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구약 2009-03-3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884.html

             기록장소와 시기

 

일반적인 성경해석가들은 흔히 이사야를 선지자 중에서 가장큰 선지자라고 칭한다. 그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가장 상세하고 광범위하게 썼기 때문이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유다 왕국의선지자 미가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역사가였던그는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에 이르는 네왕조에 걸쳐 가장 긴 기간 동안 선지자로서 사역했다.(1;1)유대인들 사이에서 믿을 만한 유전(tradition) 과 2세기의 몇몇 랍비들의 저서에 따르면 그는 므낫세의 재위기간에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햇다.

이사야서는 주전 760년경 부터 698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기록되었다.

 

              주    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신 오시는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구원.

 

              배    경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역했다.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허물과패괴함으로 가득하였다. 여호와는 그분의 백성을 징계하셔야 했다. 먼저 그분은 징계에 관하여 예언하셨다.

이어서 그분은 열국을 사용하여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러나 열국은 하나님의 의도를 수행하는데 있어서지나쳤다. 때문에 그분은 또 열국의 심판에 관하여 예언하셨다. 그런후에 하나님은 그분의 궁극적인 갈망 이스라엘의 징계와 열국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며 이스라에 나라를 회복함을 계시하셨다.

 

            중심  사상

 

그리스도 께서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 인성 안에서 성육신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 되었다가 타락된 온 우주를 회복하여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하시기 위함이다.신약처럼 이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 께서 그분의 경륜을 따라 정하신 모든 것들을 다룬다. 곧 성육신으로 시작하여 새하늘과 새땅으로 결론을 맺는것이다.

 

            개     략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의 다루심과 열국에 대한 공의의 심판은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오시게 한다. 그리스도는 구주 이시다.(43;3.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하나님이시며.(9;6.이는 한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니라.

 

사람으로 성육신하시고.(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신성과 인성을 모두가지셨으며(4;2.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 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땅의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

인생을 사시고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시고.(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입을 열지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부활하시고.(53;10하-11.) 승천하시고(52;1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다시오셔서(40;10.64;1.보라 주 여호와 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두 팔로 다스리실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앞에 있으며.원컨대 주는 하늘로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

 

그분은 만유의 회복을 가져옥것이며 이것은 영원안에서 새하늘과 새땅으로 종결될것이다.

(65;17. 보라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나니이전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 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므로 이사야의 내용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다루심과 열국에 대한 그분의 심판이라 는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그분의 신약 경륜 전체인 성육신에서 새하늘과 새 땅까지를 포함한다.

 

(이사야12;3.4.6: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그날에 너희가 또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이름이 높다 하라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찬송가:790장

 

 

 

 

 

 



순백의 목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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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성 령


정상적인그리스도인의생활 2009-03-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835.html

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모든 일의 동기이자 설명으로서 논의 하였다. 우리가 로마서에서 말한 그리스도인의 체험의 각종 단계들을 보기 전에 다시 한번 주제를 떠나서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대해 말해보자.

이것은 우리의 모든 체험에서 우리의 생명과 봉사를 효과 있게 하는데 결여 되어서는 안될 힘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 두 단락의 구절을 인용할 것이다.

한곳은 5장4절."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이다. 다른 곳은 8.9절"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이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되는대로 혹은 임의로 주지 않으신다. 비록 하나님께서 값없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확실한 기초위에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속한 모든 신령한 복 을 주신 것은 사실이다.

(엡1;3) 그러나 만일 우리가 체험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취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것들을 취하는 근거를 알아야만 한다.

성령의 은혜에 관해서는 두 방면에서 보는 것이 가장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이는 곧 성령의 옮겨부음과 성령의 내주 하심이다. 지금 우리의 목적은 어떤 기초에서 성령의 이중적인 은사가 우리 것이되는가를 보는데 있다.

나는 그분의 역사를 외적인 표현과 내적인 표현으로   나누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계속 전진할때 우리는 이런 구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이 두 가지를 비교할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훨씬 귀하다는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안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귀하다는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밖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에게 주신 모든 은사가 다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권리가 너무 풍성해서 그런지 우리는 쉽게 이것들을 경시한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우리처럼 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부어짐의 은헤를 우리보다 더욱 감상하였다.

