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므비보셋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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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므비보셋의 마음(삼하19장)


 





암살롬이 패전하고 죽임을 당한 후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이 성문에 앉아 있음을 듣고

각자 집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은 결코 위세를 떨치며 곧 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쫓겨난 자이었기 때문에 모든 백성이 그를

돌아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는 조급하지 않았고 용사였지만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았으며 모든 싸움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했습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24절).


압살롬이 난을 일으켰을 때,

므비보셋은 절름발이라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는 남편을 잃은 과부처럼 어떤 일도 그의 마음을

만지지 못했고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오로지 왕에게 있었으므로

왕께서 평안히 궁으로 돌아오시기만을 바랬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주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오늘날 우리의 마음도 이 세상에서

과부의 마음과 같이 세상을 거절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분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30절)


그는 종(시바)에게 속임을 당해 기업을 빼앗기고

말 못할 억울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셨으므로 상관없었습니다.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는 마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와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득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득실만을 구하는 정도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추구합니까?

우리의 득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의 득실만이 득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의 소유로 여기며

그분의 득실만을 생각하고 다만 하나님께서

얻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를 주께서 얻으셨다면 혹여

우리에게 잃은 것이 있을지라도 무슨 상관입니까?





134. 압살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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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압살롬의 죽음(18장)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왕이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 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4-5절)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하실 것을

확신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다윗은

사탄의 선동으로 인한 반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단호했지만, 그의 아들 압살롬을 이미 용서하였고

받아들이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향한 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음으로 그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땅과 공중 사이로 빠져

나간지라.(8-9절)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살려 두라는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이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압살롬을 즉시 죽이지 않은 것을 책망하며

지체치 않고 가서 상수리에 걸려있는 압살롬을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14절).


요압은 다윗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에 따라 다윗에게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는 아브넬을 죽인 일(삼하3:27)과 압살롬을 죽인

이 일로 인하여 자신의 충성심과 수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윗의 명으로 솔로몬에 의해

처형당하게 됩니다(왕상2:5, 2:31-34).


다윗은 전쟁터에서 달려오는 두 전령에게

먼저 전쟁에서의 승리를 묻지 않고 압살롬의 생사를

물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은 반역한

아들인 압살롬과 살아서 만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좋은 소식’은 타락한 죄인들이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요3:16).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이 너무 괴로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라고 울면서 그의 비통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33절). 다윗은 그 반역한 아들의

죽음을 접했을 때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라고 애통해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을 통해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만지게 됩니다(요일4:9-10).




133. 아히도벨과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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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아히도벨과 후세(삼하17장)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1-3절)


아히도벨은 자기가 직접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왕인

다윗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혜 있는 모사였으나 그의 천연적인 지혜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적이었고,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인 사탄의 체현이었습니다(요8:44).

그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악을 행하고 아비를 죽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 왕만 죽이면 모든 백성들이 압살롬에게

돌아와 평안을 누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들이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그의 제안은 백성들을 기만하는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히도벨이 모략을 베풀었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롬8:7),

사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롬8:6).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세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

후세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지금 그가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

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5-13절)


후세는 다윗왕의 친구요 그의 모사로서 다윗에 의해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기 위해 보내어졌습니다

(삼하16:16-19, 15:32-37). 그는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다 모아 전쟁에 나가야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모략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다윗과 모든 백성으로 요단강을 건너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22절).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 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22-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