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매력이 있는 이유


주님누림 2014-08-1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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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교황이 전의 교황들보다 검소한 편이라고 하는데

광화문에서 있었던 행진이나 미사하는 걸 보면서

역시 천주교의 예배는 화려한 의복과 

근사한 배경의 높은 천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없는 지루한 껍데기 의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아마도 유대교 성전의 의식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사장의 화려한 의복

금으로 도배한 럭셔리한 내부장식등...

그런데

그것이 전부인 시절에

그것을 박차고 전면 부정했던

침례요한은 얼마나 파격적이고 용감한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구약의 마지막 제사장은 그렇게 철저히 유대교의 껍질을 깨버리고

시대의 종결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런 그는 주님이 인정한 바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였습니다.


그런 그일지라도 결국에는 예수가 바로 그가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던

그 메시아인지

의심하며 절망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토록 확신하며 예수를 천거했던 그였을 지라도..............

왜 였을까?

어쩌면 침레요한이 생각하고 바랐고 상상했던 예수는 달랐을지도 모르겠고

혹은 자신을 구하기위해  아무런 손길도 주지 않은 원망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이런 시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혹에 핍박에 그리고 어떤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왔을 때 

과연 예수가 하나님인가?

그리고 회복은 정말 회복인가?

혹은

현재의 교회의 상황을 보면서도

자신은 마치 회복의 일부가 아닌양 팔짱끼고 견제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지내고 있던지

불구경하면서 남의 일인양 자신의 안위나 조그만 재미를 찾으면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던지

......................................


이렇게 성경은 어떤 상황도 미화하거나 건너뛰지 않고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으면서

많은 시사점을 오늘날에도 던지고 있습니다.







고난에의 초대


주님누림 2014-08-1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8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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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드지에 연필파스텔


타락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의 역사는 대립과 갈등의 양분의 구조로 이어져왔습니다.

가진자와 못가진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

영적인 것도 어쩌면 대립된 구조로 이어져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대 사탄의 의지

믿는 자와 믿지 많는 자

참되게 믿는 자와 거짓 믿는 자들

순수한 자들과 순수치 못한 의도로 믿는 자들


이럴 때 순수하게 믿는 자 혹은 순수하게 믿으려 하는 자들은

어떤 형태로던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최초로 그들이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말씀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이 받게 될 박해와 핍박 반대 고난 등등을 예언하셨지만

반대로 그들이 얻게 된 공급과 보호와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대지역 여름섞임모임


소지역삶 2014-08-1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821.html
남해와 동해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던 싯점
심심산천에 들어가니 무풍지대
그리고 서늘하게조차 느껴지는 기온
.......................

그 어느때 보다도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졌던 휴가같은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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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의 연사가 조금씩 갈라서 말씀을 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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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연스럽고 누림직했던 침례행사
예정에 없던 분도 물에 첨벙잠겨 장사지내고 싶게 만든 축제같고 놀이같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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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드리 나무밑의 정자도 있고.......
모닥불이 따뜻하게 느껴질만큼의 서늘한 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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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고 시릴만큼 차가운 계곡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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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 덕유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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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이던가 하루 세차례씩 집회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또 말씀복습하고.......
야외에 나갔으나 나간 것 같지도 않은 그때와

자연을 충분히 즐길 여유가 있는 지금중
 어느 것이 더 좋은가??
.
.







몇번을 강조해도 모자른 종교의 악함


주님누림 2014-08-1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7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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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즘 그의 인기가 아주 좋은 듯 한데요....

천주교내에 만연한 많은 악행들로 인해
아마도 그것에 대한 자체적인 반동으로  
개혁적인 교황이 선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카톨릭이 존속하기 위한 자체정화시스템이 발동된 것이 아닐까하는.............

그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치적인 움직임과 모사와 음모를 생각할 때

정말 놀랍고 소름끼치는 이 강력한 종교조직이 
언제쯤이나 허물어질까?에 대한 답은

결국 주님의 재림시에나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고 그를 따르고 칭송하는 움직임이 있기 시작하면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주님에 대해 의심과 경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 주님은 어떻게 행동하셨는가

자신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자격이 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셨고
죄인인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으며
죄인들과 함께하는 잔치에 참여하셨습니다.

