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참 선지자 미가야(왕상22장, 대하 18장)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관계를 맺었더라.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냐?”
하니 여호사밧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하는지라.(대하18:1-3)
길르앗 라못은 갓 지파의 도피성이 있는 곳이며
가나안 남북 간의 무역이 매우 성행하던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국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이곳을
벤하닷은 약조를 통해 아합 왕에게 주기로 했지만
그것은 삼 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합 왕은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출정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의 출정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방문의 계기로
이루어졌는데 출정하기 전에 선지자 사백 인을 불러 모아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아합이 듣기에 좋은 말인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라.”는 거짓 예언을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미가야는 “여호와의 말씀에 아합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는 거짓말 하는 영의 꾀임을 받아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이스라엘의 왕이 이르되“미가야를 잡아 성주 아몬과
왕자 요시야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하였다”하라”(대하18:24-27)
그러나 미가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그가 여호와의 참 선지자였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들과 미가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를 의지하여 스스로 말하는
자였으나 미가야는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14절) 말하는 자였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주 예수님도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행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요5:19). 우리는 스스로가 아닌 영 안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그것을’ 말하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73. 유다 왕 여호사밧(왕상22:41-50, 대하17장)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41-46절)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아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하나
여호사밧이 허락지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48-49절)
여호사밧은 그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경건한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별히 남색자 추방과 다시스 선단에 대한
아하시아의 협력 제의 거절은 괄목할 만한 치적입니다.
유다에 있어서 남색자의 존재란 이방신전의 남창들로서
혐오스러운 전염병과 같은 여호와의 대적자를 의미하고
여호사밧이 아하시아의 협력 제의를 거절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와 교제를 거절했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받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대하17:5-6)
백성들은 여호사밧에게 그들이 소유한 물질을
아끼지 않고 드리므로 그들 자신만을 염려하지 않고
그들의 형제와 백성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필요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우리의 마음자세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 땅에 속한
부에 집착하지 않고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부담대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헌금하기 전에 여러 번 주저하는 사람들입니까?
우리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안다면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필요만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집과 그분의 왕국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이 그의 통치 초반에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분열과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과 섞이지 않고
그의 마음이 담대히 다윗의 길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담대함을 필요로 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준수하시는 원칙을 보는데
이 원칙은 누구든지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자에게는
안식을 주시어 좋은 땅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72. 나봇의 포도원(왕상21장)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하니(1-3절)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 하니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 하나이까?”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하기 때문이로다.”(4하-6절)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나이다.”하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7-10절)
여기의 금식은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나
심각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왕에 의해 선포되는 금식을
뜻합니다(삼상7:6, 대하 20:3).
나봇은, 포도원은 자신의 것이 아닌 조상의 유업이며
땅을 함부로 파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셨다면서
아합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나봇은
이세벨의 간계에 의해 포도원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억울하게 죽고 맙니다.
구약의 순교자인 나봇은 조상의 유업인 땅의 가치와
하나님이 정하신 지계표의 의미를 아는 자였습니다.
성경은 땅을 매우 중요시 합니다.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제비를 뽑아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분배된 땅은 그들의 안식과 거함과 누림의 근원이었고
후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유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배받은 땅의 지계표는 함부로 옮길 수
없었고(신19:14, 27:17), 영영히 팔 수도 없었는데
이는 그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레25:23).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하라(17-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