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0:34-35.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이두손으로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내가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으니 여러분도 이렇레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하고 또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 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습니다.라고하신 주 에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고 장로들에게 부탁했다. 이말씀은 복음서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이말씀은 구전된것이 틀림없다.
바울은 자신과 그의 일행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그의 손으로 장막 만드는 일을 했다.
그는 자기의 젊은 동역자들을 돕기위해 일했다. 상황이 허락하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시간을 사역의 일에 사용할수있다.그렇지않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행.18:3).
행:27:23-24. 내가속해있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 그분의 천사가 바로 이밤에 내곁에서서 말하였습니다
"바울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야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대와 함깨 항해하는 모든 사람을 그대에게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였다.
35. 바울이 이 말을 한 후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떼어
서 먹기 시작하니 모두 용기를 얻어 음식을 먹었다.
38. 배에는 모두 이백칠십육 명이 있었다.
비록 바울이 사슬에 묶인 죄수 였지만 그의 행동은 위엄으로 가득했다.
바울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생활이었다.험하고 힘든 항해를
하는 동안 바울은 내내 탁월하고 위엄있는 생명과 지혜로 충만한 생명은 살았다.
바울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목슴을 잃었을 것이다.
폭풍은 여전히 사납게 몰아치고 배는 뒤흔들리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목숨을 잃을까 두러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용기를 내고 평안 가운데 있으며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나서 그들 모두앞에서 먼저 먹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때문에 바울은 솔선하여 용기를 내어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모두 용기를 얻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폭풍이 이는 바다위에서 오래동안 감금된채 순탄하지 않은 향해를 계속하는 동안 주님은 사도를 그분의초월안에 있게 하시고 염려없는 삶을 살수 있게 하셨다. 수년전에 주님자신이 이땅에서 사셨던 삶과 닮은 삶이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성하게 부요해진 인성 안에서 또한 다시 이 땅에 사시는 것이었다. 바울은 항해하는 동안 그리스도를 살며 확대했다.
행 28:13-15.거기서 우회하여 레기온에 도착하였다. 하루가 지난 후 남풍이 불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간청으로 그들과 함께 칠일동안
머물다가 로마로 갔다. 그곳 형제들이 우리에 관한 소식을 듣고 아피온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 라는 곳까지 우리를 맞으러 나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용기를 얻었다.
로마에서 온 형제들의 따스한 환영과 보디올에 있는 형제들의 사랑스런 돌봄은 초기에 교회들과 사도들 사이에 있었던 아름다운 몸의생활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8장 15절에 의하면 바울은 형재들울 보았을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용기를 얻었다. 이것은 사도가 매우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주님께 직접격려를 받았고 항해하는 동안 내내 담대 햇지만. 여전히 형제들의 따스한 영접에 용기를 얻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그곳 형제들은 그와 그의 일행에 관한 소식을 듣고 아피온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 라는 곳까지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아마 바울이 청함을 받아 칠 일동안 머물렀던 보디올의 몇몇 형제들이 그때 그를 만나러 로마에서 온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했던것 같다.
우리는 고대 시대의 교회 생활,매우 즐거운 교회 생활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오늘날 그러한 즐거운 교회생활을 해야 한다.이러한 구절들에 제시된 본을 따라야 한다.
저자: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로 제사장이었다. 에스겔이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강화 하실 것이다. 또
전능자가 너의 힘이다 란 뜻이며. 부시는 경멸받은 이라는 뜻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멸받은 선지자 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화시키
셨다. 그는 사역을 주전 595년 부터 574년까지 바벨론에서 수행하였다.
배경: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심판받고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긍훌을 베푸셨다 그분은 그들을 회복하여 다시 돌아오게 햐여 성전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재건하기를 원하셨다 (렘 29:1-14).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간음을 행하며. 모든악을 일삼는 것에 대하여 엄히 꾸짖었다. 그는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수있기 전에 먼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그들에게 힘을 다하여 말했다.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고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3:7-9) 결국 포로된 백성은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켜서 칠십년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겔 3:7-9.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팍하여 네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말을 듣고자 아나함이니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개략
첫 번째 부분은(1장)은 주님의 영광의 모습에 대한 이상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타나시며.하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시며. 또하나님깨서 어떻게 네 생물을 통해 그분의 통치를 행하 시는지를 계시해 준다. 그들의 동역으로 하나님은 움직이시며 통치하실수 있다.
두번째 부분(2-3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과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소멸하는 불로 오신다. 심판후에 하나님 께서는 생명으로써 그분의 백성을 회복하러 오신다.
