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안식할 것인가


주님누림 2014-10-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308.html
요새 낮에 외출해보니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차도가 차들로 꽉 막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볼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즘의 트랜드가 집밖으로 나가자! 밖 카페에서 놀자!
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이 조신히? 집에 남아있지 못함은 아마도
집이 집으로서의 안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불안하고  사람들이 불안한 것이 이즘의 
세상모습입니다.
 
참 집, 참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믿는 이들의 참된 집은 소위 성경에서 기록한 바
아버지의 집으로 불리우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디 있는가?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정의는
말하고 또 말하고
또 규정하고 해도 생소한 것은
이런 개념은 우리의 인지능력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결코 물질적인 건물이 아닐 뿐 아니라
밖에 보이는 교회지체들, 형제자매들 모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내재적인 것이며 
영적 유기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고
그 집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주관적인 믿음으로 인해 
그 믿음이 의미하는 바 
believe into 즉 믿어 그 안에 들어감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집이었던 주님은 이 땅에서 계셨을 동안
나는 아버지안에 있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있다라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자주 제자들에게 선포하셨다는 것을 봐야합니다.

즉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광야에 있을 때도
뱃머리에 계셨을 때도
보이지 않는 내재적인 아버지의 집에 거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델입니다.
주님이 죽고 부활하여 우리의 생명이 되신 후에
우리는 교회로서
확장된 주님으로서의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한 장소에 있던 각각 딴 나라 딴 지방 딴 지역에 있던
우리는 주관적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안에 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세대에서 여행의 의미에 대해...


일상누림 2014-10-1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2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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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주는 의미는 다 다릅니다.

제게 있어

궂이 꼭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드는 곳이 있다면

가능한한 아직 관광개발자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창조주가 만든 그대로의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에 가 있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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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사전정보가 제공되는 이즘은

사진으로 상상한 것보다 실제로는 실망스런 곳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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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의 오하우섬하면 그저 와이키키 해변을 떠올리지만

그섬의 북쪽 끄트머리에는 길조차 닦여있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해변이 펼쳐져 있는 곳이 있습니다.





주의 제자가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누림 2014-10-1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263.html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는 것
더 나아가 어쩌면 전시간 봉사자가 된다는 것
즉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선택받음으로 
많은 권능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첨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그것만이 보였습니다.
하늘을 얻었으니 다 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댓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뭐 댓가없는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역시 모순이죠....

왜냐하면
마태복음 10장에 따르면
이 권능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오히려 본인은
소유물을 많이 갖지 않는 삶을 기꺼이 택해야하며
비둘기까지 순결해야하나 
뱀같이 지혜로운 모순을 감당할 수 있어야하며
공개적인 모욕과 미움받음을 감당해야하며
자기를 부인하되
혼 또는 몸까지
죽음에 넘기우는 것을 각오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런 모든 고난을 궂이 일부러 받을 필요는 없지만
시대별로 상황별로 혹은 비유적으로 
각각 적용되어 오는 모든 고난들을
그분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웅지를 갖고 있는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은 피할 수 없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는 이로 살면서
가정생활에서
사회생할에서
심지어는
교회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모든 상황 사람들 교회지체들로 부터
어떤 어려움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각각의 사연들 상황들이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첨에는 굉장한 웅지?로 시작했다가 
그래서 이런 저런 봉사?에의 의지를 불태우다
환경과 자신이 가진 재료의 한계를 발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위축되면서
지금은 회복안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 만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더하여 보너스가 있다면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천만의 국민이 사찰당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안에 있는 생각을 글로 씀으로 인해
안으로 고이지 않고 흘러내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가장 큰 축복-하나님의 목표와 같은 꿈을 가짐


주님누림 2014-10-1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252.html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확실히 이땅에서의 자신의 입지 부귀영화 이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땅의 임금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득세하는 것과

하나님의 왕국에 충성하는 것과는 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세상과 영합한 타락한 기독교는 이에 해당되지 않지만

적어도 대쪽같이 하나님의 경륜을 쫓는 주의 회복안에서는

이런 간증을 가진 지체들이 많을 거라 봅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에서는 별로 얻을 것도 도달할 것도 없는 사람은

희생이란 말에 좀은 머쓱해질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어찌보면 저도 그와같은 부류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소싯적 꿈은 이미 세상과 등을 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굴레 어떤 관습 어떤 규례와 상관없이

배낭에 스케치북과 연필하나 꼽고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삶이었기 때문이죠.......


