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한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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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한나의 기도(삼상1-2장)

 

한나와 기도와 사무엘

 

 

 

사무엘의 기원은 특별히 하나님을 추구하는 어머니와

그녀의 기도였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갈망의

반향이었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한

신성한 움직이심에 사람이 협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해내는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원하셨지만 “주여, 내게는 아들이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하는 한나의 협력이 필요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1:10-15)

 

 

주권적인 하나님은 한나의 대적 브닌나로 하여금 그녀를

심히 격동케 하여 번민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나 안에서 움직이심으로 인해

그녀를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셨습니다.

결국 한나가 기도하고 서원하였음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시어

사무엘을 주셨습니다(삼상1:20).

 

 

사무엘은 어린 소년일 때 하나님께 사로 잡혔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도 젊은 나이였고(삼상 16:11-13),

다니엘 역시 바벨론의 왕궁에서 이기는 자가 되었을 때도

어렸습니다(단1:4, 17).

 

 

엘리 집의 제사장 직분은 완전한 쇠퇴에 들어갔습니다.

엘리는 늙고 정신이 흐려져서 이제 모든 일에 대한 영적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의 아들들도 제사장이었지만 제사장의 생활을

하지 않고 오히려 수종드는 여인들과 간음을 행하는 등

방탕과 죄에 빠져듦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과 함께 제사장

직분을 하나씩 배우며 온전함을 받고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쇠퇴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소년 사무엘의 등장은

새로운 역사가 도래함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104. 룻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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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룻과 보아스(룻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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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룻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는데

그들은 보리추수 시작할 때 베들레헴에 이르렀습니다.

룻은 좋은 땅의 체류자요, 가난한 자이며, 과부인 신분에 따라

수확물을 주울 권리를 행사했습니다(레23:22, 신24:19).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보리 베는 자들을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러 보아스의 관대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민의 수확물의 이삭줍기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받은 이방 여인 룻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녀들의 분깃인

상아래서 부스러기에 참여하도록 혜택을 입은

‘이방인들’인 교회를 예표합니다(골1:12, 마15:25-2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룻2:8-10)


보아스는 두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첫째로 부유하며 관대하게 베푸는 사람인 보아스는

측량할 수 없는 그분의 풍성으로 공급하고 돌보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엡3:8, 고후12:9, 빌1:19).

특히 그는 우리의 만족을 위한 남편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풍성으로 취하며

또한 우리의 남편으로 취합니다(엡5:23-32).

성경의 마지막 두 장에서도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남편이신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인 우리는

어린양의 아내인 것을 봅니다.


둘째, 룻의 죽은 남편 말론의 친족으로서 말론의

잃어버린 재산권을 구속하고 필요한 상속자를 낳기 위해

룻을 아내로 취한(룻4:9-10) 보아스는

교회를 구속하시고, 교회를 그분의 증가를 위한 배필로 삼으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엡5:23-32, 요3:29-30).


룻에게는 이삭을 주운 후에 여전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가정이 필요했습니다(룻3:1). 나오미는

룻의 남편이 되기에 합당한 사람은 보아스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구주를 얻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또한 가정을 얻기 위해서 남편이 필요합니다.

가정이 없이는 우리에게 안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누릴 수 있는 가정은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는 신부인 우리의 안식할 곳을 건축하기 위하여

결코 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룻3:18, 요14:2).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우리의 배경이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자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추구하던 룻은(룻1:15-17)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인 보아스와 결혼해서

다윗 왕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습니다.



103. 나오미와 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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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나오미와 룻(룻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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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 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룻1:1-5).


하나님의 징계로 좋은 땅에 기근이 들자

생활과 만족을 위한 생명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엘리멜렉의 가족은 그곳을 떠나 모압 땅에 거했습니다.

모압은 롯이 근친상간을 통하여 낳은 후손의 나라였고(칭19:30-38)

그들이 이스라엘을 잘못 대우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는 것이 영원히 허락되지 않은 백성의 나라였습니다(신23:3-4).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은 길을 간 엘리멜렉은 자신과

두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징계를 받고, 그의 아내

나오미와 이방 땅의 두 며느리는 과부로 남겨졌습니다.


‘나오미’의 이름은 ‘달콤함’이라는 의미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괴로움’이라는‘마라’라고 할 만큼

여호와의 징계와 고통을 받았습니다.

모압 땅에서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황을 느낀 나오미는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 길에서 두 자부를 각각

자기의 어미 집으로 돌려보내며 평안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리 높여 울며 나오미를 따르니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미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1-14절).


여기서 우리는 겉으로는 아무 소망이 없는 세 과부들이지만

적어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얻고 또한 그것을 소망하는 사상이

그들의 대화와 행동에서 깊이 베어져 나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룻은 ‘그의 시어머니를 붙좇았더라’고 하는 대목이

그의 조상 롯이 같은 조건에서 아브라함을 떠나갔던 것과

대조를 이루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16-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