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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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둘람

글/생명강가(2010.8.5)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삼상22:1-2)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숨어 지내던 곳이

바로 아둘람 굴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그 굴속에서 지내본 적이 있을까요?

거기는 깊은 동굴로서 잠을 자고서도 편치 않았던

칙칙하고 습기 차고 어두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즉 우리의 선호나 편함은 기대할 수 없는 곳이지요.


우리에게 영을 따르고, 육체를 따르는 것이 실재이듯

그들에게 다윗도 실재이고 또한 사울왕도 실재였습니다.

만약에 차이점을 말한다면 사울왕은 현재의 왕이고,

다윗은 차기에 왕이 될 것입니다.

그건 다윗의 무리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고

사울 왕과 요나단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삼상23:17).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쩌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의 선택은

우리가 가치의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달라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많은 어려움과 환경을 통과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야할 영적 노정도 있습니다.

사울의 종말이 그렇게 비참하게 끝날 것을 사람들은 몰랐고

다윗을 따르는 사백인 뿐만 아니라 다윗의 신복들조차도

그 기름부음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나도 주님을 따른다하지만 그리스도의 가치를

분명히 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진실로 그 가치를 보았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나는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왕으로서 다스림이

무엇인지조차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실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일 것이라고만 느낄 뿐입니다.

내가 원하던 가족, 일, 취미, 심지어 주를 위한 봉사까지도

앞으로 50년이 못되어 다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적,아버지는 ‘초로인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풀잎의 이슬과 같이 허무하다’는 뜻입니다.

진실로 그 아버지께서 사랑하셨던 모든 것이 안개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단, 그분께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기관지 천식으로 숨이 가빠오는 중에 아들따라 부르시던

‘주 예수’ 그 이름만이 지금도 존재할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어느 누가 자신을덧없는 인생에 맞추어 살겠습니까?

그렇다고 염세주의로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사울왕의 왕권을 존중했고, 사도 바울도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복종할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딛3:1).

나는 다만, 다윗을 따르던 무리들도 몰랐던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가치를

오늘날 우리 모두가 소유하고 누렸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아둘람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세상보다는 주님의 가치를 알고 그분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실재라면

장차 오게 될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도 실재라는 것을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악인이 잘 되는 것을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아직 미숙한 자요, 분별력이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로 그 아둘람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들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4:18)

참된 가치관이 참된 실재를 가져옵니다.



인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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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수위원회

글/생명강가(2010.7.4)





얼마 전 함평 출신 Y라는 분이
관악구청장에 선출되어 
어떤 분이
평소 Y씨의 선거를 지원하였고 친분이 있어서

혹시 구청의 경비반장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찾아갔었는데, 그 쟁쟁한 인수 위원회에 특별한 공로도
없는 사람으로서 이름 내밀기가 부끄러웠던지

그냥 축하 인사만 전하고 내려왔답니다.


다윗도 왕이 되던 날, 그동안 다윗과 생사고락을 한

요압, 여호사밧, 아비아달 등 그의 신복들이 모두 요직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8:15-18).

그들은 아둘람 굴속이나 엔게디 요새를 전전하면서

춥고 배고픈 나날을 다윗과 함께 견디어 냈으며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란 사실 하나만 믿고 그를 따랐습니다.


오늘 아침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 사랑해요. 나 주 앞에 엎드려 경배와 찬양 왕께

드리네. 할렐루야~ …” 하며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의 장관이 되었던
다윗에게처럼,
세상 사람들은 그분을 바알세불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만

나 같이 형편없고 어린 아이 같은 자의 입술을 통하여

‘할렐루야~’ 찬송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이 세상 왕국이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

그 날에 영원 무궁히 함께 왕으로 다스릴(계11:15, 20:4, 6)

인수 위원회가 곧 구성될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깨어 예비하시라는
소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교통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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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의 치유

글/생명강가(2010.8.2)





며칠 전 오랜만에 큰맘 먹고 가방하나 챙겨들고

음성에 계시는 형제님 댁으로 피서를 다녀왔다.

지체라도 더운 날씨에 방문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영광교회 집회소가 옥상 태양열 때문에 너무 더웠고,

하는 일 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형제님께 못 찾아 뵌 것이

표면상의 이유였고, 사실은 마음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무거운 앙금이 끼인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날 오후

나는 가면서 미리 전화를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허름한 자전거를 끌고 30분이나 미리 터미널에 나오셔서

반겨주시는 형제님이 고맙다.