그들 당시에 이 은혜는 택함받은 소수에게만 주어 졌었다. 주로 제사장과 사사와 왕들과  선지자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다 이런 은사를 얻을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취할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벗 모세와 사랑받은 다윗과 능력의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성령의 옮겨 부음을 입을수 있다니! 성령의 옮겨부음의 은혜를 얻음으로써 우리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의 대열에 깨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은혜에 대한 가치를보고 그것이 갈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볼때. 우리는 즉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성령의 옮겨부음을 얻을 수 있고 봉사할 능력을 갖기 위해 어떻게 내 자신을 영적인 은사로 장비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무었을 근거로 내게 성령을 주시는가". 라고.

 

                             부어진 성령

행 2장32-36:

"이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 이로다.(32)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주에게 말씀하시기를(34)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시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35)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

 

34절과 35절은 시편 110편을 인용한 삽입된 말씀이기 때문에 잠시 한쪽에 제쳐 놓고 먼저 33절과36절을 생각해 보자. 만일 우리가 먼저 인용한 두 구절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베드로가 한말에 대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33절에서 베드로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으로 높여 지신 것에 대해 말하는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분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으셨다.

이어서 무엇을 말하는가.오순절이 임하였다. 그분이 높여진 결과는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는니라".이다. 그러면 성령은 먼저 주 예수님에게 주사 그분으로 하여금 성령을 그분의 백성에게  부어주게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은 그분이 하늘로 높이 올려지심에 근거한다.

이구절 말씀은 주예수님이 높이 올려지셨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케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다. 성령의 옮겨부으심은 당신과 나의 공로와 무관하고 오직 주 예수님의공로와 관계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무엇인가에 있지 않고 그분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분이 영화롭게 되셨기 때문에 성령이 부어진 것이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기에 내가 죄 사함을 얻을수 있었고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으로 높이 올려지셨기에 내가 성령의 옮겨부으심을 얻었다.

모든것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한 것이다. 죄사함은 사람의 공로에 근거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 심에 근거한다. 거듭남은 사람의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높이 올려지심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당신과 내게 부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의 아들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제 36절을 보기로 하자. 이구절 안에 우리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런즉이다. 이단어는 어떻게 사용되는가. 이단어는 이구절의 문장의 시작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미 한말뒤에 놓여져 있다. 그러므로  이단어는 이미 언급된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항상 암시 한다.

 

이 그런즉 앞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과 관계있는가 이것들이 34.35절과는 무관하고 33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매우 현저한 사실이다.

베드로는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것에 대해 말했었다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또 그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고 말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너희보고 듣는 성령을 너희에게 부어주신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나사렛 사람 예수를 이미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데 있다.

성령이 이 땅 위에 부어진 것은 하늘에서 발생한 일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하나님우편으로 높여지셨다는 것을 중명한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요셉이라는 청년은 그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자였다.야곱은 어느날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로 인해 수년 동안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나 요셉은 무덤에 있지 않고 영광과 관세있는 위치에 있었다. 야곱은 그 아들의 죽음때문에 수년 동안 애통해 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요셉이 아직 살아 있고 애굽에서 고위에 있다는 것을 누가 그에게 알려 주엇다. 처음에 야곱은 그 말을 믿지 않앗다. 이좋은 소식이 그에게 는 사실 같지않앗다.다른 사람이 야곱에게 말해준. 요셉이 높여졌다는

말은 참이었다. 그는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 야곱이 나가서 요셉이 애굽으로부터 보내어준 수례를 보고서야 그 말을 믿었다.

 

여기에서 수레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물론 성령을 대표한다. 성령는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안으로 들어갔다는 증거로서 보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더우기 우리를 영광 안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거의 이천 년 전.행악자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순교로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더욱 지금영광안에와 아버지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우리는 그분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주이심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우리가 아무 의심의 여지 없이 이것을 아는것은 그분의 영이 이미 우리에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예수는 주이시다.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나사렛사람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 이시다.

 

주 예수님의높이 올려지심은 성령이 강림하신 것의 근거이다. 주님께서 이미 영광을 얻으셨는데 당신은 아직 성령을 얻지 못햇다면 이것은 가능한 일인가. 당신이 죄 사함을 얻은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당신의 기도가 간절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당신이 한두번 성경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인가.

