 마차 경기장 신전등이 있다.
사도행전 23장-27장에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힌후 갸이사랴로 호송되어 이곳에서 2년동안 옥살이를 하다.로마로 호송되었다.

행23장11절.그날밤 주님께서 바울곁에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에관한 일들을 엄숙히 증언한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한다. 주님의 말씀은 로마로 가야할것을 말씀하셨지만 바울의 환경은 그러지못했다.
2년동안 바울은 재판을 받으며 로마총독 벨릭스앞과  베스도와아그립바왕앞에서 증언하며 주님의 말씀을 신뢰했다. 

다음으로 므깃도 (아마겟돈)에 갔다. 이곳은 아주 오랜역사를 지닌곳이었다. 이스라렐백성들이 가나안땅에들어 오기전부터 역대로 요새화된 성이었다. 이성이 므깃도대로에 걸쳐져있고  번화한 이스르엘 골짜기 안에 위치해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지역이다.
옛날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남쪽 이집트에서 북쪽 시리아 동쪽 바벨론으로 가기위해서는 이곳을 거쳐야만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이레 대략 26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을 만큼 많은 전쟁이 있었던곳이라고한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여러세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지역에 관한 초기 역사기록부터 미래 (계시록 16장)에 이르기까지 므깃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므깃도를 거쳐 이스르엘평원을지나서. 나사렛동네를 지나쳐 낭떠러지 산에 도착했다. 우리가 본 낭떠러지는 높는 벼랑이었다. 그당시 나사렛사람들은 주님을 이곳에서 밀쳐떨어뜨리려 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한가운데를 뚫고 가 버리셨다."      (눅 4:30).

나사렛과 갈릴리 가나를 지나쳐 갈릴리 바다로 도착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땅에서의 사역은 갈릴리 바다 주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주님은 그분의 사역기간 3년의 대부분을 이담수호 해변에서 보내셨다. 이곳에서 그분은 그분의 비유의 반이상을 말씀하셨고. 그분의 기적의 대부분을 수행하셨다.
심지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

갈리리바다 주변 마을로는 예수님이 사셨던 가버나움이있는데 최근의 발굴로 마을에는 두개의 회당이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의 온갖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주시니".(마 4:23)

그당시 약 1500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어촌이었다. 그분의 제자들중 야고보.요한.베드로. 안드레를 부르셨다.
그분의 제자들중 다른 셋는 가버나움에서 지척거리인 벳세다에서 왔다.  가버나움에서 내륙으로 2마일정도 거리에 위치한 벳세다와 고라신있고. 갈릴리바다 중간위치에 티베리아(대베랴)가있다.  이곳에서 주님은 많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였으나 적게믿었기때문에 주님은 유죄판결을 하셨다.

"또한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행하였던 능력의 일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도시가 오늘날까지 남아있었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날에 소돔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것이다". (마 11:23-24)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있다. 너희에게 행한 능력의 일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것이다". (마 11:21-22)

갈릴리 티베리아 선착장에서 우리는 배을 타고 2000년전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간 것을 회상하며 둘러보았다.
갈릴리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일찍이 호수가에서 성경말씀을 먹고. 사진을찍었는데 그곳에 종려나무열매가 떨어져있었는다. 일명 이열매을 대추야자라고도한다. 주워먹어 보았는데 너무나 달콤했고 꿀과같이 달았다.
이곳은 비가 잘오지않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과일맛이 달다고했다.식사후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요단강을 보았고. 예수님이 침례받은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 Garden Tomb 에 도착하였다.

가든 툼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은 성밖에 있다). 
카톨릭교회는 주후 330년경에 콘스탄틴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한 장소라고하여  성안에있는 곳에 성당을건축하고 그곳을골고다라고한다. 
        
형제님들과 함께 우리는 성전위원회 있는 쪽에서 옛날 상가길 (카르도라고함) 을 따라 아랍인구역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구시가지로 양쪽에 상가들이 즐비했고. 좁고 협착한도로였다. 마치 미로와같은 길이었다. 처음에는 길을잃어버릴까봐
망설이다. 곧장갔다. 다시 되돌아오기로 하고 형제님들과함께 계속걸어갔다. 이상점.저상점들러서 구경도하고.어떤형제님은 향신료에 관심이 많은듯했다. 그곳에서 현지의 빵과음료수도 사먹었는데 너무달고 향기도 달라서 먹기가 쉽지않았다.

끝까지 걸어갔더니 성문이 나왔는데 다마스커스문 이었다. 예루살렘성에는 여러개의 문이 있는데 이길은 다마스커스쪽으로갈수있는 방향으로 나있기 때문에 다마스커스문 이라고한다.
전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곳으로 추정되는 동산(Garden Tomb) 에 갔다 왔는데 다마스커스문에서 매우가까웠다.

가든툼 에갔을때 그곳에서 설명해주는 전문가이드는 왜 이곳이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장소인지 성경의 근거로 설명을 해주었다.