세번째 부분(33-39장)은 회복의 부분이다.
내번째 부분(40-48장)은 하나님의 성전에 관한 것인데 생명에 의한 회복에서 나오며 에스겔서를 완
결한다.
이같이 에스겔서는 주의 영광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끝맺음 한다. 이것이 하나님
의 목표가 건축임을 시사한다.
에스겔서와계시록은 서로 병행된다. 첫번째 유사성은 두책이 다 이상들로 시작한다.
두책은모두 하나님의 생명이 생명으로 흘러나오심, 즉 생수의 흐름을 보여준다.(겔47:1.9.,계22:1-2.)
겔47:1. 그가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밑에서 물이나와
서 동으로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9. 이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것이 살 것이며.
에스겔서와 계시록 모두에서 생명 공급을 주는 강이 하나님으로 부터 흘러나온다.
세번째 유사성은 에스겔서와 계시록은 모두 예루살렘의 이상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에스렐48장과 계시록 21장과 22장은 하나님의 셍명을 가진 우리들이 모두 함께 거룩한 성 새 예루
살렘으로 건축될 것임을 말해준다.
1.하나님의 표현과 움직이심과 행정을 위한 여호와의 영광의 나타남에 대한 이상.
A. 바람.구름. 불.단쇠 (1:4-28).네생물 (1:5-14).높고 무서운 바퀴(1:15-21).
B. 심히 두려운 수정같이 맑은 궁창(1:22-25). 보좌위의 인자(1:26-28).
2.하나님께서 소멸하는 불로서 그분의 백성과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심(2-32장)
A.백성의 타락으로 인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B.성전을 떠난 여호와의 영광.(8:1-11:25)
C.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25:1-32:32).
3.하나님의 거룩한 건축의 이상 (40:1-48:35).
겔 1:4-14
내가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 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형상이라 각각 네 얼굴과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그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그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 웠으며 영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불이 그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혀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15절) 내가 그 생물은 본즉 그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16절:그바퀴의 형상과 구조를 보니 그 형상은 빛나는 녹주석과 같고 네바퀴의 형상이 모두 똑같으며
그 구조는 마치 바퀴안에 바퀴가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나의 부담은 에스겔서 1장에 나오는 바람 구름 불 합금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의 이야기가 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구원의 진리에 관한 교리적인 지식을 조금 알고서 바람과 구름과 불과 합금에 대한 체험은 전혀 없는 채로 형식적으로 침례를 받았을지 모른다.
참되게 구원받은 사람은 바로 하나님과 영적 교류를 가진 사람, 곧 불어오는 바람과 덮는 구름을 체험한 사람이다.
우리의 영적인체험은 항상 영적인 폭풍으로 시작된다. 교회의 역사에 따르면 모든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영은 갛한바람과 같이 불어오셔서 사람을 감동 시키시어 죄들을 회개 하게 하시고 주님을 믿고 거듭나게 하시고 주님을 따르게하시어 영안에서 불타 주님을 섬기게 하셨다.
사실상 우리의 영적인생활의 전환기마다 폭풍이 불어온다. 이폭풍은 하나님자신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활과 일과 교회 안으로 폭풍을 가져오신다.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에게 폭풍이 불어오는 것은 참으로 은혜이다.
폭풍과 마찬가지로 구름도 성령을 상징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만지실때 그분은 바람과같으시다.
성령께서 우리을 방문하시고 우리를 덮으실때 그분은 구름과 같으시다.
먼저 성령은 우리 위에 바람처럼 불어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시고 그런다음 구름처럼 우리를 덮으시면서 우리와 함께 머무신다.
에스겔은자기를 감싸는 구름이 끊임없이 번쩍이는 불로 덮여있음을 보았다.이불은 태우시고 거룩하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한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을 책망하러오신다.(요.16: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폭풍으로 불어오시고 구름으로 덮으시고 불로 우리를 태우시는 목적은 불에서 합금이 나오도록하는 것이다.
소멸시키는 불을 통과할때 빛나는 합금이 된다.
겔1:5. 그리고 그불 한가운데서 네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에스겔서는 하나님의 경륜에대한 이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불어오는 폭풍으로 구원받고 교회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교회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은혜를 체험하고(덮는구름)번쩍이는 불로변화 되어 하나님의 건축재료인 보석이된다.(합금)
우리는 날마다 폭풍과구름과 불과합금을 체험해야한다. 에스겔서5장의 중점은 네 생물이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있다는 것이다. 또 26절은 보좌의 형상을보았는데 사람의 모양과같은 형상을 보았다.
