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는가를 보고 로마서 7장에서는 그분이 어떻게 율법에서 우리는 해방하셨는가를 본다. 6장은 주인과 종의 그림으로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7장은 두 남편과 한 아내의 그림으로 율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죄와 죄인의 관계는 바로 주인과 종의 관계인 반면에 율법과 죄인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바울이 로마서 7장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사용하여 율법에서 벗어나는그림을 제공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한 여인에게 두 남편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 여인은 그 중 한 사람의 아내밖에 될수 없기 때문에 장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여자는 마음이 내키지 않은 사람에게 시집갔다. 그녀가 시집간 남편이 좋은 사람임을 기억하라. 문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완전히 맞지 않은 데 있다. 그는 극도로 엄격한 사람이고 호리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정반대로 범사를 아무렇게나 처리하는 극단에 처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범사에 매우 정확한 반면 그녀는 경솔하게 일한다. 그는 모든일을 다 단호하고 분명하게 하는 반면에 그녀는 대충해 버린다. 이런 가정이 어찌 즐거울수 있겠는가.
그 남편은 이렇게 성실하며 자기 아내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어느 누구도 그의 흠을 말할수 없다. 또 그는 그 여자의 남편이기 때문에 그녀에게서 무었을 기대할 권한이 있다. 더우기 그의 모든 요구는 완전히 합법 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남자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의 요구도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의 아내가 남편이 요구한 것을 이루지 못하는데 있다.
두사람은 전혀 함께 처할수 없다. 그들의 성품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잘안다. 그러나 이런 남편과 함께 거할 때 그녀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틀리게 된다. 그녀에게 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만일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다면 모든 면에서 좋을 것이다. 그 남자는 본래 그녀의 남편보다 엄격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원하나 단지 그의 남편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도 할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녀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된다. 남편이 죽지 않고서는 결코 합법 적으로 그남자에게 시집 갈수 없다, 이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바울이 그린 것이다. 첫 남편은 율법이고 두번째 남편은 그리스도이시다. 또 당신은 바로 그 여인이다.
율법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그 요구를 이루는 데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주 에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많다. 심지어 율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마 5:21-48).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을 우리안에서 친히 이루신다. 율법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요구만하고 이행할 능력을 주지 않는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요구하시지만 그분이 친히 우리안에서 그분이 요구하신 것을 이행하신다. 그러므로 그 여자가 첫 남편을 떠나 다른 남편에게 십가고 싶어하는 것을 조금도 이상한 일이아니다.
그녀가 해방받기 위해서 유일하게 바랄 수 있는 것은 바로 첫 남편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남편은 완고히 그 생명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여인은 그가 죽는 것에 대해 호리라도 소망을 가질수 없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율법은 영원까지 계속될 것이다. 만일 율법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다면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할수 있겠는가. 만일 나의 첫 남편이 죽기를 거절한다면 내가 어떻게 두번때 남편에게 시집갈수 있느가. 오직 방법은 하나이다. 즉 그가 죽기를 원치 않는다면 내가 죽으면된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혼인의 관계는 끊어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율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다.
로마서 7장의 이단락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3절에서4절로 바뀌는 것이다. 1절부터3절까지는 마땅히 남편이 죽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4절은 사실상 죽은 쪽은 여인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율법이 죽지 않고 내가 죽은 것이다. 죽음으로 말미안아 나는 율법에거 벗어났다. 율법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자.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는 영원 까지존재한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한 나는 반드시 그요구들에 응해야한다. 그러나 만일 내가 죽었다면 율법은 더이상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수 없다. 율법은 무덤을 넘어서 나를 따라올수 없다.
[원본출처] 사진작가들의 작품들 - 그리스도를사랑하는사람들 :: 교회들(http://blog.chch.kr/loversofchist/1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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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가 어떤 사람인 줄을 아신다. 그분은 머리부터 끝까지 내가 죄로 충만하다는 것을 아시고 내가 약함의 화신이고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나 문제는 내 자신이 이점을 모르는 데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인 것을 시인한다. 그러므로 나도 죄인 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구제 불능의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극도로 약하고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는데 이로도록 우리를 이끄셔야만 한다.
비록 우리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리들이 이것을 완전히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제불능임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무언가 하시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율법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약한가를 모른다. 바울은 실로 이런 경지에 이끌렸었다. 로마서 7장 7절에서 바울은 이점을 분명히 말해 준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는 율법의 다를 부분에 대한 체험이 어떠했든지 간에 열번째 계명은 바로 "..탐내지 말라".이다.
이것은 그의 죄를 드러내었다. 이점에서 그는 그의 모든 실패와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우리의 약함이 더 드러나고 로마서 7장의 체험에 더 깊이 빠져 버린다. 이런 체험은 우리가 구제불능일 정도로 약하다는 것을 알때 까지 지속된다. 하나님은 벌써부터 이것을 아셨지만 우리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도록 고통스런 체험을 주지 않으실 수없다.
우리의 약함은 우리가 더이상 다툴 것이 없을 정도로 확증될 필요가 있다. 이런 목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지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다. 그분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바로 우리로 범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분은 우리가 율법을 지킬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셨다. 우리가 이렇게 악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서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니님을 기쁘시게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신약에서도 믿는 이들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도리어 율법의용도가 법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율법이 가입한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니라 ". (롬 5:20).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율법을 위반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나는 아담안에 있는 죄인이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니고 나는 죽었도다". (롬 7:7-9).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의 참된 성질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우리 자신을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부심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결국 하나님은 부득불 우리가 약하다는것을 증명해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신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극히 타락한 죄인으로서 스스로 무엇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시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을 주심은 우리가 준수하기를 바래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율법이 주어질때 우리가 범할 것을 아셨다. 율법을 범할때 비로서 우리는 자신이 절대 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믿게 된다. 이때 율법의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안에서 율법을 행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몽학선생이다.
(갈:3;24)
엡1:17-2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해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그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가운게 있는 하나님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또한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강한 권능으로 운행하는 하나님의능력이 지극히 크다는 것을 알게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역사 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들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오른편에앉게하시어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지배 권위 위에 그리고 이시대뿐아니라 오는 시대에 일컬을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하나님은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시키시고 그리스도를 만물위에 머리가 되게 하시어 교회에세 주셨습니다.
3:16-17.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분의 영을통하여 여러분을 능력으로 강하게하셔서 속사람에 이르게 하시고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여러분이 사랑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수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도록 하시고 또 지식를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어 하나님의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여러분이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우리는 바울형제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부르심의 소망은 여러분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곧 영광의 소망이다.(골 1:27)
2.우리는 성도들안에 있는 하나님의유업의 영광도 보았다. 성도들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유업또한 그리스도이다. 우리안에 넣어지신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유업이시다. 우리는 우리속에 넣어지신 그리스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질문해 보아야한다.
3.바울형제님은 우리가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다.우리는 겉사람인 우리의 혼과 속사람인 연합된영을 같고있다. 우리의 속사람은 사망과 성질과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약해져있다.
나는 최근에 너무좋아하는 일로 속사람이 약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마음은 혼의 모든 부분인 생각과 감정과 의지에 영의 주요 부분인 양심이 더해져 구성된다.
바울형제님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마음눈을 밝히사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