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 니의 간증(1차) 워치만니의글
2005/08/23 09:03 http://blog.naver.com/givenzone/80016414370 |
제 1차 간증
(1936년 10월 18일)
성경: 사도행전 26장 29절,
갈라디아서 1장 15절
출생 전에 이미 바친 바 되었다
나의 출생은 어떤 면으로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하나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민간에는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미 두 딸을 낳고, 계속해서 여섯 딸을 낳은 나의 고모와 같이 될까 매우 두려워 했다. 그 분은 그 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몰랐지만 주님께 간단한 몇 마디로 『만일 당신이 내게 아들을 주신다면 나는 이 아들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어 얼마 안가서 나를 낳게 하셨다. 후에 내 아버지께서 이 일을 내게 알려주심으로써 나는 출생전에 이미 바친 바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원을 받은 것은 양면적이었다
1920년, 내가 17세였을 때 나는 구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주님을 믿는 것은 구원을 받아 죄를 벗어나는 데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라시는 주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것에 대한 대가가 너무도 큰 것임을 잘 알았음으로 속에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그냥 지나치시지 않았고 갈등은 계속 되었다. 나는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 양면적(兩面的)이라는 것- 한 면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요 또 한 면은 그를 내 주인으로 영접하여 섬기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 해 4월 20일 밤, 나 혼자 방 안에 있었을 때 나는 주님을 영접해야 하느냐 영접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달게 받아 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기도할 때 너무도 큰 나의 죄를 발견하게 되었고 오직 주 예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때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못 막힌 두 손을 내밀어 날 맞으며 『나는 여기에서 네가 날 영접하길 기다리고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랑이 마침내 나를 정복했다. 이전에 나는 다른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비웃었으나 그 날 저녁 나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눈물로 죄를 자복하며 주께 사해주시기를 구하며 주님을 영접했다. 또한 이 큰 사랑으로 인하여 나는 내 일생 동안 그를 섬기기를 원하게 되었다. 기도한 후, 나는 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쁨과 평강을 맛보게 되었다. 그 때 방안에는 빛이 충만한 것 같았다. 나는 주님께 말했다.『아, 주여, 당신은 나를 은혜로 대하였습니다!』
커다란 변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세 사람은 나의 동창생이다. 특별히 위 광희(魏 光禧)형제는 항상 학교의 규칙을 범하던 나의 이전 나쁜 행실을 간증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작은 총명으로 매 시험마다 나는 쉽게 수위(首位)를 차지 할수 있었다. 나의 문장은 항상 모범으로 뽑혀서 게시판에 붙여져 있었다. 이러므로 나는 교만하고 자고(自高)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나의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고 청년들이 품는 야망을 갖고 있었고, 장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노력하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목적을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밤부터 모든 것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십여년 간의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모든 영웅심과 큰 뜻이 점점 사라져 결국은 깨끗이 없어졌다. 반대로 하나님의 나에 대한 부르심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나는 나의 일생이 장래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님이 나를 이끄시어 구원을 받게 할 뿐 아니라 한층 더 나아가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에게 다다르게 하셨음을 알았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어 내가 그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고 그와 동역하도록 하신 것이다. 전에 나는 전도하는 일을 업신여겼다. 특별히 전도인들에 대해서는 많은 전도인들 보기를 외국사람이나 따라 다니는 일종의 직업인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그들을 저질(低質)로 느끼고 있었다. 과거에 나는 내가 그렇게 멸시하던 전도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가장 하류(下類)의 것으로 여기던 그 일을 전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생활에는 실제가 없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는 학교를 떠나 상해에 가서 여자도(余慈度)자매가 경영하는 성경 학원에 들어갔다. 얼마 후 그 분은 내게 그 학원을 떠나 달라고 말했다. 나는 군것질을 잘하고, 아름다운 옷을 즐기고, 아침에는 항상 늦게 일어났었으므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이 일은 주님을 섬기려는 내 마음에 엄중한 타격이 되었다. 나는 내 생명은 큰 변화를 받았으나 내 생활에는 실제가 없으며 고쳐야 할 점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려면 먼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함을 알았다. 나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계속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사역에 능력이 없었다
학교에서 동급생들이 소설을 읽을 때 나는 한쪽에서 성경을 읽었다 (편자 주:그러나 그는 시험 볼때마다 1등이었다). 나의 동급생들은 내게 많은 변화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나의 옛 성질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의 간증은 그리 강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 때 내가 위(魏) 형제에게도 간증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주님께 돌이키려는 마음으로 동급생들에게 간증했으나 일 년이 지난 뒤에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나는 이론(理論)을 잘 얘기하고 충분한 논리를 제시하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 나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서 아무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서양인 선교사인 그로스 양(miss Grose)을 만나게 되었다. 그로스 양은 나에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물은 후, 일 년 동안 내가 주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이 전부 몇 명이나 되는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동급생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했지만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말하기를 나의 문제는 나와 주님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이며 그렇게 때문에 복음을 전해도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격]은 숨겨 있는 죄일 수도 있고, 양심의 거리낌일 수도 있고, 기타 주님께 득죄한 일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솔직하게 이런 것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녀는 내게 이런 것들을 깨끗이 버리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내게 묻기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느냐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사람을 만나서 그가 흥미있게 듣든지 안듣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님에 대해 말했음을 얘기했다. 