이제 막 고희(古稀)를 넘기신 형제님은 더욱 쇠약해 보이셨고

우리는 부자지간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시내를 가로지르는

천변 길을 따라 형제님 댁으로 향했다.


10여분을 걸어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도착하니

특별히 비빔국수를 맛있게 잘 만드시는 자매님이 그날도

비빔국수를 준비해 놓으시고 반겨 맞아 주신다.

여느 아파트와 다름없는 시골의 낡고 작은 아파트였지만

수원 집을 떠나서 17년 만에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집인데,
8층이어서 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시다며
매우 만족해 하신다.


17년 전, 지금의 나보다 약간 연세가 많았던 형제님은

주를 위해 일생 꼭 한 번만이라도 이주 해보고 싶다하시며

한참 자녀들을 뒷바라지해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곳 음성까지 오시게 되었다.

그 당시 나도 형제님을 통해 구원받은 지 얼마되지 않을
때인데도 마치 나에게 이렇게 살라는 암시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주하셨던 것이다.


영광 교회 간증선포 후 3년이 다 되어 가면서

내 마음속에 어떤 답답함이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내가
인위적으로 교통하고 싶지 않아 다만 주님만을 의지했다.

내 표정이 오히려 서먹했던지 형제님도 조용하셨다.

때마침 형제님과 교통하시는 이웃의 중국인 자매님이 오셔서
아직 우리말이 서투른
그분에게 '주님의 십자가'라는
중국 지하의 가정교회 핍박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중국인 자매님이 가시고서도 한참동안 십자가를 체험한

중국 대륙의 뜨거운 성령의 역사와 헌신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현재의 중국처럼 평양 대 부흥운동이

온 한반도를 휩쓸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처음 대하는 기독교를
서양에서 온 ‘야소교’라 하며 핍박이 심했던 때였었다.

형제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형제, 나는 요즘 예전과 달리 뭔가 영적인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형제는 어떼? 물론 나이도 들어서 그렇겠지만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의 열정이 점점 빠져가는 것을 느껴..”

하시며 형제님께서는 먼저 속내를 털어 놓으셨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통해 저 영상을 미리 봤었는데,
처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형상 등을 믹셔시켜 만든
어느 깨어있는 기독교 단체의 작품 정도로만
알았는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중국 온 대륙을 뜨겁게 불태우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과 한 영 안에 있음을 확인하신 듯

형제님을 통해 계속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렇지, 우리는 너무 이론만 무성하지 실재가 없는 것이 탈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저들처럼 똑같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저들처럼 되려면 우리에게는 공산당의 핍박이 없지 않아?

그러니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안목의 정욕과 싸워야 해.

그것이 공산당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어 그렇지?
공산당은 밖에서
오는 핍박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의 싸움이지.
저거 봐! 공산당이 핍박하면 할수록
더욱 교회가 확산되어 가니
이제는 사탄이 전술을 바꾼거야,
세상 모든 흥미있는 것을 다 주었어..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세상을 향하여 점점 마비되고 있어.. ”


형제님은 한 가지, 주일 저녁 만찬집회를 예로 드셨다.
주일 오후는 모두다 복음전파하고 심방하는 실행을 갖자고 하고서

다시는 저녁집회를 회복할 수 없는 것을 마음아파 하셨다.

음성교회는 복음도 전하고 심방도 하지만 주일 저녁집회를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는데 겨우 두 가정만이 참석하고 있을 뿐

점점 각자의 편리함 대로 따라 가는 실정이라고 하셨다.


형제님은 주일 성수에 대해서도 한 말씀 더하셨다.

주일 성수를 우리는 율법적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소유를 가지고 나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건축하는데 드리고 누린 것처럼

우리는 육일 동안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취하여서

칠 일째는 주 안에서 안식하고 누리는 것이 합당하고

만약 그것을 어길 시는 백성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안식의 엄중한 비밀도 말씀하시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이 우리의 참 안식임을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집회를 중요시 여기고 안식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이셨다.

특별히 의도한 교통은 아니었지만 형제님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나 스스로 각 방면에서 회복되어

다시 한 번 주님의 임재 안에서 전진할 것을 격려하셨다.

사실 나는 형제님께도 말씀드리기 어려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말씀드리지 않았으나
주님께서는 형제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성도간의 관계성,
생업문제, 함평이주 등 모든 부분을 치유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