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교회
◇80년대 꽤 인기있던 한 설교가는 하와를 ‘교회의 예표’라고 하여 장로교회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은 일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우화적 해석이요 정당한 해석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장로교회도 성경이 아담을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하는데는 동의한다. 왜냐면 로마서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5:14)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담의 범죄로 인류가 타락한 것 같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대표성도 인정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의 부활과 관련하여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절)고 하시고, 로마서 5장은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 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이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17, 18절)고 하셨다.
◇하와를 교회의 예표라고 하는 근거는 에베소서 5장 22~32절의 남편과 아내를 그리스도와 교회로 비유한데서 찾고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하시고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했다. 여기에서 곧 그리스도의 아내로서의 교회는 아담의 배필로서의 하와의 위치와 같다는 것이다. 더우기 하와는 범죄하기 전의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오고, 교회는 흠없고 온전하사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피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오직 아무런 흠도 티도 없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교회가 될 수 있고,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교회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 안에 하와가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교회가 있고, 하와의 생명의 근원이 아담의 몸인 것처럼 교회의 생명의 근거도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런데 장로교회는 하와가 타락의 상징인데 타락한 하와를 교회의 예표라고 하는 것은 교회도 타락한다는 뜻이냐며 대단히 단세포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하와는 죄가 아직 세상에 오기 전에 아담의 갈비뼈에서 창조되었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흠없는 교회도 마찬가지로 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시고” 안식하셨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인한 교회를 얻었기에 그 교회로 하여금 마귀의 일을 멸하고 세상을 정복하며 다스리도록 하셨다. 그것이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런 교회를 인간들이 불완전한 교회로 만들고 있다.
미국 풀러신학교 지방교회를 ‘정통’으로 인정
“지방교회의 관심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이기는 자가 되게 하는데 있다”
한국교회에 소위 지방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대부분은 이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커녕 지방교회란 말조차 생소할 것이다. 인터넷상의 부정적인 자료에 의해 그려진 지방교회 사람들은 자신들만 잘 믿는다며 다른 기독교인들을 정죄하고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다. 혹자는 지방교회 사람들은 이상은 높은데 실제 생활은 그에 못 미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방교회 성도들에 대한 외부인들의 이러한 평가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짚어 본다면 현실 교회에서 어떤 비판의 여지도 없이 완벽한 교단이나 단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 약함이 있다. 그런 점에서 특정 단체가 지향하는 핵심신앙이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다서 3절)에 부합한지는 냉철히 따지되, 성경해석상의 소소한 차이나 약함과 허물은 서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이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길이다(엡4:3).
이런 차원에서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교회가 과연 무엇에 신앙의 중점을 두고 있는지를 본인들에게 직접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한국복음서원에서 출판된 각종 도서나 현 지방교회 인도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경륜’ ‘생명’ ‘그리스도의 몸’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이들의 주된 관심사의 주제다.
1. 하나님의 경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책자에서 이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워치만 니는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표현함). 지방교회측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인, ‘내가 마케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다’(딤전1:3-4)라는 말씀을 자신들에게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이 자신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창세전에 선택되고 예정된 우리가 장성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엡1:4-5). 성경 말씀 그대로이니 이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2. 생명
‘생명의 인식’ ‘생명의 체험’ ‘생명의 성장’ ‘이기는 생명’ ‘생명주는 영’ 등 지방교회 사람들은 생명이란 단어를 유달리 많이 사용한다. 이들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하)는 말씀에 근거하여 주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한다. 물론 그분은 우리 죄사함을 위해 죽으셨지만 그 죄 사함조차도 결국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절차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 25),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골3:4) 등에 근거하여 <주님 자신이 생명>이심을 믿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몸
지방교회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묘사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지체들 간의 조화와 기능발휘가 현재의 교회생활 중에 실현되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고 직분자들과 성도들의 각양 봉사는 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적인 출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엡4:12,16). 실천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다.
4. 이기는 자가 됨
성도는 누구나 ‘이기는 자’여야 한다. ‘이기는 자’라는 말은 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 각각의 말미에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 모두가 비중있게 다루었던 주제이다. 이들이 말하는 이기는 자란 쉽게 말해 거듭난 후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영적생명이 성숙한 자를 말한다. 계시록 3장 12절의 필라델피아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이기는 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달리 특별한 상급이 주어진다. 따라서 모두가 이기는 자일 수 없고 추구하여 그 표준에 이른 자만이 이기는 자라는 것이다. 이기는 자가 되려면 일상생활에서 자기 유익보다는 그리스도의 몸을 관심하고 매사에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빌 1:21).
소위 ‘지방교회 교인이 되어야만 이기는 자가 된다’고 가르친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지방교회 교인이 되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다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소위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생명과 그리스도의 몸을 관심하고, 이기는 자가 되기를 힘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행상으로는 만인 제사장 제도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때 이런 사람들을 성경의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성경의 중점을 붙잡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것일 수 있다.
혹자는 위와 같은 진리와 실행은 다 좋은데 이들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지나치게 따르는게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대해서도 할말이 있다. 즉 뛰어난 두 성경교사를 존경해서 그들을 통해 밝혀진 진리와 계시를 따르는 것이지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믿음으로 행하고, 믿음으로 고난당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당신은 모든 것들에서 얼굴을 돌려야 한다. 여러분의 방 친구를 보지 말라. 장로들을 보지 말라. 나이든 자매들을 보지 말라. 나를 보지 말라.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분 외에는 어느 누구도 바라보지 말라. 우리는 주님을 신뢰한다. 우리는 그밖에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온전케 하는 이시므로, 우리의 믿음은 바로 예수시다.”(위트니스 리, 고봉메시지 제11권 - 로마서 결정연구).
그동안 한국 교계는 지방교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많지 않거나 일부 이단 감별사들이 특별한 의도를 전제로 연구한 자료에 의존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정작 그 장본인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는 풀러신학교측에서 지난 2년여 동안 지방교회 인도자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의 신앙고백이 주요 신조와 일치하는 정통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교제가 가능한 주 안의 형제들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방교회를 이단시하고 형제로 여기려 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교계 내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특정 교단 교리가 아닌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특정교회가 믿는 진리와 실행에 관해 재평가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들어 한국의 지방교회 인도자들이 전과 달리 다른 단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지방교회 탐구 - 4 |
"예장통합 교단 신앙고백 적극 동의"
폐쇄적인 과거벗고 연합운동 지향
미국 CRI "삼위일체 문제없어"
* 지방교회 성도들이 성경의 진리를 추구하는 사역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