그녀는 내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내 친구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서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후에 하나님이 말할 기회를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나는 돌아온 후 곧 죄를 해결하고 주님이 내몸에서 역사하시는 데에 지장이 있는 일을 해결했다. 또 10명의 동창생 이름을 한 수첩에 적은 후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때로는 수업중에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기회만 있으면 그들에게 주 예수를 전했다. 이 일이 효과를 보기 시작할 때 처음에 나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내가 그들 앞을 지나가려 할 때 앞에서 희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야! 전도사 온다. 우리 그 설교좀 들어보자!』 사실 그들 속에는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이 실패를 그로스 자매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구원 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라고 했다. 주님 은혜로 나는 주님을 의지하고 힘을 얻어서 매일 명단에 기록한 사람 하나하나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 이렇게 하여 몇 달이 지난 후 명단에 기록된 70명 중 1명을 제외한 69명이 다 구원을 받았다. 여기에 앉아 있는 위 광희 형제도 그 69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성령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나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학교와 도시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 위에서 내려오는 능력을얻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한 영국 선교사인 화수은 ( 和受恩 ) 자매 ( M.E.Barber) 에게로 갔다. 나는 그분에게 물었다. 『영적 능력을 얻으려면 성령릐 충만을 받아야지요?』 그분은 말했다. 『그렇다. 너는 반드시 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이 그의 영을 네게 충만케 하시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분명한 구원과 부르심을 받고 이미 내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지만 여전히 영적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프리진 형제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프리진 ( Prigin ) 형제는 미국 사람으로서 중국에 온 일이 있었다. 그가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그는 자기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그에게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 있고, 이길 수 없는 죄가 있고,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능력이 조금도 없음을 고(告)했다. 그는 하나님께 성령을 충만케 해 주시고, 승리의 생활을 할 수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는 이러한 기도를 두 주(週) 동안 계속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몇 가지 요구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승리의 생활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두 달 후에 볼 박사 시험을 포기해라. 나를 섬기는 데는 「철학 박사」가 필요 없다.』그는 너무도 난감 ( 難堪 )했다. 그에게 있어서 박사 학위를 얻는 일은 자신만만한 일이었다. 그런대 어떻게 이것을 버린단 말인가? 그가 30 년간 소망을 걸어왔던 것이 바로 이 「박사」학위를 얻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버리라고 하시니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시지 않은가? 이러한 전쟁이 그의 안에서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주님이 승리하셨다. 그는 한 통의 편지를 대학 당국에 보내어 그가 다음 주에 있는 학위 시험에 불참 ( 不參 ) 할 것임을 통지했다. 그 일은 이렇게 결정된 것이다. 그 날 저녁 그는 몹시 피로했고, 그 이튿날의 집회에서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튿날 그는 회중( 會衆 )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이 주님께 복종한 일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날 회중의 사분( 四分 )의 삼(三)이 새롭게 일어났고 그 자신도 이로 인해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는 후에 말했다. 『내가 만일 결과가 이런 것임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하나님께 복종했을 것이다.』그는 그 후 주님께서 중히 쓰시는 사람이 되었다. 프라진 형제의 이야기는 나를 감격케 했다. 나는 주님께 말했다.『주여, 나와 당신 사이의 간격을 제거하겠사오니 나로 성령의 충만을 받게 하소서.』이리하여 1920년보터 1922년까지 나는300여 명에게 사과하고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내 느낌에서는 여전히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간격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일하려 노력했으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은 없었고, 사역의 효과도 별로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그를 사랑해야 한다
어느 날 나는 설교 제목을 찾기 위해 성경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읽은 것은『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 : 25 ) 였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시편 기자 ( 記者 )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원인은 바로 그 때 내가 지금 내 아내 된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주님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그녀가 내게 회답한 것은 웃음 뿐이었다. 이것은 10 년 전의 일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많은 청년들이 그러하듯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다. 내 느낌에는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너무 열렬하기 때문에 나와 주님 사이에 다툼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내 마음 가운데에서 너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이 일에 대해서만은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심지어 나는 황무한 땅 티뱃 ( Tibet ) 까지라도 가서 전도하겠고, 하나님을 위한 많은 사업을 하겠으니 나의 애정만 간섭하지 말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만 버리지 말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제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단 이 일을 제기하신 후에는 돌이키지 않으셨다. 주님은 나에거 그 사랑을 버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고, 기도도 잘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성령의 충만을 받기 원했지만 시편의 그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마침내 하나님께 말했다. 『주여, 나눈 그녀와의 관계를 포기하겠읍니다.』이 때 나는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원받았을 때, 나는 죄 짐을 벗어났다. 이번에 나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장애물을 해결하고 완전히 소제 ( 消除 ) 하여 내 무거운 짐을 벅어버리고 평범한 옷으로 갈아 입은 후, 부엌에 들어가 풀을 쑤어서 전도지와 함께 가지고 나가 한 장 한 장 붙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과거에는 복주( 福州 )에서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었다.
1922년 2학기 때 나는 매일 수첩에 적힌 동창생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구원 받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기 때문에 다음 해부터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집회하기 위해 좀 더 큰 장소를 빌어야겠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때 수첩에 기록된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구원을 받았다.
