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해를 보통 두번이나 맞게 됩니다.
새해란 이런 저런 일들이 치이게 되기도 하는 번거롭기만 한 날이 될 것인가
아님 최소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의 출발이 될 것인가
작심삼일이 된다는 새해결심
그런 결심을 한다는 거 자체가 스스로 감옥이 될 수도 있으나
하지만 못지킨다고 누가 벌금을 매기는 것도 불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실보다는 득이 좀이라도 있다면 해가 바뀔 쯤에는 한번 새로이 정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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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감 바이러스 중에서도
병원의 항생제 폭탄에서도 살아남은 병원균에 감염되는 바람에
오랫동안 아프면서 무념무상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새해의 시간들
그런데
몸의 감각들이 예민하다면
언제 독감균이 침입을 했는지 그 순간을 몸이 기억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대부분의 우리의 일상은 둔감한 몸의 느낌과 몽롱한 사고속에 묻혀버리게 되지만............
그렇다면
우리의 영의 감각도 그것을 얼마나 민감하게 깨우느냐에 따라
우리가 회복에서 말하는 영의 훈련을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영의 느낌도 얼마든 예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득 문득
둔감해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돌이켜
영을 예민하게
라는 새해결심을 새롭게 해 본다면
역시 대부분 둔감해지고 실패하게 되는 속에서도
전혀 얻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를 해 보게 됩니다.
사람이 가진 감각은 어느 거 하나 없어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뭐 듣는 거 정도 안되는 거야~ 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저 다른 사람과 말로 소통이 안되는 거 정도 뿐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의 표현과 이해에 있어
갖가지 소리와 음이 내는 섬세한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주 치명적 결함이 될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주변의 사물들 사람들 자연들의 형상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생존자체를 위협받는 결함입니다.
그렇다고 삶은 너무나 징한 일이기에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창조주로서 그리고 육체의 한계에 제한 받은 주님은
이런 아픔을 아셨습니다.
더구나 이런 사람을 고칠 신성한 능력이 있었기에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사역을 하신 3년 반의 세월은 편히 숨을 돌려 쉴 시간도 거의 없을 만큼
온갖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치인 세월이셨지만...............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을 섬기라는 주님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면박에도 불구하고 맹인들은 어쩌다 잡은 주님을 만날 기회를 포기할 수가 없어
우릴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따랐습니다.
어떤 유명한 성경학자도 율법선생도 제사장들도
제대로 보지 못한 주님을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상수 형제님이 언젠가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절대로 일류대학이나 학벌을 중시해야한다가 아니라
세상의 지혜와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과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변별력등의
인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도
그런 모든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비교해볼 때
그저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거기다
자신이 드러나고 그 한계를 통렬히 보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고 이끌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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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로 부터 오는 공급과 힘으로 불타고 있는 가시덤불과 같은 존재로 서있게 되는
모세가 봉사자로서의 첫번째 예였다면
그후로 많은 섬기는 자들이 일어났었고
우리는 가장 최근에 이런 섬기는 자로서 이상수 형제님을 갖는 복을 가졌었습니다.
동시대에 그분은 우리의 본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큰 섬기는 자도 아니고 회복안의 작은 지체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모두는 다 하늘로 부터 오는 공급으로 서 있는 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