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morningstar / 작곡:Eugene / 편곡:Eugene*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기자신 전부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기쁨에 휩싸일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완전한 일치를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사랑의 극치에 이를 때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과학적인 원리를 밝혀낼 때
내적인 감성을
눈으로 또는 귀로 환원하여
성공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적으로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때
삶은....완만한 기쁨의 순간을 거쳐
크라이막스의 황홀경의 극치에 도달하여
최고의 순간에 이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분의 임재와
그분의 인격을 아는 것이 점차적으로 더해져
마침내 완전히 하나되는 황홀경에 휩싸여
극치의 일치를 맞는 순간
최고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부활 그러면 죽음을 먼저 전제로 해야합니다.
(애초에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을 거론할 필요도 없을테니까.)
불행하게도
(우리가 다 아다시피)
우린 물질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우릴 가장 두렵게 하는 것도 사망과 사망의 세력입니다.
.
그 사망에 이르게 하는 노쇠함의 과정은
사망의 위력이 점차 근접해 오고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죠.
이런 사망의 위협에서 참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만큼 육체적 죽음앞에 담대할 수 없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행하게도
전적으로...........
가치가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부활의 생명을 찬양합니다라고 선포했던 사람이
막상 죽음을 코앞에 놓고
부활에의 소망으로
담담하게
육체적인 사망을
받아들임으로 이어질지는
.
또다른 시험일 것입니다.
이땅에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나그네로서
언제든 짐을 싸고
훌훌 떠날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의 삶을
늘 한계선에 놓고
그 한계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
이사를 하고 나서 이제야 쫌 정신이 나는 듯 싶네요.
그래도 정리할 것이 좀은 남았지만...........
한두가지 하기도 힘든다는 이유로
어디서 부터 건들지 몰라
냅두고 쌓이는대로 놔두었던 살림은
마침내 크게
자리를 옮기면서
모양새를 잡으려니 몸살이 만만치가 않네요.
.
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일들과 꼭 해야할 일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긴 아는데 따라주지 못하는 한계들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때
공부를 하긴 해야하는데
밀려오는 잠을 어찌할지 몰라서
눈꺼플에 안티프라민을 발라 잠을 깨보려는 시도는
약이 눈에 들어가 너무나 아팠던 웃지못할 어린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공부를 해야하는 것을 아는 사실과
그것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은 다른 것이겠죠...
(주님이 기도하실 때 잠들 수 밖에 없었던 제자들의 상황도 이와같았겠죠)
이런 예뿐 아니라
해야하지만 하지 못하는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는 일이
귀하고 가치있는 것임을
누구든 모르는 일은 아니나
만약 잘되지 않는다면
이런 저런 밖의 많은 이유보다도
내적인 동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 어떤 형제님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토함이 없이
어떤 믿는 이에게도
생명의 영의 법이 적용되는 실재는 없다는 교통처럼
.............................
우리의 존재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주님을 향하는 마음과 힘과 동기가 유발되어
그분을 따를 수 있길
...............................
이사를 끝내고
몸과 마음이 홀가분하게 된 다음에.
마음은
여리고
부드러운 기관이지만
또한
견고하기도 해야 합니다.
마음이 굳지 않으면...
상대방의 어떠함에 따라
사랑스럽기도 하다가
상대에
그 마음이 상하면
쉽게 모질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같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하길...
이 다음에 나는 엄마같은 여자랑 결혼할꺼야~
..
아들로 부터 이 말을 들었던 순간
그동안의 모든 희생과 수고에 대한
최고의 보상을 얻었습니다.
...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다음에
주님앞에 가게 될 때에
그래서
그분의 면전에 이끌림을 받을 때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또는
내 사랑하는 자야,
그 어떤 것이든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한마디 말이
참 보상이 될 것이라는...
이사를 하면서
몇개의 가전제품을 새로 샀습니다.
박스안에 첨부된
설명서가 복잡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음식물을 넣어서
스위치를 켜서 작동을 시키면
해동도 되고
익기도 한다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과 연합한
우리의 영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이
자기 속부분이 아무리 복잡한 듯 여겨져도
작동법은 아주 단순한 것인지 모릅니다.
다만
어떻게 관리할는지
그 기능이 어떤지에 대해
확실히 숙지하고
여러모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몫은 다하는 것인지도........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김으로,
슬플때 주님께 위로를 얻음으로,
마음이 허할 때 주님을 찬송함으로,
필요가 있을 때 주님께 구함으로........
만약
사용하다가 고장났다고 여겨지면
AS센타에 맡기듯
우릴 만드신
창조주에게 맡기면 될 것입니다.
단순히 믿음을 사용하여...............
