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약간 더
동하면서...
우리나라의 옛날 건축물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남산의 한옥마을
또는
안동의 하회마을에 가서 본
한옥의 아름다운 멋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그 안에 대부분 갇혀 살았을 여인들을
생각해 보게 되고..
이조시대 특히 말기에 가서는
양반남자..
그리고 서자가 아닌 적자로
태어나서 웅지를 펼칠 기회가 주어진 경우가 아니면
...이 한반도는 정말 숨막히는
거대한 감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님이 자기 땅에서
선택한 민족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등돌림을 당하고
그날 빌라도 심판대앞에서
끝까지 품으려 했던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 당시
...우리는 그 우매함에 마음이 답답하지만...
생각해보면
종교의 그 답답함, 고집스러움 그리고
얼토당토않은 우월감..은
새삼스런 것이 아닙니다.
이조시대의 양반의 전형적인 초상을 보면
꽉 오므린 고집스러운 아집이 보이는 입술
거기다 의심이 가득찬 좁아진 눈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여지가 보이지 않는
완강하게 보이는 이마주름....
우리나라 조선시대 말기의 역사를 공부할 때
정말 배우기도 싫었던
한심한 기록들...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충돌하는 가운데
저의 할머니 시대에 여인들이
좁은 집안 울타리에서 벗어나
책을 읽고 무엇인가 들을 공간이 있었다면
그곳은 아마 예배당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모든 말씀들은
....옥죄는 쾌쾌묵은 인습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눈을 떠준 계기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면서
그 무너질 성을 생각하고 통곡을 하셨지만...
그 아집스런 유대인덕분에
이방인인 우리들이 그 분깃에 참여할 수 있었음이
참 아이러니죠,..
사람으로서의 존엄성과
그것을 지지해준 절대자의 발견으로 부터 시작된
창조된 한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한
부지런한 추구뒤에
오늘날
이 시대에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누리는 모든 권리를
생각해 볼 때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안에서 자매들은 어떤 위치인지를 새삼 생각해 봅니다.
결코 그럴리는 없겠지만
주방에서 애찬을 열심히 만들어 손 접대를 잘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허드렛일을 다 맡아서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자매상이라고 여기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설마.
형제님들??...중의 어떤 분은..............
제가 이즘 많이 하는 성겪훈련이나 바람직한 가정생활을 참석해보진 않았지만,
들은 바로는
주님을 함께 누리며 분깃을 함께 나누는 것은
모든 일은 함께 다 같이 나누어서 하는 것이라고 들었기에 ...^^말입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으로 결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놀라운 사실.
그리스도의 농장인 우리 안에
식물로서 자라는 그리스도는
분명히 식물의 생명으로 은유되고 있지만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은
광물질인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식물의 생명이 광물질이 될 수 있는지...
그러나 여기에는 납득할만한?
하나의 긴 과정이 포함
되어 있지요...
우리가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석탄은
고대의 식물이 땅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압력과 열로 인해 석탄이 된 것이라는 사실처럼,
처음에는
식물의 생명같이 여리고 연약한 그 것이
오랜 세월
공급과 소화와 동화와
그리고 무엇보다 긴 변화의 과정을 통해
건축이 가능한 단단한 건축재료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계속
거듭되는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젖과 같은 부드러운 음식으로
그리고 점점 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단단한 음식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가져옵니다.
단지 우리의 죄를 대신한 그리스도가 아닌
그와 함께 못박힌 그 자리에 함께 할...
....................
하나님과 우리의 긍극적인 목표는결국 우리로 하여금 좋은 땅인 그리스도안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 전서는 그안에 기록된 많은 문제들로 인해 그것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게 함으로 이 서신의 목적이 우리로 그리스도를 만유로 누리게 하는 것에 있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단지 분주한 성소의 뜰안에 머물러 있었다면 분명 많은 일들과 많은 말들과 많은 사건들을 접했을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많은 것들을 해냈다고 여길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주님 자신과는 분리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로 지성소안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며 그분과 함께 그분을 더 얻으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이제 뜰의 일을 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이 우리의 모든 실제의 교회생활이 이러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출발이 이러하다면 많은 문제들은 발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왜 결혼할 때 결혼식을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 결혼식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결혼식을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후의 생활은 결국 같은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차이가 있는 것은
확실히 결혼식을 한 부부와
그냥 살림을 차린 부부와의 차이는
그 책임감과
그 부부로서의 의식에 차이에 있습니다.