당신이 자주 집회에  참석하기 때문인가. 당신의 공로 때문인가 아니다!. 천만 번 아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에 근거하여 죄사함을 받았는가.히브리서 9장 22절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사함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피 흘림이다. 보혈이 흘려 졌으므로 당신의 죄는 이미 사해진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부어주심과 죄 사함을  얻는 것은 원칙상 완전히 동일하다. 주님이 이미 못 박히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주님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졌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그분의 피를 흘리셨는데  당신의 죄가 아직 사함받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느데 당신이 아직 성령을 얻지 못할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에 동일하나 자신은 이런 체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내게 아무 것도 없다면 어떻게 자만자족하여 내가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럴수 없다. 우리는 결코  객관적인 사실로 만족할 수 없다.우리에게는 주관적인 체험도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사실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결코 체험을 가질수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실이 우리의 체험의 근거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칭의의 문제로 돌아가자. 당신은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었는가. 당신이 의롭게 된 것은 당신이 무엇을 행한 것에 있지 않고 주님이 이미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데 있다.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는 사실을 받아 들인 데 있다.

 

당신이 성령을 얻은 것은 의롭게 되는 것과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동일하다. 그것은 당신이 무었을 해서가 아니라 다만 주님께서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써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체험이 결여되었다면.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침례는 높이 올려지신 주님이 교회에게 주신 은사라는 영원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도록 그분께 구해야 한다.

일단 우리가 이점을 보았다면 우리는 자신의모든 노력을 멈추고 찬미로 간구를 대신할 갓이다. 우리가 죄 사함을 위하여 노력을 멈추고 찬미로 간구를 대신 할 것이다. 우리가 죄 사함을 위하여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세상 사람을 위하여 주님이 이루신 것들을 하나님 깨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셨기 때문이다.

같은 원칙에서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이루신 것을 보도록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다면 우리는 더이상 성령의 침례를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고 일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그리스도의 역사를  보면 믿음이 우리 마음 속에서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믿을 때 우리에게 체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얼마 전에는 복음을 매우 반대하다가 후에 구원을 얻은 한 청년이 있었다. 그가 구원받은 지 다섯 주도 안 되었을때 내게 일련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상해에 왔었다.

마지막 날 내가 말한 것은 성령의 옮겨부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는 간절히 기도하기를 주여.내가 참으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이미 영화롭게 되셨는데  왜 지금 곧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시지 않습니까. 라고 했다.

나는 그의 기도를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 주었다. 주여 완전히 내가 잘못했습니다. 주 예수여.나와 당신은 종일토록 동반자입니다. 아버지깨서는 이미 두가지 곧 당신의 영광 얻으심과 당신은 성령 부어주심을 이루섰습니다. 당신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으므로 만일 내가 아직 성령을 얻지 못했다면 이것은 상상할수 없는 일입니다. 오 주여 당신을 찬미합니다. 당신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고 나도 성령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성령의 능력이 그의 몸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감지하였다.

 

                   비결도 역시 믿음이다.

 

우리의 죄사함과 성령을 얻는 것도 모두 믿음에 달려있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신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성령이 우레에게 부어진 것을 알수 있다. 우리가 성령을 얻는 근거는 우리의 기도나 금식이나 기다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높이 들리우심이다.

하나님의 은사는 몇몇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기다림을 강조하고 기다리는 집회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게 된다.

하나님이 성령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의 어떠함에 근거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에 근거한다.  성령의 부어지심은 우리의 선량함과 위대함을 증명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선량함과 위대하심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구원 받고자 하는 뜻을 표명한 한 불신자가 있다 하자. 당신이 그에게 구원의 길을 설명하고 그와 기도 할때 그가 주 에수여. 당신이 나를 위해 이미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당신은 능히 내모든 죄를 씻어내실 수 있습니다. 진실로 당신이 나를 용서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다 하자.당신은 이런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믿을수 있는가.그렇지 않다.

언제 그가 이미 거듭난 것을 확실히 믿을 수있는가. 그가 . 주여당신이 장래 내죄를 용서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할때가 아니라 주여. 당신을 찬미합니다.당신이 이미 내죄를 사하셨고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내죄는 이미 깨끗이 싰어졋습니다 라고 말할 때이다.