가장 귀한 공과를 배우다
그 때 우리에게는 일곱 동역자가 있어 매주 금요일에 같이 모였다. 그러나 그 시간의 대부분을 나와 인도하는 한 형제와의 변론으로 다 소비했다. 이 형제는 나보다 다섯 살 위였다. 청년이었던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상대방의 생각을 비판했다. 때로 나는 혈기도 냈다. 그러나 내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토요일마다 화 수은 자매에게 가서 그분에게 그 형제의 태도에 대해 호소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분쟁을 화해시켜주며 그 형제의 잘못을 고쳐달라고 했다. 그 자매는 나를 꾸짖으며 성경에서 젊은이는 나이 많은 자에게 순종하라 했으니 너는 그에게 순종해야 마땅하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복종하지 않고 나 자신을 변명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사리(事理)는 있는 게 아닙니까?』그분은 『이유 불문하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는가를 봐라. 성경에서 젊은이는 마땅히 나이 많은 자에게 순종해야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금요일 오후에 논쟁을 벌이고 나서 밤에 나는 잠을 잘 수 없었고 때로는 울기까지 했다. 토요일에는 화 수은 자매에게 가서 호소하며 그분에게 내 신원을 구했다. 그러나 그분의 답변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또다시 울었다. 나는 내가 그 형제보다 일찍 태어났더라면 순종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그 형제였을 것을......하면서 내가 그 형제보다 일찍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恨)하였다.
언젠가 나는 그 변론중에서 나의 의견이 너무도 옳은 것임을 느끼고 그분에게 내가 어떻게 옳고 그 형제가 어떻게 틀렸는가를 설명했다. 나는 이번에는 틀림없이 내가 이긴 것으로 인정받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그 형제의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 앞에서 형제를 송사(訟事)하는 네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냐? 네가 어린 양과 같은 사람이냐? 네가 한 번 말해 봐라. 그녀의 이 몇 마디에 나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내 말과 태도는 정말 십자가를 메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고 어린 양과 같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그 일년 반동안에 내 일생 중에서 가장 귀한 공과(工課)를 배운 것이다. 나는 원래 머릿속에 영적 구상(構想)이 가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 환경으로 말미암아 나를 영적 실제에 들어가게 했고 십자가의 의의(意義)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다. 오늘, 1936년, 내게는 50여 동역자가 있다. 그때에 순종하는 공과를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오늘 그 어떤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찬미를 드린다. 그는 나로 성령의 제한을 받게 하기 위하여 나를 그러한 환경 가운데 넣으셨다. 그 18개월 동안 나는 내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다만 울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나』라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 성격의 모난것을 깍아내시어 이제 나로 하여금 젊은 동역자들에게, 온유하고 겸손하고 화평한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하셨다. 십자가를 메지 않으면 그들이 한 일, 열성, 목적과 능력이 모두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 길을 걸어 오면서 나는 나의 단점과 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옳고 그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십자가를 메는 사람이냐 아니냐에 있다. 교회안에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다 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메는 것이요, 부서짐을 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고 그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출처] 워치만 니의 간증(1차)|작성자 민하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나는 상해에서 왔습니다. 나는 전에 교사였습니다.
1960년에 나는 모택동의 어떤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에 7년 형을 받아 투옥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극동에서 가장 큰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1963년에 나는 내가 니 아저씨라고 부르던 니 형제님과 같은 방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니 형제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감옥은 열 개의 건물로 되어있는 아주 큰 감옥이었습니다.
각 건물이 6층으로 되어 있었고 각 층에 90개의 감옥이 있었습니다.
한 방에 3명씩 들어간다면 1620명이 한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큰 감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 명 이상이 있는 그렇게 커다란 감옥에서 그렇게 긴 기간
어떤 사람과 함께 투옥되어 함께 있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 번째 건물에 감금되었을 때 니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분과 9년 동안 함께 있었습니다. 9년 중에 2년 동안은 우리가 따로 있었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이를 인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분이 주님께 가시기 이틀 전까지 나는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삼 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어느 형제님을 상해에서 만났을 때,
나는 그 형제님에게, 주님을 사랑한 니 아저씨가
왜 그러한 고난을 받아야 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훈련 후에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사역이라는 것을, 고난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고난을 받았지만 그분의 사역은 이제 온 땅에 퍼져 있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지만 주님을 극도로 얻으셨습니다.
그분이 주님을 반사함으로 우리 모두가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질그릇이었지만 그분 속에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가 있었습니다.
형제 자매님들이여, 내가 직접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정말 견딜 수 없는 모든 고난을 그분이 통과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몇 가지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 번 째로 만난 것은 안휘성에 있는 한 도시였었는데,
그때 그분은 몸이 아주 약해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나이가 많이 드셨습니다.
우리가 기거한 것은 감옥 식당에서 60미터 내지 70미터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니 아저씨는 걷지도 못할 만큼 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걸어서 식당에 가서 식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음식을 타다 드렸습니다.
어느 날 간수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왜 워치만 니를 위해 음식을 갖다 주느냐?"
나는 “그분은 나이가 많고 약해서 그렇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2층에 가서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간수는 엄한 얼굴을 하고서“말도 안돼! 그는 약한 척 하는 거야.
자기가 가서 먹으라 해. 너는 더 이상 음식을 갖다 주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받으러 갔을 때 부엌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 간수들이 “아무도 워치만 니의 음식을 받아가게 하지 말라.
워치만 니가 직접 와서 먹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돌아가서 니 아저씨에게 그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분은 아주 자비가 많은 분이셨습니다.
나는 그분이 어떤 묘책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좀 생각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나는 자연스럽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그때 화가 났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실까? 식사를 안하시겠다는 말인가?’
처음에 나는 그분께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당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그분과 따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음식을 조금 그분께 나누어 드렸습니다.