어떤 정치적인 제스추어나 가림이나 고려도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어떤 타협이나 어떤 조절이나 어떤 밀실에서의 회동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유대교를 버리셨음을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종교를 미워하십니다.
종교는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중시하지 않고 그들의 세와 존속과 번영을 관심하는 종교는
하나님을 위하는 척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 회복도 종교를 미워하고 종교를 견제하는 노선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순수한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주님누림 2014-08-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726.html
순수함이란 무엇인가?

세상에서도 
그리고 교회안에서도 
찾기 힘든 이 미덕은 
규정하거나 인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순수함이란 것이 워낙 드문 미덕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사람의 한계내에서 각각의 관념하에 규정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순수함은
자칫 마음이 여림이나 생각이 어림 
외곬수같은 경직됨과 
융통성없는 딱딱함과 혼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순수함이란 미숙한 이러저러한 상태가 아니라 
연단되어 증명이 된 내면의 성숙된 투명성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이 세상뿐 아니라
교회안에서의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하필 이 문제는 느끼한?순대국을 먹으면서 제기된 주제였습니다..)

교회의 이상에 대해 분명할 뿐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것외에
다른 의도가 없을 때
즉 순수할 때에야 
그 열매를 볼 수 있는데...
우리 타락한 사람들에게서 그런 성정을 보기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리형제님조차도 순수한 형제를 거의 볼 수 없다는 교통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일까?
적어도 형제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쫌 많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

막 교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때는 모든 게 순수하고 모든 게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었을 때조차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순수치 못한 동기들이 이미 싹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던 제 1세대인 제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크냐고 은근히 다투었는데
우직하고 직선적이고 절대적인 베드로
주님을 알아보고 사랑한 요한이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약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혀주길 요구했던 
열렬한 치맛바람의 모친등등을 생각해 볼 때
결국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제 1세대가 그럴진대 
교회는 계속 타락해오고 계속 개혁을 하고 또 회복을 하고 등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지요...............

.
결국 
절대적인 절망도 
자기최면의 긍정적인 속임도 없이
...................









우리가 본 이상으로 인해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음


주님누림 2014-08-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7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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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자이며 꼼수의 귀재인 야곱은

집에서 빈둥거리며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에게서는 장자의 축복을 속여 받는둥

부모의 유업을 차지히기 위한 온갖 수를 부렸으나
결국은 집에서 쫓겨나듯 도망쳐 나와
밤에 몸을 뉘일 곳이 없어
들판에서 돌베게하며 잠을 청해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절망의 순간에 돌연 기대하지 않았던
꿈을 꾸게 됩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가 있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속에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부연 비현실적인 광경이 아니라
너무나 생생하여 현실보다도 더 실재적인 
사실!!!! 이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에게 매우 큰 격려였습니다.
그런 광경을 본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사는 환경은 바뀌지도 바뀔 필요?도 없을 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이상을 봐야합니다.










사람은 왜 돈으로 목을 매는가


주님누림 2014-08-0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6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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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돈이 필요없는가?

아닙니다.

돈이  있어야  뱅기타고 열흘씩 여름훈련도  가는 영적 호사도 누리고
돈이 있어야 가끔 남이 차려주는 밥상도 받는 여유도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노후가 서럽지도 않고
아이들도 귀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귀한 자식티가 나면 군대가서도 폭행의 대상이 되지 않고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세월호 참사같은 일도 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 있으면 다른 사람의 높은 학력 지위 그 딴거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돈 앞에 다 굴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날만의 현상일까요?

떼귀신으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놓아주는게 당면한 일인가
아님 자신의 돼지들을 지키는게 더 중요한 일인가
.........................
그 동네의 사람들의 선택은..
주님보고 떠나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떼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구출하는 것보다
그들의 돼지떼가 더 귀한 것입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돈은 많을 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귀한 어떤 것이 올 때
그것은 제 2차가 될 만큼의
값어치가 있을 뿐입니다.








피곤하신 예수


주님누림 2014-08-0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6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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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이 될 때부터 

예수는 참 피곤하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 사역을 시작하고 나니 전보다 더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각종 병을 고친다더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문둥병자도 오고

백부장도 오고

제자의 집에 들어가 장모의 열병도 고치고 ,,

아마도 먹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부족하셨을 것입니다.