첯째. 골고다는 성에서 가까운 대로변이어야한다. 로마인들이 십자가에 달때는 본보기로 했다고 한다.
         
        요19장 20절 많은 유대인이 이 명패를 읽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곳이 그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둘째. 동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산이라면 물저장소가 있어야한다. 이곳에는 고대 포도즙틀과 저장소가 있다.
         
        요19:41.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곳은 동산이었으며.그동산에는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다.
        요19:28 목마르다 .거기에 신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신포도주로 듬뿍적셔진 해면을 
                  우슬초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갖다대니 예수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시고말씀하셨다."다이루었다".

세째. 부자의 무덤 이어야한다.가든툼 에는 부자무덤이 있었다.그 묘실은 커서 3구의 시신을 안치할수있는곳이었다.                                                 요19:38.부자 아리마대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사야 53:9하.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우리가본 가든툼이 성경에서 묘사한 것과 가장 유사한 분위기와 배경을 가지고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1882년 영국의 챨스 고든 장군이 사람의 해골모습을 한 돌출한 언덕을 발견한장소라고한다.그는 이곳을 해골산이라고
영국학회에 보고했고 영국학회가 이곳을 사들여 기독교성지로 오늘날까지 관리하고있다.

이 가든툼 위에는 교회를 세울수없도록 약정이되어있어서 천주교의 성당이 없는 깨끗한 장소가되어 있었다.
그때 찍은 사진이있는데 정말로 해골의 모습을 한 동산이었다. 지금도 그러한 모습이남아있다.

요 18:19.그때에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의 가르침에 대하여 물으니
요 18:22.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옆에 있던 하인하나가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뺨을 때리며.
우리주님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에게서 심문과고초를 당하시고.빌라도에게서 재판받고 이 카르도길를 거쳐서 다마스커스 문을 지나 이곳해골의 곳.골고다에서 우리를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놀라운 은혜을 더욱 체험하게되었다.

예루살렘성벽의 서쪽벽은 총길이가 545 미터에 달한다. 하지만 로마.비잔틴.아랍.십자군.오토만시대 정복자들에의해 성벽은 파괴되고 훼손되어 현재 보이는 부분은 약60 미터정도이다. 이곳에서 유태인들은 물질적인 성전회복을 위해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찿아와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성벽틈에다 자기들의 소원을 적은 종이쪽지를 끼워넣고 기도하는 가하면,어떤이들은 눈물을 흘리며기도하기고한다.

현재의 성전산에는 회교사원인 바위사원과 알 아스카 모스크가 세워져있다.
성전산은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기도교인들에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이곳에서 마호멧이 승천하였다고한다. 그러므로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민감하고.격렬한 장소가 되었다.

1967년이래로 이스라엘 통치하에 있으며. 이스라엘과 아랍의 권위자들 사이의 충돌에 있어서 주요지점으로 남아있는 이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산위에 있는 두개의 건축물은 이슬람인들에게는 세번째로 거룩한 곳이고. 유대인들에게는 가장거룩한 장소이며.
유대인들이 기도하기 위해 돌이켜 향하는 곳이다.
유대인의 전통은 바위사원이 세워진장소나 주변에 세번째 성전과 마지막성전이 세워질것임을 갈망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거룩한 성전자리에 이방의신전이 있으니 얼마나 통곡할일이겠는가.  우리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물질적인 성전이 회복되기를 갈망하는지 알수가있었다.





텔아비브.욥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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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에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찍은동영상입니다.




욥바에서 테아비브쪽을 바라보며찍은해변


현재의 욥바항

                                                     텔아비브시  앞 지중해 바다해변
                                                     
                                                                        멀리 욥바가 보인다.




                                                         


오토만터키시대의 욥바항



                                                                 비잔틴시대의 욥바항


행 10:1.가이사랴에 고낼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대가 지금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는 시몬을 
           초대하십시요.  이사람은 피혁공 시몬의 집에 묵고있는데.그 집은 바닷가에 있습니다. 
           모든일을 그들에게 설명해 준다음 욥바로 보냈다. 

욥바는 가장오래된 항구도시중의하나이다.  신약성경에서의 욥바는 베드로가 죽은 과부 다비다를 살린 곳이고.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자기의 이상을 본곳이다. 구약에서는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레바논 백향목이 반입되었던 곳이라고한다.
   

                                 


'조기진단 조기치료'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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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진단, 조기치료" 의 함정!

양방의료의 대표적인 캐치프레이즈라면, 바로 '조기진단 조기치료'일 것입니다.
그 말은 사실 전혀 잘못된 것이 없는 옳은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안에,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자연치유력이 없다면 말입니다.