많은 친척 친구들 앞에
결혼식을 통해
자신들이 결혼을 알리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 둘이 부부로서 앞으로 살겠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고...
그들의 결혼서약을 지키겠다는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식을 한 부부와
결혼식을 하지 않은 부부의
생활의 결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혼함을 알리지 않았을 경우
많은 아내들은 늘 마음에
꺼림과 불안함을 갖고 있습니다.
인정을 받지 않았고
남편의 사랑과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어합니다..
그래서 늦게라도 꼭 결혼식을 올리길 원합니다.
......
하나님은 이와같이...
공개적으로 그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분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신 모든 과정은
의로우셨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완벽한 댓가지불이었음을 보이심으로..
사단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보이셨을 뿐아니라
우리 또한 의롭다하심을 공표하신 것입니다.
그분 자신또한
결혼서약을 한 남편처럼
그후
사람이 아무리 밉게 행동한다 할지라도
결코 그 구속됨을 부인할 수 없도록
스스로 묶이신 것입니다.
단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진행형인
실제적인 그분 자신을
그분이 이룬 모든 사실과 함께
주심으로...
확증하셨고
보증하셨고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며
사랑으로 반향하게 하신 것입니다..
실로 그분은 모든 사랑의 원형이며
실재이십니다..
이 주일에 다시 주님을 기념하며
..반향합니다...
모든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의
원류이신 그분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면서...
한가지 발견한 게 있습니다.
처음엔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게 됩니다.
물체 하나하나를 보게 되고,
그것이 기교적으로 잘 표현이 되었는가를 보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통일이 안되고
좀 딱딱해 보입니다.또..
경직되어 보입니다.
모든 게 그렇지만
그림은.... 보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 푸근하게 하고
안식을 느껴야 합니다...
비록 비감한 느낌을 주는 주제라 하더라도...
스케치를 보면서..
문득 요즘 발견한 것은
갈수록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그 안에 공기가 있고
바람이 지나가는 공간의 느낌...
그리고 아주 편하고 자연스런 느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장족의 발전입니다.
결국 보게 되는 것을
추구하게 되고
표현하게 되니까요..
영적인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보게 되는 것을
추구하게 되며
그리고
표현하게 되는...하나의 노정입니다.
우리가 잃었던
애초의 모습을....
.............
어떤 국회의원이..평상복 차림으로 선서식에 왔다고
파문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형제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린 관습에 의해서 움직이지 말고
늘 영의 인도함을 따라서 행해야한다고 말입니다.
영의 인도함이 있다면
때로는 집회소의 의자를 거꾸로 해도 된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늘 마음에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었습니다.
하나의 파격적인 도전으로...
그런데
과연 영의 인도함이
집회소의 의자를 거꾸로 놓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린 습관과 관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교회생활에서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도 의자를 거꾸로 놓거나
그와 비슷한 파격이 실행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물질적인 의미에서는..
그러나
영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파격적인 실행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낸 적은 있었습니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가져갈 때..
마치 가속도가 붙은 차가
주변을 살필 것도 없이
그 힘으로 내쳐 달리는 것처럼...
그러나 또 반대로
부작용이 번거롭고 두려워서
지난 실행에 고착되어있는 것은
물이 고여 썩어있는 종교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도 이땅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불변의 진리외에는
늘 살펴서
그때 그때의 즉각적인 인도와 모색을
구하며 가장 좋은 길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많은 교통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인도자에 대한 우리의 경직된 관념은
교회집회소에서의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쓰레기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줍고 계시던
어떤 장로형제님...(다른 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의 모습은
섬기는 자로서의 마땅히?할 일들을 가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
요컨데 천편일률적인 원칙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주님을 섬기기위한 탁월한 미덕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특출한 사랑...........