갑자기 나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데,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면 식사를 조금 더 받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점심으로 주는 다섯개의 밥 덩어리 중에서
한 덩어리를 더 받아 여섯 덩어리 중에서 두 덩어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니 형제님은 두 덩어리만 드셔도 양이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우리 둘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1971년 어느날 간수가 나에게 가족들에게서 온 편지를
니 형제님에게 갖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편지를 갖다드렸는데,
그 내용은 니 형제님의 부인이 사다리서 떨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니 형제님이 상해로 가서 부인을 방문하도록 허락을 받을 수 있도록 자청해서
니 형제님과 함께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실상 우리 둘 다 형기를 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규정에 의하면 우리는 매년 2주 동안 가족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6년에 일어난 문화혁명 때문에
모든 범죄자들은 가족을 방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에게 그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을 보내 주어야 했습니다.
처음에 간수는 "생각 좀 해 보지.”라고 말하더니,
나중에는 “당신은 심장병이 있는데 어떻게 상해에 갈 수 있겠어?”라고 물었습니다.
니 형제님은 나와 함께 가면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반 달 동안 보류를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그 간수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간수는 “당신은 왜 집에 가려고 하지?
당신은 의사도 아닌데. 또 당신의 아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던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경우를 조사해 봤는데 우리는 당신을 집에 보낼 수 없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럴 때 형제님은 한 마디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사실 따지도록 허용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분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요, 저 분은 기도하는 게 아니라
입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간수가 니 형제님이 기도하는지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니 형제님은 기도하지 않고는 하루도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니 형제님이 눈물을 흘리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부인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니 형제님은 아주 슬퍼하셨습니다.
나는 힘을 다해 위로하며 또다시 요청해 보자고 격려했습니다.
“장례식이라도 참석하게 상해에 가 봅시다.” 이번에는 허가를 해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기다리게 하다가 여전히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허락해 줄 줄 알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죽었는데 가면 무엇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누가 니 형제님보다 고난을 더 당했겠습니까?
그분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약해 지셨고, 체중이 줄어들었고, 9개월 후에 그분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말했습니다.
“형제가 나가거든 꼭 이 사람을 찾아보시오. 이상수라는 사람을 찾아보시오.
이 형제를 만나거든 나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시오.
이상수 형제를 만나는 것이 나를 만나는 것이고,
그의 말이 곧 내 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니 형제님의 마음에서는 이 형제님이 가장 좋은 형제님이셨던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니 형제님은 신체적인 고난 말고도 정신적인 고통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견딜 수 없는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항상 말하지요.
중국에서도 요즘에는 자유가 있어서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니 형제님의 때에는 중국 정부의 규제가
아주 엄격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니 형제님은 20년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주여 당신을 사랑합나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생각해 보십시오.
20년 동안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못했다면,
20년 동안 사랑하는 자녀에게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면,
20년 동안 자기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니 형제님은 이 모든 것을 견디셨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 니 형제님을 생각해서라도
“오 주 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크게 말합시다.
오, 주 예수여 ,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간증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안배하시는 장래에 또 더 많은 간증을 하기 원합니다.
2003, 고린도후서 여름 결정연구 메시지 7번 중에서,
오 형제님의 간증 발췌문
지방 교회 측의 해명 및 반박
아래 내용은 지방 교회 교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K씨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된다.’는 소위 ‘신화 사상’(Deification)에 대하여
K씨는 위트니스 리가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 라고 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누가 전제 조건이나 설명도 없이 갑자기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고 말한다면, 우선 그 말 자체가 듣기에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신화’ 사상은 초기 교부시대부터 있었다. 정통 교부들의 저술들을 읽어 본 신학자들은 이 주제가 구원론과 관련하여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회자되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지방 교회 측은 수년 전부터 정통교부들의 신화사상을 교계에 소개하기 위하여 프랑스어로 된 Jules Gross의 책을 ‘The Divinization of the Christian According to the Greek Fathers’ 라는 제목으로 2002년에 최초로 영어로 번역 출판한 바 있다. 우리는 이 책과 함께 미국의 저명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가 저술한 또 다른 신화관련 책자도 현재 한국어로 번역 중에 있다. 이런 책들이 조만간 한국교계에 소개된다면 신화에 대한 현재와 같은 항간의 오해가 많이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에서도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이 신화사상을 말하고 있다. 한 예로 수원 합동 신학원 조병수 교수(신약학)는<목회자를 위한 바이블 넷>에 (http://biblenet.co.kr) 올려져 있는 ‘요한복음 설교 116 번’에서, "그가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기 위함이다"(Athanasius, de incar. 54,3)라는 아타나시우스의 말을 설교에 인용 소개하고 있다.
또한 사랑의 교회 원로 목사인 옥한흠 목사는 사상수훈 강해서인 ‘하늘행복으로 살아가는 작은 예수’ (국제제자훈련원, 2004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산상수훈을 주시면서 특별히 순종을 명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작은 예수’가 되기를 소원하셨기 때문입니다”(284쪽). 비판적으로 본다면 ‘작은 예수’라는 말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옥한흠 목사의 이 말은 마태복음 5-7장에서 묘사한 내용들을 실제 삶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신격 (Godhead)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이 된다.’라는 위트니스 리의 말은 쉽게 말해서 위 옥한흠 목사의 ‘작은 예수’가 되라는 말과 같은 내용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창조주처럼 경배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이것이 위트니스 리의 신화 사상의 요지이다. 이처럼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보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위트니스 리가 ‘라이프 스타디를 성경과 동등하게 믿게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K씨는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 성도들이 라이프 스타디를 성경 66권과 동등하게 믿는 것처럼 왜곡시켰다. K씨는 이 말에 대해 주님 앞에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는 그의 장로훈련 III권-이상을 실행하는 길(한국복음서원, 1994)에서 라이프 스타디의 용도가 성경을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일 뿐임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그는 어디에서도 K씨의 주장처럼 라이프 스타디가 성경과 동등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게 말한 곳이 있다면 한번 제시해 보라. 오히려 그는 라이프 스타디는 성경 강해서로 “성경을 대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도록 성경을 열어 줄 목적으로 쓰여 졌음”(위 책, 85쪽)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장로교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 책을 매우 귀히 여기고 중시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장로교인들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성경과 ‘동등’하게 믿고 있다.’ 라고 비판한다면 그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K씨의 주장은 이런 식으로 상식에서 벗어났고 억지의 말에 불과하다.