사람의 기도가 간구에서 찬미로 바뀔 때 비로소 그가 구원받았습을 믿을수 있다.

이때 그는 더이상 하나님께 그를 용서하달라고  간구하지않고 어린양의 피가 이미 흘렸졌기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그를 사하셨다는 것을 찬미할것이다.

 

같은 원칙에서. 당신은 성령을 얻기 위해 수넌둥안 간구하고 기다렸지만 아직 성령의 능력을 얻지 못했을 수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께 성령을 부어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멈추고 도리어 믿는 마음으로 그분을 찬미하면서 주 예수님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이미 부어졋다고 말한 다면 당신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을 발견할것이다.

하나님을 찬미하자. 성령을 얻기 위해 애쓰거나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자녀는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장차 주가 되실분이 아니라 이미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고 지금 그분이 주이심을 기억하라.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장래 성령을 얻기 위해 애쓰거나 기다려야 할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장차 주가 되실 분이 아니라 이미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고 지금 그분이 주이심을 기억하라.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장래 성령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믿음의 문제이다. 또 믿음은 계시로부터 온다. 우리눈이 열려서 예수님이 이미 영광을 얻으신 고로 성령님이 이미 부어졌다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의 마은 속의 간구는 자연히 찬미로 바낄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신령한 복을 확실한 기초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의은혜는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우리가 그것을받아들일 때에는 우리 편에서 우리가 영접하기 위한 어떤 조건들이 이루어져야만한다.  성경 말씀에는 부어지신 성령을 받는 조건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 2장 38절 39절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은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구절은 네가지를 말한다. 즉 회개와 침례와 죄 사함과 성령이다.

앞의 두가지는 조건이고 나중 두가지는 은혜이다. 만일 우리가 죄 사함을 얻으려 한다면 어떤 조건을 수행해야 하는가. 성령의 말씀에 의하면 그 조건은 두가지 곧 회개와 침례이다.

첫번때 조건인 회개는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다. 전에는 범죄가 일종의 즐거운 일이었으나 이제 이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전에는 세상을 매력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좋은 것을 알게 되었다.전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불쌍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이다. 전에는 가장 즐겁게 여겼던 많은 일 들이 이제는 천하게 여겨지고 전에는 아무가치 없게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는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겨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서 회개이다. 만일 사람의 생각에 이런 변화가 있다면 그의 생명에는 참된 변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침례이다. 침례는 내적인 믿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만일 내가 마음 속으로 진정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으며 또 함께 부활한 것을 믿었다면 나는 침례를 주도록 요청할것이다.

이로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믿은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례는 믿음의행위이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사함의 조건은 두가지 즉 회개와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당신은 회개하였는가 당신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주와 연합하여 하나된 것을 간증하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죄 사함과 성령의 은사를 얻었는가. 당신은 첫번째 은혜만얻고 두번째 것을 얻지 못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친구여 만일 당신이 두가지 조건을 이행했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두가지 은혜를 주신다.

왜당신은 한가지만 원하는가. 두번째 것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마땅히 두가지 선물을 다 얻어야지 한가지만 얻을수 없다. 주님께 빨리 이렇게 말하라. 주여. 저는 당신이 죄 사함과 성령을 주시는 조건을 수행하였으나 내 어리석음 때문에 전자만 얻었을 뿐입니다. 이제 돌이켜서 당신에게 성령의 은사를 요청합니다. 이일로 인하여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7장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정상적인그리스도인의생활 2009-03-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k505/2834.html

우리가 말한바 있듯이 만일 우리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의 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계시와 믿음이 있어야한다.  이 외에 또한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갈망 안에 있는 목적이 무었인지 를 모른다면 우리는 왜 앞의 절차들이 필요한지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절차는 그 목적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걸음 나아가 내적 체험의 문제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 앞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목표를 보기로 하자.

 

                       한알의 밀

하나님의 독생자는 어떻게 그분의 맏아들이 되실수 있는가. 요한 복음 12장 24절은 그방법을 설명해준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 밀알은 누구인가. 주 예수님이시다. 온 우주 안에 하나님께는 두번째 밀알이 없고 오직 하나의 밀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땅에 두시어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게 했던 유일한 밀알은 처음 밀알이 되었고 그 밀알로 부터 많은 밀알이 산출되었다.