사람의 몸안에는 자연치유력이란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면역력이라고도 하고, 회복력이라고도 합니다.
그 자연치유력은, 심지어 암같은 무서운 병까지도 스스로 낫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안에는 끊임없이 질병상태와 스스로의 치유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암세포는 수없이 생겨났다가, 면역력에 의해 스스로 치유가 된다고도 합니다.
오늘 죽을 것 같이 아프다가도, 내일 자고 났더니 씻은 듯이 괞찮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의사인 자연치유력이 우리 몸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기진단, 조기치료의 함정은,
오늘 어떤 질병이나 부조화의 상태에 있었을 때, 양의학적 진단이 이루어져 어떤 병명을 얻게 되면,
그 병은 고정되어버리고, 나는 그 병을 가진 환자로 낙인찍혀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실은 그 때 진단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몸관리를 좀 하였다면, 며칠후에는 검사를 하더라도 그 병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조기검사와 진단을 하여 어떤 병을 진단하여내면, 돌아오는 것은 건강에 대한 염려와 한 뭉치의 양약입니다.
근본치료의 개념도 아닌 증상만 억누르는 위주의 양약을 한 뭉치받고, 그 약으로 인해 몸은 또다시 손상을 입게 됩니다. 오히려 몸안의 자연치유력은 억제되어 버리고 말입니다. 어떤 경우는, 이제 그 약으로 인해 점점 더 그 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환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장 강력한 근본치료효과가 있는 것은, 다름아닌 생활안에 있습니다. 
충분한 숙면이나 휴식, 적절한 음식섭취, 적절한 운동, 혹은 목욕, 때론 여행 등등..
공기와 물이 공짜이듯이, 이것도 공짜입니다. 
이렇게 좋은 치료법을 뒤로하고, '조기진단 조기치료'란 명목하에, 서둘러 병원에 갔다가는, 나는 무슨무슨 병 환자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병원에 의해서 그 환자로 만들어져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이 세상에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조금만 않좋다고 서둘러 병원에간다고 그것이 안전한 것도 아니며,
최대한 스스로 몸관리 생활관리를 하며 회복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그것이 안전하지 않은것도 아닙니다.
제가 양의학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쓴 것 같아, 저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네요.
하지만, 이런 얘기를 어디서도 들을 수 없기에, 요점을 강조하다보니 강한 발언이 되었다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방인의 갈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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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4장 15-16절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길 요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리야. 어둠에 않아 있는 백성이 큰빛을 보았고 빛이 죽음의 땅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사람들을 비추었다.

갈릴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사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방인의 갈릴리 라고 불리었으며 정통적인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요:1장 45절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나다나엘이 그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마 4:18.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그물을 바다에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얻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즉시 그물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침례자 요한의 두제자중 한사람인 안드레는 요한이 전파하던 곳에서 베드로를 주님께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것이 안드레와 베드로가 주님을 처음 만난 때였다. 여기서 주님은 그들을 두번째 만나셨다.이번에는 갈릴리 바다에서였다.

요1:35-40. 침례요한이 자기 제자 두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보십시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라고하자.  그두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요한의 말을 듣고 따라간 두 사람중 하나는 안드레.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였다.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야을 만났다. 안드레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오니. 예수님께서 그를 주의 깊게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대는 요한의 아들 시몬입니다. 그대가 게바라 불릴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0절에 있는 침례자 요한의 두제자 중 한사람은 사도요한이었다. 따라서 그도 이전에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곳에서 주님을 만난 것이 틀림없다. 여기 갈릴리바다에서의 만남은 두 번째 만남이었다. 
베드로와 안드레 처럼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도 주님께 매혹되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의 제자들중 야고보.요한.베드로. 안드레를 부르셨다.
그분의 제자들중 다른 셋는 가버나움에서 지척거리인 벳세다에서 왔다. 


253. 고레스 왕의 조서


교회사 2011-10-2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339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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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고레스 왕의 조서(스1장)


고레스 왕의 정복 기사
(주전 6세기 바벨론에서 출토)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가면  돌에 새긴고레스왕의 조서가 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1-2절)

예레미야 29장 10절은“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되어 7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 고레스를 감동시켜 조서를 내려서
이스라엘을 격려하여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셨습니다. 70년의 계산은 주전 606년 느부갓네살 왕의
제1차 예루살렘의 공격부터 주전 536년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릴 때까지입니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5-6절)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의 영과 그 백성들의
영을 감동시키셨고,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영을
감동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계셨습니다(원문 참조).
이것은 포로 됨에서 나와 귀환하는 회복이
전적으로 영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회복은 우리의 생각의 영역이 아닌
영에 속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
금, 은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8-11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신약의 교회에 대한 예표입니다(고전10:11).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그들이 포로 된 시기에 성전은 파괴되었고
그 모든 기명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져 느부갓네살의
우상 신전에 놓였습니다(대하36:18).
은과 금으로 된 그릇들은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한
우리의 체험들, 즉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체험들
(은으로 상징)과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체험들(금으로
상징)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