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글/생명강가(2011.9.3)
어느 가정에 초대 받아
거실로 안내 받아 앉으니
벽에 큰 글자로 ‘평안’이라 쓰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땀을 씻기 위해
그곳에서 샤워를 한 것도 아니고
좋은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한 것도 아니었지만
참으로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나를 초대한 분들과
한 번도 접촉한 적도 없었지만
내 마음이 평안한 것은
그분들에 대해 들었던 좋은 말들이
내 영 안에서 생명의 교통으로
충분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다림
글/생명강가(2011.8.26)
수양버들 늘어진 연못에 핀
연꽃송이는 지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오실 것같은 당신은
오늘도 안 오십니다.
행여, 나 없는 동안
다녀가셨을까 하는 조바심에
당신 흔적 찾아 보지만
개구리 한 마리 나를 놀랩니다.
당신은 농부라 하였으니
추수 때가 되어야만 오시렵니까?
긴긴밤 말려 놓은 왕골 엮어
당신의 자리나 마련할까요?
봉숭아 물 바랜
손끝만 만지작 거리고 있자니
함평천지 망망한 이 땅에도
바람이 불어 옵니다.
175. 아합의 비참한 최후(왕상22장, 대하18장)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한지라
(왕상22:29-31)
사탄은 아합과 여호사밧이 군대를 데리고 전쟁에 나가
서로를 죽이게 하고 결국은 더 많은 영혼이 지옥에 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를 통해 속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신 것은 아합 왕이 일찍이
여러 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고, 원수의 손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셨으나 참 선지자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합이 미가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그의 장래는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십자가에 의해 처리된 귀가 없었습니다.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게 하신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하였으나
이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겨우 지탱하며 저녁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대하18:31-34)
아합이 죽음을 면키 위하여 자신의 방법을 시도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가 벤하닷의 손에 죽도록 정하셨습니다.
아람 병정이 아무렇게나 날린 화살 하나가 하필이면
변장하고 숨은 아합의 갑옷 솔기를 파고들었다는 점은
이 일이 단순히 우연한 사건이 아님을 느끼게 합니다.
미가야의 예언에 입각해 볼 때, 사람에게는 우연의 일처럼
보이나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그분의 주권에 따른 것임을 보여 줍니다.
아합은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숨길 수 있었으나
그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었음을 보여 줍니다.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또는“각기 본향으로 가라”하더라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왕상22: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