기성교회는 몸이 아니고 한 지방에 한 교회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그가 어느 단체에 속했든지 <참되게 주님을 믿고 영접했다면> <본질적으로> 우주 교회(마16:18) 즉 한 몸(엡4:4)의 일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한다. 즉 누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이 되는 문제는 각 개인의 믿음을 따라 결정될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안하고에 달려있지 않다. 이 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한 몸은 <실행적으로> 이 땅 위에서 각각의 믿는 이들이 거주하는 그 지방을 범위와 명칭으로 해서 나타남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to the Church of God in Corinth)에게 보내졌다. 즉 우주교회인 ‘하나님의 교회’가 ‘고린도’라는 특정지방에 나타난 것이 곧 ‘고린도 교회’인 것이다. 신약의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비록 수 만 명이 편의상 이 집 저 집에서 모이고 집에서 성만찬도 떼었지만, 성령께서는 그 각각의 집을 교회들로 보지는 않았다. 대신에 ‘예루살렘’이라는 도시(city)를 범위로 삼아 ‘예루살렘 교회’(the Church which is in Jerusalem)라고 기록했다(행8:1).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예들을 따라서 ‘한 지방에 한 교회’ 원칙을 실행하는 것뿐이다. 만일 이런 실행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이 각자의 특수한 교회관을 서로 용납하듯이 <한 지방, 한 교회>도 ‘지방 교회 측의 교회관’으로 보고 용납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에 대하여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즉 정통 기독론에 따르면,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즉 양성을 가지고 계시며 이 둘은 구별은 되나 분리 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성경에는 또한 이 한 분 예수님을 가리켜 어떤 때는 ‘하나님의 아들’로 또 어떤 때는 ‘인자’(사람의 아들)로 구별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런 식의 구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가 ‘예수님의 인성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또는 ‘거룩하지 않다.’ 라고 한 것도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인성 즉 ‘사람의 아들이신 부분’은 신성이 아니시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죄만 없으시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지니셨다>는 정통 기독교의 고백에 따른 것이다. 만일 K씨의 주장처럼 성육신 당시 예수님의 육신조차도 거룩한 신성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우리와 같은 참 사람이 아니시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이단적인 사상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행13:33)는 말씀을 해석하는 것도 ‘오늘’을 언제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본문이해가 달라진다. 전후문맥은 여기서 <오늘>은 <성육신의 시점>이 아니라 <부활의 시점>임을 보여준다(롬1:3-4, 고전15:45).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하여 “오늘 너를 낳았다.“ 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높여진 인성’(uplifted humanity)을 입으신 것이라고 위트니스 리는 설명한다. K씨가 이 말씀을 문제 삼은 것은 한 마디로 이해 부족에서 온 것이다.
한국복음서원의 책자 보급에 대하여
‘한국복음서원’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만을 전적으로 출판하는 LSM(Living Stream Ministry)의 출판물들을 한국어로 번역 소개하는 기독교 출판사이다. 참고로 LSM은 ‘미국 복음주의출판사 협의회’(ECPA)의 투표권 있는 정회원이다. 이점은 ECPA 홈페이지(http://www.ecpa.org/members_voting.php )에서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ECPA에는 한국에서도 생명의 말씀사, 규장, 예영 커뮤니케이션 같은 유명한 기독 출판사들이 국제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ECPA에는 기존 투표권 있는 회원사들의 비밀 투표를 통해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쳐야 회원 등록이 가능하다. 또한 이 단체는 지속적으로 소속 회원사들을 관리함으로써 그들이 펴내는 책이 진리적으로 안전하고 복음적인 내용들임을 직간접적으로 보증하고 있다.
지방 교회는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단체이다
미국의 저명한 이단변증 단체인 CRI와 AIA의 성명서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유명한 두 이단 변증 단체에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또는 지방 교회가 성경의 핵심 교리에 있어서 정통이고 성경적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두 단체의 이름은 이단변증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월터 마틴이 세운 CRI(Christian Research Institute, 대표 행크 해나그래프)와 AIA(Answers In Action, 대표 그레첸 파산티노)이다. 그들은 3년 여의 공동 연구 끝에, 지방 교회가 정통신앙을 가진 교회라고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별첨 자료 참조). 또한 그 후에도 지방 교회가 정통신앙을 가졌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풀러 신학교 측도 리차드 마우 박사(총장), 하워드 로웬 박사(신학부 학장), 벨리마티 커케년 박사(조직신학) 등이 2년 이상 심도 있게 조사 연구한 결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음을 밝힌 바 있다. 특히 CRI의 행크 해나그레프와 미국 풀러신학교 신학부 학장인 하워드 로웬 박사 그리고 벨리마티 커케년 박사는 올해 2월에 목회자 신문(사장: 김철종 목사)이 주최하는 신학 심포지엄과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지방 교회는 이단이 아니다’ 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과거에 지방 교회를 오해하던 단체들이 당사자와 충분한 대화와 토론 끝에 나온 것이어서 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대만에서는 지방 교회가 가장 성경적인 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2-3일에 한국 청교도 보수정통 신학을 주창하고 있는 박아론 박사(전 총신대 총장), 심태섭 박사(총신대 졸업, 전 한민대 총장) 그리고 김경직 박사(기독교참여연대 대표 겸 교회성장신문사 회장)는 대만에 있는 지방 교회들을 방문한 바 있다.