네생물이 사람의 모양을 지니고 있으며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도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체적인 사람인 교회를 얻기원하시는 하나님의 갈망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위해서는 네생물의 동역이나온다. 네생물곁에는 바퀴가있는데
이바퀴는 생물이 움직이는데로 움직인다. 하나님의 움직임은생물에게 달려있다. 그들이 움직일때 하나님도 움직이신다. 이것은 생물들의 동역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1:14.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처럼 빠르더라.
비결도 역시 믿음이다.
우리의 죄사함과 성령을 얻는 것도 모두 믿음에 달려있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신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성령이 우레에게 부어진 것을 알수 있다. 우리가 성령을 얻는 근거는 우리의 기도나 금식이나 기다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높이 들리우심이다. 하나님의 은사는 몇몇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기다림을 강조하고 기다리는 집회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된다.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의 어떠함에 근거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에 근거한다. 성령의 부어지심은 우리의 선량함과 위대함을 증명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선량함과 위대하심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구원 받고자 하는 뜻을 표명한 한 불신자가 있다 하자. 당신이 그에게 구원의 길을 설명하고 그와 기도 할때 그가 주 에수여. 당신이 나를 위해 이미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당신은 능히 내모든 죄를 씻어내실 수 있습니다. 진실로 당신이 나를 용서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하자.당신은 이런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믿을수 있는가.그렇지 않다. 언제 그가 이미 거듭난 것을 확실히 믿을 수있는가. 그가 . 주여당신이 장래 내죄를 용서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할때가 아니라 주여. 당신을 찬미합니다.당신이 이미 내죄를 사하셨고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내죄는 이미 깨끗이 싰어졋습니다 라고 말할 때이다. 사람의 기도가 간구에서 찬미로 바뀔 때 비로소 그가 구원받았습을 믿을수 있다. 이때 그는 더이상 하나님께 그를 용서하달라고 간구하지않고 어린양의 피가 이미 흘렸졌기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그를 사하셨다는 것을 찬미할것이다.
같은 원칙에서. 당신은 성령을 얻기 위해 수넌둥안 간구하고 기다렸지만 아직 성령의 능력을 얻지 못했을 수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께 성령을 부어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멈추고 도리어 믿는 마음으로 그분을 찬미하면서 주 예수님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이미 부어졋다고 말한 다면 당신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할것이다. 하나님을 찬미하자. 성령을 얻기 위해 애쓰거나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자녀는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장차 주가 되실분이 아니라 이미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고 지금 그분이 주이심을 기억하라.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장래 성령을 얻기 위해 애쓰거나 기다려야 할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장차 주가 되실 분이 아니라 이미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고 지금 그분이 주이심을 기억하라.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장래 성령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믿음의 문제이다. 또 믿음은 계시로부터 온다. 우리눈이 열려서 예수님이 이미 영광을 얻으신 고로 성령님이 이미 부어졌다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의 마은 속의 간구는 자연히 찬미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신령한 복을 확실한 기초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의은혜는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우리가 그것을받아들일 때에는 우리 편에서 우리가 영접하기 위한 어떤 조건들이 이루어져야만한다. 성경 말씀에는 부어지신 성령을 받는 조건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 2장 38절 39절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은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구절은 네가지를 말한다. 즉 회개와 침례와 죄 사함과 성령이다. 앞의 두가지는 조건이고 나중 두가지는 은혜이다. 만일 우리가 죄 사함을 얻으려 한다면 어떤 조건을 수행해야 하는가. 성령의 말씀에 의하면 그 조건은 두가지 곧 회개와 침례이다. 첫번때 조건인 회개는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다. 전에는 범죄가 일종의 즐거운 일이었으나 이제 이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전에는 세상을 매력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좋은 것을 알게 되었다.전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불쌍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이다. 전에는 가장 즐겁게 여겼던 많은 일 들이 이제는 천하게 여겨지고 전에는 아무가치 없게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는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서 회개이다. 만일 사람의 생각에 이런 변화가 있다면 그의 생명에는 참된 변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침례이다. 침례는 내적인 믿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만일 내가 마음 속으로 진정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으며 또 함께 부활한 것을 믿었다면 나는 침례를 주도록 요청할것이다. 이로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믿은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는 믿음의행위이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사함의 조건은 두가지 즉 회개와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당신은 회개하였는가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주와 연합하여 하나된 것을 간증하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죄 사함과 성령의 은사를 얻었는가. 당신은 첫번째 은혜만얻고 두번째 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친구여 만일 당신이 두가지 조건을 이행했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두가지 은혜를 주신다. 왜당신은 한가지만 원하는가. 두번째 것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마땅히 두가지 선물을 다 얻어야지 한가지만 얻을수 없다. 주님께 빨리 이렇게 말하라. 주여. 저는 당신이 죄 사함과 성령을 주시는 조건을 수행하였으나 내 어리석음 때문에 전자만 얻었을 뿐입니다. 이제 돌이켜서 당신에게 성령의 은사를 요청합니다. 이일로 인하여 당신을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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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1:12-30.