자유...그러나 이 세상은 참다운 자유를 줄 수 없는 거대한 감옥이란 것.


그럼 어찌해야겠습니까

어떻게 이 감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회복안에서 세월을 보내고 난 후의 결론은

오로지 하나님의 왕국안에서 신성한 생명의 다스림안에 참여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입니다.

즉 오로지 참되게 이기는 자만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란 것이지요....


자신만 자유로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공동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을 압제하거나 명령하거나 겁주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으로 다스리는 것은

사람들을 신성한 생명의 공급으로 소생시키며 풍요하게 하고

하늘에 속한 내적인 빛으로  어두움과 두려움을 내어 쫓으며

더이상 슬픔과 억울함과 헤어짐과 부당함이 없도록

 의와 공의로 판결하게 될 것입니다.


새삼....

나의 소식적 꿈과 주님의 뜻은 같은 것이었단 발견을 하게 됩니다.








조직에의 유혹- 생명에게 있어 위협이 됨


주님누림 2014-10-09 / 추천수 1 / 스크랩수 1 http://blog.chch.kr/lethim/53212.html

우리 나이 사람들은  많은 내적 외적 변화가 있게 됩니다.

타고난 올빼미과인 저도 예외없이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흑^^


또 하나는 퇴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

그럼으로 인해 본인과 같이 사는 가족이

퇴직전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퇴직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미리 준비해야할듯 위기감을 조성합니다


그럼 믿는 우리는 어떨까요?


아침을 먹다가 우연히

목사로 교회에 헌신하다가 은퇴하게 된 전직가수가 다시 가수로 복귀한다는

인사를 하는  티비프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첫번째로 느낀 건 엉? 교파에는 목사가 퇴직하는 제도가 있네?

그런데 회복은 왜 그런게 없지?라는 지극히 천연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회복에는 명문화된  제도가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소위 책임형제님들의 봉사에의 연한은 언제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외적인 답은 없다는 거죠


단지 거슬러올라가 보면 그런 예는 있습니다.

1980년대 윗트니스 리 형제님은 미국에서 대만으로 건너가셔서

새길에의 실행을 권유하셨는데,

 대집회가 아닌 소그룹으로 모이는 것

그리고 집회소에서 부흥회를 하는 것보다

한집한집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주는 주님이 보이신 길을 따라가는등의  실행을 실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책임형제의 위치를 가져왔던 나이든 봉사자들이 보다 젊은

동역자들에게 봉사를 물려주도록 권유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만의 교회들은 신선해지고 새로운 간증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참 대단한 일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왜 리형제님은 미국이 아닌 대만으로 가서 이런 본과 이런 실험을 세우셨을까는

소위 대만교회들의 책임형제들이 리형제님의 권유에 따라

선선히 책임형제라는 직함?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만교회와 리형제님과의 관계는

마치 사도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

아비가 아들에게 꺼림없이 이런 저런 권유를 하고

아들은 아비를 존경하며 그 뜻을 순종을 하는 관계처럼

친밀하고 절대적인 신뢰관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형제들이 은퇴?를 한다고 해서

마치 교파의  전직 목사가 다시 가수질을 하는

전격적인 변화의 삶을 갖게 된다는 것은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직목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분이 목사로서 어떤 삶과 어떤 헌신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그분의 목사직은 그저 직업에 불과하였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회복안에서는 어쩌면 책임형제의 존재감은 시간이 갈 수록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의 무게와 간증에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누군가가 책임형제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겠죠


