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하는 법을 배웠다.


나의 일기 2013-01-23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43530.html

세수하는 법을 배웠다.





요즈음은 사람의 외모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을 어디에다 두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을

잘 생겼다고 하였었다.

다시 말해서 얼굴이 미인의 기준인 셈이었다.


귀는 듣는 기관이고 눈은 보는 기관이고

입은 말하는 기관이고 코는 냄새를 맡는 기관이다.

이처럼 이목구비의 크기가 적당하고 균형잡혀야

그 기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아름답다.


사람의 귀와 눈과 입과 코는 다 얼굴부위에 있다.

그 중 왜 귀를 가장 먼저 언급하는지는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1:19)


사람이 보는 것과 말하는 것과 냄새 맡는(분별하는) 것보다도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털고 빗질하는 것으로

평소 습관대로 세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잔주름이 얼굴에 가득한 지금에서야

제대로 세수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세수하였다.

첫째, 귀를 오래도록 문지르며 기도한다.

“주여, 나의 귀를 정결하게 하사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그리고 눈언저리를 닦아내며

“주여, 나의 눈을 맑게 하사 주님을 보게 하소서!”

특히 칫솔질은 3분 이상 하면서

“주여, 나의 입을 깨끗케 하사 주님만을 말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코를 탱탱 풀며,

“주여, 나의 코는 예민하여 주님을 숨쉬며 살게 하소서!”


진작 이렇게 세수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지금쯤 내 얼굴은 주님과 똑같아졌을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부터 나에게 남은 생애 동안만이라도

이렇게 세수하면서 살리라.



밥 먹는 것을 배웠다.


나의 일기 2013-01-22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43518.html
밥 먹는 것을 배웠다.



누가 알면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정말로 나는 이제야 밥 먹는 것을 배웠다.
허구한 날 식사 후에는 당연히 속이 거부룩해서
본래 그러려니 하고 지낸 것이 반 세기를 살아왔나 보다.

지난 오십 년 전,
그러니까 내 나이가 네다섯 살 때였다.
지금도 그 어릴 때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나의 고향 구례 땅에서는
1960년대의 지독한 식량난에 허덕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장로라는 분의 이야기만 들어봤지만
내 생활 습관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린고비같은 생활을 살아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로부터 쉰밥 먹는 법을 터득하였고
사내자식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음식을 다루는 어머니의
지혜를 터득했던 것 같다. 그 습관이 오십이 넘어서도 나타나
어지간히 상한 음식은 버리지 않고 먹어 버렸고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평소 남은 음식을 해치워버리는 습관이
식중독에 과식이 원인이 되어 늘 뱃속이 불편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난 교회 자매님들은
창피스러우니 어디가서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말라고 하지만
이제서야 제대로 밥 먹는 것을 배운 나로서는
하두 신기하고 평안해서 공개된 일기를 쓰고 있다.

우리의 평소의 생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니
얼마 전부터 상한 음식은 과감하게 버리기
그리고 남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몸의 느낌을 따라 절제하기
이 두 가지를 철저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런 것이야 현 세대 사람에게는 누구나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 속에서는 무분별하게 낭비하는
오늘날의 어떤 사람들의 음식 습관를 선호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옳았고 나는 어리석었다.

쉰 음식을 금하는 것이나 과식하지 않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옳은 것이지만
나의 관념에 사로잡혀 습관화 되어버렸던 잘못된 음식 습관,
나는 그것을 버리는데 오십 년이나 걸렸다.


정원이야기


나의 일기 2012-08-10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41645.html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러 연못가로 갔습니다.
어젯밤 단비가 내리고 난 후
연못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직 꾸민지 한 달도 채 안 된 연못이기에
수상 식물이 잘 살아주기만을 바랬는데..

밤 사이에 천사들이 물 풀(이름을 몰라서)들 가운데
영롱한 다이아먼드를 하나씩 올려놓고 갔습니다.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여기 앞 집 선생님께서 갖다 주신 부레옥잠에는
자주빛 꽃이 피어났습니다.

텃밭에는 주황채송화도 피었고
그 뒤에 넝쿨지고 있는 것은 향기 좋은 더덕입니다.

빨간 채송화도 저절로 났습니다.

남의 집 도라지 꽃을 보고 은근히 부러웠는데
봄에 씨를 뿌린 우리집 도라지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주빛 도라지꽃 속에서 백도라지꽃은 더욱 청아합니다.

흔히 보는 잎사귀 꽃 식물도 한송이 피어나구요. *^^*

뒷집 할머니가 심어주신 과꽃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심어둔 옥수수도 열매를 맺히고

거기에 옆집의 접시꽃마저 날아갈듯 피었습니다.

그동안 집안이 허전하여 엉성했지만 그냥 놔두었던 장미화단도
오늘은 말끔히 정리했습니다.



동촌의 오후


나의 일기 2012-08-06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41581.html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오후
전통 한옥꾸미기가 마쳐진 동촌집 하늘이 아름다웠다.


혹시 기억력이 좋아서 옛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이 동촌집의 변화된 모습을 기뻐해 준다.

영광교회의 한 자매님이 고구마순 꽃바구니를 집 앞에 걸어주셨다.

그런데 동촌에 늑대가 나타났다!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상치는 않은 개임에는 틀림없었다.


주인도 없는 새에 옆집 할머니가 심어 놓았다는
봉숭아는 더위도 아랑곳없이 꽃이 만발하였던 어느날 오후

집 옆 잔디밭의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나도 몰래 그 잔디밭을 따라 뒷동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만 보았지 그동안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던 뒷동산
그 입구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동산에 올라보니 작은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서쪽 멀리 보이는 불갑산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반대편 동쪽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피어 오른다.

이 아름다운 동촌을 어찌 두고 떠날까?

그러나 단호박 하우스대 위의 참새들도 떠나듯
나도 언젠가는 떠나야제


뒷동산을 내려오는 그 대나무 길에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다.



북한에 가고 싶다.


나의 일기 2012-03-29 / 추천수 0 / 스크랩수 0 http://blog.chch.kr/mdhsk2545/38346.html
 

함평에 온 지 어느새 8개월, 아니 9개월째 접어든다.

지난달에 서울에서 두 가정이 함평으로 이주를 마쳤고

이제 이삼 개월 후면 함평에서도 예정했던 대로

지방교회의 간증을 갖게 될 것이다.


어느 형제님은 어떤 지방에 가셔서 기껏 복음을 전하고

힘들게 수고하시고는.. 교회 간증을 선포할 때쯤이면

어디론가 다른 미개척지로 옮겨가시는 것이었다.


처음엔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된 상태에서

그때 가셔도 늦지 않으실 텐데.. 왜? 김빠지게

중요한 시기에 거처를 옮기시는지 원망도 쪼금 했었다.


그러나 교회 개척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이라고는 하나

실상 개척지에서는 몇몇 부담 있는 형제들이 기능을 발휘하여

마치 새집을 꾸미듯 부푼 꿈을 갖고 시작하는 경우에

그 형제님처럼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는 미련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벌써부터 올 8월, 전국 각지에 교회 간증 선포가 완료되면

무료해서 어떡하지?.. 하는 괜한 염려가 된다.

하기야 주님의 몸인 교회가 건축되기까지 왜 할 일이 없겠는가마는

이번에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은사는 말로서는 부족하지만 삶으로서는 개척의 선두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며..

이제는 본격적으로 북한 땅이 열리기를 기도하리라 다짐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멀리 외국에까지 선교는 못하더라도

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내 동포들에게 찾아가서

함께 동고동락해 보고 싶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과 함께

주님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