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다윗의 피난길(삼하16장)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냐?”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1-4절)
다윗이 시바의 말을 너무 쉽게 믿고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주어버린 것은,
자신의 위기 상황에서 시바가 가져온 음식들 때문에
지혜자의 눈이 어두워지고 의인의 말이 굽게 된
것이었습니다(신16:19).
그러나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에 피를 흘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피난길에서 자기를 욕하는 시므이를 만난 것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말 파쇄되고 온유한 사람으로서
그와 변론하거나 보복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변의 용사들이 그를 쫓아가 죽이고자 하였지만
다윗은 여전히 용사들에게 그를 개의치 말라 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자기에게 욕하게
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 지리이다.” 하니라.(20-21절)
예루살렘에 이른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장막을 친 지붕에 올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보는 앞에서
부친의 후궁들을 범했습니다.
이 지붕은 아마도 다윗이 목욕하던 밧세바를 바라보고
음욕을 불태웠던 곳인 왕궁 지붕일 것입니다(삼하11:2).
압살롬의 행위는 도덕상 있을 수 없는 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대적한 것입니다(레18:6-8).
또한 이 일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내리신 예언이
성취된 것이며(삼하12:11), 다윗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의 표현입니다.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징계는 악한 모사인
아히도벨의 제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략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지혜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약3:14).
바보짓
글/생명강가(2011.3.12)
7-8년 전 광주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할 때
아이스 겸용 커피자판기를 700만원이 넘는 고가에
구입하여 3년 동안 그 할부금을 불입하느라
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판원의 말만 믿고 바보짓을 한 것입니다.
영광에 와서도 그 자판기를 광주에 두고 관리하느라
월요일의 목회자세미나가 끝난 후에는
꼭 그곳에 들려야 했습니다.
수입이 괜찮아서가 아니라 고가에 구입한 것이 아까워
헐값에 중고매장에 처분하지 못해서입니다.
얼마 전 자판기를 놓았던 점포의 문을 닫게 되어
겨우내 방치된 것을 보고서 자판기 중고 센터에서
연락이 와 15만원을 줄 테니 팔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구입한 값을 생각하니 어처구니없어 그냥 두었습니다.
얼마 전 점포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므로
가게 앞 그 자판기를 치워주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판기 중고 센터에 주었어야 할 것을
나는 또 바보짓을 했습니다.
어느날 형제님 한 분과 농사하는 자매님 댁에서
트럭을 빌려 그 크고 무거운 자판기를 실어 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싣고 온 자판기는 한 건물에 다방이 있어
부동산 사무실 앞에도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두 사람이 하루 품 들여, 기름값 들여 가져온 것이
애물단지가 되어 완전 바보짓을 한 것입니다.
다시 광주의 중고매장에 연락을 하여 보았으나
영광까지는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고물상에 연락해서 거저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나의 바보짓은 막을 내렸습니다.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그 일이 바보짓인줄
전혀 알지 못하고 최선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그 바보짓이
겨우 깨달아지게 된다면 과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가지 후회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생명으로 거듭나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복의 무리들 가운데서 우주적인 한 몸을 이루는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마태복음 25장에서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교훈처럼
오늘 날 주님을 믿는 무리 중에서도
주님을 맞이하는 날 기름준비에 소홀했던 바보짓을 깨닫고서
느지막이 후회할 믿는 이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풀과 지푸라기와 나무로
집을 짓는 자신의 바보짓을 통탄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가 최선이라고 고집부리는 많은 일들이
정말 주님 앞에 서는 날에도 칭찬받게 될 일들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달을 따주세요.
글/생명강가(2011.2.22)
옛날 어느 왕궁에서 어린 공주님이 앓아누워
왕과 신하들이 어린 공주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공주의 원하는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한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였더니
공주는 말하길 어제 밤하늘의 달을 보니 너무나
아름다웠다며 그 달을 따 달라고 했습니다.
왕과 신하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가 없으니
다른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하니
공주는 어젯밤에 보니 동산 위에서 달이 떠오르니
그 동산에 올라가면 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왕은 기뻐하며 신하들에게 은과 금으로 빨리
달을 만들어 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달을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할지 또 고민에 빠져
할 수 없이 공주님께 달이 얼마나 큰지를 물어보니
공주님은 자기 엄지손톱으로 그 달을 가릴 수 있었다며
자기의 엄지손톱을 보여 주었습니다.
왕과 신하들은 기뻐하며 공주님의 엄지손톱만한 달을
만들어 공주님의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공주도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니
또 왕과 신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에도 달이 뜰 것인데 그것을 보고
공주님이 실망하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결국 동산에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왕과 신하는
공주님께 동산에서 달을 땄는데 또 달이 떠오르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얼마 전 빠진 앞니 사이로
새 이가 올라오는 것을 보이며, 달도 따 내면 자라서
또 새 달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과 신하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어릴 적 어디선가 읽었던 동화의 줄거리입니다.
인간은 관념이 있어서 세상을 크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왜소하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린 공주의 마음과 같이 넓고 큰 우주도
우리의 작은 눈동자 안에 한꺼번에 다 들어오듯
어쩌면 사람은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이 우주 안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영입니다(욥32:8).
성경 스가랴 12장 1절에서도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영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라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땅을 위한 것이고, 땅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은 그 안에 하나님을 담기 위한 것이므로
사람은 절대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이사야서 66장 1절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어린 공주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갖는다면
온 우주는 우리의 정원이고, 해와 달은 목걸이에 박힌
작은 보석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