그리고 비할 데 없는 관용..........
비할 데 없는 신실함.......
절대적인 겸손..............
최고의 순수성...........
지극히 뛰어난 거룩과 의.
밝음과 곧음.....
이 모든 항목들을 사랑하고
마음에 새깁니다....
이 세상에 교만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이 아주 밖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고
안으로 감춰진 경우도 있지만
거기다 타고난 각각의 괴상한 성겪까지 더하면
이것은 더 처리하기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깨어져 버려서
인생자체가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렇게 바닥에 내려앉아 보아야
비로소
교만이라는 굴레를 온전히 벗게 되는 것인지요
.
교만은 자신의 영적 상황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몸의 자람까지도
더디게 하는 요소인 것을 봅니다.
몸의 어디가 정상이 아니면
많은 에너지가 그 부분에 쏠리게 되고
많은 양분이 그쪽으로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몸이 아픈 경우이겠고............
몸의 지체들은 각각 기능과 에너지와 활동을 가져야하는데
한 지체만이 너무나 활발하면
다른 지체들은 직업을 잃게 되고
그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면
기능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지체가 각각의 몫과 역활과 기능과 혜택을 주고 받으면서
아름답게 조화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겠죠.
.
.
.
방송프로그램중에 뉴스후라는 프로그램명이 생각나서 제목을 소그룹후라고 하고,...
어젯저녁 소그룹을 생각해보면서
후기를 써볼 마음이 생겼습니다(설겆이 하다가..)
그러고 보면 설겆이는 그저 가벼운 노동이지만
제게 있어선 아주 고요히 돌이켜 보거나
주님과 대화할 그런 시간인듯.........
아무튼.
어젯저녁은 정말 열띤 집회였네요^^
그렇게 한꺼번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와글와글 공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쨌든 어메이징한 상황~~~
여기 엘시사이트에서 행복한 이라는 닉으로 방문하는 형제님!
형제님이 가지신
아주 긍정적인 믿음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믿음과 마인드로 지체들을 돌보면
남아있는 행복한 새신자를 유지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을 듯 합니다.
또한 어젯저녁 월남국수로 인해
주님안에서 행복한 이라는 닉으로 표현된 행복에의 갈망이 좀 해갈이 되셨다면
저는 오늘의 피곤이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여깁니다^^
...................
^^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제 주제는 알에스쥐에 관한 것이었죠.
사람들이 말씀을 대하려는 열망을 가지는 것 자체도 중요한 관문이지만
말씀을 제대로 흡수하기 위해서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문제도 중요한 관문입니다.
말씀을 대함으로 마땅히 얻어야할 유익이 없거나 적다면
말씀을 대하는 객관적이고도 명철한 생각이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요.
이것은 다먼 똑똑한 머리를 가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올바르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굽고 흐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셨지만,
올바른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깨달아 구원을 얻는 깃을 원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 땅의 많은 타락과 부정들은
명철하면서도 객관적이며 정직하고 올바른 마음이 아닌
흐려지고 주관적이고 거짓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살아가면서 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 그리고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일들.............
이런 것들이 참으로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하고 답답하게 하지만,
그러나 괜찮습니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니까요.
주변의 부정적인 모든 상황들은
우리가 가진
그리고 우리가 바라고 있는
모든 긍정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어쩔 수 없이 자기자신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신의 승리
자신의 헌신
자신의 성숙
자신의 뭐 뭐 뭐...
결국 자신 자신 자신
이 글자가 들어가고야 말이 되는 그 단계에서
그러나
앞의 자신이라는 단어를 빼고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승리와 헌신 성숙.....뒤에
..........
오래동안 결코 올 거 같지 않던 봄이
그렇게 짧게 빛나는 순간으로 지나가 버리고
마치 봄이란 것이 없던 거 처럼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는 것처럼.......