따라서 교회안에 어떤 답답한 고인물이 느껴져도

교파처럼 책임봉사의 연한을 정한다면 회복은 종교로 타락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보다는 보다 선명한 생명에의 단계가 보이는 간증이 더 드러나길 갈망합니다



















풍부를 즐길 줄도 알고 비천에 기죽지도 않는 삶


주님누림 2014-10-0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172.html

이 세상의 가장 큰 빽은 한시적인 권력보다는 돈 즉 물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많이 벌려고 애쓰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왜 상상도 안갈만큼의 부를 쌓은 재벌들은  족하게 여길줄 모르고

 더 많은 돈을 끌어모르려 혈안이 될까 의문이 듭니다.


옛말에 부자가 3대를 못간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3대쯤 되면 부하게 자란 손자녀석이 뭘 모르고 온 재산을

다 탕진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재산이 너무너무 많으면 손자가 한동안 탕진을 할지라도 남은 재산이 여전히 많고

그 다음대에 원상복귀를 할 테니 결코 망하지 않을 거란 계산이 나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재벌은 결코 망하지 않고 점점 더 부를 쌓으며 결국 세상을 손아귀에 넣게 될 거라는

가정이 성립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오셔 쓸어버릴 때까지 재력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거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다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거나 혹은 점점 더 가난하고 착취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믿는 이들은 어떻게 이런 세상사를 헤치고 나가야할지요...



주님이 성육신되셨을 때 그는 목수의 아들이셨습니다.

사실 목수라는 직업이 오늘날에는 그다지 고급직업이 아니지만 그 당시는 어쩌면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직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결코 부자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하여

주님이 물질에 대해서 특히 부자들의 탐욕에 대해 많이 경계하셨기에

상당히 금욕적으로 사셨을 거란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주님의 옷을 군사들이 3쪽으로 나누어 가졌는데 남이 입던 옷을

그것도 로마의 군사들이 쪼개 가질만큼 그들이 월급이 형편없었을까요?

어쩌면 주님을 따르던 귀부인들이 주님에게 쓸 것을 공급하였던 바 최고급의 재질로 된 긴 천, 그 당시의

남자들이 두르던 , 그런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주님은 사양하지 않고 개의치 않고 최고급의 천으로 된 속옷과 겉옷을 입으셨을 것입니다.


와이키키해변은 단지 해변뿐만이 아니라 해변안쪽의 고급물건을 파는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딱 눈길한번만으로도 흠 멋있군 무엇보다도 너무나 잘 맷치가 되게 진열한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여자들이 여길 쇼핑의 천국이라 부르는구나

그럴 재력만 된다면 그냥 콕 집어서 들고 나오고 싶게 할 만큼 유혹적입니다.


요즘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는 말이 유행어라고 합니다.

흠 멋지네 디자인이 좋구나, 재단이 훌륭하구나 거기에다 나한테 잘 어울리겠는데?라는 수순으로 생각이 미칩니다. 뭐 그다지 나쁜 상상은 아닙니다. 입어서 멋지게 보일 거란 상상은 즐거운거죠.

적어도 그런 걸 볼 줄 아는 안목?과 소화시킬만한 능력이 있다는 확인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지 못해 슬프다 비참한 생각이 든다라면 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지는 것이고 사탄에 지는 것이겠죠


주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주님도

사도 바울도

그리고 그후의 많은 선진들도....






이 세상의 빽이 감히 견주지 못할 진정한 빽은??


주님누림 2014-09-3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159.html

공평한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나라라 할지라도

여전히 빽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사실

2014년 대한민국은 오직 빽있는 자들만이 잘나가는

빽나라라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 이런 빽있는 자들이 부럽다고 생각하십니까?

혹 이런 것이 주어진다면 받아들일 생각이십니까?

사실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내가 혹은 우리 집 가장이 공직?에 나가지 않는 한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누군가의 빽으로 내 자신이나 자녀들이 득을 보는 일을

과연 마다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라면 뿌리칠 어떤 명분을 스스로 찾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것이 불법인 것이 분명하지 않는 한.......