조금의 쉴틈도 없을 지경이니 사람들이 에워쌀 때

예수는 건너편으로 피할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풍랑이 치는 바다한가운데서도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지셨을 것입니다.

........................

아마도 주님은 사람으로서 살 때

누구보다도 힘들고 피곤하게 사셨을 것입니다.

.........................

그런 상황가운데서도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얻는 것만 관심했습니다.






신언에 대한 고정된 관념: 신언은 해석하기 어려운 개념의 나열이다?


주님누림 2014-07-31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6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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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에서 발견한 대추 열매, 이렇게 파랗고 제대로 열매를 맺고 있는 대추나무를 첨으로 봤음.......)


성경에 대한 라이프스타디가 끝난 후

결정연구에 들어가면서 좀 더 깊은 영적 개념을 표현하다보니

리형제님의 말씀대로

전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영적 언어들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교회에 연결된 새로운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하는 것은

회복안의 말씀이 너무 어렵고  용어가 낯설다라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우리는 보통

회복안의 말씀의 수준은 대학원 수준이라고 으스대며? 말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맞는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중학교정도의 학습정도에서는 대학원에서 다루는 전문용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의 주님의 말씀은

주님이 산에 올라가서

따라온 무리들에게 설파한 소위 산상수훈인데

이해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져온 일화로 빗대어 친절하게 설명하시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의 권위는 말하는 용어의 난해함에 있지 않고

그 말씀안에 담겨있는 신성한 빛비춤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 찔림과 함께 만져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언도

피차에 공급받기에도

새로운 사람이 듣기에도

심지어는

중학생정도의 아이가 듣기에도

어렵지 않게 말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멧시지를 읽고 나서 빛을 받은 것이나

깨달은 것이나

체험한 것을

평상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안에서 풀어서 교통하는 것이

멧시지를 요약하거나 크게 선포하는 것보다

때로는

더 어필하고

더 공급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시회 나들이..


일상누림 2014-07-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637.html
국립현대미술관부터 삼청동에 이르는 화랑가 산책...
대개는 흠. 그렇군.
그러면서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치기 마련인데...

장잉난이라고 하는 33세의 비교적 젊은 중국화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그림은 흔히 그렇게 분류되기 마련인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에다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의 화면을 연상케하는..........

찬찬히 들여다보면 화가가 사람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는 듯한
그의 내면의 부드러운 호소를 듣게하는...............

그의 그림에 급호감을 나타내자
카운터에 있는 아가씨가
그의 그림을 작게 인쇄한 두꺼운 판넬을 하나 주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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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전시장에는
어른도 아이도 시원하게 놀기 쉽게
사우나실처럼 시원한 실분수도 뿜어주고
어른용 퐁퐁놀이기구도 있는...
..........
이것도 일종의 건축설치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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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주님누림 2014-07-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6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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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율법은

밖의 결과를 놓고 정죄하는 것을 다룹니다.

하지만 신약의 율법은

결과에 이르는 동기를 다룹니다.


사실 우리는 다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노하는 잘못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하나님의 높은 율법의 요구를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약의 시작은 이렇게

............우리는 철저히 무능하다

.............우리는 철저히 할 수 없다

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얼마있다가

신약의 높은 율법의 요구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신령한 자아발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할 수 없음의 나락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하시게 하는..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세상과 밀접한 가운데 살아남기...


일상누림 2014-07-2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5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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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악산 , 디지털 ,  와콤ctl 480으로  인스피레이션도구로 그렸음)


어쩌다 보니 저의 소그룹에는 나 그림그려요 혹은 그렸어요  라고 말하는 3명의 자매와

바이얼린해요 라는 자매 1명과

대금불어요 라는 형제님 1명등

퍼센트상 예술쪽으로 종사내지 그냥 좀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입니다.

덕분에 저도 왜 난 쫌 다르지?라고 굳이 질문하지 않고서도

비교적 맘편하게 지내고 있음을 감사하면서도...............