한 지방을 방문했을 때
그 교회의 지체들에게 받는
첫번째의 인상은 아주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대부분의 지체들이
정말 영적인 것처럼 보였다면
그리고 그 영적인 것이
자연스러움이 아닌
경직된 것으로 보인다면
사실은 더 실망스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육적인 것이 많음이 분명하다면
외려
치료의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언젠가 강한 빛비춤가운데
자신의 어떠함을 보고
고꾸라 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요하며 부족함이 없다할 때는
이미 기회는 사라진 것인지..모릅니다.
살다보니 이사를 제법 여러번 하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장점을 가진 여러 집들이 있지만
또 어떤 필요로 인해 다른 것을 양보할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집의 조건은
첫째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일 것
단열처리가 잘 되어 있을 것
툭 트인 조망을 갖고 있을 것
서울에선 바라기 힘든 일이지만
조용하고 공기가 좋을 것
그리고
내부는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어
청소하기가 간편한 것에서 부터
모든 집의 구성원이
불편하지 않도록
동선과 필요에 따라
적절히 가구를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고려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
.
하늘이 그의 보좌요
땅이 그의 발등상일 뿐인
만군의 여호와가.........
당신의 발등상일 뿐인 그 땅에
납작 붙어 살 수 밖에 없는
작은 사람안에
자신의 집을 가지리라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그로부터
온갖 소동이
이 작은 사람안에서
끓이질 않는 것입니다.
.
오랜만에 업뎃을 합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 묘앞에서 오랜만에
정말 직계가족?만으로
사진을 찍은 거 같네요.
또
생각해 보니...
주님의 긍휼로 모두 주님안에 그리고 참된 하나의 입장위에 선 교회안에
한 가족이 함께 한 것이
주님의 긍휼이며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이며
이 모든 것을 넘어서
그분의 알길없는 선택하심이라는 것을
감사히 여깁니다.
.
.
이즘 저희 집이 이사중이랍니다.
짐을 좀 줄이고 정리를 하려니 일이 많아져서..-,-.. 글을 못쓰고 있답니다.
양해를 부탁드리며...
아마 지역도 다른 곳으로 옮겨갈 거 같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글을 올리겠습니다.
.
요한 복음 7장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어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사람은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일부러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면에서
가까이서 주님을 보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가장 어리섞고 어리섞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그의 두문불출에 답답해 하던
주님의 육신의 형제들은
예수를 부추기고
예수를 떠다민다.
당신의 이적의 능력을 나타내고
세상에서 인정받으소서
그리하여 유명해지고
세상에서 인정받고
세상에서 높힘받으소서
주님의 형제들은 주님을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하나님에게서 능력을 받은 선지자
그래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높힘을 받을 수 있는 지도자
심지어는
당대의 세력과 맞붙어
세상을 탈취할 수 있는 세력가가 될 수 있다고 여겼을까?
어쩌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같은 맥락으로 여김을 받았을까?
이제 피할 수 없이
유대인들
그들의 마음에
그들의 원칙에
그들의 방식에
그들의 지배하는 세상에
주님은
그 존재자체가 도전적인 폭팔물이었다.
그가 가진 능력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의 존재자체가
그들의 불의함
그들의 편협함
그들의 교만함
그들의 거짓됨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과
이 세상과 하나인 종교에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 존재자체가
껄끄러움일 수 밖에 없다
그 존재자체가
세상의 어떠함에 대한
반간증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사회의 법
종교의 법으로 볼 때
예수의 십자가의 못박힘은
이 세상의 악함의 어떠한 정당함대로
못박힐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예수는 세상을 소란케 한 자이며
기존의 권력체계를 위협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법없는 자들의 손(행 2:23)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땅의 법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그 법이 없는 것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
사르밧의 과부....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 과부는, 만약 엘리야가 그녀에게 오지 않았다면 아니 엘리야가 왔더라도 그가 청한 것을 의심하고 거절했더라면 보다 근원적으로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의심했더라면 그녀의 가난하고 비침한 삶의 최후는 아합왕의 죄로 인한 가뭄으로 인한 굶어죽음. ........................ 어떻게 그녀는 엘리야가 와서 물과 떡을 청했을 때 거절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꿈에서든지 또는 생시에서든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고를 받았는지 모른다. ........................ 그녀의 아들이 죽음을 당했을 때 그녀도 역시 종교적인 관념으로 자신의 죄로 인해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능을 드러낼 일을 만드신 것이었다. ........................... 문득 생각해 본다. 사람으로선 가장 극한 상황을 만날 때 자신의 죄가 생각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런 것인지 모른다. 오히려 극박한 상황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성경의 이런 저런 예를 떠올리며 이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기회이다. 아멘 할렐루야~하고 찬미한다면 이런 것이 과연 영적인 것일까.... 만약 이런 광경을 본다면... ...기분이 이상해질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