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의 인수 증가가 더딘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먼저는 목양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한 교회는 영적인 먹임이 부족하고 영적인 인도가 부족하다. 먹이는 것은 음식을 공
급하는 것이고 인도하는 것은 목양하는 것이다.
둘째는 관리는 지나치게 많고 감독하는 것은 너무나 적은 것이 이유이다.
많은 이들이 침례를 받은 후에 교회 안에 남아 있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돌보기 위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봉사하는 방식 아래에서 우리는 주로 집회를
유지하기 위해 힘쓴다.
우리는 집회를 통해 사람들을 목양하고 유지하려 한다. 거의 모든 봉사자들이 집회를 유지
하는데 힘쓰고 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온갖 종류의 집회들에 소비되고 있다. 그
결과, 목양과 가르침과 심방과 위로함에 있어서는 참된 봉사의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가 침례를 받은 후에 누구도 그를 돌보거나 소중히 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살아남거나 죽은 것이 그 자신에게 달려 있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도둑맞기도 한다 이것은 수치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체계와 구조와 길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다.이것을 연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인도하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 인도하는 이들
은 구조를 바꾸어야 하며, 목양하는 일에 더 힘써야 한다. 인도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
책임자들과 봉사자들도 동일한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정규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에
게도 일정부분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목양하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주중집회를 줄여서 심방하고
목양하는 데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이것에 더해서 인도하는 이들과 지역 책임자들은 사무 관리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들은 사무관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사무관리를 위해서는 간단한 안배만 필
요할 뿐이다.
결국, 교회 생활은 인도하는 이들을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집회 생활과 사무 관리를 단순화 시켜야 하고, 그것을 통해 봉사자들과 모든 새로운 이들이 그들의 온 시간을 심방하고 목양하고 돌보는 일에 드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인도하는 형제들의 봉사집회도 간소화되어야 한다.봉사 집회가 너무 길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
결정되면 즉시 수행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 다시 토론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여 목양하고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인도하는 이들은 목양과 심방을 더 해야
하고, 지역 책임자들과 그룹 인도자들에게 동일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절감하고 있다. 특별히 인도하는 이들과 지역 책임
자들과 모든 봉사자들이 함께 바꾸고 전환해야 한다.
좋다면,사무관리를 위해서는 우리의 힘의 10%만 사용해야 하고 나머지 90%는 사람들을 목양하고 심방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심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야 한다.
심방은 인도하는 형제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모든 형제자매들이 심방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우리는 일정한 시간을 들여서 이 문제에 대해 교통해야 한다. 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 '혁명'은
아니지만 '혁명'보다 더 급진적인 것이다. 때때로 세상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구조가 바뀌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를 바꾸는 것이 혁명을 하는 것 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형제들과 자매들을 위해서 매주 두번의 저녁 시간을 빼 놓아야 한다. 교회 는 한 주 동안
많아야 두번의 대집회를 가져야 한다. 소그룹 집회를 실행할 때 우리는 세번의 저녁 시간을 활용
해서 함께 모일 수 있다. 하루 저녁은 영적인 서적을 읽고 기도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두저녁은
사람들을 심방하고 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이렇게 한다면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다.
- 위트니스 리, 1971년,대만 타이베이., 교회 안에서 목양함과 젊은이들을 온전케함에서 발췌-
행크는 주의 회복을 기독교의 희망이라고 보고 있다고
앤드류 형제님에게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회복 또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그 중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서울교회 소식지 중에서)
주의 회복에서 교회생활을 한지 이제 13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초기에 본으로 여겼던 분이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형제님을 본으로 여기고 있다고 여겨지는 데
그 차이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하여 보니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은사 있는 형제님과 분량 있는 형제님에 대한 부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다 귀한 형제님들입니다만..아마도 이것은 집 안에서도 아이가 자라면서
장래 희망이 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겨집니다..
초기에는 은사 있는 형제님이 매우 누림직하고 그 형제님만 보였는데
이제 가만히 눈을 뜨면서 보니까 잘 보이지 않던 분량 있는 지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서 그 용도는 교회 건축입니다.
은사가 정말 중요한 것이고 성경에 건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분량 있는 지체의 그 분량에 대해서는 큰 주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여겨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 안의 핵심은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은사와 생명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즉 은사와 분량은 모두가 교회 안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귀함에 있어서는 어떠한 구분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사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나
에베소서4장 8절의 은사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의 영적인 은사인 신언의능력으로 성경에 나타나 있고
분량은
전적으로 생명과 생명공급에 의한 것으로
요한복음 10장 10절(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과
4장 13절(충분히 성장한 사람...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
에 나타나 있습니다.