한면

왜 회복안의 멧세지에서

 세상이라고 말하면

항상 그 항목중에

가감없이 음악 미술등이 세상으로 분류되었는가?에 대해

꼭 할 수 없이 새롭게 소위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이 아닐 수도 또 세상일 수도 있는

그 미묘한 다름을 설명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감당하는 불편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

만약 정말 소위 미술이 정말 세상이 되려하면

즉 진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결코 교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림은 그냥 직업이 될 수 없나?

그렇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냥 좀 그림을 그려서 팔거나 그림을 가르치거나 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로는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술이란 믿음처럼 전면적인 삶의 방식 사고의 방식 존재의 방식이 되었을 때에야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사실은 결혼생활도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연을 갖지 않는게 피차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가장 이상적인 그림 그리는 사람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해야할 여러 많은 일상의 일들에서 자유로워야하고

그냥 빈둥대다가 문득 어떤 날은 종일 그림그리다가 등등 모든 것이 기분내키는대로?

살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림그리면서 아래 떨어지는 작은 먼지 부스러기가 문득 신경쓰고 더러워진 바닥을

걸레로 닦아야지..하는 거추장스런 일거리가 자꾸 압박하면 ?

..................


그래서 살림살이와 그림그리기가 서로 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생활의 먼지를 양상하지 않는 도구인

컴으로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 선회할 수 밖에 없어서...

...........
결국 얼마전에 노트북과 가장 저가의 와콤을 구입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파스텔먼지를 날리는 그림도 가끔  그리면서.............

...........

내게 있어 그림은..

마치 일기쓰거나 메모를 남기거나 하는 일상의 기록같은 소소한 취미.............






주님의 사랑스러움을 외면적으로 밝히려는 사람의 헛된 노력


주님누림 2014-07-1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561.html

지난 주일 서울교회소식지의 특별교통은
주님의 사랑스러움이
우리가 주님에대한 사랑의 어떠함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외모의 아름다움 ,
적어도
인상이라 불리우는 것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화가들은 예수의 인물상을 상상해서
혹은 실존인물을 참고하여
그려내곤 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여 
그때 당시의 서른살의 유대사람들의 외모를 근거로 하여
예수의 외모를 짐작하여
그려내기도 하였습니다.

.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이 결코 아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사랑스러움은 결코
외모적인 인상에 달려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심지어 예수는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


성육신된 메시야를 눈앞에 놓고도
수많은 성경학자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은
그들이 매일 상고하는 성경에서 증거하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본 말씀이 내재적인 의미에서 그들의 존재에 새겨졌다면
예수가 설파하는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내면에서 환해지는 체험을 했었을 것입니다.

아래의 두 그림은
하나는 평범한 유대 남자의 거친 외모를 그려내고 있는데
과연 예수의 외모가 이러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웬지 모든 사람들을 긍휼과 따뜻함으로 바라본
그런 내적인 사랑스러움은 느껴지지 않네요

또하나
카라치의 예수의 상은 비교적 절제된 고통과 슬픔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듯 싶지만
너무나 말끔하고 섬세하게 잘 생긴? 예수는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
예수의 성육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믿는 이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날 대하는 예수는
말씀안에서  실재적인 그분의 내면을 만지고
그분의 사랑스러움을 만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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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잡지 `포퓰러 머캐닉스(Popular Mechanis)'가 최신호에 실은 이스라엘과 영국의 법인류학자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공동 노력을 통해 재현한 예수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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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리의 바로크 시대의 화가 Annibale Carracci의 가시면류관을 쓰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유화


율법과 생명의 율의 차이


주님누림 2014-07-1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5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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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시절

역사는 정말 재미없는 암기과목이었습니다.

좀 나이가 들고 나서야

역사는 자신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며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조망을 얻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구약시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과 규례는

어떤 사람들에겐 보다 더 깊게 내재적인 의미로 다가왔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그저 외형적으로 지켜야하는 굴레같은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신약에 와서

비로서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가능케하는

생명의 율에 대해 듣습니다.

그리고 그걸 취합니다.