박아론 박사는 대만 지방교회들 방문, 교회 인도자들과의 토론, 워치만 니 전시관 관람 등을 마친 후 종합적인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나는 위트니스 리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이번에 위트니스 리가 아주 훌륭한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워치만 니가 성경진리 회복의 신학자라면, 위트니스 리는 성경진리 회복의 전파자라는 것을 인식했다.” 장로교 보수 신학자인 박형룡 박사의 외아들이기도 한 박아론 박사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지방 교회의 복음진리를 접하면서 한국 교회들도 지방 교회처럼 ‘성경 중심의 복음적인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심태섭 박사는 지방 교회의 역사와 세계선교에 관한 동영상을 관람한 후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고, “지방 교회가 고등교육을 받은 많은 청년들을 진리로 훈련시켜 해외로 내 보내는 사역은 한국 교계가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회성장신문 대표와 기독교참여연대 대표인 김경직 박사는 대만 지방 교회들을 취재하고 난 후에 대만 전체 기독교인들의 50% 이상이 지방 교회 성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또한 대만에서는 지방 교회가 가장 수준 높은 진리를 가지고 있고, 보수적인 정통신앙 노선을 가진 단체로 존경받고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또한 대만정부 교육당국에서 문제 많은 중, 고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하여 대만 지방 교회들로부터 인성교육 (생명교육) 교재와 수 백 명의 훈련된 인성 교육 교사 들을 지원 받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지방 교회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가 필요하다
위에서 보았듯이 미국과 대만에서는 지방 교회가 성경적이고 정통신앙을 가진 단체로 인정받고 있으나 유독 한국에서만 크게 오해를 받고 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한국의 지방 교회 지도자들은 이것이 쌍방 간의 대화 부족에 기인한다고 보고, 지난 2-3년 동안 교계 신학자들 및 목회자들과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마음을 연 대화를 해 왔다.
지방 교회 측은 앞으로도 자유주의 이단에 대항하여 선포되었던 <근본주의 5대 원칙> 같은 핵심 진리항목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며, 복음을 귀히 여기는 모든 기독교 복음주의 단체들과 주 안에서의 교제를 나누고자 한다. 또한 기독교에 반대하는 안티기독교 무리들, 오일 머니를 무기 삼아 조직적으로 포교를 펼치고 있는 모슬렘 (Moslem) 등의 공세에 대항하여 함께 힘을 합쳐 참된 성경진리를 확산하고 증언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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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자료 :
미국 이단변증 단체 인 AIA (대표 그레첸 파산티노)의 성명서
미국 이단 변증 단체 AIA(Answers In Action)의
지방 교회들과 LSM (Living Stream Ministry)에 대한 입장
? Copyright 2007 by Gretchen Passantino
기독교 변증론 분야의 전문가이자 미국의 저명한 이단변증단체 AIA(Answers In Action)의 공동창립자 및 책임자인 그레첸 파산티노(Gretchen Passantino)는, 같은 분야의 동료이자 CRI (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대표인 행크 해너그래프(Hank Hanegraff), 그리고 CRJ (Christian Research Journal)의 편집장인 앨리어트 밀러(Elliot Miller)와 공동으로 3년에 걸쳐 진행된 신중한 조사, 대화, 검토 및 신학적 분석의 결과, 워치만 니(Watchman Nee)와 위트니스 리(Witness Lee)의 가르침과 LSM(Living Steam Ministry)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들은 정통 기독교 신학을 수용하여 가르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기독교 운동의 한 부분이며, 신학적으로 이단성의 문제가 있다거나, ‘이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지난 3 년 동안 CRI와 AIA는 지방 교회들이 출판한 모든 책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었고, 지방 교회들에서 인도하는 이들과 직접 만나 수백 시간에 걸쳐 대화를 가짐과 동시에 아무런 제약 없이 일반 성도들과 만나서 대화를 가졌습니다. 아울러 CRI와 AIA는 수백 시간에 걸친 신학적 분석과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다수의 신학대학원에 요청하여 저명한 신학자들, 성경학자들의 자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마친 후 파산티노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운동이 소유한 믿음의 내용들에 대해 훨씬 더 자세하고 포괄적인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운동에 대해 제기한 과거의 비평들이, 비록 여타 기독교 변증론자들이 내놓은 것들에 비해 부드러운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운동의 본질이 갖고 있는 정통성을 오해하고 잘못 제시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근년에 지방 교회들과 LSM은 미국 기독교계에서 진일보적으로 폭 넓은 인정을 받아 왔습니다. 우선 풀러 신학교(Fuller Seminary)가 AIA 와 CRI 가 수행한 것과 유사한 대화 및 검토 작업을 실시하여 “지방 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은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대표하고 있습니다.”(풀러 성명서, Fuller Statement)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아울러 LSM은 미국복음주의출판협의회(Evangelical Christian Publishers Association, ECPA)에 정회원으로 등록되었으며, 해당 단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투표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AIA와 CRI가 지방 교회 인도자들 및 LSM과 가진 대화에서, 양측은 모두 파산티노 부부와 월터 마틴 박사가 과거에 내린 대단히 비판적인 평가가 여러 요인에 기인한 것이었으나 그 누구에게도 고의적인 왜곡이나 악한 의도는 없었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부적절한 비판들을 가져온 더 큰 이유는 상호간의 직접적인 대화 부족과 미국 내 기독교와 중국 내 기독교 사이의 문화적, 언어적, 교회론 상의 차이, 그리고 양측 모두의 종교 분석적 검토 기술이 상대적으로 미숙했던 점이라는 데 공통된 결론을 얻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은 몇몇 초기 교부들의 가르침이나 오늘날 동방정교회가 가르치는 내용들과 매우 유사합니다.”