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역의 요소
글/생명강가(2009.4.25)
우리가 단지 일반적인 교회 생활만 한다면 큰 어려움이나
형제자매들과 부딪칠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봉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한두 가지 시험을 누구나 통과하게 되는가 보다.
교회생활 7년, 교회봉사한 지 2년 쯤 되었을 무렵,
봉사자는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녹음기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과
교회 봉사집회에서까지 메시지를 추구하는 것이 나는 너무 싫었다.
그리스도를 사는 바울이 모든 믿는 이들의 본이 되었음을
실재로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나는 일 년 동안 봉사는커녕 교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지금에 와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미국에서 ‘오스틴 스팍스’형제를 따르는 무리나
홍콩에서 ‘스티븐 강’형제의 사역을 따른다는 소위 자유그룹과
연결되어 그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였었다.
나는 지금 우리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좋은 점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고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회복을 떠나려고까지 했는데
다행히 내가 봉사하던 소그룹의 형제자매들의 눈빛이
주님의 눈빛임을 보고서 차마 돌아설 수 없었다.
제2차 선교여행을 앞두고 마가 요한의 문제로 심히 다툰
바나바와 바울 중에 왜 바나바가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져
갔는지를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되고, 왜 모세의 허물을
지적하던 미리암이 오히려 나병에 시달려야 했고,
왜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형제에게 알린 함이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될 때서야,
비로소 나는 내 안의 천연적인 선함과 나만의 독특한 개성이
가장 심각한 배역의 요소임을 보았다.
개성은 뒤바뀜이 필요하고, 자아는 철저히 부인되어야 한다.
그 후 나는 10여 년 이상의 커다란 댓가를 지불하고서야
(그것도 최근에 알았음) 주님께서 나를 광주로 보내시어
장성을 거쳐 영광에 이주하게 하시므로 겨우 회복시켜 주셨다.
지금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 때를 생각하며 은혜 가운데
주님의 일곱 영의 강화시키심을 누리고 있지만, 잃어버린
그 시간들을 몸부림치며 얻어가고 있다.
대만집회의 마지막 다섯 번째 메시지 제목은
<동역자와 장로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유의해야할
방면들>이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사람의
성격과 습관은 사역과 큰 관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는데 있어서의 참된 대적은 우리의 개성이다.
우리의 개성은 우리가 주님 손에서 유용함을 파괴시키는 요소이며
개성이 다루어진 정도가 우리의 유용함이 나타나는 정도이다.
우리의 성격은 30%의 개성과 70%의 습관으로 조성되는데
훈련과 배양과 양성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주님을 섬기는 자의
인격을 가져야 하는데 그 인격은, 1)신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아야하고, 2)합당한 인간 본성을 통해 인간적이어야 하며,
3)신실하고 탁월한 미덕들을 가져야 한다.
동역자와 장로들이 갖는(교회 개척 등) 긍정적인 웅지는 좋으나
예수님을 태운 나귀가 만약 자신이 그 영광을 취한다면 어리석게 되듯,
자신의 영위를 위한 웅지나 야심, 교만,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것,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본받지 않는 것, 엄격하게 연합된
영을 따르지 않음,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내지
않는 것 등은 주의해야 할 요소들이다.
(이 메시지는 86세 된 형제님을 비롯하여 주로 연장한 형제님들이
전한 강하고 사랑어린 메시지였음)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글/생명강가(2009.4.24)
우리는 지금 극동지역 교회들의 장로 및 책임형제
섞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섞임은 도시락 싸들고 이 교회 저 교회가 함께
나들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너무나 부족하다.
참다운 섞임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로서
생명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 되는 조화이다.
이번 집회의 네 번째 메시지 제목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으로 이끌어 섞이는 것을 실행함>
이다. 성경 안에 섞임의 예표로서 레위기 2장의 소재를 본다.
소재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들어진 떡이다.
가루의 각 성분들은 모두 기름과 혼합되었는데 이것이 섞임이다.
지방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하는 절차로서,
섞임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가져오는 것이다.
대만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광역시처럼 몇 개의 시와 군들이
다른 시와 합병되므로 실재로 사라지는 교회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영원하다.
몇 주 전 영광교회에서는 정읍과 장성교회가 함께 모여
정기 섞임 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집회 준비를 하면서 환영 문구도 집회소 벽에 써 붙이고
이번 집회가 우리에게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특별히 정읍에 복음텐트로 새로 연결된
새 가정이 꼭 올 수 있도록 사모하였다.