은사는 타고남에 더하여진 추구에 의하여 얻어지는 반면..
분량은 태어남과 자라남에 의한 것 즉 정금길가의 생명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라 여깁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분량은 하나님으로 조성된 어떤 것이며
심지어 은사는 교회를 건축하는 도구에 가깝다고 보면
분량은 교회를 이루는 구조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은사는 자칫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 있지만
분량은 자랑하거나 주장하지 않아 마음을 편하게 하여 주며
은사는 자칫 머리의 위치를 취하고 야심이 숨어 들 수 있지만
분량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의 머리 되심 아래 숨습니다.
은사도 물론 몸 안에서 귀하고 존중 받아야 하고 주께 감사함이 크지만
교회 안에서 참으로 귀한 본으로 여겨져야 하는 부분은 분량이라 느낍니다.
은사는 가르치는 데 능하지만 분량은 생명을 공급하는 데 능하며
은사가 진리 방면에 가깝다면 분량은 생명방면에 가깝다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은사 있는 몸의 지체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분량 있는 지체들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은사는 주님이 쓰시는 도구이지만
분량은 목표이신 주님 자신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그 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가 된 이들을 포로로 이끌어 가셨다가 사람들에게 은사들로 주셨습니다(엡 4:8)
그 분께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신언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이로
또 어떤 사람들은 목자 및 교사로 주셨습니다.(엡4:11)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4:12)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에서의 하나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서의 하나에 이르게 하고
또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엡 4:13)
행크가 지난번에도 "A" 형제님께 하였던 말이 기억납니다..
"주의 회복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가지지 못한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로 말씀 먹기와 신언입니다.. "
영적인 은사인 신언함에 더하여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 기도로 말씀 먹기로
생명수 강가의 나무처럼 자라남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이
교회 안에서와 또한 행크같은 FOR들에게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에 참 감사함이 있습니다.
.................아멘
inHim http://cafe.daum.net/overcomers출처
은사는 타고남에 더하여진 추구에 의하여 얻어지는 반면..
분량은 태어남과 자라남에 의한 것 즉 정금길가의 생명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라 여깁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분량은 하나님으로 조성된 어떤 것이며
심지어 은사는 교회를 건축하는 도구에 가깝다고 보면
분량은 교회를 이루는 구조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은사는 자칫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 있지만
분량은 자랑하거나 주장하지 않아 마음을 편하게 하여 주며
은사는 자칫 머리의 위치를 취하고 야심이 숨어 들 수 있지만
분량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의 머리 되심 아래 숨습니다.
은사도 물론 몸 안에서 귀하고 존중 받아야 하고 주께 감사함이 크지만
교회 안에서 참으로 귀한 본으로 여겨져야 하는 부분은 분량이라 느낍니다.
은사는 가르치는 데 능하지만 분량은 생명을 공급하는 데 능하며
은사가 진리 방면에 가깝다면 분량은 생명방면에 가깝다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은사 있는 몸의 지체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분량 있는 지체들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은사는 주님이 쓰시는 도구이지만
분량은 목표이신 주님 자신이라 느껴집니다…
엡4장에서의 은사는 하나님이 몸에게 주신 은사로서 성도들을 온전케하고 그사역의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분들을 말합니다.. 위트니스리형제님은 워치만니형제님을 그리스도의 몸에게주신 독특한 은사가지신분라고 말씀하신적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은사를 말할때는 고전12장에나옵니다.은사는 여러가지이지만. 그영은 한분이십니다. 어떤사람에게는 그영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어떤사람에게는 동일한 그 영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시며. 어떤사람에게는 동일한 그영안에서 믿음을. 어떤사람에게는 유일한 그 영 안에서 병고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사람에게는 능력의 일들을 행하는 것을...주십니다.
은사는 우리가 태어날때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것에 많은 부분을 차지할것입니다..즉 타고난 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자매가 교회안에 들어오기전에 피아노를 잘쳤다면. 교회안에서도 좋은 은사를 발휘할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량은 생명에 속한 것으로서. 어떠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단시일에 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므로 분량은 속사람에 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은사와 분량에서 더 온전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