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삼일성의 순서


진리의말씀 2011-04-2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8099.html

누가복음 15장은 아들께서 목자로서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오셨다는 것과 . 그영께서 여인으로서 집안을 빛 비추시며 결국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으신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돌아온 아들을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이것은 구속하시는 아들과. 거룩하게하시는 그영과. 받아들이시는 아버지가 있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경륜을 보여준다. 아들을 통하여. 그영안에서. 우리는 아버지께 나아간다. 주님은죄인들을 향하신 삼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계시하시기 위해 누가복음 15장에서 세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잃어버린 아들은  잃어버린 한사람의 세방면이다.

 

누가복음15장은 아버지께서 직접 우리를 찾으시거나 발견하실수 없고. 우리가 직접 아버지께로 이끌릴수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영안에서만 아버지께로 나아갈수있다.

어렸을때 나는 사랑이 많은 아버지가 어떻게 그 탕자를 받아들였는지에 관하여 많이 들었다. 나는 또한 선한 목자에 대해서도 들었다. 그러나 각각의 비유가 삼일성 중의하나를 가리킨다는것이나 이세가지 비유에서  삼일성을 볼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목자는 아들을 가리키고. 여인은 그영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비유들에는 삼일성의 셋이 분명히 묘사되어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왜 아들이 첫째로 언급되셨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들께서 먼저 언급되신 이유는. 실지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안에서 오시는 분은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아들께서 필요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 첫번째로 오셨다.

왜냐하면 구속이 우리구원의 기초이기 대문이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된구속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초이다.

일단 이기초가 놓이면 우리는 그위에 건축할수 있다.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누가복음 15장에 선한 목자로 묘사되신 아들께서 먼저 오셨다.

 

아들께서 죽으실때. 아버지와 그영은 거기 계시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신약은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아버지와 그영도 죽음을 통과하고 계셨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행 20:28. 히 9:14)

그러므로 구속은 삼일하나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아들께서 구속을 성취하셨으므로 그영께서 오셔서 우리를 찾으신다. 사도행전은 이것을암시한다.

사복음서에서는 아들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다. 아들로 인해 구속이 성취된후. 사도행전에서부터 우리는 그 영께서 오셔서 우리를 찻으시고 발견하시는 것을 본다. 

그영께서 우리를 찾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아버지께로 돌아온다. 그때. 누가복음15장의 세번째 비유에 의하면. 아버지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순서는 얼마나 놀라운가. 여기서 이순서는 삼일성의 위격에 따르지 않는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신성한 삼일성의 운행하심


진리의말씀 2011-04-2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7920.html

눅 15 ;1-2.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께 다가오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투덜대며 이사람이 죄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까지 먹는구나 라고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비유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삼일이신 것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문제에 대한 가장종은예시가 누가복음15장에있다.

이장은 목자와 여인과 아버지에 관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자는 우리를 찿으러오신 아들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인은 우리속을 철저히 비추시는 성령을 상징하며. 아버지는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받아들이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상징한다.

 

이비유들은 신성한 삼일성이 아들을 통해 그 영에 의해 어떻게 죄인들을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게 하시는 지를 묘사한다.

아들은 한마리의잃어버린 양인 죄인들을 찾아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해 목자로서 그분의 인성안에서 오셨다.

그 영은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을 때까지 주의 깊게 찾는 것처럼. 죄인을 찾으신다.

아버지는 어떤사람이 그의 탕자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을 받으신다.

신성한 삼일성전체가 죄인을 보물처럼 여기시어. 죄인을 하나님께 되돌아가게 하는 일에 참여하신다. 세가지비유는 다 참회하는 죄인의타락한 상태와 회개보다 신성한 삼일성의 사랑을 더 강조한다. 신성한 사랑은 아들께서 선한 목자같이 부드럽게 돌보실때. 그영께서 보물을 사랑하는 이 같이 세밀하게 찾으실때. 하나님아버지 께서 사랑이 많은 아버지 같이 따뜻하게 맞아들이실 때 온전히 표현된다.

 

마태복음 28장19절에서 삼일성의 순서는 아바지와 아들과 성령이다. 계시록에서는 삼일성의 순서가 성령과 아들과 아버지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아들 성령 그리고 아버지이시다. 왜 누가복음15장에서 우리는 먼저 목자이신 아들을 가지며.

그다음 여인이신 그 영을. 끝으로 돌아온 아들을 받는 아버지이신 하나님를 갖는가.

이순서는 에베소서 2장 18절의 순서와 정확히 같다. "왜냐하면 그분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나그네도아니요.체류자도아니며.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구절에 따르면 우리가 나아가는 것은 먼저 아들을 통해서이며. 그다음은 그 영안에서이다. 아들올 통해서. 그 영안에서 우리는 아버께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산일하나님안으로 나아가는 것. 즉 아들을 통해서. 그영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그분의 삼일성안에서 구원받았다.

 

 

 

 

 



삼일하나님


진리의말씀 2011-04-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7854.html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항상 존재하시며.(출 :3:14.)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시다. (마 28:19). 고후 13:14)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동시에 공존하신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벧전 1:2. 엡 1:17).   아들도 하나님이시며 (히 1:8. 요 1:1. 롬 9:5).  영도 하나님이시다. (행 5 :3-4).

그분들은 세분하나님이 아니라 한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직 한분 (고전 8:4. 사 45:5. 시 86: 10) 이시지만 또한 셋.

곧 아버지와 아들과 그영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말해준다. 그분은 삼일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는 영원하시고  (사 9:6). 아들이 영원하시고 .(히 1;12.7:3). 영이 영원하시며 (히 9:14). 그분들은 동시에 공존하신다.

요한 복음 14장 16절과 17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께서 또 다른 보혜사 를 여러분에게 보내 주실것이고.

