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가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분은 우리에게. 우리와 세상과 옛창조 그리고 옛 왕국에 대한 심판을 알려주섰다. 십자가는 단지 그리스도 개인에게 속한 개인적인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는 만유를 포함한 십자가요 당신과 나를 포함한 공동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 각 사람을 그의 아들 안에 두셨고 그의 안에서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마지막 아담 안에서 그분은 이미 첫 아담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완전히 일소하셨다. 나는 옛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에 대해 어떻게 응해야 하는가. 침례를 요청하는 것이 나의 응답이다. 왜 그런가 . 로마서 6장 4절에서 바울은 침례는 곧 장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침례자체는 죽음이나 부활이 아니다. 그러나 침례가 장사이기 때문에 침례는 죽음과 부활과 서로 연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장사될자격이 있는가. 당연히 죽은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침례받기를 요청한다는것은 내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나는 오직 무덤에 들어가기에만 합당하다고 선포하는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은 장사를 죽음의 방법으로 취한다. 그들은 장사를 통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내가 강하게 말하거니와. 우리눈이 열려서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또한 그분과 함께 장사 된 것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는 침례받을 권리가 없다.우리가 물 속에 내려가야하는이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이미죽었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을 간증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질문은 간단하고도 명백하다. 그분은 그리스도가 이미 죽었고 또내가 너를 그의 안에 포함시켰다. 이 사실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말하느냐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 나는. " 주여 당신이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당신이 나를 당신의 죽음과 장사에 넣으신 것에 대해 나는 예 라고 말할 뿐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분이 이미 나를 죽음과 무덤에 넣으셨기 때문에 내가 침례를 청하는 것은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활로 인해 새 생명 안으로 들어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 이제 부활의 다른 상징이 있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것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부활에 들어간 것은 침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주님을 찬미하자.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은 내 안에 들어오시어 새 생명을 나에게 나누어 주셨다. 주님의 죽음에서 우리가 강조하는것은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이다.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부활 생명을 나에게 준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어떻게 이 새 생명을 얻는가 . 바울은 그와 연합하여 라는 용어로 이에 대한 좋은 설명을 우리에게 주었다. 헬라어에서 연합이라는 단어에는 접붙임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것은 부활로 말이암아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을 설명하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제공한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것을 다 이루셨다.이 세상에 천만인의 생명 안에 접붙여진 열매 맺는 유일한 생명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새 생명 이라고 부른다. 새 생명이란 전에 사람에게 없었던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천연적인 생명이 완전히 변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생명 곧 전혀 새로운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 아들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옛 창조를 제하셨는데 그 목적은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의 새창조를 가져오기 위해서이다. 그분은 이미 흑암의 권세로 향하는 낡은 문을 닫아버리고 그의 사랑의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다. 나의 영광는 바로 이미 완성된 일 안에 있는데. 그것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나의 침례는 이 사실에 대한 공개적 간증이다. 이것은 입을 열어서 하는 간증이 나의 구원을 위함인 것과 마찬가지이다."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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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갈망 안에서 체계적인 체계인 그분이 창조한 우주 곧 그 아들 그리스도를 머리(골 1;16-17) 삼은 우주를 갖고 계신다. 그러나 이세상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갈망 안에서 체계적인 체계인 그분이 창조한 우주 곧 그 아들 그리스도를 머리(골 1;16-17) 삼은 우주를 갖고 계신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의 육체를 사용하여 대적하는 체계를 세웠는데. 성경은 이것을 "이세상"이라고 부른다. 이체계아래 우리가 포함되어 있고 사탄 자신이 그세상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사실상 사탄은 "이 세상 임금"(요 12;31)이 되었다. 두 창조 이 때문에 첫 창조는 사탄의 손에 의해 이미 옛 창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관심은 더이상 첫 창조가 아닌 두번째 창조에 있게 되었다. 그분은 하나의 새 창조 새왕국 새 세계를 가져오셨다. 이 새 창조 안으로는 옛 창조와 옛 왕국와 옛 세계 안의 어떤 것도 가져올수 없다. 이제 문제는 이 대립되고 대적하는 두 왕국 중 우리가 어디에 속하느냐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물론 우리가 어느 왕국에 속하느냐에 대해 모호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골1;12-13)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의 새 왕국 안으로 이끌기 위하여 그분은 우리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셔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새창조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새 왕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게 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요 3;6). 혈과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고전 15;50). 당신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얼마나 교양이 있든지 또는 얼마나 개선하든지간에 육체는 여전히 육체이다. 우리가 새 왕국에 적합한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느 창조에 속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옛창조에 속하는가.아니면 새 창조에 속하는가. 우리는 육체로 난 자들인가. 아니면 영으로 난 자들인가. 우리가 새왕국에 적합한가는 결국 우리의 근원 문제에 달려 있다. 문제는 선한고 악한가에 있지 않고 육체냐 영이냐에 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육신은 결단코 다른 것을 낳을 수 없다. 옛 창조 안에 있는 어떤것도 결코 새 창조 안으로 가져올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일임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결코 옛창조의 어떤 것으로도 새 창조에 공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를 얻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낡은 원래의 우리들을 그분의 계획 안으로 이끄실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그분은 십자가로 우리를 제하시고 그런다음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기능을 지니고 새로운 왕국. 새 세계로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전것을 해결하시는 방법이다. 그분은 우리 옛사람을 완전히 한쪽으로 제쳐 놓으신다. 또한 하나님은 부활로 말미암아 그 새 세계 안에서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에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우주 가운데 가장 큰 부정은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분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일소 하셨다. 그반면에 우주 가운데서 가장 큰 긍정은 바로 부활이다.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신 모든 것을 새로운 영역 안으로 이끄셨다. 그러므로 부활은 새창조의 벽두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이 첫왕국에 속한 모든 것들을 끝내는 십자가와 두번째 왕국에 속한 모든 것을 가져오는 부활을 보는 것은 복된 일이다. 부활 이전에 시작된 모든 일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이는 부활이 하나님의 새로운 기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에 두 세계가 있다. 하나는 낡은 것이고 하나는 새로운것이다. 낡은 세상 안에서 사탄은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옛창조 안에서 당신이 선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당신이 옛창조에 속해 있을때 당신은 사망의 정죄 아래 있는 것이다. 이는 옛 창조에 속한 것들 중 새 창조 안으로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들이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이 선포이다. 첫 사람 아담에 게 속한 것 중 십자가 이편으로 가져올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고 모두 저편에서 끝나야 한다. 우리가 이사실을 빨리 볼수록 좋다. 이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옛창조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놓으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을 그의 아들에게 돌리셧다. 그런다음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로므로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은 이미 그분 안에서 제거되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향하여 이렇게 선포하신 듯하다. "나는 이미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한쪽에 제쳐놓았다, 옛창조에 속한 너희들도 그 안에 포함하여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우리중 이런 판결에서 벗어날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점은 우리를 침례의 문제로 이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받은 줄을 알지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롬 6;3-4) 이말씀에는 무슨 중요한 의의가 있는가.