라고 말을 꺼낸 파산티노 여사는, 계속해서 “그러나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는 변화를 통한 개인적인 성화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이 교부들이나 동방정교회가 가르쳐온 신화(theosis)라는 가르침과 유사하다거나 그것을 채택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70년대에 정통 노선에서 벗어난 서구의 단체들이 이 주제에 대해 주창했던 이단적인 가르침에 관하여 광범위한 지식을 소유했던 저로서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을 제게 친숙하지 않았던 교부들의 가르침이나 동방정교회의 신학과 동일시하는 것보다 그러한 단체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되어왔던 가르침에 대해 20년 만에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면서, AIA와 CRI는 논란과 관련된 부분들을 그들의 글의 전체 맥락과 아울러 정통 신학의 전체적인 틀 안에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파산티노 여사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그 옛날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 중에서 모순적이라고 느꼈던 항목들은 사실상 이단적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 아니라 충분히 정통 신학의 범주 안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난제에 해답을 제시한 것은 바로 직접적인 대화였습니다. 파산티노 여사, 해너그래프, 엘리어트 밀러는 지방 교회 인도자들과 처음 만나자마자 지방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그들의 동료 믿는 이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 파산티노 여사는 “그들은 정통 신학을 확증함과 동시에 이단을 단호히 거절했는데, 나는 자신들의 신학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그들을 보면서, 직접적인 교제가 이들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AIA와 CRI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지방 교회들, LSM의 핵심적인 교리들이 전적으로 정통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을 확증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AIA와 CRI는 몇몇 부차적인 가르침들과 실행들에 있어서는 이들이 미국의 여러 복음주의적 교회들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온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AIA와 CRI는 2007년 후반에 지방 교회의 가르침들에 관한 연구 결과를 CRJ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한편, LSM이 발표한 장문의 교리 해설서인 ‘풀러 신학교 측과 대화 시 제출되었던 “지방 교회 신앙 변증서”는 지방 교회들의 핵심적인 교리가 갖고 있는 정통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교리 중 부차적인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여타 그리스도인 단체들에게는 크게 문제시되었던 부분에 관해서도 이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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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척추에 있는 자연적인 3개의 만곡 |
경추(목), 흉추(등), 요추(허리),이러한 3개의 척추만곡이 균형 잡히기 위해서는 |
건강한 척추는 강하고 유연한 근육과 관절에 의해 지지되어 진다. |
1주일에 3-5회에 걸쳐 15분 동안의 운동요법은 균형 잡힌 척추를 유지시켜 준다. |
앙와위 시작자세 | |
골반기울기 | |
요추회전 | |
양다리 당기기 | |
엉덩이 올리기 | |
부분 말아올리기 | |
앙와위 시작자세 | |
한쪽 다리 당기기 | |
일직선 다리 올리기 | |
복와위 시작자세 | |
팔꿈치 압박 | |
손과 무릎사용 시작자세 | |
허리압박 | |
허리풀기 | |
팔펴기 | |
다리펴기 | |
좌위 시작자세 | |
측면신장 | |
전체 척추 풀기 | |
목돌리기 | |
목굽히기 | |
어깨 으쓱하기 | |
직립 시작자세 | |
벽미끌림
큰바위얼굴님 |
지금은 '지방 교회들'을 지지함
변증 조회 89 댓글 1 스크랩 2 2009-02-26 20:55:25
현재글 URL : http://blog.chch.kr/poimen2/3663
<이단 변증가들의 재평가>
과거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방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방 교회들’을 지지함
Christianity Today 콜린 한센 기자(Collin Hansen/1/26/2009 09:58AM)
<미국 복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신문 2009년 1월 26일자 기사내용>
두 저명한 변증가들이 그간 논쟁이 되던 ‘지방 교회들’ 운동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바꿨다. 이 운동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을 따르는 운동이다. ‘크리스챤 리서치 연구소’(CRI) 대표인 행크 해나그레프와 ‘행동하는 답변들’(AIA)의 책임자인 패산티노 코번 여사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기 위하여 설립된 ‘변호와 확증 프로잭트’(DCP)가 지난 해 11월 달에 펴낸 소책자에서 각각 자신의 새로운 지지글을 선보였다.
해나그래프는 지방교회들은 신학적인 의미에서든 사회학적인 의미에서든 이단적인 단체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CRI는 1970년대에 다른 진리변증단체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비평자료들을 출판한 바 있다.) 월터 마틴과 신흥 이단들이란 책자를 공동 저술하였던 패산티노 코번 여사는 “평생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재평가”에 대해 열정적이고도 개인적인 소회를 담아 다음처럼 기술하였다. “만일 당신이 부모로서 젊은 청년인 당신의 자녀가 하룻밤 사이에 영적으로 꽃피는 것같이 보여 자랑스럽게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영적인 혼돈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불타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방 교회들은 합법적인 곳이고, 신학적으로 정통이며, 영적으로는 신실하게 참여하는 곳입니다. 지방교회들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성숙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 곳은 마귀의 위험한 덫에 빠지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책은 또한 풀러 신학교가 3년 전에 발표한 선언문도 싣고 있다. 세 명의 풀러 신학교 교직원들인 리차드 마우 총장, 하우드 로웬 신학부 학장, 벨리 마티 카케년 조직신학 교수는 지방교회들의 신앙에 대하여 토론하기 위하여 지방교회 측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다섯 차례나 직접 만났다. 풀러 신학교 대표자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던 몇 가지 주제들은 “삼일성(삼위일체), 신성과 인성의 연합, 신화(神化), 양태론(樣態論), ‘지방’교회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실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들의 모임 밖에 있는 외부 믿는 이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 등" 이었다.