그분은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실재의 영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4장10-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는 것을 그대가 믿지 않습니까.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내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십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하는 일들 때문에라도 믿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아버지와 아들의 공존이 있을뿐아니라 상호내재가 있다. 신격의 셋. 곧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공존하시며 상호내재하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그영의 관계는 그분들이 동시에 공존하실뿐 아니라. 상호 내재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그영안에 존재하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그영안에 존재하시며. 그영은 아버지와 아들안에 존재하신다. 신격의 셋이 이렇게 서로안에 내주하시는 것을 상호내재라고 한다.

에베소서 3장 14-17절까지 바울은 아버지께 무릎을 끓고 비노니.  우리를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안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도록 해달라고 구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그영과 아들그리스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본다.

 

신성한 삼일성의 셋사이에 구벌은 있지만 분리는 없다. 아버지는 아들과 구별되시고. 아들은 그영과 구별되며. 그영은 아들이나 아버지와구별되시지만 . 분리된다고 말할수없다. 그것은 그분들께서 상호내재하시며. 동시에 공존하시기 때문이다.

 삼일하나님께서 한분의 하나님이신 것이 사실이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세면이 잇다. 아들로서 그분은 우리를 죄들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오셨다. 그러나 이것은 아들께서 죽으실때. 아버지와 그영은 거기 계시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신약은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아버지와 그영도 죽음을 통과하고 계셨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행 20:28. 히 9:14)

그러므로 구속은 삼일하나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성경의 주요계시


진리의말씀 2011-04-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7853.html

성경에는 주요계시와 부차적인 계시가 있다. 예를든다면  나무에는 줄기와 함께 가지들이 있다. 줄기는 하나이지만 가지들은 많다.

중심적인 계시는 줄기라고 보고. 부차적인 계시는 가지라고 말할수있다. 중심적인 계시를 강조해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의 계시인 부차적인 계시들을 잊어서도 안된다.

 

성경을 해석할때. 우리는 어떠한 부차적인 계시도 유일하고 일관적인 성경의 주요 계시와 어긋나게 해석하거나. 조화되지않는 방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고전 11장에나오는 머리에 권위에 관한 게시를 말하면서 모든 자매들은 머리를 덮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머리덮는 것은 성경의 중심계시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지에 해당하는 계시를 소홀히 여길수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것에 관하여 율법적이되어서도안된다.

 

어떤사람들은  자매들이 어떤색. 어떤모양의 수건으로 머리를 덮어야 하는지를 가지고 논쟁한다. 이러한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다.

머리를 덮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머리의 권위 아래계섰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머리이신 그분의 머리의 권위 아래 있어야함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일본지진후 자매님의 일본교회 방문편지


은혜로은글 2011-04-2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7725.html

저는 4월 2일부터 10일까지 10여명의 지체들과 함께 일본교회 와 쓰나미 피해지역인 센다이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갈 1:16절 " 내가 그분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내안에 계시 하시기를 기뻐하실때에 나는 즉시 어떤 사람과도 의논하지 않았고"  주님은 내게 일본교회로 떠나기전 이말씀을 주셨고.  담대함을 가지고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리따 공항에서 가까운 나라시노 교회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봉사자형제님들과 교통과 기도와 찬송을 누렸습니다.

그리고나서 야간버스로 센다이까지 이동하였습니다..   베다니라는 작은 아파트 두채를 빌려서. 숙소와 집회 장소로 사용하고있었습니다. 다음날 그곳에서  주의 상집회를 가졌고 .그러한 어려운상황에서도 센다이교회 성도들의 주님을 향한 뜨거운사랑과 복음을 위한 필사적인 영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다은날 우리는 센다이 시청에서 봉사신청을 하고 각 가정으로 안배되어 봉사하려나온 일본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한팀으로 봉사를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아침식사 준비은 돌아가면서 준비했고. 점심으로는 주먹밥을 먹었으며. 일본사람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떤사람은 열려있기도하고. 어떤사람은 그렇치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로 우리의 봉사는 진흙을 나르것과. 젖은 가재도구를 치우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만지체들과 일본성도들과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봉사를 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상황이었지만 복음을 위해수고한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4월7일 밤 11시경 진도 7.4도의 여진이 있엇는데. 약5분가량 계속되었는고.지진이 옆으로 흔들릴뿐아니라 위아래로도 흔들렸는데.

곧장.두려운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이렇게 쓰러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모두는 "주예수님 주 예수님" 하며 외쳐대며  큰소리로 울부짓으며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교만은 한순간에 껶였습니다. 이러한 긴급한 상황안에서 지체가 지체를 의지하며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다음날 긴급교통이 이어졌는데. 과거에 일본일들은 주님을 향한 마음이 닫혔었는데. 지금은 컵라면하나에 마음이 열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

쵸코파이하나에도 너무너무 감사해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눈을 열어주셔서 이시대에서  하나님은 어떤일을 하고 계시는지 보여주시기를 간구해야 할때입니다.

다음날 우리는 와까 바야시라는 곳으로 갔고.  차를 타고 30여분가량 갔을때.어느 한마을 을 보았는데 시골의 논밭이 해안의 뻘같은 풍경이었습니다.

말할수었을 정도로 황페해진 모습이 스산한 느낌이었고. 정말 노아의때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내눈에는 믿기지않았고 상상할수 조차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쓰나미가 5분내에 시속 수백킬로의 속도로 삽시간에 모든 주택가를 휩쓸고 지나갔기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때 이와같을거라는 느낌을 같게되었습니다. "깨어있어라 그날에 도적같이 쓰나니처럼오리라라고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지막시대에 깨어 신실한 노예가되어 그날에 주님께 칭찬받는 종이될수있도록 주님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