주님이 신랑으로 오셔서
한 천년
그러나 영원의 관점으로 보면 하루밤의 꿈과 같은
혼인날의 잔치는
지금 어쩌면 짧게 오려고 발버둥치는 봄처럼
그렇게
찬란하지만
그렇게
짧게 가버리고
그날을 맛보고
영원내내 회억할 특권을 가진 이는 극소수이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갈망을 위하여
또는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내 한 목숨...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사로잡혔던 이들처럼...
그분의 갈망에 하나되는
긍휼이 함께 하길......
합당하게 주님을 섬기는 길을 알게 되길....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길....
...
결혼할 자녀를 둔 분들은
그 자녀가 평온?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러 저런 충고를 자녀들에게 하기 마련이지만....
만약 제가 자녀에게 한다면...........
역시 구시대의 지혜로운 어른들이 하듯
그런 범주일 수 밖에 없음을 발견합니다.
......
왜냐하면
결국
사람이란 것이 늘 같은 한계내에서 한계지워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제한된 존재임을 발견함 때문입니다.
선대인생의 모든 좌충우돌된 체험에서 얻은 교훈을 충분히 숙지하여
많은 시행착오의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성경안에서
그리고 인류의 역사안에서
작게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 자신의 체험의 범주에서 힘껏 한번에 도약하여
일보 진전된 삶을 사는 사람을 보기란 거의 힘든 때문입니다.
한 사람안에 형성된 성겪과 가치관과 기호와 인격의 거의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았는가에 크게 좌우됨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선대라는 것이 결국 타락한 인류이고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타락된 인성의 악영향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타락된 인성이
어렸을 때부터
억제되고 통제된 환경속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도록 길리워지고
좋은 교육을 통해 인성이 함양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덜 고통을 주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자라났는가를 볼 수 밖에 없음이 사실입니다.
만약 이런 면에서
거의 흠잡을 데 없는 한 청년이 있다고 봅시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청년이 이런 류의 청년인지요..
(확신할 수 없으나...)
주님은 그 청년을 보자마자 사랑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그 마음에 사악함이나 술수나 삐뚤어짐이 없이
아마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며 그 선대로 부터 받은 바 계명에 충실하도록 자신을 겸비한..
주님은 그를 보자마자....
자신을 따르도록 청하였습니다.
그러나..그는 너무나 총명하여 주님이 부르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댓가를 요구하는 것인지
너무나 환히 꿰뚫어보았나 봅니다.
그렇게 완전한 그릇이건만...
그에게 재물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눈을 가리는 재물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이
결정적인 장애였습니다.
이 예화는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마지막으로 제게해야할 장애물은
재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제자들은
이 청년과 비할 때......
아주 괴상한 성격과 문제투성이의...그릇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주님을 따랐던 댓가를 치루었기 때문에...
복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한면...
이 일들을 생각할 때
대부분 많은 문제들을 가진 우리들이
외려 격려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추운 겨울 강에서 침례를 집례하신 후 목사님께서 침례
받은 한 성도에게 물었다.
"물이 차지요?"
"아닙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집사가 덜덜 떨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그 사람을 물에 다시 집어 넣으세요.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에 몇번은 더 넣어야 될것 같아요.
.
.
이 글을 읽고 웃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믿음은...
차가운 것을 차갑다 말하는 것일까요?
차갑지만 차갑지 않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사무엘의 말년에 그가 한 간증은 아주 인상이 깊습니다
누구든 이런 저런 재리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본다면
이런 것을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
알게 된 때문인지요.....
사람의 약함과 한계와 어리섞음과 이런저런 욕심과
허영과 야심과 교만과 재물에의 탐욕등
온갖 소극적인 것이 우리의 존재안에 조성되어 있음!!!
차라리...
실패함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어떻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높은 요구를 볼 수 있으며
또한 도달하며 이룰 수 있는지요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할수 없는 자가 할 수 있게 한
이기는 자의 길은 외려 더욱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단앞에 자랑하시게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
불가능을 가능케 한 하나님의 능이며
또한
자신안의 소극적인 모든 것을 떨쳐버리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과 자기부인의 댓가를 치루었는지
그 자체가 증거가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