 

그분의 신성으로 말할때 주 예수님은 유일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그러나 부활로부터 영원까지 그분은 또한 맏아들이시다.

이는 그때로 부터 그분의 생명이 많은 형제들 안에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성령으로 난 우리들이 "신성한본성 에 참여하는 자"(벧후1;4)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아들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짓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롬 8;15.16). 주예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것을 가능하게 하셨다. 아들이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로 하여금  많은 아들들을 얻으시게 하였기 때문에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은  만족 되셨다.

 

요한복음 1장과20장은 이방면에서 가장 귀중한 장들이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우리에게 예수가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복음서의 끝부분은 주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다.

"너는 내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 20;17).

본래 주님은 자주 아버지 혹은 내아버지라고 하셨다.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앞에 한마디를 추가하여 또한 너희 아바지 라고 하셨다.

이것은 맏아들 곧 먼저 나신자가 하신 말씀이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많은 형제들이 하나님의집으로 이끌려 졌다. 그러므로 같은 구절에서 그분은 그들을 내형제들 이라고 부르셨다.

이것이 히브리서 2장 11절에서 말한바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아니하시고) 이다.

                      아담이 당면한 선택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많은 나무를 심으셨는데 동산가운데 -특별히 드러난 장소-에 그분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피조되었을 때 아담은 순진하여 선도 모르고 악도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 생각해 보라.

가령 삼십세 된 한 성인이 옳고 그름을 모르고 선악을 분별할 능력도 없다 하자. 당신은 이런 사람이 미 성숙되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아담도 처음에 이러했다. 하나님이 그를 동산 가운데로 이끄셨을 때 사실상 그분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나 너는 이 나무 근처에 생명나무라는 다른 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두나무는 어떤 의의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피조된 아담이 도덕성에 있어서 중성적-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것도 아닌 무죄 상태-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나님은 그 두 그루의 나무를 동산에 두사 그로 자유로이 택하게 하셨다. 그는 생명나무를 택할 수도 있었고 선악을 악게 하는 나무도 선택 할수 있었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먹는 것을 금지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자체에는 틀린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그나무가 없다면 아담은 자신을 위하여 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그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있었으므로 아담이 어떤 문제에 당면할 때 그의 유일한 벙법은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것이 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안에  있는 생명은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명임을 본다. 그러므로 이 두 그루의 나무는 두가지 큰 원칙을 상징하고 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 자신인데 이는 하나님이 곧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최고의 생명 형태이시고 생명의 근원과 목적이시다.

과실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당신이 나무는 먹을 수 없지만 과실은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인 면에서 말하자면 그분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 주예수를 영접할수 있다 과실은 나무에서 먹을수 있고 영접할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내가 겸손히 말하지만. 주 예수님은 우리가 영접할수 있는 형태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영접할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과 연합되었더라면.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생영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반대로 만일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떠나서 천연적인 성향에 따라 자기의 인성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가 이방면에서 고봉에 이를 때 그는 자족한 사람이 되고 그의 안에 단독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의 앞에 놓인 하나의 선택이었다. 만일 그가 성령의 길을 택하고 순종의 길을택했다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 반대로 만일 그가 천연적인 길을 택했다면. 그는 자기를 발전시키며 단독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 밖에서 행동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그의 선택의 결과이다.

 

 

                  아담의 선택이 바로 십자가가 필요환 이유이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택했으므로 그는 독립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을 충분히 발전시키는 사람(곧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바라는 것과  같다.) 이 되었다.  그는 어떤 지혜를 구사할줄 알고 모든것을 스스로 결정할수 있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행동하거나 멈출 수 있었다.

그때로 부터 그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창 3;6) 그러나 그의 결말은 사망이지 생명이 아니었다.

그의 선택은 사탄과의 동역과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나무를 가까이 하는 것을 금지당했다.

두 종류의 생명이 아담 앞에 놓여져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룩한 생명이고 다른하나는 독립하고 자족하는 사람에 속한 생명이다. 아담이 후자를 택한 것이 죄였다.