혹은 주님이 안에서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시지 않는 한.....

.

하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세상의 그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그 위에 있는 빽이 있다는 사실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빽이 있음에도 그 빽을 누릴 줄 모른다면 잃은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빽을 제대로 누리는 방법을 모르기에 빽이 있으나 사용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헌데 이 빽은 세상의 빽과는 다릅니다.

때로 아주 미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빽의 위력을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세상 권력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미련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용감할 수 있는 것은

위에 있는 빽을 믿어서 입니다.

.

이 세상사람이 보기에 가장 큰 어리섞음은 주님을 정직히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뿐인 기독교는 회복의 길을 비웃을지 모릅니다.

당장 걷는 것이 급하고 당장 병나음이 문제이지만

주님은 죄사함이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취하면 주님이 병나음과 치유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죄사함이 더 중한 것입니다.


지방교회안에 돈 있고 빽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행위도 완벽하고 선한 멋진 사람들 대신에

그저 구원받은 죄인들,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만 득실거린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의인을 위하여 오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안에 돈 있고 빽있는 사람들이 오는 것을 너무 좋아하거나 높이는 경향이 있지

않길 바랍니다.

대신에 주님이 절실히 필요한 죄인들 그래서 구원받음을 인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찬양하길 바랍니다.


교회생활중에 어떤 분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경향으로 발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제어하고 다른 사람들을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각 자신이 가진 잣대로 누구는 너무나 금욕적이다

누구는 너무나 제한이 없다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것이 죄가 아닌이상 그것이 세상이 아닌이상 각각의 잣대를 내려놓고

그 사람이 주님안에서 주님을 기뻐하고 삶을 즐기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에 있어 자유하다면

그를 누가 감히 정죄하겠는지요......

사실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 주님이 있는 한

그런 주님의 지지와 인정을 받고 있는 한

우리는 가장 큰 든든한 빽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미리 체험하는 성숙한 자의 어떠함


주님누림 2014-09-2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149.html

영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답은....

영으로 산다는 것은 영으로 사는 것이다

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영적 생명의 성숙이란 어떤 상태인가라는 물음은

그 자체가 우문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아이가 어른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어른이 되었어요?라고 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성숙한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하더라도

다 큰 어른들의 어떠함을 보고 흠모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안에서 이런 모델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야곱과 요셉일 것입니다.


엄마의 태에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는 악바리같은 탐욕과 모사로 똘똘뭉친 야곱이

모든 것을 가진 오직 옥쇄외에는 파라오와 같은 권력을 가진

아들요셉을 만나러 가는 담담한 그의 뒷모습으로 바뀐 것에서

우리는 성숙한 자의 어떠함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으로 부러울 것이 없이 귀하게 자랄 뿐 아니라

형제와 아비 어미조차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는 꿈까지 하나님으로 부터 하사받은 그래서

기고만장했던 꿈쟁이 요셉이

자기를  노예상한테 팔아먹은 형제들이 자기앞에 조아리고 섰을 때

결코 자신의 권력을 사용해 벌을 주거나 조롱하거나 으스대거나하는 반응을 보이는 대신

그 모든 것뒤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서

성숙한 자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에의 이해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재가 부족한 사람은 진리를 선포할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


주님누림 2014-09-2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130.html

한때 교파에서 회복으로 돌아온 분들이 하는 회복에 대한 평가는

말씀도 너무 좋고 진리도 너무나 높은 반면에

실재는 너무나 부족한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대부분의 우리의 실상입니다.

사실

만약 회복의 이상에 대해 우리가 절대적이라면

현재 대부분의 우리가 영위하는 느슨하고도 무기력한 생활을

결코 유지할 수 없을 것임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의 학교생활 사회생활 결혼생활을 포함하는 우리의 전 존재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경륜을 위한 것이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교회의 건축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감히 예스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내 자신에 대해 무지하고 자신의 실재에 대해 스스로 과대평가한데다

모든 것을 주님과 교회에 다 헌신할 것이라고 스스로 믿었을 때는

문제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른 모든 곡식단들이 나를 향해 절하고 해와 달도 내게 절하였도다~ 하면서

감격에 겨워하는 약속된 꿈을 가진 작은 꿈쟁이 요셉처럼 말입니다.


