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흔들리는 사울 왕(삼상26-28장
사울은 여전히 다윗을 잡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과 함께 다윗이 숨어있다 하는
십 황무지 앞 하길라 산 길가에 진 치니
다윗은 이것을 눈치 채고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를 택하여 사울의 진에 몰래 숨어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손에 사울을 붙이셨으나
다윗은 이번에도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갔습니다(삼상26:11).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었고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정하심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존경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만일 사울을 거슬려 반역했다면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임명하신 왕을
거슬린 반역의 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 경내에서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사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블레셋 땅으로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번에는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반대하지 않았으며 아기스 왕에게 은혜를 입어
시글락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삼상27:1-7).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여 수넴에 진 치니
사울도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습니다.
사무엘이 죽고 블레셋 군대의 진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사울은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 보았으나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삼상28:6).
다급해진 사울은 이스라엘에 있던 모든 무당과
점쟁이를 죽이라고 명했던(삼상28:9) 자신이 오히려
신접한 무당을 접하는 가증한 죄를 범했습니다(삼상28:7-14).
사울은 변장을 하고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죽은 사무엘을 끌어 올리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죽은 사무엘이 땅에서 올라온 것을, 혹자는
사무엘의 형체를 입고 나타난 사탄적 유령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영혼은 음부에서
올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욥7:9, 눅16:19-31).
그러나 혹자는 신접한 여인이 초혼(招魂)의 술법으로
불러 올린 것이 사무엘의 영이라 봅니다.
그것은 성경을 계시하는 성령께서 그가 사무엘이고,
그가 말하는 바가 사무엘의 말이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책망하고 있음을 시인하셨기 때문입니다.
원래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혼은 모두 사악한 영이
위장한 것이지 결코 실지 그 본인이 아닙니다.
귀신이 지시한 모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스르게 하고 귀신을 경배하도록 합니다.
다만 사무엘의 경우는 사울을 경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올라오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올라온 것은 사실 사무엘의 영으로서
영에도 형상이 있는 것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가
음부에서 여전히 눈과 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18. 다윗과 아비가일(삼상25장)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여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삼상25:2-3)
다윗이 그의 소년(사환) 열 명을 나발에게 보내어
그의 무리를 위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소년들을 종들로, 그리고 자신을
나발의 아들로 여기면서 매우 겸손하게 나아갔으나
어리석게도 나발은 다윗의 간청을 거절하고
오히려 다윗의 종들을 모욕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이르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 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하였더라.(21-22절)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각기 칼을 차도록 하고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을 데리고 올라가니
이 소식을 들은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을 앞서 보내고
그녀도 곧 뒤따라 깊숙한 계곡으로 내려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며
남편의 어리석은 행동을 개의치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나발은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며,
아비가일은 ‘나의 아버지가 기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무리한 피를 흘려 손을 더럽히거나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녀의 말들은 너무나 현명하고 조리가 있었으므로
다윗으로 하여금 나발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도록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성질에 사로잡힐 때
아비가일과 같이 영 안에서 차분하게 이성을 찾도록 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열흘 후에 다윗을 모욕했던 나발을
여호와께서 치시매, 그가 죽었다 함을 들은 다윗은
자신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양하고,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 7장의 세 사람을 보게 되는데,
남편(옛사람), 아내(우리), 새 남편(그리스도)이 그것입니다.
아내로서 우리는 많은 율법의 요구를 통해 첫 남편인
옛사람의 통제와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의 옛사람도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모두는 죄성(罪性)에 따라 움직이던
옛사람의 학대에서 법적으로 해방되었고
이제 새 남편인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117. 권위아래 있는 다윗(23-24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있는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에봇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에봇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착용하는 일종의
흉패였습니다. 그 안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열두 보석이 물린 판결 흉패와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윗이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하나님은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올 것과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사울에게 쫓겨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는
다윗에게 요나단이 찾아와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가 하면, 십 사람들은 사울의 환심을
사고 보상받기 위해서 다윗이 숨은 곳을 알려주는
소식통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권의 하나님(마10:29)께서는 블레셋으로
갑자기 이스라엘을 침노케 하여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삼상23:27).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시험이나 환란도 겪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통치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실 만한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했을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왕 위에 오르기까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될 수 있도록 그를 온전케
하고 훈련시키는 요인들이 되었을 것입니다(롬8:28).
사울이 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로서
합당하게 다스리지 못 하였을지라도 다윗은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역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위치에 항상 머물렀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하니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삼상24:1-3)
다윗은 사울을 죽이려 하지 않고 단지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었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윗에게
사울을 치도록 권했지만 다윗은 그 시험을 거절하고
자기 손을 들어 감히 권위를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거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늦게 왕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지연되게 할지언정 거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권위가 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