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이여!
글/생명강가(2010.12.11)
형제들이여! 시간을 아끼십시오.
이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형제와 자녀들을 위해 우십시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만족합니다.
내가 얻은 영원한 생명은
장차 올 시대를 열망케 하고
영원 미래가 오히려 소망이 되니
매일 매순간이 감사할 뿐입니다.
내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안식에 들어갈 수 있으니
모든 염려의 짐이 벗어졌습니다.
아직은 시련들이 남아있지만
전혀 낙심되지 않는 것은
이 영원한 생명의 역량이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131. 압살롬의 반역(삼하15장)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하고
…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1-6절)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고 다윗은 그의 권위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하여 자기의
재판을 듣게 하고 사람들을 이끌어 그 자신을
향하게 하여 부친의 권위를 박탈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왕으로 세우도록 하여
부친보다 더 나은 왕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지위로 말하자면 압살롬은 다윗을 이어 왕이 되겠지만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하고자 했습니다.
압살롬의 원칙은 바로 그가 다윗의 권위를 순복하지
않고 자기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위에 대한 야망이 온갖 배반의 원인이 됩니다.
그 후 4년 만에 압살롬은 왕에게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어 헤브론으로 간다는 거짓을 고하고서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반역을 꾀하였습니다(7-12절).
이 반역은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한 것일 뿐 아니라
백성들이 왕을 반역한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성을 떠나 도망쳐 나올 때 그는 절실히
자기를 따르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전히 가드 사람 잇대에게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네 곳에 있으라.
나는 정처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라고 말하는가 하면(19-20절)
언약궤가 옮겨질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도 그것을
따르게 되어 있었으나,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언약궤를 들었던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가지고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24-29절). 다윗의 태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복종하였습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 가니라.(30절)
여기서 하나님의 징계를 통회하는 영으로
겸손히 받아들이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설상가상으로 다윗의 뛰어난 모사인 아히도벨이
반역에 가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정말
단순하고 순수하게 된 사람이었고
모든 사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임을 잘 알았으므로 여호와께 단순하게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31절)라고 기도하였습니다.
130. 다윗의 아들들(삼하13-14장)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삼하13:1-2)
암논은 친구 요나답의 악한 지략에 따라
자기 누이를 끌어들여 수치스러운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무릇 다른 죄악보다도
정욕의 죄를 보다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음행은 인간의 전인격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근친상간이 일어난 것은 다윗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은 결과로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삼하11:2-4, 갈6:8).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이성을 접촉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이성과 항상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딤후2:22).
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삼하13:23),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28절).
압살롬은 암논을 용서하지 않았고, 복수하기 위하여
2년이나 기회를 기다린 끝에 그를 죽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염려했습니다(31절).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의 외조부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가서 3년을 보내는 동안,
다윗은 이미 압살롬을 용서했으며 오히려 도망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원했습니다(39절).
다윗은 이 모든 문제가 자기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 일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해 있음을 알고
드고아에 사는 슬기로운 여인을 데려다가 왕을 회유
하도록 자신의 계략을 알려 주었습니다(삼하14:1-14).
그러나 요압의 생각은 진정으로 다윗을 걱정하는
충성심에서 나왔다기보다 압살롬이 훗날에 왕위에
오르리라고 예견하고 미리 공을 세워 압살롬에게
큰 호감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야심과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올바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