다만 주님이 보여주신 이상이 있고 그것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당장이라도

주님의 몸은 완성되고 주님은 곧 다시 오실 것 같았던 감격에 겨웠던 것은

단지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요셉의 경우

누가 그에게 너는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해주었을까요?

혹은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라고 위로를 했을까요?


아무튼

신기하며 놀라운 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하므로 감옥에 여전히 갇혀 있는 죄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특별한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비록 우리의 신분과 상황과 처지와 현재의 모양새는 형편없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뭔가 좀 특별한 것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특별한 것을 담대히 그리고 자신있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가 본 이상을 여전히 선포할 수 있을까요?..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도 모든 아픔과 좌절의 체험이 ........


주님누림 2014-09-2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112.html
이즘 우리나라에서 해물을 먹으려면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뇌리를 스치면서

혹 이것이  
일본에서 수입되거나 일본바다에서 잡은 해물은 아닐까?
설사 동해에서 잡힌 거라도 혹?
이러면서 망설여지는 이유는 
이즘도 일본의  원전에서 여전히 방사능이 바다로 분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만간 일본에서 수입되는 모든 해산물의 제한을 풀거라는 뉴스를 듣고는 
아 망연자실.
앞으로는 마트에서 파는 해산물이나 해물을 파는 음식점에서 파는 해물요리는
일본에서 수입한 어쩌면 방사능으로  범벅된 해물일 가능성이 더 많아지게 될지 모릅니다.

사실 일본에서 수입되는 모든 해산물과 식품류를 더욱 더 까다롭게 하지는 못할망정
우리나라 대통령은 자기 국민들의 건강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건 말건
정치적 화해모드로 전환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발상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까지 냉정하고 무감하고 무심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요.

사실 우리가  이런 건강에 위협되는 상황이 불안한 것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야할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자녀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만약 자손이 없고 돌봐야 할 사람도 없는 특히 어리고 연약한 생명를 잉태하고 돌본 체험이 없었던
사람의 한계로는 그런 살벌한 결정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짐작을 해 봅니다.

체험은 얼마나 중요한가?
체험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책으로 읽는 혹은 이야기를 듣는 때로는 상상해 보는 그 어떤 상황도
직접 체험한 어떤 상황들 고난들 아픔들 어려움을 짐작해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야곱은 누구보다도 더 악하고 약삭빠르고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그 많은 환경을 통과해야하는 게 아니고 
그의 타고난 품성이나 도덕적인 결함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렇게 많은 고통과 벗겨냄과 좌절을 통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그의 생명이 성숙하고 변화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입니다.

사람은 이땅에 살면서 다른 모든 사람은 어떤 고통을 겪어도
자신은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만은 안전하고 행복하고 무탈한 삶을 살기를 바라고
그런 것이 좋은? 것이다. 축복받은 것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축복에 대한 관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앞에서 참되게 성숙하고 변화받기 위해선
우리는 많은 환경의 어려움과 고통과 다루심의 과정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배움의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성숙에도 왕도가 없다는 말씀.............




큰? 애완동물 체험


일상누림 2014-09-2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0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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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율이가 죽은 후

더 이상 애완동물 볼 일은 없을 거다 했는데...

가끔씩 애보개가 아닌 개보개를 며칠동안 하게 되었네요.


라니라는 이름의 갈색푸들!

아직은 태어난지 몇달 안되는 애기지만 눈치가 거의 구단.

아마도 서너살쯤 되는 아이의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뒤를 보는 장소를 가리는 거는 기본

출입금지를 시키면 제한도 받고

앉아와 손내밀기도 훈련시키면 알아듣는 ...


고슴도치 율이를 보면서 반응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했던 그대로 반응이 너무 예민해서

신경이 그만큼 쓰이지만 좀더 존재감이 분명한 ..