안의 생명의 느낌에 따라

평강과 안식이 허락하는 것을 따라 행하는 것이 ,

치우쳐진 관념이나 육의 욕심으로 행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기쁘고

 더 만족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르치며 전파하시고 고치심


주님누림 2014-07-14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5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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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점점 주변의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의 일생은
죄와 사망 사이에서
살다가
죄로 인한 육신의 병으로 약해져서
죽음에 이르는 수순을 밟게 되며

심지어는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어버린
믿는 이라도
육신에 있는 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진리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고

더하여
육신의 약함과 병듬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안에서 병고침을 그다지 많이 강조하고 있진 않더라도
이런 치유를
주님이 그분의 사역에서 자주 행하셨다는 것에 근거하여
주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원칙으로 적용되는가


주님누림 2014-07-0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4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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웟치만니는 1948년 메시지 중에서 '전쟁'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표명했습니다.


전쟁의 문제에 있어서 구약의 상황과 신약의 상황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전쟁의 하나님이시며, 가나안의 전쟁은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약에서 우리는 오늘 화평의 사자들이다. 주님은 여기서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분은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웠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다가 사람들로 주님을 체포하게 했을때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다. 그 때 주님은 즉시 "검을 집에 꽂으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하나님의 역사의 목적은 다 화목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칼은 다 칼집에 꽂혀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가? 우리 자신은 전쟁을 원치 않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서야 하고,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전쟁을 반대한다는 말은 아니다. 전쟁은 정부의 일이고 정부는 싸울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켜야 한다. 주님은 우리로 전쟁하는 사람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영은 이 시대에서 화평하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형제가 전쟁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면 반드시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가서 "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당신을 처리하는가에 관하여는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우리는 싸움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만일 어떤 형제가 전장에서 형제를 대면하고 있다면, 그는 당연히 싸울 수 없다. 상대방이 죄인이라 할 지라도 싸울 수 없다. 만일 싸운다면 바로 그의 영혼을 영원한 불못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싸우기 위한 군인이 될 수 없다.

이상의 것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국가 정권에 대하여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와 실행이다. 우리는 초신자에게 그들이 올바른 태도를 갖고 정직히 행할 수 있도록 이것을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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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것에 동의한다면 그리스도인인 어떤 형제는

며칠전과 같은 군대내 총격사건같은 순간에 임병장과 막닥트렸을 당시에도

총을 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만약 나라면 이런 상황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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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여러해전이긴 하지만 미국의 부시가 중동에 군대를 파견할 때

그리스도인인 그는 그 전쟁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에 대해 회복에서 이름만 대면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형제님이 말씀을 전하는 중에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이 聖戰 즉  성스런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곤혼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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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볼 때 어떤 상황에 대해

주님이 주신 영적인 느낌이 어떻게 적용되는가는

개개인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은

누가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안에서 말씀하시는 음성과 느낌을 따라

적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은 것은

주님은 결코 한가지 일에 대해

다르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

그러므로 어떤 일에 대해 견해가 다를 때


내 자신은 그저 작은 감자에 불과하고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영적 거인이라면


그저 간단하게 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그 분의 견해에 단지 아멘하는 것이 안전할까요?


아니면 감히 내 자신의 느낌이 합당하다고 내 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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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애(民族愛)와 교회생활


주님누림 2014-07-05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4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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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제들의 기질에 대하여 한때 외국형제들의 표현구는

 "브레이크 없는 트럭"이었죠.

덧붙여 회의적으로 표현된 구는

"몇명만 모이면 싸운다 왜? 누가 크냐?고"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브레이크 없는 트럭이란 표현은 '추진력이 좋다' 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디다 꼴아박거나 여러사람 다치게 하는 큰 사고를 유발하는 성질머리?가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신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시위가 한참이던 때 

미국의 티비에 비친 한국의 광경은

무시무시한 폭력시위와 연기자욱한 최류탄 가스로 점철된 영상이었는데,

특히 백년이상 전쟁없고 공해없는 푸르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의 한계로는

그 당시의 한국사회의 절박함이 보이기는 커녕

틈만 나면 서로 돌팔매질하고 가스를 쏘아대는 호전적인 사람들이란

편견을 갖게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당시 한국교포들중에는 한국사람들이란? 하면서 혀를 끌끌차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국형제들 중에도 한국사람들의 민족성이나 특성에 대해 안좋은 편견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비교적 최근에 대만교회를 방문하였는데  대북의 어떤 집회소에서

그곳의  비교적 약간 나이가 드신, 인도하는 분중의 하나였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몇마디 얘기하는 중에

한국교회 특히 서울교회의 인도하는 상황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비난하는 말을 하시는 걸

듣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면으론 맞는 말입니다.


