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여러 권위를 세운 것은 얼마나 큰 모험인지 모른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표 권위가 그분을 잘못 대표하면 하나님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이 세운 권위에 대해 마음을 놓으신다. 우리가 마음 놓고 대표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 놓고 대표 귄위를 세우신 것보다 훨씬 용이하다. 하나님은 마음 놓고 권위를 사람에게 맡기셨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담대히 마음 놓고 대표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는가? 하나님께서 마음 놓고 세우신 권위를 우리는 마음 놓고 순복해야 한다. 만일 틀렸다면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권위가 틀린 것이다. 주님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순복하라고 말씀하셨다(롬13:1). 왜냐하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어려움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어려움보다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마음 놓고 사람을 신뢰하셨으므로 우리도 담대히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마음 놓고 사람을 신뢰하셨다면 우리는 더욱 마음 놓고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
누가복음 10장16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이 밖에서 말하고 명령하고 결정하고 주장한 모든 것을 그분이 하신 것으로 여기신다. 주님은 마음 놓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모든 권위를 맡기셨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말한 것을 주님은 모두 인정하신다. 제자들을 저버리는 자는 곧 주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주님은 완전한 평강 가운데 그분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하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갈 때 함부로 말하거나 틀리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들이 잘못 행하면 어떻게 될까를 조금도 염려하지 않으셨다. 주님에게는 그분의 권위를 마음 놓고 제자들에게 맡기실 믿음과 담대함이 있었다.
혹 어떤 사람은 대표 권위가 일을 잘못 행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담대히 권위로 임명한 자를 신뢰하셨다면, 우리도 담대히 그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대표 권위가 잘못이 있는가의 여부는 상관이 없다. 바꾸어 말해서 대표 권위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 앞에서 그가 직접 책임지는 것이다. 권위에 순복하는 사람은 다만 절대적으로 순복하면 된다. 잘못 순복하더라도 주님은 죄로 계산하지 않는다. 주님은 그 죄를 대표 권위에게 돌릴 것이다. 불순종은 배역하는 것이다. 권위에 순복해야 하는 사람은 그 죄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권위 안에는 사람의 요소가 없다. 만일 사람에게만 순종한다면 권위의 의미는 상실된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먼저 그분의 대표 권위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분 자신이 권위를 지키실 것이다. 다른 이의 옳고 그름은 그의 일이고 나의 옳고 그름은 나의 일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일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워치만 니[권위와 순복上中拔萃]
우주 가운데 다툼의 중심은 누가 권위를 얻게 되는가에 있다. 권위는 응당 하나님께 속해야 하고 우리는 사탄과 다투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권위를 만지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기본적인 인식을 가져야 한다.
바울이 권위를 알기 전에 그는 이 땅 위에서 교회를 제해 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는 발(사람의 능력)로 가시채(하나님의 권위)를 차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땅에 엎드려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다메섹 성 내에서 아나니아의 지시에 순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권위를 만졌다. 그러므로 바울이 구원을 받을 때 그는 하나님의 권위까지도 인식했다.
바울은 총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며 아나니아는 무명한 작은 한 형제였다. (성경은 그의 이름을 한 번밖에 언급하지 않았다.) 만일 바울이 하나님의 권위를 만지지 않았다면 어찌 아니니아의 말을 들었겠는가? 다메섹 도상에서 권위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찌 아니니아의 말을 들었겠는가? 다메섹 도상에서 권위를 만나 보지 않은 사람은 다메섹 성 안에서 무명한 작은 형제를 순종할 줄 모른다. 이것은 우리에게 권위를 만난 사람은 권위와 관계를 갖고 사람과 관계를 갖지 않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람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직 권위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권위를 조금도 모르는 것이다. 먼저 사람으 먼지고 그 다음 권위에 순복한다면 길을 잘못 간 것이다. 만일 먼저 권위를 만지고 그 다음 순복한다면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것은 옳은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은 교회로 말미암아 우주 가운데 그분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교회의 동역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하기 때문에 그분은 가장 큰 힘을 사용하여 그분의 권위를 지키신다. 스스로 옳다 하는 우리들(사실은 눈이 멀었음)이 어느 때인가 하나님의 권위에 부딪쳐 깨질 때 비로서 순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권위를 알기 시작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만질 때 비로소 하나님이 세우신 대표적 권위를 순복하게 된다.
출처: 웟치만 니 전집 3집 제1권
제1장 권위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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