이 녀석은 며칠동안

이 집에서는 누가 댓방인가?를 확실히 파악한 뒤

가기전에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어린아이처럼 확실히 품에 안기며

애교작렬.............







성숙으로 가는 길목에서 넘어야할 고개


주님누림 2014-09-1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0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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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라헬을 잃은 야곱에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보면 아마도 라헬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인지  요셉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더 좋은 먹거리 더 고급 옷등의 차별대우로 나타나게 되며 
반대로 역차별을 받는 다른 아들들은
그로 인해 안에 원망과 원한이 쌓이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형제가 형제를 해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보다 더 마음에 단 사람들을 예뻐하는 것은
좀 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나의 권리와 선택이라하여 쉽게 범하는 오류입니다.

인생사에선 흔히 자신의 기호에 따라 감정을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은 세상사를 헤쳐나가는  있어
 너무나 당연한 보호막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안에서는 어떤가요?

리 형제님은 훈련집회에서 이런 교통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특정하게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당신은 어떤 형제와 사사로이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집으로 방문하거나 한 적이 없다라는 간증을 하셨는데요,

왜 그러셨을까요?

리 형제님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이분은 정말 하나님의 종이다라며 찬사를 보내며
특별히 친밀해지고자 시도 역시 많이 있었으리란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그런 모든 것에 대해 냉정히 경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특별한 유대감을 갖는 것은 일종의 동그라미 세력을 갖게 되는 것이며
이런 것이 지체들 사아에 차별과 간격을 갖게 하며 나아가서는
전체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해치게 되며
몸의 건축을 막는 많은 분열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계를 본으로 삼아 우리의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지체들과의 관계에 있어
개인적이고 기호에따른 친밀함을 유달리 추구하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보호를 위해 같은 공감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
모아두려는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받아야할 것입니다.










대관령휴양림


일상누림 2014-09-1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0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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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딴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개장된 대관령 휴양림안의 쭉쭉 뻗은 소나무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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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산행을 하고 난뒤 숨을 고르기위해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눈앞에 나타난 노루 한마리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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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빗줄기로 인해 힘차게 내달았던 계곡 물살
그렇지 않아도 세찬 계곡물 소리가 더욱 거세었기에  
쏴아 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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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과 붉은 줄기의 소나무 군이 멋지게 어울렸던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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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집에서 나는 냄새를 어쩔 수 없지만
운치는 좋았던 ...............
그래도 휴양림의 가장 큰 장점은 깨끗한 이브자리
거기다 정부지원으로 인한 착한 가격
시즌에 예약하기란 쉽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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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속은 아침저녁으로 벌써부터 쌀쌀~ 있는 옷 다 동원해 껴입고 ............




종교의 가장 큰 악함


주님누림 2014-09-1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0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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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하나님이 그 중심에 없는
조직체계를 말합니다.

유한한 사람이 사람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만큼  대담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척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약함을 이용하여 
사람들 위애 스스로 높아져 군림하는 종교는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고
사람의 고통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

2000년전의 유대교는
오늘날의 정권과 같은 권력이 있어
사람을 구속하고 내어쫓거나 죽일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하는 행태는 오늘날의 악한 정권이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더하여 독재정권과 돈줄과 야합하거나 
정권의 시녀노롯을 하고 있습니다.

.

악한 정권과 종교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을 긍휼히 여기거나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군대가서 학대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뭔지 모를 음모로 인해 수백명의 어린학생들이 침몰되어 죽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

오늘날 참된 믿는 이들을 핍박하는 종교는
이런 차가운 심장으로 인해 드러나는 것일 것입니다.





