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불뱀사건과 전쟁(민21장)
하나님은 공정하시고, 부요하시며, 관대하시고,
사랑스럽고, 온유하시며,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백성들이 목마름으로 다투고 있을 때는
그들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시므로 관대하셨는데
그러나 환경에 대한 조급함으로 불평하는 것은
용납지 않으셨고 불뱀을 보내시므로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회개하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들리게 하셨으니
누구든지 뱀에 물린 자마다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놋뱀은 하나의 예표였습니다(요3:14절).
주 예수님은 이 예표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했습니다.
놋뱀은 뱀의 형체는 가졌으나 독이 없는 본성,
즉 우리를 대신하여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예표입니다(롬8:3).
장대는 십자가를 예표하고(벧전2:24),
또한 예표에 있어서 동(銅) 혹은 놋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가나안 땅 입구에는 아랏, 아모리, 바산 왕들이 있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좋은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탄을 위하여 가나안 땅을 지키고 있던
이들 왕들이 통치하는 영토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흑암의 왕국의 문지기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패배시켜야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사탄이 강탈하여 점령한 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인들을 대항해 싸우는 것은
오늘날 우리와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 사이에서
격렬히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예표요, 그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더 많은 영토를 얻기 위해서는 악한 영들을 대항해 싸워서
그들을 패배시켜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탁월하게 이해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은 우리에게 가나안 땅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풍성이 측량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러한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인 원수들,
곧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엡6:12).
우리는 세 문지기로 상징된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짓밟아야 하며
우리 모두는 가나안 족속들이 사탄의 왕국 안에서
능력과 주관자들과 권세들이 된 타락한 천사들을 예표하는 것과
이들 악한 영들과 교회 사이에 전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항시 기억해야 합니다.
73. 반석에서 솟는 물(민20장)
물은 생명의 영, 즉 영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다투었다는 것은
생명의 영의 결핍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영이 부족할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은 생명의 영의 결핍
때문에 일어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들의 목전에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리의 현재 상황에 적용시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시킨다면
우리의 필요가 채워질 뿐만 아니라 문제들이 해결되며
우리는 교회 안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패역한 세대여 들어라!”하며
백성들에게 화를 내므로 그는 하나님을 잘못 대표했습니다.
그가 실수로 말한 것은 하나님을 일반적으로 되시게 했고
그분을 거룩히 하므로 다른 신들과 분별시키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반석을 치는데 사용되었는데
지팡이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의 손에 있었습니다(출17:6).
그리스도는 율법에게 매 맞으시고 생명의 영께서
그분에게서 흘러나오시도록 갈라지셨습니다.
반석으로 예표 되신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합니다(고전10:4).
그러나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심각한 실수를 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신성한 경륜이
모세의 실수로 인하여 가리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못 대표하였으며,
하나님의 경륜의 원칙들을 깨뜨렸습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과 친밀하고 하나님의 친구로 여겨졌을지라도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좋은 땅에 들어가는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교회생활 안에는 용서함이 있어야 합니다(마18:1-35).
우리의 마음이 상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말하는 방식을 주의해야 하나님의 왕국에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범했던 실패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즐거운 느낌을 갖지 못한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극적인 상태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표하는데 있어서
심각한 실수를 범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올바른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올발라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봉사가 지속 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분의 백성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느낌과 선호를
거절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야만 합니다.
72. 고라의 반역(민16-17장)
레위의 후손인 고라는 모세와 아론과 동일한 지파에 속했고
그들은 함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그는 진 끝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섞여 사는 무리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섬기는 자로서 레위인의 인도자로서
그는 진 중앙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반역이 지위와 권세를 위한 다툼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민16:3, 9-10).
지위와 권세에 대한 야심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문제였으며 야심은 하나님의 계획을 약화시키고
그분의 백성들을 손상시키는‘두더지’입니다.
지위에 대한 야심과 권세를 위한 다툼은 우리의 피 속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중 첫 세대는 권력다툼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마20:17-28).
소극적인 면에서 기독교의 역사는 권력다툼의 역사입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자신의 모든 무리와
모든 회중을 회막 입구에 모았습니다.
이 일은 여호와로 하여금 영광 가운데 모든 회중에게
나타나시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사건이었습니다(민16:19).
결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니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아내들과 아들들과 유아 및
고라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물품과 함께 산채로
스올(음부)에 들어갔습니다(민16:32).
그리고 고라를 따라 분향하던 이백오십 명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불태워버리고
그들의 향로는 두드려서 제단을 싸기 위해 편철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제단에 제물을 드리러 나올 때,
그들은 그 반역과 하나님께서 고라와 그 무리에게 내리신
심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들은 잠잠해지지 않고
거스르는 본성이 그들 중에 남아서 표출됨으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족장에게서 지팡이를 하나씩 취하여 각각 그들의 이름을 쓰고
증거판 앞에 열두 지팡이를 두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와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백성들에게 그분의 변호하심을 통하여 말씀하시므로
참된 상황을 다루시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튿날 보니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서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이렇게 죽은 지팡이가 싹을 내는 것은 백성들의 원망을
그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생명을 분배해 주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