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명절 날이
오랜만에 맞는
휴식의 날이 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리고 농경사회였던
과거에는,
길고 긴 노동의 날들뒤에
결실을 맺어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의미있는 날들이기도 했겠지만
2000년대의 대한민국의
번잡하고 복잡시런 싯점에서
명절이란
낡은 관습과 규례로
그저 체면치레속에서
서로를 얷매며
인간의 도리라는 윤리에 붙잡혀
그 안에 갇혀버리는 족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일가친척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것에 무슨 의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
자발적인 것
자원하는 것...이 없이
이 땅의 임금이 선포하는 대로
일제히 땅을 기는 개미처럼 행군하며
그 안에 갇혀 버려야한다는 것...
그 안에 달콤하고 자발적인
생명의 느낌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로 매번 상하고 답답한 마음을 돌이켜
큰 숨을 쉬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즐거이 주안에 갇힌 자가 되었으며
쇠사슬에 얷매인 대사가 되었음을
담대히 선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외양은 명절날 친척들이 모였으면
세상에서 실패한 인생
출세길에서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그 인생을 망친 예로
혀에 오르내리기에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마 이런 명절날
친척들이 모였을 때
가장 담대하며 가장 유쾌하며 가장 살맛나는
인생에 대해
토로할 만큼 담대하였을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아버지 하나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은 오래전부터 당신의 큰 사랑에 따라 당신의 성령으로
당신의 종들을 감동시키셔서 완전하고 귀중한 성경을 쓰셨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당신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 성경을 보존하셨습니다.
더욱 하늘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것은, 나로 그 안에 있는 구원을 듣게 하시고,
그 안에 기록된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로 오늘 이 완전한 성경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금보다도 귀중하고, 꿀보다도 달콤합니다.
내 발의 등불이며 내 길의 빛이고 나의 좋은 스승이며 다정한 친구입니다.
나의 유업이며 나의 분깃이며 내 생명의 양식입니다.
언제나 나의 힘과 인도와 책망과 위로가 됩니다.
대적을 향하여는 나의 방패와 검입니다.
또한 내가 그 안의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을 주시도록 약속하신 하늘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로 일생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매일 성경을 연구하며, 항상 숙고하게 하소서.
더욱이 내게 힘을 주시어 삼가 어기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고 그것을 전하게 하심으로
삼일 하나님 아버지와 나의 구주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아멘.
위트니스 리
1931년 8월 3일 옌타이에서 구입한 성경 여백에 기록
우리의 온갖 허물을
다 덮고 다 털어버려
일순간에 멸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으나
우리 앞에 여전히 가야할 여정이 남아있게 하셨죠.
그리고
이 땅에서 삶을 지속하는 동안
일회뿐인 기회를 얼마나 잘 잡을 수 있을지
그 책임은 온전히 우리 위에 놓여져
언젠가 준엄히 그 결과를 물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얼마나 일치되었는지
당신의 뜻을 얼마나 잘 헤아리고 수행했는지
각각 그 행한대로 상을 얻거나 해를 입거나 하겠지요.
......................................
*작사:morningstar / 작곡:Eugene / 편곡:Eugene*
주여 나의 온 존재가 당신께 열려있길...
나날이 더욱 당신을 사랑하길...
나날이 당신을 더욱 더 의존하게 되길...
나날이 당신께 더욱 부드럽길...
당신께 대해서는
그렇게 여리고
그렇게 약하고
그렇게 전적으로 조심스럽길....
맨 마지막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길...
많은 최고봉의 진리들이
체험됨이라는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교통될 때...
오히려 많은 입들을 ..
다물게 하는 수가 있는 것을 봅니다.
제가 그렇게 극한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하느라..
그리고 짐정리하느라..
전혀 추구하지 못하고
한참 최고봉의 메시지들이 쏟아지던 때에
집회에 간적이 있는데..
육신은 피곤하여 얼마나 졸렵던지..
그리고 방언을 듣는 것과 같았던
단어들...
...........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겐 두가지가 필요한걸 알았습니다.
진지한 자세로
말씀을 추구하되
그것이 단순한 단어나 지식이 되지 않도록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집회에서 내놓은 신언이 그런 과정을 거칠때
비로소 공급과 서로 세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집회의 분위기는
편하게 말을 꺼내기 쉬울 만큼
서로 열려있고
서로 용납하고
서로 품는
분위기여야 한다는 것....
.........
만약 조정이 필요하다면
조정하는 사람이나
조정받는 사람이
서로...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분위기....