왜냐하면 그의 이런 선택은 사탄과 연합하여 하나님의영원한 뜻에 대항하여 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인성을  개발하는 길을 택했지만 비록 그가 아주선한 사람이 되고 심지어 그의 표준에 따라 완전한 사람이 될지라도 결과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선택의결과는 바로 사망이다. 이것은 그에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거룩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도리어 기꺼이 원수의 하수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어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매여 모두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을 거치실 필요성을 볼수 있다. 또한 우리는 참된 헌신

"죄에 대하여 자기를 죽은 자로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는 자기를 산 자로 여기며.

죽은자 가운데서부활한 자같이 자기를 그분께 드려아함 의 필여성을 볼수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천연적인 것에서 나온 자아 생명은 죄의법 아래 복종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반드시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에 넘기워야만 한다.  아담이 하나님의 생명을 거절하고 자아의 생명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안의 모든 것을 한 데 묶어서 제거하지 않으실 수 없었다.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 안에 두셨다.   그리고 나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기 때문에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은 이미 다 제거 되었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는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셨다. 여전히 그분은 몸을 가지고 계시지만.

더이상 육신 안에 있지않고 영 안에 계셨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었나니" 지금 주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영적인 몸. 영광스럼 몸을

같고 계신다.  그분이 더이상 육신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지금 그분은 사람들에게 영접될수 있으시다. 주 예수님은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7).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이런 사상을 악하다고 생각하여 당시에 그분을 영접하지 못햇다. 이는 그분이 아직 육신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영접하는자 곧 그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권세를 주셨나니 이는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대로 나지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난자들이니라."

 하나님은 밖에서 우리의 생명을 개선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상은 우리의 생명을 개선하는 단계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 잘못된 생명을 영광 안으로 이끄실 수가 없다.

그분은 하나님으로 거듭난 사람 곧 새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거듭남과 의롭다 함은 병행된다.

 

 



아담이 당면한 선택


간추린말씀 2009-03-2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505/2808.html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많은 나무를 심으셨는데 동산가운데 특별히 드러난 장소 에 그분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피조되었을때 아담은 순진하여 선도 모르고  악도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생각해 보라. 가령 심십세 된 한 성인이 옳고 그름을  모르고  선악을 분별할 주능력도 없다 하자. 당신은 이런 사람이 미성숙되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아담도 처음에 이러했다.

하나님이 그를 동산 가운데로 이끄셨을때 사실상 그분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나 너는 이 나무 근처에 생명나무라는 다른 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두나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피조된 아담이 도석성에 있어서 중성적 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것도 아닌 무죄 상태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나님은 그 두 그루의 나무를 동산 에 두사 그로 자유로이 선택하게 하셧다. 그는 생명나무를 택할수도 있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선택할수도 있었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먹는 것을 금지하셨지만.선악를 알게 하는 나무 자체에는 틀린것이 없음을 알아야한다. 이는 그 나무가 없다면 아담은 자신을 위하여 도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그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있었으므로 아담이 어떤 문제에 당면할때 그의 유일한 방법은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 안에 있는 생명는 완전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명임을 본다.

그러므로 이 두 그루의 나무는 두가지 큰 원칙을 상징하고 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 자신인데 이는 하나님이 곧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최고의 생명 형태이시고 생명의 근원과 목적이시다. 과실은 무엇있가. 이는 바로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당신이 나무는 먹을 수 없지만 과실은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인 면에서  말하자면 그분을 영접할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

주예수를 영접할수 있다. 과실은 나무에서 먹을 수 있고 영접할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내가 겸손히 말하지만 . 주 예수님은 우리가 영접할수 있는 형태 안에 계신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기 때분에 우리가 그분을 영접할 수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이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과 연합되었더라면.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되엇을 것이고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반대로 만일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는다면,그는 하나님을 떠나서 천연적인 성향에 따라 자기의 인성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가 이방면에서 고봉에 이를 때 그는 자족한 사람이 되고 그의 안에 단독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의 앞에 놓인 하나의 선택이었다. 만일 그가 성령의 길을택하고 순종의 길을 택했다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 반대로 만일 그가 천연적인 길을 택했다면.그는 자기를 발전시키며 단독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밖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그의 선택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