형제님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갇혀 있다는 것이 모든 근위대와 그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고.내가 갇혀 있다는 것 때문에 대부분의 형제들이 주님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선한 뜻으로 전파합니다.
이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세워졌다는 것을 알고 사랑으로 전파합니다.
그러나 저사람들은 갇혀 있는 나를 괴롭힐 생각으로 순수하지 못한 이기적인 야심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어떤방식으로 하든지 그리스도 께서 전파되시는 것이니. 이것으로 나는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나는 앞으로도 기뻐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어떤 일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매사에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몸에서 그리스도 께서 확대 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삶은 그리스도이고. 나에게 있어서 죽음은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체를 입고 사는 이것이 나의 일에 열매가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훨씬 더 좋지만. 내가 육체에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을 위해서는 더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확신이 있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내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속 남아 있어야 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내가다시 여러분에게 가면 나에 대한 여러분의 자랑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넘치게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오직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 보든지 떠나있든지 여러분이 한 영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과 더불어 한혼으로 함께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듣도록 해 주십시오.
어떤 일에 있어서도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러워하지 마십시오.이렇게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되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되는데 이러한 중거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분을 믿을 뿐만아니라 또한 그분을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동일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싸움은 여러분이 전에 나에게서 본 것이고 지금도 나에게서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과 바울이 쓴서신들을 읽어본다면 그당시에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위해 일한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시기로 복음을 전파하는 어떤사람들이 있는것을 볼수있다.
그런이들은 복음을 전하였지만 사도와 함께 일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령의 한흐름안에 있지않았다. 바나바는 바울과함께 일하였지만 어느날 함께 사역한지 얼마지난후에 바나바는 어떤이유로 한흐름안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동역해 나가는 데 동의 하지않았다.
그 결과 둘은 갈라졌다. 그후 바나바의 기록을 찾을수가 없다. 바나바가 여전히 주님을 위해 일했지만 그는 흐름밖으로 벗어나게 된것이다.
많은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일했지만 그들 모두가 이 하나의 흐름안에서 일한 것은 아니었다.
1.: 행 15:5. 그러나 바리새파에 속했다가 믿게 된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였다.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합니다.
교회가 밖으로 확장될때 사탄은 여러부류의 사람들을 통해 세가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이세가지어려움은 교회의확장을 제한하였다. 당시유대인들은 유대교적인 관점으로 교회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유대교적인 관점으로 교회를 바라보았다.그들은 유대교라는상자안에 교회를 집어넣으려했다
사탄을 인간종교와 소위 경건함을 사용하여 교회의 확장을 제한했다.
2.: 행15:39. 그래서 심한 다툼이 일어나 그들이 서로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갔다.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내부에 있는 주관적인 어려움 곧 두사람이 불이치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사실 그들 두사람의다툼은 사탄이 저지른 일이었다..두사람이 한마은 한뜻이될수없었기 때문에 교회의 확장은 매우 큰 손상을 받았다.
3.:셋째는 자아와 옛사람의 느낌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썼을때 그의 마음은 로마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하였고 성령은 그가 로마로 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바울안에는 그를 잡아당기는 유대인과의 천연적인 관계가 있었다. 사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돌아갈 필요가 없었고 목적또한 크지않았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기를 주장한것은 전적으로 그의 낡고 타고난관념과 관련된 것이었다.그당시 바울은 반드시 고린도에서 로마로 계속 전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바울안에 잇는 낡은요소들과 규례들이 그를 얽어 매어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다.
만약 바울이 당시 붙잡히지 않았다면 이방인 형제들은 제물을 드린 바울의 행위를 알고 난 뒤크게 혼돈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구약이고 무엇이 신약이며 무엇이 울법이고 무엇이 은혜인가에 대해 분명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었다.
행19:21-22.이런일들이 있은 후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그의영안에서 작정한 뒤 내가 거게에 갔다가 로마에도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는자기를 돕는 사람들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