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서른 셋이나 죽인 사람도 회개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
사람이 용서받지 못할 만큼의 큰 죄란 없다.
또한 죄의 경중에 따라서 얼마큼 크게 오랫동안 돌이켜야 한다는 법도 없다.
단 한순간의 돌이킴으로도
그 돌이킴이 돌이킴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하나님이 인정할만한 그런 것이라면
주여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고백하나 만으로도
그는 사후 낙원으로 이끌림 받을 수 있음을
주님은 확증하셨다.
십자가위의 강도를 보라.
하필 그가 그 순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
그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자기의 잘못에 대해 통회함과
주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계시가..)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충분히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욕과 죄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돌고 돌아 겨우
십자가위에서 주님을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치욕과 형벌과 고통의 십자가는
차라리 안태어나는 것이 좋았을지 몰랐을 그의 인생이 역전되는 장소였다.
이런 인생의 역전은 이 땅의 어떤 부귀나 영광을 취하는 것과 비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평생을 경건의 모양을 취했던 율법학자나 바리새인이나 성경교사들이
얻지 못한 구원을
어떤 한 죄인은 형틀에서 받았던 것을..
이것이 참된 인생의 역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조건을 가진
말하자면 같은 기회를 가진
그 옆의 또 하나의 강도는 구원받지 못했다
밖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볼 때....
그의 마음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직하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죽는 순간까지도 진지하지 못하며
주님을 희롱하고 욕하며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구원을 받는데에 대해 필요한 자격요건은
주님이 이루신 일들을 말씀으로 학습하는
주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에 확증하는 외적인 요건이 아니라
그 마음의 정직함에 달려 있는 것임을 본다.
정직함은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정직함이다.
모든 사물에 대한 정직함이다.
그 정직함은 홀로 자신을 절대자 앞에 놓게 한다.
벌거벗은 상황의 있는 그대로.........
그럴 때 주님은 그 사람안에서 무언가를 하시는 것이다.
말씀이 그것을 마치 동전을 잃어버린 여인이 그것을 찾기 위해
온 바닥을 쓸고 뒤집어서 찾아내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그대로
그 안에 상실된 그러나 귀한 어떤 것을 되찾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은 돌이킨다.
그 장소가 십자가 형틀이 되었든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순간이던
참상위이던
화장실이던...
밖의 장소가 그 어디이던 간에......
한 사람이 구원받는 사건은 너무나도 비밀스럽게 내재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없을 때..극적인 순간에는
단 몇초도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우산을 옆에 놓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구 옆에 로또 복권을 파는 곳에 서있는
어떤 남자를 보았습니다.
행색으로 보아..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모양새...
그는 표정이 없기도하면서 굳고 마른 얼굴로...
몇개의 복권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위의 전광판에는
일 등 당첨 누적액 225억
이라는 빨간색이 번쩍 번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로또 복권이 아니라면
인출기에서 만원차리 10장을 빼낼 일도 없을지 모르는 그가
두리번 거리며
눈을 희번득이면서
신중하게 복권을 안주머니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 만원이나 또는 그보다 약간 더 되는 돈으로
샀을지 모릅니다.
로또 복권이 얼마나 하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의 전재산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주머니에 얼마 안되는 돈만 있으면 ??........
.
예전에 제 주머니가 궁색하던 시절
주머니 안에 몇천원이 있으면
할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넘치고 처지게 많던 시절..
카페에 가서 커피한 잔 시키고
몇시간이고 앉아서
수다떨고
음악듣고
빌린 책읽으면
하루가 잘도 갔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
돈이 별루 없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
또는 많은 것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
그래서
가난한 과부가 두렙돈을 다 헌금함에 넣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할 수 있는 건 단 한가지이므로
선택하기도 쉬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긴 터널
그 끝이 언제고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강요된 것들의 반복 속에
나는 언제쯤 자유로워질 것인가
나의 바람은 세상의 모든 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이 세상과 세상의 위로 바라지 않고 담대해지는 것
나의 약함 두려움이 범할 수 없는 엄위함이 되는 것
삶은 끝까지 견딜만한 가치가 있음을 간증하는 것
언젠가 어떤 형제님이
좌충우돌할 수 있는 청년의 특권에 대해서
말씀한 것이 기억납니다.
세상에서도..청년의 때에 이것저것 시도하며
실패하는 것에 대해선
못났다하지 않고
좋은 자산이라고 말하기도 하듯이
교회안에서
연장자에 대한 도리와
합당한 태도는 유지하되
과연 그것이 그러한가에 대한 신선한 시도와
몸으로 부딪혀 알려는
태도는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한
처세를 배우도록 강요당하는 사회입니다.
