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규례 (2)


교회의 발자취 2014-10-0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kheeha/53214.html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필수적인 것들 외에는 더 큰 짐을 여러분에게 지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우상들에게 바쳤던 희생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런 것에서 조심하여 자신을 지킨다면, 잘하는 것입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행 15:28-29)

For it  seemed good to the Holy Spirit and to us to lay upon you no greater burden than these necessary things: To abstain from things that have been sacrificed to idols and blood and things strangled and fornication, from which if you carefully keep yourselves, you will do well. May you be strong.(Acts.15:28-29)

우리는 자주, 만약 교회의 확증을 거치지 않았다면 단독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고 몸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릇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지방에서 당신이 복음의 필요 혹은 영적인 필요가 있어 형제들이 와서 도와주기를 희망하지만 환경 혹은 교통 등의 문제 때문에 교회의 확증을 받을 수 없고 형제들의 안수를 받을 수 없다면, 이때에는 ‘몸의 행동’이라는 이 진리를 죽은 규례로 여기고 지켜서는 안 된다. 만약 지킨다면 교회의 확장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만약 실제적인 필요가 있다면 당신은 확증을 기다리거나 안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자신이 단독적인 행동을 좋아하는지, 교회가 확증해 줄 수 있고 어떤 형제가 안수할 수 있는데도 자신이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는지 등을 스스로 물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교회가 여기에 있고 기회도 있으며 하나님의 안배도 있는데, 우리가 여전히 단독적으로 행동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와 우리의 자아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파쇄되고 처리되기를 원하며 몸의 교통 안에서 행하기를 원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합당하고 적합하게 행하게 된다. 장로나 동역자인 형제들은 이러한 진리들을 다른 사람을 묶거나 책망하기 위한 죽은 규례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항상 근신하여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사도행전의 예를 죽은 규례로 삼아 오늘날 교회들이 지켜야 된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실행한다면 사도행전의 예는 죽은 규례가 되어 교회를 죽일 것이다. 중국 북부에 한 교회가 있는데 청나라 말기부터 지금까지 오십 년이 지나도록

집회는 여전히 그 지방에 국한되었을 뿐 어떤 곳으로도 확장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죽은 규례로 지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약의 규례를 규례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약의 원칙도 규례로 삼았다. 결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모든 성경의 빛과 원칙은 성령 안에서 적용되어야 한다. 이천 년 동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규례만으로 교회를 묶으면 성령은 즉시 반응하여 그 묶인 것을 돌파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우리의 일과 봉사, 교회를 세우는 것과 돌보는 것 등 모두 성경의 원칙에 따라 해야 됨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규례로 여겨 죽은 방식으로 지킨다면 유대교의 원칙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교회는 성령에 달려 있다. 사람은 교회를 묶을 수 있지만 성령을 묶을 수는 없다.

당신이 만약 성령을 제한한다면 성령은 당신이 설정해 놓은 제한을 뛰어넘어 더 확장하실 것이다. 전통과 형식을 주의하는 사람은 진리를 가르침과 규례로 삼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지키게 하려는 위험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철저히 피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에서 우리는 확장에 있어서 교회가 유대교의 영향, 즉 유대교의 제한을 받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행 15장). 사도행전 14장에 이르렀을 때 교회는 이미 이방인 가운데로 확장되었고 매우 빨리 발전되었으나 15장에 이르러 우리는 이러한 확장이 방해를 받아 정지된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사람에게 병이 생긴 것과 같이 교회 안에 세균이 들어와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게 된 것과 같다. 만약 이 병이 치료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무엇보다 이 병을 반드시 치료해야 했으며 그러고 나서야 교회가 다시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5장은 본래 이방으로 가야 될 사도들이 그것을 멈추고 외부로 나아가지 못하였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함께 올라가서 병을 치료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했으며, 다시는 동일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유대교를 교회 밖으로 분리시키고 양자 간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그으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5장은 매우 큰 수술이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은 유대교의 모든 예식과 규례를 제거하려고 하였고, 베드로 또한 결코 유대교의 할례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일어나서 말하였다(10절). (교회의 발자취, 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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