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의 노래
글/생명강가(2010.5.5)
거제도 최남단에 위치한
학동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보통의 모래로 된 해수욕장이 아니고
검은 몽돌들로 이루어진 천혜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우리가 타고 간 관광버스에 올라
주일 집회 후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거제 곳곳을 가이드 하시던 형제님은
학동해수욕장내 몽돌은 반출을 금하고 있으니
몽돌이 예쁘다고 주워가면 절대 안 된다는
주의 말씀을 하시며, 그래도 꼭 주워가고 싶은
형제자매님이 계시면 주님께 묻고 나서
주워가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벌써 초여름처럼 강한 햇빛이 내리고
맑은 남해바닷물이 잔잔히 밀려올 때마다
파도소리와 몽돌 구르는 소리가 어우러져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의 숨은 이야기라도 들려주려는 듯
낭만적인 남해안 바닷가의 모습은,
그 자체가 노래입니다.
하얗게 이는 파도에 부딪혀서
일률적으로 어른 주먹만 하게 변화된
반질반질한 검은 몽돌들을
우리는 신기하여 주어들고 만져보기만 할 뿐
한두 개 기념으로 주워 오고 싶어도
만지작거리다 아쉽게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이곳 해수욕장은 여름 피서 철마다
정기적으로 유명 음악회가 열리는 등
많은 젊은 연인들이 몰려오는 곳이어서
어지간해서는 자가용을 몰고 오기가
여의치 않을 정도로 피서인파가 몰리고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랍니다.
지금도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몽돌은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멋지게
쓰임 받았던 유용한 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도 바닷가의 수많은 몽돌처럼
각 환경 속에서 변화된 우리를 기뻐하시며
주님의 날에 이르러 훔쳐가고 싶으실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바닷물 속에서 바둑알만한
조약돌 두 개를 손바닥 안에 숨기고
형제자매님들과 사진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끝까지 갖고 싶어서 놓지 못하다가
혹시 누가 손바닥 검사라도 한다면
웃으면서 놓아버리리라 생각하고
내내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조사하지는 않았고
나는 버스 안에서야 옆에 계신 문장자매님께
손바닥을 펴보였더니 그것이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양, 얼른 한 개를 낚아 채 가시더니만
다시는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자매님도 나처럼 그 몽돌이 무척
갖고 싶으셨나 봅니다.
영광에 거의 도착할 무렵
모든 형제자매님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제 하나 남은 조약돌을 또 꺼내 보이니
영광교회에서 제일 말 안 듣는 형제님이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합니다.
나는 어머니 같은 문장자매님을 공범으로
끌어들이고 파안대소했습니다.
지금 그 조약돌은 내 책장 위에 놓고
거제교회 형제자매님들의 따뜻한 접대와
내가 머물렀던 가정, 김형제님의 천막 치시는
둔탁한 손으로 844장의 깊은 찬송가 해설과 함께
그날 아침 눈물이 날정도로 부드럽게
나의 마음을 매료시켰던 주님을 사랑하시는
형제님의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시던 모습,
책임형제님의 열정적으로 찬송누리는 모습,
가까이서 누려본 관제형제님의 새로운 모습들,
그 외에도 모든 지체들의 정겨운 얼굴들..
산보다 큰 배를 만드는 활기찬 조선소의
울고 웃는 뒷이야기들..
해안선을 따라 느껴지는 남국의 평온함,
그리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것까지
거제의 모든 이야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이 작은 조약돌을 누립니다.
보장하는 사랑
글/생명강가(2010.3.1)
나는 언젠가 T.V에서
번지점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단지 몸에 묶인 로프 하나만 믿고
깊고 험악한 계곡 낭떠러지 아래로
과감하게 뛰어 내렸습니다.
마찬가지로 허공을 솜이불처럼 여기고
고공낙하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높은 하늘의 비행기 속에서
등에 멘 낙하산 하나만 믿고
자유로이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또한 바다 속을 물고기처럼
자유로이 유영하는 스쿠버다이버들은
등에 메고 있는 산소통 하나만 믿고
깊은 해양을 탐사하며 즐깁니다.
모두 다 참 믿음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고
죽음이나 생명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끊을 수 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사랑을 체험하고 누리며
환란과 압박까지도 넉넉히 이기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2010년 3월 9일 아침
데살로니가 라이프스타디를 통한
위트니스 형제님의 교통에서
위로를 얻었습니다.
‘영의 거룩케 하심 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됨’
이라는 부분입니다.
관련된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케 하시고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선택하셔서,
그 영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위트니스 형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원은 긴 간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따르면
이 간격은 거듭남으로 시작해서
영화롭게 됨으로 끝난다.
우리의 구원의 정도는
우리의 거룩케 됨의 정도에 근거한다.
우리가 거룩케 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구원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간격을
긴 다리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에서 우리는 다리 위에서
왔다 갔다 한다. 아마 당신은
어떤 유혹에 굴복하여 구원의 다리에서
뒤로 물러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지어 그 때도 거룩케 하시는
그 영은 당신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그 결과 한 발짝 위로 물러간
당신의 걸음은 도리어 당신으로 하여금
전보다 더욱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아내에게
성질을 내고 말을 한다 하자.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실패는
그로 하여금 구원의 다리에서 뒤로
물러서게 한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킬 때 그는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며 전보다 더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체험에서 구원의 다리에서
앞으로만 계속 나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반대로 우리는
이 길에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한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의 교리로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다리 위에서
우리가 전진하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
혹시 저처럼 주님 앞에서 실패하고
기운 빠진 형제자매님이 계시면
위로 받고 함께 힘내시기 바라면서
이 글을 적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던지
우리 안에서 늘 일하시는
그 영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멘.
----------------------------- [글쓴이 : Christ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