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따로 물 따로 식사법의 기본 요령
1. 물은 식후 2시간이 지난 후부터 다음 식사 2시간 전까지는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밥 따로 국 따로만 제대로 지켜도 위장병 80%를 고칠 수 있다. 위장 질환 및 암에서 벗어나려면 밥과 물을 따로 먹어야 한다. 또한 일체의 간식을 금한다. 찬물은 좋지 않다. 미지근한 물을 마셔야 한다.
2. 식사 때 국을 마시면 음식물을 오래 씹을 수가 없다. 밥과 국이 위에 들어가면 위액을 묽게 만들어 소화력이 떨어진다. 밥 따로 물 따로 하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 체중도 줄어들고 식후에도 졸리지 않는다. 소식을 해도 오래 씹으면 위에 포만감을 주고 위에 무리가 없다. 밤 10시 이후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찬 음식 찬밥을 먹지 않는다.
3. 식후 2시간 후에도 물이 먹고 싶지 않을 때는 의무적으로 마실 필요는 없다. 식후 2시간 후에 물을 마셨는데 기운이 갈아 앉으면 1시간 후에 마셔도 좋다. 식후 2시간 후에 물을 마셨는데 변비가 생기는 경우는 1시간 후에 물을 마신다. 식후 2시간 후에 물을 마시도록 조절할 때는 밤낮으로 잠이 오는 수가 있다. 이럴 때는 잠을 실컷 자도록 한다. 음양 식사법으로 잠이 오는 것은 그동안 피로해 있던 신경세포가 안정되어간다는 증거이다.
4. 된 음식을 먹고 수분을 섭취하지 않을 경우 직접적인 효과는 침샘의 작용과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살균력을 강화함으로써 음식의 각종 세균들이 깨끗이 박멸되며 감기바이러스나 기타 나쁜 균이 몸 안에 침입했다 해도 그대로 물리쳐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가축 중에도 염소나 토끼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들은 별다른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들이다.
5. 음식은 열(熱:陽) 에너지이고, 물은 음(蔭)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먹고 2시간을 참게 되면 몸에서는 물을 그리워하는 강력한 힘이 생긴다. 즉 양(陽)의 기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때 물을 마시면 물은 체내에 들어가자마자 위장에 정체할 시간도 없이, 필요로 하는 장기에 적절히 흡수되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면서 노폐물을 걸러내게 된다.
6. 식후 2시간 뒤 물 마시는 시간에는 음료수나 커피, 기타 물 종류는 마음 놓고 마셔도 된다. 다만 암환자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당분 음료를 삼가야 한다. 2시간 후에 물을 마시게 되면 처음에는 많이 마시게 되지만 1개월쯤 지나면 하루 종일 가도 물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2,3일에 한 번씩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이 때 물을 너무 적게 마시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음식에 들어있는 수분만으로도 충분히 되기 때문이다.
7. 된 음식만 먹고 식사 중에 물이나 국 또는 물 종류의 반찬을 먹지 않으면, 위장은 튼튼해지고 식후의 포만 상태에서 오는 식곤증이 사라진다. 따라서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상쾌해져 최고의 쾌적 지수를 유지하며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다.
8. 저녁 6시 이후 밤 시간은 우리 인체가 음체질이 되어 물 기운이 일어나는 시간이므로 인체의 체질과 물음식이 상생하며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부득이한 경우, 물 종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해도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된밥만 먹는 것이 더 좋다. 음식을 충분히 씹어서 삼키게 되면 입안의 침과 위에서 분비된 소화액에 의해 체내의 열 기운과 함께 섭취된 모든 음식이 완전히 소화 흡수된다. 과일은 식후나 식사 중에 어느 정도 먹을 수 있지만 특히 수박은 절대 금한다.
9. 아침 공복에 물 마시는 것을 금한다. 더 나아가 아침에 샤워나 목욕을 하는 것, 수영하는 것, 아침에 매일 머리 감는 것 등을 모두 금한다. 꼭 해야 한다면 저녁 식사 후 물 마시는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 식사할 때는 반찬보다 따뜻한 밥을 먼저 먹고 찬 음식을 절대로 금한다. 찬밥도 먹지 말아야 한다.
