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솔로몬의 기도(왕상8:22-53, 대하6장)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왕상8:22-24)
솔로몬의 기도는 우리에게 중보기도의 표준을 보여주며
그의 기도의 중심은 주의 이름이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집을
항상 돌아보시며 이 땅에 있는 그분의 거처를 향하여
백성이 드리는 기도를 하늘에 있는 그분의 처소에서
들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일곱 가지 기도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기도마다 주의 이름으로 건축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48절에는 기도함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믿는 이들에게 할당된
하나님의 분깃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룩한 땅’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하는 ‘거룩한 성’과
이 땅 위의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상징하는 ‘성전’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적인 항목이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인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집을 향할 때,
비로소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왕국을 위한
기도의 원칙과 동일합니다(마6:9-13).
바벨론에 포로 된 기간 중에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거룩한 땅과, 거룩한 성전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단6:10).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인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집을 향할 때,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임을 가리킵니다.
거룩한 땅, 거룩한 성, 거룩한 성전은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인 교회를 예표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권익 곧 땅에서의 하나님의 권익인
그리스도와 교회에 목표를 두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하니라.(대하7:1-3)
149. 성전의 기구와 언약궤
(왕상7:27-8:11, 대하4:1-6:11)
히람은 전을 위해 두 기둥, 받침, 바퀴와 축,
물두멍, 솥 그리고 모든 그릇을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놋 기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를 지지하는 힘을 상징하고
열 개의 놋 물두멍으로 이루어진 놋 바다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근거로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에 참여하는 자들의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씻어내고, 책망하며, 심판하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상징합니다(요16:8, 딤3:5).
금향단은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하는 생활을 상징하고
진설병의 금상은 하나님의 선민의 영적인 음식이 되기
위해 과정을 거쳐 생명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6:32-63).
장막 안에 있는 등잔대는 그리스도 자신을(출25:31-37),
성전 안에 있는 등잔대는 확장되신 그리스도를,
스가랴서에 있는 등잔대는 이스라엘 자손을(슥4:2),
요한계시록에 있는 등잔대는 교회들을 예표합니다.
(계1:12-13, 20)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왕상8:1-3)
제사장이 성전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10-11절)
성전의 건축이 끝난 후 다윗이 준비한 모든 재료 중
남은 것들은 하나님께 바쳐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물품들이 전에 놓였기 때문에 이제는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궤는 그리스도를, 성전은 교회를 대표하므로
궤와 성전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언약궤를 들이는 것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궤가 성전에 들어와서 지성소에 놓이자 구름이 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전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내용이 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 자신 외에 그 어떤 것도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완성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어떠한 사람도 그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148. 야긴과 보아스
(왕상7:13-22, 대하3:15-17, 4:12-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그가 놋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왕상7:13-15상)
성전의 기둥들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겸비한 자인 놋 대장장이 히람에 의해
솔로몬이 지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나 있는 것 중 많은 것이 그림자요,
예표이므로 우리는 이 예표들의 성취를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예표요, 히람은 신약 안에 있는
은사 있는 사람들의 예표였습니다.
의심할 것 없이 사도바울은 은사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신약의 히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히람을 통해서 기둥을 세운 것은
오늘 그리스도께서 직접 기둥들을 건축하시지 않고
은사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건축하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놋이 히람의 솜씨 있고
재능 있는 두 손에 의해 기둥으로 건축되었듯이
우리도 은사 있는 사람들의 손에 순복해야 합니다.
성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대하3:15-17)
성경에서 둘이라는 수는 간증의 수입니다.
이 두 기둥은 간증으로서 성전 앞에 세워졌습니다.
야긴은 ‘그가 세울 것이다’를 의미하고, 보아스는
‘능력이 그에게 있다’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기둥들은
성전을 지지하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하실 것이며, 그 능력이
그분 안에 있으리라는 간증으로 서 있습니다.
열왕기상 7장 15절은 각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었다고 말하지만, 역대하 3장 15절은
두 기둥의 높이가 삼십오 규빗이었음을 가리킵니다.
역대하 3장 15절에 따르면 한 규빗이 부족합니다.
잃어버린 한 규빗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 규빗은 틀림없이 기둥머리와 접합된 부분 속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을 살펴볼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있는 것에는 헌신이 전혀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가 기둥머리 아래 있는 기둥처럼 어떤 사람 아래
있으려면 헌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아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감당하는
것이고 그들로 인해 자신의 어떠함은 부분적으로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을 통하여 우리는
수직적인 건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