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큰 복음이다!
글/ 생명강가(2009.11.15)
2009년 11월 14일 오후 나주교회에서 있었던
호남권역 어린이 봉사자 학부모 모임 1부에서
지난 10월 24일 대전학생센터에서의 전국 어린이
교사모임에 다녀온 형제자매들의 풍성한 공급에 이어
2부 집회에서 각지교회 상황을 교통하였다.
그동안 어린이 봉사는 주일 학교 중심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제는
어린이 소그룹 실행을 함으로 집회를 가정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어린이에 대한
하나님의 정하신 길의 역사와 회복이다.
영광교회의 어린이 봉사 상황을 되짚어 보고자한다.
한마디로 영광교회에서는 작은 한 실수로 말미암아
어린이 봉사를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영광교회는 지난 5월경부터 시작한 복음텐트를 통하여
집회소 주변의 어린이들을 접하게 되었다.
연결된 어린이들은 무조건 복음책자 1권부터 한 공과씩
읽어가는 방식으로 복음텐트 안에서 소그룹을 시작하였다.
동역자가 없으므로 하교 길에 한꺼번에 몰려오는
어린이들을 공과 진도대로 돌봐줄 수 없을 때에는
가장 최근에 오는 어린이를 중심으로 교통하고
나머지는 다시 한 번 복습시켜가며 우리의 분량껏
실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영광에서는 거의 매일 복음텐트 실행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복음소책자 한 권 한 권을 끝낼 때
마다 간단히 아이스크림 등으로 책거래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들과 친해지면서 자연히 주일 어린이
소그룹으로 인도하여 돌보는 어린이가 7-8명 되었고
자매님들의 수고로 떡볶이 잔치를 해 주기도 하였다.
어린이 소그룹에 참여하는 주도적인 어린이 두 자매가
있었는데 4학년과 2학년에 다니는 여자 어린이들로서
착하고 예쁜데 안타깝게도 결손가정의 어린이들이었고
형제자매님들의 각별한 사랑으로 눈에 띄게 밝아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중학교에 다니는 큰 언니까지 따라
나오게 되었다.
5-6주쯤 지나 어느 자매님이 어린이들의 사정을 알고
반찬 몇 가지 준비해서 보낸 후, 나도 참 잘했다고 생각
했는데, 그 후부터 그 어린이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어린이들의 아버지가 자존심이
상해서 더 이상 못 가게 해버린 것이었다.
정말 선한 의도였었지만, 우리가 세심하지 못했고
충분히 기도하지 못한 결과로 한 방에 KO패 당하고
지금까지도 그 실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쓰라린 경험이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패를 다시는 각지
교회들에서는 반복하지 않도록 알려드리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악한 자는 갖은 방법으로 우리의 자녀들마저 넘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이대로
우리 성도 모두의 관념이 새롭게 전환되지 않는다면
교회가 제일 먼저 타격을 입게 되고 장래가 암울하다.
1978년 이(Lee)형제님은 어머니들이 그들의 자녀를
세우는데 있어서 교회학교나 다른 이들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1987년에는 성도들이 어린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그들의 가정을 열 부담을 취하도록 격려하셨다.
“내 아이들도 돌보기 힘든데 왜? 다른 아이들까지...”
만약 부모들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부모는
영영 자기 자녀들마저도 이 세상의 조류에서 지켜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린이소그룹을 통한 하나님의 정하신
길에서 제외시키고 말 우려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 봉사에 있어서 불우 어린이를 돕는 것도 좋고
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도 좋으나 이
세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성도들이 다 나서서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내 자녀처럼 돌보아 주는 어머니들이 필요한 때이다.
교회 방문 후기
글/생명강가(2009.11.11)
영광의 다이아자매님의 맏딸이 살고 있는
아산 교회에 오래 전부터 방문할 계획이 있었는데
마침 예산에 사랑하는 형제님들이 이주하였다 하여
이참저참 큰 맘 먹고 예산과 아산교회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자매님들 일이 마치는 시각, 토요일 오후 늦으막히 출발한
우리는 아산교회에 가서 부를 찬송을 연습하며 세 시간 정도
달려서 저녁 8시경에서야 예산에 당도하였다.
예산교회는 최근 2주 전에 이주하신
경기도 화성의 H형제님 부부와 강원도 속초에서 이주한
K형제님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두 분 모두 20여 년 전 수원교회에서 함께 생활하던 분들인데
이미 한 번씩 이주의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로써
화성과 속초교회가 강건하게 세워지므로 또다시
이번엔 예산교회의 필요를 따라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어
동역함으로 이주하신 것이었다.
우리는 두 분 형제님들의 이주에 대한 간증과
오늘날 주의 회복의 영광스러운 사역의 말씀을 들으며
H형제님 댁에서 편안한 하루 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번개가 치며 구질구질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구수한 된장국에 식욕이 당겨 아침 식사를
조금 과하게 먹고 뱃속이 불편하기도 했었고
주일집회에 가기 위해 형제님의 승용차를
주차장에서 대신 꺼내 오다가 경미한 접촉사고를 내는 등
악한 자는 계속 우리의 마음을 조바심 나게 하였다.