10. 음식물을 먹으면 위산이 분비되어 위에 들어온 음식물을 녹여서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즉 산(열)을 이용하여 소화하는 것이다. 이때 한참 불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부으면, 피시식~~~ 소화가 중지되고 불이 꺼지게 된다. 또한 물과 음식물이 섞여 있으면 위는 모든 것을 음식물로 인지하고 그 양에 맞는 위산을 분비하게 된다. 물 때문에 위산이 나온다면, 위산을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가 되고, 또한 위산과다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물을 마실 때는 물만 마셔야 한다. (“밥 따로 물 따로 음양식사법” 중에서 저자 이상문)
------------------------------------------------------------- 밥 따로 물 따로 건강 법칙
인체에 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1. 그래서 물은 많이 드시는 게 좋습니다. 2. 그러나 물은 안 드시는 게 좋습니다. 상기 1,2번은 둘 다 맞습니다. 물은 인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최소한 하루에 1.5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마시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식사 때입니다. 물도 우리 몸에 중요하지만 또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음식물을 먹으면 위산이 분비되어 위에 들어온 음식물을 녹여서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듭니다. 즉 산(열)을 이용하여 소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한참 불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부으면, 피시식~~~ 소화가 중지되고 불이 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음식을 섭취하기 2시간 전후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물을 마실 때 음식물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 물과 음식물이 섞여 있으면 위는 모든 것을 음식물로 인지하고 그 양에 맞는 위산을 분비하게 됩니다. 물을 먹었는데도 위산이 나온다면, 위산을 만드는데 에너지 낭비가 되고, 또한 위산과다 등으로 인한 2차 피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물을 마실 때는 물만 마셔야 합니다.
[밥 따로 물 따로 요약] 1. 물은 식사 2시간 전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 2. 물은 절대로 음식물과 같이 마시지 않는다. 3. 밥 따로 국 따로만 제대로 지켜도 위장병 80%를 고칠 수 있다. 4. 위장 질환 및 암에서 벗어나려면 밥과 물을 따로 먹어야 한다. 5. 식사 때 국을 마시면 음식물을 오래 씹을 수가 없다. 6. 밥과 국이 위에 들어가면 위액을 묽게 만들어 소화력이 떨어진다. 7. 밥 따로 물 따로 실천하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 8. 체중도 줄어들고 식후에도 졸리지 않는다. 9. 소식을 해도 오래 씹으면 위에 포만감을 주고 위에 무리가 없다. 10. 밤 10시 이후에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11. 간식을 먹지 않는다. 12. 찬 음식 찬밥을 먹지 않는다. 13. 샤워는 아침보다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 (“밥 따로 물 따로 음양식사법” 저자 이상문 선생) ----------------------------------------------------- [ “밥 따로 물 따로”에 의해서 질병이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물의 섭취나 특별한 운동을 통하여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지만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생명은 세포의 조직으로 이루어지는데 세포는 영양물질과 공기를 먹고 활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에너지는 먹고 마시는 음식물을 통해서 섭취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영양가 많은 음식물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제아무리 영양가가 많은 음식물을 섭취했을지라도 그것이 완전연소(소화)가 되지 않으면 음식물은 장내에 남게 되고 가스를 발생하여 많은 세포를 질식사하게 합니다. 음식물을 완전연소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밥과 물을 한데 섞어 먹고 마시는 식사습관 때문입니다. 밥과 반찬은 고체로서 비유하자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장작과 같습니다. 장작은 마른 장작이라야 화력이 강한 것처럼, 음식도 밥과 물을 따로 먹고 마시므로 마른 장작과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장작에 물을 적시면 잘 타지 않는 것처럼 음식물도 물과 같이 섞어 먹고 마시면 위산이 희석되어 위산의 강력한 화력(火力)이 약화되어 불기운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체에서 음양의 균형과 조화가 깨지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하면 저절로 인체의 균형을 이루게 되고 호흡도 단전까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세포 구석구석까지 신선한 공기가 유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만 하면 누구든지 세포가 활성화되므로 질병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밥 따로 물 따로는 특정한 질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체가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세포 속에 들어있는 본래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식이요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세포에는 본래 한 인간에게 신이 부여한 모든 선물이 온전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의 뜻대로, 즉 자연의 법대로 공식에 맞춰 생활하기만 한다면 세포에 스며 있는 신의 뜻과 능력이 때에 따라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밥 따로 물 따로”를 실천하면 우선, 세포가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므로 얼굴이 윤택해 지고, 변이 잘 나오고, 밥맛이 좋아지며, 몸이 가뿐해지며 피로증상이 없어지며 피부가 아주 고와집니다. 그것은 몸속에 있던 노폐물이 완전히 연소되어 사라지고 세포가 생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이든지 근원적인 치유가 됩니다. 육체가 건강해지면 정신도 저절로 건강해 지는 법이어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늙고 병들어 추해진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삶의 희열과 가치를 느낍니다. (이상문 저 '밥따로 물 따로 음양 식사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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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 질문은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율법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눅10: 36)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서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주님이 보실 때는 그가
바로 강도 만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의 정치 상황은 로마의 통치 하에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으로 인해 자기들 외의 이방인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혼혈족인 사마리아인들을 몹시 무시하고 싫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이웃이란 개념을 자기 백성들,
더 좁게는 자기 계층의 사람들만을 한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 레위인들은
단지 율법을 빙자해서 그들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게토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토는 유대인들만 사는 집단 거주지입니다.