집회 당일 날, 그 가정이 참여하는 것을 알고서
우리는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성령의 충만을 맛보았다.
왜? 우리는 정읍교회의 새로운 지체가 이렇게 반갑고 기쁠까?
그것은 우리가 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쏟아 붓는 기름부음으로 모두가 하늘에 있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섞임의 원칙을 세우셨다.
그것은 열두 지파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서
마치 한 지파처럼 섞이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를 지키셨다.
섞임은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공급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있기 위해서는
오늘날 움직이시며 말씀하시는 현재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지방교회는 그리스도의 증거와 그 영의 교통에 있어서
단지 지방적이어서는 안 되며 우주적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교회들이 한 몸으로 무리 짓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눈에 그리스도를 위한 더욱 강한 증거로
여겨져 그들의 구원을 가속화할 수 있다.
우리는 마땅히 사도가 각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안으로 이끌었던 것을 본받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반드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모든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섞이는 생활로 이끎으로써
화평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우리의 발아래 짓밟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돕는 것은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감추어져 왔던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비밀에 관한 것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완성하여 모든 이방인들이
믿음에 순종하게 되어 유일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이 있으시게 된다.
회복의 청년들
글/생명강가(2009.4.24)
20년 전 신혼 초, 나는 동네 놀이터와 공원을 돌면서
복음 그림판을 들고 다니며 팀을 이뤄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 날과 같이 체계적으로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 형제자매 자녀들은 유년시절 복음
실행에 동참하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때로는 우리가 세 들어 살았던 형제님 댁에서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간식을 해 주시며 긴밀히 동역해 주셔서
매주 열 댓 명씩 돌보고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이 자라서 지금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청년들로
각지에서 헌신하며 주님께 봉사하는 형제들이 되었다.
똑 같은 방법으로 2년 전, 영광에서도 의사형제님의 도움
으로 침을 놓고 9개월가량 어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다.
매주 20여 명씩 전체 160명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접촉을
했으나 그 중 한 명이 침례 받고 현재 교회 안에 남아 있다.
그 한 명만도 영광교회 간증을 위해서 너무나 귀한 형제님이
시지만 연세가 72세이시다. 형제님은 주님을 위해 어떻게든
자신을 드리고 싶어 하시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20대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늦게나마 이곳
대만에서 극동에 계신 봉사자들과 함께 같은 이상을 보고
오늘 날 하나님이 정하신 이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만에서 세 번째 메시지의 제목은
<온 땅에 있는 주님의 회복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청년들을
얻고 온전케 함>이다.
성경 안에서 주님이 쓰셔서 그 시대 사역의 전이를 가져오는
사람은 항시 젊은이들이셨다.
1900년대 초, 사탄은 의화단의 난을 일으켜 중국내에
많은 선교사들이 학살되었고 이렇게 시국이 어수선할 때에
중국인 내에서 많은 복음의 일꾼이 일으켜졌고, 삼일학원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워치만 니 형제님도 그 때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훈련을 통해서 자신이 온전케 되었기 때문에
형제님은 젊은 청년들을 온전케 할 수 있는 훈련에 대한
부담을 가졌다.
영광 땅에는 캠퍼스도 없고, 또한 청소년 사역만을 중시하고
나갈 수는 없다. 그러나 어린이와 청소년 사역이 어렵고
당장 성과를 볼 수도 없고 많은 비용이 투자 된다고 하여서
소홀이 여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젊은이를 얻는 것이 교회가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일임을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영광교회와 연결되어 벌써
취업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다혜, 형숙자매, 명수형제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교회 안에 남아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3에 올라간 연희와 예진이도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요즘 연락이 뜸하다. 잘들 지내고 있는지..
모두들 너무나 보고 싶다.
현재 영광교회 상태로는 여러 가지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얻고
그들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벅차고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주님께 기도는 할 수 있고, 우리의 형편에
맞는 돌봄과 관심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복음 전파는 교회의 사기를 가져오는 일이므로 모든
성도가 함께 부담을 갖고 팀을 이뤄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복음전파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없다면 교회는 장래가 없는 것이다. 오늘 날 형제
회가 그 예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주님 앞에
섰을 때 아무도 어떤 이유로도 주님께 변명 할 수 없다.
청소년을 위해 우리의 주방과 냉장고를 여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선 어린이 소그룹과 중, 고등부 봉사부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