아름다운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는 아산 현충사입구
작은마을에 위치한 아산교회 집회소는 1층 주택을 개조한 듯
소박한 모습이 마치 대만의 어느 시골 집회소를 방문한 것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주일집회는 50여명의 아산교회 형제자매님들과
예산과 우리 영광교회 식구들로 집회소를 가득 메웠다.
섞임 집회는 영광교회에서 아산교회를 위해 작사한
찬송이 불러질 즈음에는 모두가 한 영과 한 몸 안에서
기쁨이 충만하였다.
집회 후 풍성한 애찬을 나누며 인터넷 상에서만 알았던
‘주의 연인’자매님도 만나고 수원에서 이주해 오신 자매님,
광주에서 이주한 형제님, 서울에서 이주한 토목 일을 하시는
형제님 부부 등 반가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아산교회에서 마련해준 오후시간의 온천욕과
맛있는 저녁 식사는 우리 마음을 더욱 유쾌하게 하였고
시골뜨기 우리에게 각별히 주님을 대하듯 왕처럼 대우해준
예산과 아산교회 형제자매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해가 떨어질 즈음, 삽교천을 건너오는 우리의 마음속에
만 하루 동안이었지만 형제자매님들의 사랑을 통하여
신성한 그리스도를 넘치게 분배받았고 이 분배하심은
우리 각자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넘치는 생명공급이
되었음을 지체들의 얼굴빛에서 느낄 수 있었으며
몸 안에서의 고귀한 형제사랑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전기와 세상(2)
글/생명강가(2009.11.4)
만약 오늘날 예비 신부들에게 말하길
전기가 없는 어떤 집의 신랑과 혼담이 오가면서
압력밥솥 대신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절구통에 곡식을 찧어서
가족들의 식사준비를 하라고 한다면..
냉장고가 없으니 이삼 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그고,
겨울에도 빨래터에 나가서 손빨래를 해야 한다면
열 명 중에 과연 몇 명이나 그 결혼을 승낙할 것인가?
신랑은 있는데 만약 그 전기가 없다면 아마 심각한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업무상 전기 일을 하시는 수원형제님의 말씀에는
그 전기에 대하여 정확하게 전달 할 수는 없겠지만
전기가 발전소에서 만들어 질 때는 15만 4천 볼트의
초고압 전기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우리 가정에서 사용하는 220볼트의 전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용량의 전기이다.
이러한 전기가 중간의 변전소를 거쳐 아파트 주변의
변압기까지 도착하는 것이 2만 2천 볼트까지 낮추어진다.
그 후 길거리나 전주의 변압기를 거쳐 공장은 660볼트나
380볼트가 보내어지고, 일반 가정으로는 220볼트로
낮춰서 보내어 진다고 한다.
발전소의 그 광대한 전기가 낮추고 또 낮춰져
각 가정의 전등이나 가전재품에 연결될 때서야
비로소 전기는 우리의 빛이 되고, 난로가 되며,
냉장고 세탁기 방송, 음악 등이 되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오늘날 도시에 사는 문명인에게
전기는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사람도 그 사람과 계속해서 다음의 대화를
더 이상 나누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변압기를 거치지 않는 고압선에
우리의 가전제품을 직접 연결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고장이 나거나 불타서 녹아버린다는 것은
우리 모두 상식으로 다 알고 있다.
그와 같이 발전소의 전기는 아버지 하나님과 같고
그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절대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아무도 그분을 직접 대하거나 만질 수 없다.
그러나 동일한 본질의 전기가 변전소와 변압기를 통해
낮추고 또 낮춰져 우리 집안에 들어오게 되면,
도달한 그 전기는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광대하신 하나님이 낮추고 낮춰져 육신이 되어
우리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빌2:7).
여기에서 우리는 그 영의 적용까지 말할 수 있는데
아무리 우리 집안에 그 전기가 도달해 있다 할지라도
플러그를 꽂지 않거나 스위치를 켜지 않는다면
여전히 전기가 없는 황량함과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해 드릴 때
그 전기 이신 주님은 영으로서 우리 영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살리고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
성경에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고는 하지만
‘하나님은 전기이시라’는 말은 없다. 왜냐하면
전기가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큰 비밀이신 하나님을 단순히
전기로만 완벽히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재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므로,
우리는 그 전기의 예로 비밀하신 삼일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뿐이다.
몸을 가진 피조물 중 오직 사람만 영이 있는 것은
과정을 거치시고 그 영이 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 안에
들어오시기 위해 사람 안에 영을 지으셨기 때문이다(슥12:1).
하나님은 그 단체적인 사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표현
하시고자 하는 신성한 의도를 갖고 계신다.
우리는 교통 후 회복 찬송가 75장을 함께 합창했다.
영광 버리고 세상에 임하셔 사람 된 내 구주 그의 이름 예수
구유에 나셔 마른 땅에 자라 고통의 길간 슬픔의 사람
(후렴)사랑스런 주 그를 경배해 내 공기 내 빛 내 모든 것
크신 창조주 내 구주되어 하나님 충만 가져 왔네
날 구원하려 낮추고 낮춰 그늘에 앉은 자 모두 구하셨네
오, 참된 사랑 자기 영광 버려 죽음에 처한 백성 구했네
(후렴) ~
저항하쟎고 혈육 입으셨네 사람 모습 취해 하나님 뜻 이뤄
하나님 사람 영광의 큰 비밀 나 그의 모든 풍성 누리네
(후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