이런 것이 교회안에서도
청년들이 다만 연장한 자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굳어진다면
종교와 계급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복은 하되
영안에서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은
주님안에서,
영안에서의 제한을
우선으로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몸안에서의 제한은
사람안의 천연적인 야망과 허세와 욕심을
제한하며
주님의 인도를 함께 구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한 모색은
시도되어야하고
연장한 자들은 이들을 격려하며 제대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저 수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작사:morningstar / 작곡:Eugene / 편곡:Eugene*
내가 없어지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
자매는 나의 거울입니다..
나의 사람됨
나의 영적실재
그리고 내 인생의 성공여부는
내 자매의 내게 대한 마음에 새겨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형제님이 얼마나 계실는지..
실은 이것이 얼마나 찌르는 말인지...
이 땅에 완벽한 부부가 있어(결코 보이기 위한 것에서가 아닌)
...한 곳을 향해 마음을 합해
서로 격려하면서
서로 덮어주면서
서로 감싸주면서
서로 깊이 사랑하면서
나아가는
한 쌍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시 형제님들의 짐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출발이
상대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유없이 사랑하는 마음은...
천연적이든
영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물을 주면서
가꿀 수 있다면....
가능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마태복음 10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리라는 말씀을 구원받기전에 읽었다면
아마도 미리 실족했을지도 모릅니다..
화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말씀에 미리 걸렸던 것처럼...)
주님은 위 말씀에 이어..
최종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식구와 원수가 되고
그도 모잘라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십자가에 놓고
자기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고대의 군사들이 전쟁에 나갈 때(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들이 그를 낳은 어미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
말로는 다시 돌아올께~~하고 힘주어 말하지만
아마
마음 한 구석엔 다시 못올지도 모르는 비장한 마음으로
식구들의 모습을 마음안에 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도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으로 알고
전쟁에 나가는 것이어야 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과연 북한을 공격할 것이냐는 말들이
왔다갔다할 때에
과연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한국인이 얼마나 될는지 모릅니다.
미국이 과연 그렇게 할까하고 반문하는이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미국은 우방이어서 ..라는 믿음이 먼저여서 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가 전쟁에
휘말리게 될는지 아니될는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아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어느날 그렇게 세상은 마지막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세대에서건 다음 세대에서건..
........
어떤이가 주님앞에 헌신하고자 할 때
..그들을 막는 이들은 결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을 지극히 오랫동안 사랑했고
서로 의지해온 집안식구들...
그들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도와야할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함께 나가지 못하면 맘이라도 편하게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해야할
남은 식구들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거나
...반대방향으로 나아가 버린다면...
우찌 해야할까요...
이걸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린 그럴때 어쩌면 남은 식구들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딱하게 여길 지 모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실은 헌신하는 자를 놔주지 않은 것은
남은 식구들이 아니고
헌신하려는 자신이진 않았는지 .....
자기 집안식구가 보기에
오랫동안
그 아빠는, 그 엄마는, 그 자녀는
자신들을 위한 사람으로 보였는지 모릅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자신의 소유로
여겨졌던 그 사람이
자신들을 떠나려 한다고 할 때
..누구도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은
애초에
평소에
아빠는 엄마는 그리고 그 자녀는
이미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지레 마음에 포기하도록
그 자신이 먼저 포기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아빠로서 엄마로서
자녀로서 해야할 몫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 이런 잔인한 말처럼
원수로 여길 만큼...
그 마음안에서 선을 그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매일 같이 사는 식구들은
진즉에 알아 버렸을 것입니다.
일하다가도 말고
먼산을 바라보며
늘 넘어가야할 동네 밖으로 난 길을
자꾸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눈치채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같이 살면서도..
같이 살고 있지않는 그를...
언젠가 주님 자신이 그렇게 같이 살던 식구들
마리아 요셉 그리고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했던 그날 저녁처럼...
적어도 마리아는 ..칼이 그 가슴을 에이는듯한 아픔을
느끼면서도..그 예언의 말처럼...
순순히 그 손을 잡고 작별의 말을 고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약간 더
동하면서...
우리나라의 옛날 건축물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남산의 한옥마을
또는
안동의 하회마을에 가서 본
한옥의 아름다운 멋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 안에 대부분 갇혀 살았을 여인들을
생각해 보게 되고..
이조시대 특히 말기에 가서는
양반남자..
그리고 서자가 아닌 적자로
태어나서 웅지를 펼칠 기회가 주어진 경우가 아니면
...이 한반도는 정말 숨막히는
거대한 감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님이 자기 땅에서
선택한 민족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등돌림을 당하고
그날 빌라도 심판대앞에서
끝까지 품으려 했던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 당시
...우리는 그 우매함에 마음이 답답하지만...
생각해보면
종교의 그 답답함, 고집스러움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우월감..은
새삼스런 것이 아닙니다.
