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의 의미
글/생명강가(2010.12.23)
‘교통’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communion)’로서
‘공동 참여’ 또는 ‘공통 참여’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일반적인 사귐을 의미하는 ‘교제(fellowship)’와 구별되며
좀 더 구체적으로 ‘생명의 흐름’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흐르기 위해서는 동일한 조건은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만약 지붕과 땅이라면 여기에는 원활한 교통이
있을 수 없으므로 사닥다리와 같은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통의 대부분은 이러한 매개체가 없이
서로 따지거나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시키려고만 하니
생명의 흐름이라기보다 마치 둑이 터지는 느낌이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같이 굉음이 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나는 교회생활과 봉사를 배우던 시기에
그 당시 교회 안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현안들이 있었는데
앞선 형제님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기도하고 말씀을 추구하는 등 오직 그리스도만을
구하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해서 봉사자집회를 박차고
나가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억입니다.
교통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그때의 실수를 귀감삼아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을 동경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회복찬송 115장 3절을 부릅니다.
“이-땅에서 예-수 안에 하-나님 낮춰-지고
하-늘에서 예-수 안에 사-람은 높여졌네.”
하나님과 사람이 교통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해장소이시며 화해제물이신 그분 예수그리스도이듯이
우리의 교회생활 안에서 참된 교통은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하면서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한 여자의 이야기-룻
글/생명강가(2010.12.22)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의 딸들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부끄러운 후손이 모압과 암몬족속입니다. 사사시대 때
그 롯의 후손인 모압 사람 중에 룻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룻은 유대 땅에서 기근으로 인하여 모압 땅으로 이주해 온
말론이라는 경건한 유대 여인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하였고
모압 이방여인으로서 남편의 나라 이스라엘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친 딸처럼 사랑으로 대했고
모압의 조상 롯과 관련된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애굽 총리이야기, 모세의 출애굽이야기 등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룻은 특히 장자권을 두고 다투던 야곱이야기에 관심을 갖었고
희년이 오면 잃어버린 남편의 기업이 회복된다는 그 이야기는 정말
꿈같은 소망이었습니다. 그때에는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희년은 하나의 그림자이고 참된 희년은 이스라엘에
구주께서 오시는 것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룻은 이 놀라운 소식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렵지만
그 소망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업을 팔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모압 땅에서
우거하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은 참으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멜렉에 이어 나오미의 두 아들도 죽게 하셨으니
룻의 이러한 소망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모압 땅에 거한지 10년 만에 나오미는
고향 유대 땅으로 돌아가리라 작정하고 두 자부에게 각각
자기어미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나오미의 이치에 맞고 적절한 권면에 동서 오르바는
시어머니께 입마추고 떠나갔으나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룻은 이 땅에서의 삶이 물질과 환경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백성이 자기 백성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시리라고 믿었으며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 머물고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서
자기도 죽으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룻은 자기 조상 롯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시어머니와 함께 유대 땅 베들레헴에 도착한 때가
마침 보리추수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룻은 추수가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룻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우연히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은혜를 베풀며 관대하게 대해 주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오미는 룻의 남편으로서 보아스가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바울과 같이
그녀는 룻을 위하여 최상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나오미는 룻을 단장시키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타작마당에서 보아스의 거처에 룻을 들여보내어 그의 발치에
가만히 눕도록 하였습니다. 밤중에 보아스가 놀라 돌이켜본 즉
한 여인을 발견하는데, 이 때 룻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나오미의 말대로 그는 그의 아내를 얻기까지 쉬지 아니하니(룻3:18)
그보다 앞선 기업 무를 자(율법)에 대하여 장로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친족의 책임을 묻자 그는 감당할 수 없다는 표시로 신발을 벗으니
그때서야 보아스(그리스도)가 그 기업을 무르고 룻을 아내로 삼았으니
성경대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았으니 그녀는
결국 그리스도의 족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룻은 가장 약하였기에 붙좇았지만 그녀는 참으로 강했습니다.
한 남자의 이야기-롯
글/생명강가(2010.12.22)
롯은 자신이 태어났던 곳,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삼촌 아브라함을 친 아버지처럼 여기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함께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임하여 애굽에 내려갔던
아브라함과 롯 일행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경험하였으나
많은 양과 소떼를 이끌고 벧엘로 다시 올라올 때에는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툼으로서
아브라함은 제의했고 롯은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때 롯은 가축과 장막이 많았으므로 스스럼없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요단 들을 택하여 떠나갔습니다.
얼마 후 소돔 땅에는 전쟁이 있어 롯의 모든 소유는 빼앗기고
자신마저 포로로 잡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을 떠나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소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의를 지키려고 안간 힘을 썼던 일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때늦은 후회를 하였지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그의 앞날은 암울했습니다.
어느 날 밤 진중에 소요가 있더니 삼촌 아브라함의 목숨을 건
도움의 손길로 롯과 모든 일행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참으로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롯과 소돔 사람들은
조카를 위하여 목숨을 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롯을 우러러보게 되었으며 심지어 롯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롯은 마땅히 아브라함을
다시 좇아야 했었지만 소돔에서 일구어 놓은 많은 소유와
오히려 삼촌 덕에 얻게 된 칭송이 싫지 않았습니다.
결국 롯은 소돔 성을 다스리는 방백들 중 한 사람이 되어
다시 소돔 땅에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못 되어 소돔 사람들은 전쟁의 아픔을 잊고
다시 흥청거리기 시작하였고, 그 악함이 극에 달해 새로운 사회를
일구어보려 했던 롯의 의지까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롯은 성문에 앉아서 겨우 이름뿐인 방백으로 지낼 때
어느 날 예사롭지 않은 두 사람이 소돔 성에 들어선 것을 보고
그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식탁을 베풀고서
그들이 원하는 무교병을 구워 접대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그들을 자신들에게
내놓을 것을 요구함으로, 롯은 그들의 욕구에 자신의 딸들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손을 써서 몰려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롯에게 이르기를 소돔을 멸할 것이니 빨리 이 성을 빠져 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여전히 지체하는 롯의 가족을
성 밖으로 내보내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피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자신의 소유를 생각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으며, 롯과 두 딸은 작은 소알 성을
거쳐 산에 올라 굴속에서 거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롯은 하나님께 구원의 손길을 구하기보다는
딸들과 술을 마시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타락한 소돔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두 딸은 세상의 도리를 좇아
자기들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는 엉뚱한 판단을 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아비를 술 취하게 하여
서로 번갈아 동침하였으니 이렇게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롯은
그 딸들로 인하여 모압과 암몬자손을 산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롯은 오늘날까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강한 것처럼 독립하여 떠났었지만 약함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