이제 풀러 측은 그 풀러 선언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 믿는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방교회 측 사람들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기를 기탄없이 권한다.”고 했다. 풀러 측과의 대화 결과, 지방 교회들 대표들과 LSM 편집진은 지난 2007년 1월에 그들의 가르침들에 대한 37쪽의 성명서를 출판했다. 그러나 LSM 대변인인 크리스 와일드씨는 이 문서가 널리 유통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워치만 니가 1920년대에 중국본토에서 창설한 이 운동은 점차적으로 서방으로 퍼졌다. 워치만 니가 1972년에 중국 공산 치하 감옥에서 순교한 이후, 위트니스 리가 이 단체의 가장 저명한 성경교사가 되었다. 그는 1997년에 사망했다. 이 단체의 두 가지 특성들이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즉각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첫째는 이 운동과 연계된 교회들은 예컨대 “시카고에 있는 교회’라는 명칭이 보여주듯 지리적인 명칭 이외에 다른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 단체에 위계적인 구조가 없다는 점이다.
위트니스 리는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어서 지방 교회들이 자신들만 유일하게 합법적인 그리스도인들로 생각한다는 우려를 가져왔다. 이런 위트니스 리의 입장에 자극을 받아 (달라스 신학교의 더렐 보크와 남침례교 신학교의 페이지 페터슨 등을 포함하여) 60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2007년 1월 지방교회들과 그 출판기관인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 (LSM)에 위트니스 리의 교리적인 입장과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철회하라고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역자주: 이 공개서한에 대하여 지방 교회들이 간략하게 제시한 1차 답변과 그 후 좀더 상세한 내용들을 답변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지방교회들 변증 싸이트인 http://www.lctestimony.org/LongerResponse.html 참조.)
이처럼 비판이 고조되자 지방 교회들은 다른 복음주의 단체들과의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LSM은 복음주의 출판협의회의 회원으로 가입되었고, 국제 크리스찬 소매업체 전시회에 자신들이 출판한 책을 소개하였다. (LSM 측은 또한 비판자들을 법정에 고소하는 법적 조치를 취하였다. 즉, '이단단체 및 신흥종교 사전'의 저자들인 존 앵커버그와 존 웰던에 대해 136백만 불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으나 패소한 바 있다. 2007년 6월 미국 대법원은 이와 관련된 항소심 개최를 거부하였다.)(역자주: 본 사건은 재판 절차상의 문제들을 다루다가 종료된 것이며, 쟁점이 되었던 사안은 심의도 되지 않았음).
하지만 LSM은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전에 CRI의 일원이었던 캘빈 베이스너 등의 비판자들은 바로 그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베이스너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위트니스 리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미 초기 교회의 공의회에서 정죄 되었던 두 가지 형태의 양태론을 위트니스 리가 견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또한 패산티노 코번을 포함해 이전의 비판적 입장을 바꾸었던 이들이 위트니스 리에 대해 품었던 의구심이 사실은 오류였다는 점을 아직 문서로 밝히지는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역자주: 이러한 비판을 감안하여 CRI와 패산티노 코번 여사는 그들이 왜 지방교회들에 대한 입장을 비판에서 지지로 바꿨는지를 설명하는 보다 구체적인 자료들을 준비 중에 있음).
베이스너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트니스 리가 가르쳤던 것 중 정통적인 교리와 일치하는 것을 언급할 뿐 위트니스 리의 정통적 교리에 위배되는 진술을 명백히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프란시스 세퍼가 반복해서 주장했듯이 탈근대 시대에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을 밝힐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명백히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 교회(Worldwide Church of God )는 1980년대에 자신들의 창시자인 허버트 W. 암스트롱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거부함으로써 좋은 선례를 남겼다. 따라서 지방 교회에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지나친 요구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해나그래프는 지방교회들의 구성원들에게 신학적 통찰력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쉽게도 오늘날 복음주의 성향을 띤 모임들 대부분에서 결핍되어 있는 교리적 정밀성에 대한 예리한 관심을 지방 교회들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패산티노 코번은 아직도 지방 교회들을 비판하고 있는 비판자들이 좀 더 깊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을 좀 더 읽다보니 이들이 박해받던 교회들과 고대 동방 교회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곧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개인 체험적 신학"과 관련이 있음이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는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해받던 교회와 동방교회의 준거틀(templates, 원형)을 지방 교회들에 적용해 보았을 때 제가 알게 된 것은 지방교회들이 공식적으로 어디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어디에서 유래한다고 주장되든, 그들이 이들 박해받던 교회 및 동방교회와 지닌 유사성은 명백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완전히 정통에 속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말이 제가 지방 교회들의 모든 가르침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 제가 지방교회들이 추구하는 신학을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신학을 더 충분히 알게 되었고, 또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들의 가르침이 비록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단적인 것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끝)
[원본출처] 지금은 '지방 교회들'을 지지함 - 파루시아(Parousia) :: 교회들(http://blog.chch.kr/poimen2/3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