매일매일 부대끼면서..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많은 새로운 일들로
짜여있는 게 아니라
일상의 반복이라는 것.
전에는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나는 새와 같이
사셨던
니 형제님의 간증이
제것이길 원했던
분수를 모르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모든 것이
주님의 돌보심가운데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이 일해서 사는 것 같아도....
또한 한 날 괴로움이 그날에 족하다는 것도...
..........
그 시대에도 감옥과 간수의 관계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겁을 내거나
거칠게 행동하거나
반항하거나 불평스런 태도대신
온유하면서도
위엄있고
절제하고
순응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로
그리고 심지어는
모든 환경을 기뻐하는데서 오는
안식이 깃든 환한 얼굴로
애초부터
간수의 마음에 각인된 바울..
그것은 그리스도의 확대됨으로 인한
인내와 기쁨의 나타남이었습니다.
환경에 관계없이...
각각의 제한된 환경내에서
간수를 설득하거나 그의 태도를 누르러뜨리거나
더 좋은 대우를 받도록 요구하거나
하는 모든 것 대신에...
다만 그리스도를 기뻐할 수 있기를..
기뻐하는 것은 다만
적응하여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그리스도의 확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만 순응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때 이것을 환경을 받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도
어떤 상도
보람도 없는 것입니다..
집에 부지런히 돌아와
먹을 것들을 챙겨주고 ..할 일을 다했다는
안도감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모든 환경을 통해
확대하고 표현함으로
모든 상황을 기뻐할 수 있기를...
때로는 밖으로는 차이가 없이 보여도..
그런 날들이
축적되어...
극한 상황에 넉넉히 이길 수 있길....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를 받았지만
그뒤
그 안에 머물지 않고
죽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많은 불안과
걱정근심과
다툼가운데 있음을 봅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아둥바둥했던 모든 일들
불안해 했던 모든 일들이
어쩔 수 없었던 것 그리고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봅니다.
많은 실패는
여전히
내가 해야만 할 것같은
반복된 주제넘음이었습니다.
이미 죽음안에 넣어진
퇴장된 사람이
자꾸 무대 전면에 나서는 것처럼
꼴불견이었음을 봅니다.....
비결은
죽음안에 머물러 안식하는 것입니다.
결국
뛰어난 부활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될 때까지
더 깊은 죽음을 가져옴으로
땅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안식하게 할 것이며
그리고
그때에
놀랍게도
생명의 능력을 일으킬 테니까...
사람안에 있는 야심이란
...
기회가 주어질 때
...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조그만 아이에게 있는 자신감조차
단지 웅지가 되고
야심이 되지 않기란.
얼마나 힘든지....
이땅은 야심있는 자들의 몫이지만...
올 왕국은...
어쩔 수 없이 이땅에서 권위가 되어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어도
주님의 머리되심아래 숨는
두번째인 사람들의 몫이니까요...
말만이 아닌
참된
그런 사람들의....
*작사:morningstar / 작곡:Eugene / 편곡:Eugene*
이 땅에 허락된
남은 날들이
얼마일지...
주름지고
얼룩진 부분들
다 고르게 될 수 있을지..
주님께 받을 합당한 상급
떠나기 전에
예감할 수 있을지...
모든 동기와
그 과정에서
주님으로 통과되고 있는지...
말갛게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결국
주님과 대면할 수 있을지..
상상하며
황홀해하지만...
여전히 두려운 마음.
오는 새 해가 다 갈 무렵엔
이 두려운 마음
제해질 수 있을지...
마음은
많은 자갈들로 인해
벅벅 불협화음을 내고
눈은
허왕된 것에
이미 빼앗겨버린 듯 했습니다..
고리타분한
'내 대신한 십자가'는
기독교의 구호에 불과한 듯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속에서
얘야~~
내가 너를 여기서 기다렸단다...
이 길모퉁이에서...
.
.
.
그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져
감히 거절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었습니다.
객관적인 삼층천의 그리스도가
내안에서
길이 되고
생명이 되고
누림이 되는
주관적인 그리스도가 되어
구원을 이루어가는 생활....
그러나
주님의 보혈로
정죄와 심판에서 벗어났다는
이미 이루어진
기초적인 구원에
너무 좋아요~~라는 탄성으로
발하는 순간...
저는
그것이 더 좋아졌습니다..
어떠한 것에서
구원받았는가...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가....
더 이상 이땅에서 좋은 일은 없으리라는...
.
그러나
하늘에 속한 영역안에서
비밀한 그곳에서
더한 구원이 매일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실감어린 목소리로..
너무 좋아요~~
탄성이 매일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