성경에서 침례는 구원과 관계 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비록 우리가 성경에 근거하여 침례의 중생를 말할 수는 없지만 침례의 구원을 말할수 있다. 구원받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구원은 죄나 죄의 권세와 무관하며 이 세상 체계와 관계된다 우리는 사탄에 속한 세상 체계 안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는 것은 사탄의 세계로 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하여 버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베드로는 여덟 사람이 "물로 말미암아 구원 얻었다"(벧전3;20).라고 말한다. 이 예표는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설명해준다. 노아와 그의 일가는 믿음으로 방주에 들어가 패괴한 옛 세상으로 부터 나와 새로운 세계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그들이 이로 안하여 익사를 면한 것에 중점이 있지 않고
무릇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된 것들을 우리는 마귀의 거짓말로 여겨야 한다. 그일 들 자체는 우리의 느낌에 상당히 실재일수 있다. 노련한 거짓말쟁이는 말로만 아니라 또한 태도와 행동으로도 속인다. 그는 위조지폐를 내놓고 사용하듯이 거짓말을 한다. 마귀는 노련한 것짓말쟁이이기 때문에 결코 그자가 말로만 거짓말한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는 어떤 표시나 느낌 .혹은 체험을 사용하여 하나님의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요동시키려고 한다.내말을 정확히 기억하기 바란다. 나는 육체의실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는 육체에 대해 더 많이 말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한 것은 사탄의 거짓말이 .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떠나게 할수 있다는 것이다.일단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탄은 최선을 다하여 매일 우리 체험을 증거로 하여 우리가 근본적으로 죽지 않았고 도리어 매우 활동적임을 믿게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사탄의 거짓을 믿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밖으로 나타난 상태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아니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그러므로 내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어떻게 이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수 있는가.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으셨고 하나님의말씀이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죽은 것이라. (고후 5:14)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체험이 이 사실을 확증하든 안 하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사실위에 서 있을 때 사탄은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된다. 마귀는 항상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것을 공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의말씀을 의심하게 될때, 그의 목적은 달성되고 우리를 그의능력 아래 둘수 있게 된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실에 대해 의심치 않고 확신 한다면. 하나님이 그분의역사 혹은 그분의 말씀에 대해 불의하실 수 없다는 것을 확산한다면, 사탄이 어떤 궤계를 사용하든 우리는 여전히 마귀를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롬 6:6절과6:11절을 연결시켜서 읽어보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옛사람이 예수와함깨 십자가에 못박힌것은 (너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나 이 일을 말할때 우리가 여기는것을 지나치게 주의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많은사람들은 아직 알기도 전에 여기려고 한다. 그들은 이사실에 대해 성령이 계시한 바를 얻기도 전에 여기려고 하기 때무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쉽게 당하게 된다. 내가 주님을 믿은 후 수년 동안 나는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나는 1920년 부터 1927년까 지 여겨왔다. 죄에 대하여 자신을 죽은자로 여길수록 나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신이 죽었다고 믿지 못했고 죽어지지도 않았다.이런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할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로마서 6장 11절을 읽으라고 했다. 그러나 로마서6장11절을 읽고서 여기면 여길수록 내가 죽었다는 사실은 내게서 더욱 멀어 졌고 이런 여김은 나로 죽음을 얻게 하지못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번의 여김이 왜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는지를 의아히게 생각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수개월 동안 번민했던 것을 시인 한다. 나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다. 주님 이일에 대해 철저한 인식을 갖게 하소서. 수개월동안 때로는 금식까지 해보았지만 아무런 결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나는 그아침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못한다. 위층의 책상 앞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주여 내눈을 열러주소서 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바로 그순간에 나는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된것을 보았고 내가 그의 안에 있으며 그분이 죽을 때 나도 죽었고 나의죽음이 장래일이 아닌 현재의 일이며 그분이 죽으실때 내가 그분안에 있었기 때문에 나의 죽음이 그분의 죽으심과 같이 참되다는 것을 보았다. 여김의 비결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계시이다. 우리에게 는 하나님 자신으로 부터 온 계시가 필요하다. (막 16:17. 엡 1:17.18)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사실은 알뿐 아니라, 더욱 눈이 열려 이것을 볼수 있어야한다. 이런 계시는 결코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을 본 날이 언제인지 기억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보는 데 있어서도 확실한 날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계속 전진하는 것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모호해서는 안된다. 내가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긴다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나는 내가 죽은 자라는 것 곧 하나님이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끝내셨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내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