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삼하24:16-25)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이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16-18절)
성경은 다윗의 두 가지 커다란 실패를 기록합니다.
첫 번째 실패의 결과,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아들인
솔로몬이 태어났고(마1:6), 두 번째 실패의 결과로
건축을 위한 땅을 얻었습니다.
소극적인 실패에서 나온 그런 적극적인 결과들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고 주님의 위대하신 긍휼은
이러한 사건 속에서 더욱 빛이 납니다.
다윗은 먼저 우리아의 사건에서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법을, 또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겸손의 공과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 번의 실패의 산물과 결과는
진실로 기묘하고도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본
아라우나는 그를 맞았고 엎드려서 왕이 자기 땅에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단을 쌓으라고 명하신 사실을 설명하며
그 타작마당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아라우나는 그것을 팔기를 원치 않았고 오히려
그 땅과 번제를 위한 모든 소유를 보류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습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은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24-25절)
시온산에 있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모리아 산이며(창22:2),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장소입니다(대하3:1).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역대상 21장과 22장의 기록에 따르면 이 타작마당은
하나님의 전과 단을 세우기 위해 이미 선택하신
장소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결론적인 체험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대가를 지불하고,
그곳에서 그분께 절대적인 헌신을 한 것입니다.
137. 다윗의 인구조사(삼하24장, 대상21장)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삼하24:1-2)
역대상 21장 1절에 의하면 다윗의 인구조사가
사탄에 의해 격동 받아 이스라엘을 계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다윗으로 성전 부지를 얻게 하기 위하여
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무슨 죄가 있는지 기록하여 밝히고 있지 않지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가 교만해져서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해
노력의 결과를 과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벧전5:5).
둘째, 그가 하나님의 명령이나 허가를 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두 번 이상이나
백성을 계수한 것(민1:2, 26:2)은 죄로 여기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분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생명의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려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출30:11-16)
그는 오로지 군사 목적만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인구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요압은
다윗이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백성을 계수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이 다윗과 함께하지 않고
큰 손실을 당하게 될 것을 염려했으나
다윗은 요압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다루시는데 있어서
의로우신 동시에 긍휼과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그분은 다윗의 잘못을 간과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사하셨지만
다윗은 죄의 결과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는 하시지만 그분의 백성을 온전케 하고
성숙시키기 위해 징계도 하십니다.
우리가 다윗의 체험을 통해 배운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더욱 신중해야 하며,
늘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136. 다윗의 용사들(삼하23장, 대상11:10-12:40)
다윗의 승리를 말함에 있어서
우리는 다윗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낸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러한 승리들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입어야 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그가 아무리 뛰어나고 큰 군대를 가졌다 해도
어떤 승리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주로 우리 자신과 자아와
사탄이 지휘하는 악한 영들의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이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모든 성도들의
동역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용사들 중 첫 삼 인인 야소브암,
엘르아살, 삼마는 가장 큰 희생을 치름으로
가장 고귀한 위치를 차지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말해 다윗 왕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용사들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위업을 도저히
달성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신정국가 건설을 방해하는 원수들을
단신으로 막아내고 이스라엘을 지킨 영웅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갈증을 느낀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오실 땅이기도 했습니다(미5:2).
그러므로 블레셋에게 탈취당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자 하는 다윗의 사모함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블레셋 군대가
그들을 대항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뚫고 들어갈 것입니까?
그때 둘째 삼 인은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다윗 왕을 위해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왔습니다.
그 사실에 감동한 다윗은 그것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전제로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둘째 삼 인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갈망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용맹한 삼십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왕의 이스라엘 왕국은, 오늘날 그리스도가
왕이신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를 예표합니다.
다윗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사탄과 그의 왕국을
끝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며(요12:31, 골2:15),
다윗의 용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싸워
사탄과 그의 왕국을 패배시킨 교회 안의 이기는
이들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