그들은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율법에 의해 정죄 받고 상처 입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치료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사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
그 자신이 율법에 의해 정죄 받아 거반 죽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결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웃이라는 개념을 어떤 특정 계층만이 아닌
온 땅의 사람에게 주신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그들이 멸시하고 있던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묵상하면서 저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 거반 죽게 되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을 때
어느 날 주 예수님이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 분은 저의 상처 위에 기름(성령)과 포도주(영원한 생명)를
부으셨습니다. 즉 생명주는 영을 부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분을 인격적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저를 주막(교회)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교회생활을 통하여 저의 모든 상처를 치료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뭔가 답답함이 좀 생겼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과 성도들의 상태를 볼 때
우리들끼리만 좋다고 울타리를 치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인 생각이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 대해 하나의 게토화가 되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 성도들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서 처음에는 세상과 종교로부터 나와야 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한 다음에는 온전케 되어서
다시금 세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죽게 된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상황을 바라볼 때 복음의 영이 없거나 약합니다.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레위인이나 제사장처럼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냉냉한 종교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들만을 위해서 울타리를 쳐놓고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안주하고 만다면
유대인들의 게토화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저 자신부터 회개하고 분발해서
상처받은 이웃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 주고 싶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싶습니다.
99마리 양을 남겨 두고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내 자신이 주님을 태운 나귀가 되어
강도만난 사람들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노아의 때 롯의 때 인자의 때
누가복음 17장26절-30절에서 주님은 두 가지 구약의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창6장)와, 롯의 때(창 19장)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이 두 사건을 인용하셨을까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눅17:27-28)” 하신 것을 보면
인자의 때를 강조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자의 때를 강조하기 위해서
주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갔을 때 홍수가 왔고,
롯이 소돔 땅에서 나갔을 때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졌듯이
인자의 때도 교회가 건축될 때
즉 신부로 단장될 때 주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주님의 심판에 대해서 별로 주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자의 때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고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사람의 생존을 위해
합법적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정욕으로 인해
사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몸의 교통-영적 건강의 비결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우리 몸의 혈액순환과 비슷하다.
혈액순환은 우리 몸의 교통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또한 일종의 순환이다.
우리의 물질적인 몸 안에 순환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교통은 그 영의 순환이다.
오늘날 그 영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피이다.
우리 몸에 피가 없다면 우리 몸은 메말라 죽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에 그 영이 없다면 몸은 시체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단순히 말해서
그 영의 순환(다만 성령이나 하나님의 영이 아닌)이요 흐름이다.
신약에서 그 영은 완결된 영으로서 이제는 분배하고 계시는 영을 지칭한다.
이 영안에 신성과 인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이 모든 요소들이
이 한 영안에 복합되어 있다.
이 한 영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순환할 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모두 순환한다.
얼마나 놀라운가! 혈액순환은 자양분을 우리 몸의 각 부분에
전달해 주고 또한 우리 몸을 양육한다.
혈액순환이 정상적이지 않으면 우리 몸에 많은 병이 발생할 수 있다.
정상적인 혈액순환은 모든 종류의 세균을 삼켜버린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 있는 문제는 혈액순환과 같은 교통의 부족에서 온다.
이러한 교통의 부족은 원수가 들어올 기회를 준다.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더 많은 피를 받아들이고,
더 많은 피를 내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순환인
교통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고
몸의 치료를 촉진시킬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몸이 약한 것은 너무 많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너무 자신 안에 갇혀 있고 섞이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지체들과 더 섞이고 교통해야 한다.
다른 교회들과 섞이고 교통해야 한다.
그럴 때 몸 안의 모든 노폐물들이 사라질 것이다.
(위트니스 리 “주의 회복에 관한 간략한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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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흥 한 후에 나는 근린공원에 가서 30분간 운동을 한다.
그러한 운동은 몸의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18가지 정도의 운동을
고루고루 하고 나면 온 몸이 날아갈 것 같다.
몸 안에서 혈액순환은 약 21초마다 한 번 순환한다.
그래서 운동을 할 때 하나의 동작을 21초 정도
멈추면서 정지 동작을 취하였다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
나는 이것을 5년 째 계속하고 있다.
이런 운동은 태권도 고수인 형제님이 가르쳐 준 것이다.