그래 맞아요. 최근에는 더 기가막힌 일도 있죠

정권만 총리를 유임할 뿐 아니라 교회도 책임형제를 유임하더군요...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음영을 적나나하게 보여준 일이...

기독교계의 장로라는 분이 자신의 민족을 폄하하는 말을 소위 강단에 서서

토로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는 외부에서도 비난 받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비하하는 것이

일반화된 분위기에서 사는구나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나마 이 분이 온 국민의 비난과 반발에 찔끔하여 총리 후보에서스스로 물러났기에 망정이지

외국에서도 얼마나 비웃었을 것이며

우리 스스로도 열등한  자괴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뻔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민족이

정말 그렇게 형편이 없을까?


한가지 아는 것은 내 자신은 우리나라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연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어떤 비난을 하던 흠..모르쇠,..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누가 내 새끼에 대해 비난을 한다거나 입을 비죽거리는 모양새라도 비친다면

내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투사로 변신한다는 것이죠.......ㅎ.....


그러나 위로가 되는 것은

사도바울같은 영적 거인도 자신의 민족에 대해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얻길 간절히 구하였었다는 것입니다.






신선한 공기를 찾아....


일상누림 2014-07-0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4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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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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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부한 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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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분이 많이 함유된 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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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 통통한 애벌레와 아 시끄러 좀 조용히 해...

                                                        라고 할 만큼 왁자지껄한 새소리가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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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한 산소가 마구 쏟아져 내려오는 지점에서 가능한 한 오래 버티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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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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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깔끔한 민물새우찌게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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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이
뉴질랜드나
몽골의 초원을 가지 않아도 좋을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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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을 피서지로 추천합니다.

남들 몰려오기 전에 일박이일로...
평일에 가면 ............





혼을 사고 파는 세대가 마침내 도래한 것인가?


주님누림 2014-06-28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4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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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교회 방문시 우릴 접대하기위해 준비했던 양.

잠시뒤 이 양은 죽임 당하고 각이 떠져서 커다란 솥에 끓여졌음...............)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직장에 다닌 적이 있는 분들이 체험하는 공통된 자괴감은

월급 몇푼 주면서 마치 나를 전부 산듯한

굴욕적인 모드를 접하게 될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나의 가치 즉 나의 혼의 가치가 이것 밖에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것을 그저 나의 고용주와 나와의 지엽적인 관계가 아니라

정권대 국민

혹은

전세계를 움직이는 큰 손 대 나머지 인류의

대결관계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개인의 신상정보가 얼마전 노출되었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최근엔 병력기록이 특정 병원에 넘어가고 혹은 보험사등 이익단체에 넘어가고 있다는 얘길 들으며

그건 이미 정부가 전 국민의 신상명세,

수입과 지출 건강 가족관계 학력 기타등등의 정보를 다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적으로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넘어서서

이런 것이 다 돈과 연관되어 팔리고 있다는 .........


계시록 18장에

땅의 상인들 즉 재벌이나 거부들이 살고 파는 항목들 중에는

맨 나중에 나오는 항목인 사람의 영혼도 있음을 볼 수 있는데요.


과연 우리는 정말 이것이 실재가 되는 세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을 때 일어나는 일들....


주님누림 2014-06-27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lethim/524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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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분들이 간증하길

나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교회생활을 하거나 하게 될 줄을 몰랐다.

...............라고 말하는 걸 듣습니다.


제 자신을 생각할 때

교회안에 남아있는? 자신이

여전히 신기하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타고난 어떤 기질을 오랫동안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은

그건 그 사람의 노력이나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어떠함에 이끌렸고 사로잡혔음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에 의해 최초로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 요한 베드로 빌립보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각각 생업에 바쁜 평범한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들로서

침례요한의 천거를 통해 주님을 발견하지만

여전히 고기잡이 일에 종사를 하다가...

주님을 보고듣고 하면서

차츰 조금씩 그분에 이끌려

마침내

배를 버려두고

혹은

아비를 뒤에 놔두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