오서산 산책로


일상누림 2014-09-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021.html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좋고 물좋고 기름진 들판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
거기다 바다도 가까워
먹거리가 풍부했을 
광천에서 가까운
오서산 근처의 조용한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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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산세도 좋지만
광천시장에 가면
제철 게와 새우를 사다가 해물찌게와 소금구이도 해 먹을 수 있는
입지조건이 좋은
좋은 휴양지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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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가을사이의 애매한  조용한 틈새휴가로 가기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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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산꼭대기에 걸려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이 구름이 산 아래로 내려와 

                            펜션 주변이 온통 안개에 잠겨 있다가 

                                쨍하니 맑아진 환상적인 아침풍경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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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꽤 오래전)


일상누림 2014-09-0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3002.html
광화문은 예전에는 데이트족과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던 편안한 장소였는데...
최근에는
좀은 뒷골땡기는 팽팽한 긴장감과
뭔지 모르는 불편한 느낌때문인지
일단은 인적이 드문 곳...........

경찰이 쫙 깔린 곳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는 것이
일반정서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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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길가를 지나가는데도 인도를 점령해버린 경찰들 때문에 답답하다보니
왕 짜증~
왜 길거리를 막고 난리야~
자식같은 정도의 청년들이기에 일단 하대하듯 신경질을 내니
같이 동행한 사람은 겁을 먹더군요..
헉..이런 것이 소심한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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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긴 이런 짜증을 이즘 길거리 경찰들향해  내었다면 아마도? 구속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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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갔을때의 광화문은 막간휴식같은 상황이었는데도
뭐랄까
공기중에 가득찬 팽팽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소위
기가 웬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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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사람이 없기에 웬일일까 했더니 다들 시청앞광장 모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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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서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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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둘러보고 나오는 길 경찰이 가로막고 보내주질 않더군요.
일부러..........

어쨌든 빠져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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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물놀이를 하니 그나마 활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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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썰렁한 광화문광장.

혹 이 광장에 또 한번 탱크가 밀고 지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







에서가 더 나쁜가 야곱이 더욱 더 나쁜가 아니 누가 하나님에 의해 인정받는가


주님누림 2014-09-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9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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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탈취하며 압제하며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은 확실히 부도덕한 것이며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다하다 안되면 이 천벌을 받을 놈아~!욕하고 돌아서게 되는데
무기력한 이 단발마는 어쩌면 가장 확실성있는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쓰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입니다.

.

하지만 영적인 것에 있어선 내것이라하여 나눠줄 수도 없거니와 원한다고 해도
나눌 수도 없는 품목입니다.
특히 장자권으로 예표되는 천년동안의 왕으로서 다스리는 특권에 관한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 어리섞기는 마찬가지인 두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이미 작정하신 것을 빼앗기 위해 애쓰는 야곱의 파란만장한 삶이 있으며
어쨌든간 자신의 손안에 있는 권을 경홀히 여긴 에서의 무감한 삶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두가지 자화상의 모습이 이러할 것입니다.

야곱은 참 욕심이 많고 정도 많고 모사도 많고 한마디로 가만 있지 못하는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다루기 위해 많은 고난을 안배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에서는 주어진 것도 경홀히 여겨 빼앗기는 허접한 캐릭터이지만 불쌍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이 범주에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더 애뜻한 마음이 들고 한면 이왕 하나님이 밀쳐두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가하는
반문이 들지만,
만약 에서가 하나님에게 저를 먼저 나오게 하시고 장자권이 현재 제게 있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나오셨을까라는 가정을 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나오는
부정적이지만 장자권에 대한 불타는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포함된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영적인 침노에 대해서는 관대하시기에
장자권을 요구하는  에서를 내치시지는 않았을 거란 가정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죄악은
귀한 것을 탐하거나 추구하지 못하는
느슨하고 게으른 악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국가는 민중을 위하지 않는다. 물론 참된 교회도 위하지 않는다


주님누림 2014-08-2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9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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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viant art muro로 작업  >                                 


야곱이  세겜땅에 잠시 머물렀을때 그의 딸 디나가 강간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야곱은 그 일에 대해 홀로 반응하지 않고 들에 일나간 아들들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야곱이 아닌? 그의 아들들이 결정하였습니다.

좀 특이하죠? 그전에는 주로 야곱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데 아마도 세겜땅에 정착하고 나서는

점점 더 이들의 입김이 세어졌는지도...........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땅의 원주민들에게 너무나 강도가 쎈 보복을 감행합니다.