광희 형제 내 마음속에 계속 자네에게 편지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네. 그러나 나는 나의 생각이 성숙하지 않은 것일까 두려워 계속 지체해 왔었네. 내 생각에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네. 나는 자네가 이 편지를 하나님 앞에 놓고 기도하기 바라네. 인도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모든 것을 주어야 하네.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인도할 자격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는 훈련을 하고 자기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주는 사람에게 주님은 축복을 하신다네. 사역하는 사람의 속에 있는 역량이 밖으로 나오는 사역이 되야 하네. 만일 억지로 과장할 때는 흘러나오는 것이 적게 되며 이러한 상태는 다 주님 앞에 바른 것이 아닐세. 속이 풍성할 때는 억지로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지 다 흘러나오게 된다네. 오직 자네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어야 하며,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되네. 사역에 있어서 듣는 것을 배우게. 사도행전 15장의 가르침은 곧 듣는 것일세. 다른 형제의 뜻을 듣고 그 안에 있는 성령의 음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네. 마음으로 두려워해야 하네. 형제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성령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세. 모든 사역자들과 장로들은 형제 자매의 말을 잘 들어야 하네. 반드시 형제 자매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게. 부드럽게, 부서져서, 들어야 하네. 많은 사람의 문제가 부서지지 않은 데 있네. 부서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무엇이 부서지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지. 부서지고 나면 어떤 일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짓지 않고, 어떤 말씀에 대해서도 함부로 단정짓지 않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자기가 잘 안다고 하지 않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네. 함부로 권위를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권위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네. 또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모든 일에 신중하다네. 부서진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지 않고 더 이상 자기 분석을 하지 않는다네. 집회 가운데에서나 교회생활 가운데에서 너무 긴장하지 말게. 교회 일에서 "자기 혼자" 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네. 많은 일을 형제 재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이 결정하도록 하게. 자네는 다만 일하기 전에 그들에게 분명한 원칙을 알려주고, 일한 후에 그들이 어떻게 일했는가를 살펴보게. "자기 혼자" 한 일은 대부분이 착오를 낳는다네. 형제에게 맡겨주고 나눠주는 것을 배우게. 하나님의 영은 교회 가운데에서 억지로 하시지 않는다네. 자네가 그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그는기름부음의 공급을 해주시지 않으므로 교회는 피로와 권태를 느끼게 돼. 자네의 영이 강할 때는 10분 내에 그것을 뚫고 청중을 제압할 수 있지만, 영이 약하면 "큰소리"로 "위협하는 말"을 하고 "많은 시간 동안" 얘기해도 그것으로 형제 자매를 도울 수 없고 오히려 해를 입히게 된다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말씀을 전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신도들의 영이 피로함을 느끼게 돼. 말씀이 많으면 마음이 무거워지므로 기도 집회는 실패하게 된다네. 1948년, 내가 고령(鼓嶺)에서 다스린 것은 특별히 예외적인 것이었네. 사역하는 사람은 자기를 다스리는 것부터 배워야 해. 배우는 것이 적고, 아는 것이 적고, 부서지는 것이 적으면 결정을 옳게 내를 수 없고 사람을 다스릴 수 없어. 너무 급히 확신을 갖고 일하지 말고 두려우며 떨며 일을 해야 하네. 절대로 영적인 것을 쉽게 보지 말게. 마음속에서부터 배워야 하네. 자기의 판단을 믿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네. 자기가 옳다 여기는 것이라고 다 옳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그르다 여기는 것이라고 다 그른 것이 아닐세. 겸손을 배우는 데는 적어도 몇 년이 걸린다네. 그러므로 지금은 그렇게 확신 있게, 완벽히 하려 하지 말게. 자기의 판단이 정확한 데 이르기 전에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세. 주님이 자네의 몸에서 역사하여 생각이 처리되고, 자신이 부서질 때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권위를 가질 수 있네. 권위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그 근거를 두는 것이므로, 주님의 뜻과 마음이 없을 때에는 권위도 없게 되네. 하나님의 종은 마땅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도량(度量)이 넓혀져야 하네. 나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네. 자네 스스로 자신 속을 들여다 보지 말게. 들여다 볼수록 실망하게 된다네.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인도하는 책임을 지게 하실 걸세. 홍콩의 사역은 인도하심을 따라 사람을 보내게 될 걸세. 우리는 다만 안식해야 하네. 이 긴 편지를 자네가 주님 앞에서 자세히 읽기 바라네. 나는 이러한 것들이 어려운 것임을 알지만 주님이 자네를 깨뜨려 그의 손 안에서 유용하게 되기를 바라네.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1950년 3월 1일 니토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