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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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

글/생명강가(2010.11.7)




다윗 왕의 예표는

장차 그리스도의 다스림이요

다윗 왕국이 복원됨은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우주 전체의 복원을 위해

다윗의 왕국을 먼저 복원하시고

모든 민족을 다스리게 됩니다.


다윗의 왕국이 세워지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하였듯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면

온 땅의 열방이 기뻐할 것입니다.


은혜시대를 사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체험한 그리스도는

복원될 다윗의 장막에서 누릴

신성한 생명의 통치요, 영역입니다.



126. 나는 백향목 궁에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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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나는 백향목 궁에 사나(삼하7장)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1-3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마음의 ‘사진’이었을 뿐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졌지만, 하나님은 이것이 그에게나

하나님께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씨(12절)가

하나님의 아들(14절)이 될 것임을 계시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다윗의 씨가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으로 가능합니다(롬1:3-4).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신격에서가 아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 자신과 똑같게 하시려고

그분 자신께서 사람이 되실 것을 암시합니다.



이제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고전15:45)

우리 존재 안으로 생명이신 그분을 분배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마음 안에

그분의 집을 건축하시는 특별한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엡3:17, 마16:18).

그러한 거처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상호거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우리의 존재 안으로

건축하시려는 갈망을 이루고 계시며,

결국 이러한 건축의 결과는 영원토록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일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깨닫고 여호와 앞에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18절)라고 하며

자신을 더욱 낮추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 드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결심할 때마다 깊은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하시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125. 웃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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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웃사의 죽음(삼하6장)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1-3절)



법궤는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 모세가 만들었습니다.

이 법궤는 성막 안 지성소에 놓였습니다(출40:20-21).

그리고 이것은 약 4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광야를 거쳐 여행했습니다(민10:33-36).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에 들어간 후, 법궤는 실로에

머물렀습니다(수18:1).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긴바 되었습니다(삼상4:11).



법궤는 일곱 달 동안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머물렀으나

결국 벧세메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다시 옮겨 아비나답의 집에 놓았으며,

그곳에서 이십년 동안 머물렀습니다(삼상6:20-7:2).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집을 얻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법궤를 다시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 성 시온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웃사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옮기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동기가 얼마나 선한가, 얼마나

이익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과 명령이 어떤가’가 중요합니다.

민수기에 기록된 대로 언약궤는 레위사람이 메는 것이지

(민4:4-16), 수레에 싣고 소를 끄는 것은 블레셋 사람의

세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삼상6:10-11).

비록 유다지파에 속한 웃사가 매우 열심이 있었고

손을 들어 언약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었지만,

하나님은 언약궤가 거룩히 분별되는 간증을 잃게 놔

두실 수 없어서 웃사를 치셨습니다.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 때 여호와께서는

그와 그의 온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축복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가서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 때에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그를 업신여기고 나와서 이르기를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고 했습니다(20절).



미갈이 알았던 길은 다윗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자신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비천한 자로 여기고 자신을 높이지 않았으나

미갈은 자신의 길을 지키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다윗이 왕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길을 받아들이셨고

미갈은 그 자손이 끊어지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