한면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땅에 들어와 사는 주제에 웬만하면 되었다~ 하면서 기죽어 살 거 같은데도....


아마도 이런 강한  유전자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아있지는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즘도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이 당한 피해에 열배 스무배를 얹어서 보복하고

어떤 경우에도 경제적 이득을 취하여 돈을 끌어모으는지 모릅니다.

더하여 자기가 어떤 국적이던지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서는

선악간의 어떤 객관적 판단도 유보하고 무조건 편을 드는 강한 민족적 유대감을 갖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민족적 유대감이  강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애국심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국가와 국민은 따로 분리된 개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더 이상 자국인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하여 민중은 국가와  관계가 없는 다수의 약자그룹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민중은 국가와 싸워 이겨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즘은 끼리끼리 뭉쳐서 자신들의 이득을 최대한도로 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위 교회라는 곳도 더 이상 평신도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재벌의 소유로 전락하여

마침내  십일조를 내지 않는 교인은 교인의 자격을 주지 않겠다는 발상을 지도계층에서 발표합니다.

정말 이정도로 까지 타락했나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에 반해 회복은 어떤 간증을 가져야하겠는지요....

아니 회복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겠는지요...


국가가 민중을 위하지 않는다고해도 믿는 이들은 그다지 크게 요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나라안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의 실재인 지방교회안에서 

소위 책임형제라는 분들이 막강한 거스를 수 없는 하늘로 받은 위임과 대리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양들을 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갈 데가 없고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더하여

아마도 이스라엘에게서 뭔가를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강점과 약점

그들의 실패와 성공에서.........



무엇보다  자신이 봉사하는 크고 작은 그룹들 지역들에서

자신의 기득권과 자신의 세를 위해 살지말고

전체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간증을 위해.........

전세계의 회복안의 성도들과 한 몸의 간증로서의 강한 유대감을 갖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저 몇십명의 세를 유지하는 갈갈이 찢긴 가족모임으로 전락되고 말 것입니다.








40일을 굶은 남자이야기


주님누림 2014-08-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9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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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에서죽은 고 유민양의 아빠의 원래 모습(왼쪽)과  39일째 단식모습(오른쪽)
(페이스북에 올려있던 사진 캡처)


같이 단식을 했던 사람들은
15일쯤 되었을 무렵 엠블렌스에 다 실려가고
하루하루 이렇게 시간이 가서
오늘이 39일째
내일이면 40일을 채웁니다.

40일을 굶으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보기가 힘들게
외양이 변하나 봅니다.
.

40일동안 굶는 시험을 받았던 주님을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시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격려도 없이
홀로 광야에서 밤낮을 보내셔야 했습니다.

.

저는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배가 고프면  힘이 없고 어지럽고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아마도 저장된 에너지가 부족한 때문이라고 변명을 합니다만..........
.

생각해 보니
저는 40일간 굶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작은 시험이 아니라는 것도..........











왜 어린아이여야 하는가


주님누림 2014-08-2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9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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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rage로 작업="">


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이 복잡해집니다.

무엇이 내게 유익인가하는 너무 많은 고려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눈은 뭔가 꿍꿍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에 어떤 것에 천작했던 것이 만약 아니라면
그것을 버리고 돌이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회복을 보고 그 안의 진리를 보았을 때
전에 붙잡고 있던 기독교를 내어버리고 즉시 돌이키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지방교회안에서 적당히 마음의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가
자기의 안위나 유익의 저울추가 기우는 것에 따라 왔다갔다 합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꿍꿍이가 많은 사람이 잘먹고 잘살기 마련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에 있어서는....
어린아이같지 아니하면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기가 힘듭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늘에 계신 창조주 아버지의 개폐에 달린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사람의 지혜나 지식을 무효화시키고
오직 순수한 어린아이같은 덕목을 더 크게 하시기로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같음이  창조주가 보기에 더 큰 덕목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