이조시대의 양반의 전형적인 초상을 보면
꽉 오므린 고집스러운 아집이 보이는 입술
거기다 의심이 가득찬 좁아진 눈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지가 보이지 않는
완강하게 보이는 이마주름....
우리나라 조선시대 말기의 역사를 공부할 때
정말 배우기도 싫었던
한심한 기록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충돌하는 가운데
저의 할머니 시대에 여인들이
좁은 집안 울타리에서 벗어나
책을 읽고 무엇인가 들을 공간이 있었다면
그곳은 아마 예배당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모든 말씀들은
....옥죄는 쾌쾌묵은 인습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눈을 떠준 계기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면서
그 무너질 성을 생각하고 통곡을 하셨지만...
그 아집스런 유대인덕분에
이방인인 우리들이 그 분깃에 참여할 수 있었음이
참 아이러니죠,..
사람으로서의 존엄성과
그것을 지지해준 절대자의 발견으로 부터 시작된
창조된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한
부지런한 추구뒤에
오늘날
이 시대에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누리는 모든 권리를
생각해 볼 때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안에서 자매들은 어떤 위치인지를 새삼 생각해 봅니다.
결코 그럴리는 없겠지만
주방에서 애찬을 열심히 만들어 손 접대를 잘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허드렛일을 다 맡아서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자매상이라고 여기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설마.
형제님들??...중의 어떤 분은..............
제가 이즘 많이 하는 성겪훈련이나 바람직한 가정생활을 참석해보진 않았지만,
들은 바로는
주님을 함께 누리며 분깃을 함께 나누는 것은
모든 일은 함께 다 같이 나누어서 하는 것이라고 들었기에 ...^^말입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으로 결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놀라운 사실.
그리스도의 농장인 우리 안에
식물로서 자라는 그리스도는
분명히 식물의 생명으로 은유되고 있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은
광물질인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식물의 생명이 광물질이 될 수 있는지...
그러나 여기에는 납득할만한?
하나의 긴 과정이 포함
되어 있지요...
우리가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석탄은
고대의 식물이 땅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압력과 열로 인해 석탄이 된 것이라는 사실처럼,
처음에는
식물의 생명같이 여리고 연약한 그 것이
오랜 세월
공급과 소화와 동화와
그리고 무엇보다 긴 변화의 과정을 통해
건축이 가능한 단단한 건축재료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계속
거듭되는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젖과 같은 부드러운 음식으로
그리고 점점 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단단한 음식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가져옵니다.
단지 우리의 죄를 대신한 그리스도가 아닌
그와 함께 못박힌 그 자리에 함께 할...
....................
하나님과 우리의 긍극적인 목표는결국 우리로 하여금 좋은 땅인 그리스도안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 전서는 그안에 기록된 많은 문제들로 인해 그것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게 함으로 이 서신의 목적이 우리로 그리스도를 만유로 누리게 하는 것에 있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단지 분주한 성소의 뜰안에 머물러 있었다면 분명 많은 일들과 많은 말들과 많은 사건들을 접했을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많은 것들을 해냈다고 여길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주님 자신과는 분리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로 지성소안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며 그분과 함께 그분을 더 얻으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이제 뜰의 일을 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이 우리의 모든 실제의 교회생활이 이러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출발이 이러하다면 많은 문제들은 발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왜 결혼할 때 결혼식을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결혼식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결혼식을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후의 생활은 결국 같은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히 결혼식을 한 부부와
그냥 살림을 차린 부부와의 차이는
그 책임감과
그 부부로서의 의식에 차이에 있습니다.
많은 친척 친구들 앞에
결혼식을 통해
자신들이 결혼을 알리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 둘이 부부로서 앞으로 살겠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고...
그들의 결혼서약을 지키겠다는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식을 한 부부와
결혼식을 하지 않은 부부의
생활의 결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혼함을 알리지 않았을 경우
많은 아내들은 늘 마음에
꺼림과 불안함을 갖고 있습니다.
인정을 받지 않았고
남편의 사랑과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어합니다..
그래서 늦게라도 꼭 결혼식을 올리길 원합니다.
......
하나님은 이와같이...
공개적으로 그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분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신 모든 과정은
의로우셨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완벽한 댓가지불이었음을 보이심으로..
사단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셨을 뿐아니라
우리 또한 의롭다하심을 공표하신 것입니다.
그분 자신또한
결혼서약을 한 남편처럼
그후
사람이 아무리 밉게 행동한다 할지라도
결코 그 구속됨을 부인할 수 없도록
스스로 묶이신 것입니다.
단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진행형인
실제적인 그분 자신을
그분이 이룬 모든 사실과 함께
주심으로...
확증하셨고
보증하셨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며
사랑으로 반향하게 하신 것입니다..
실로 그분은 모든 사랑의 원형이며
실재이십니다..
이 주일에 다시 주님을 기념하며
..반향합니다...
모든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의
원류이신 그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