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자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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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 다윗 

글/생명강가(2008.12.19)




“내가 개냐?”

이 말은 소년 다윗이 거추장스런 사울 왕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평상복에 막대기 하나 들고 전장에 나타나니

거인 골리앗이 자기에게 오는 다윗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업신여기며 내뱉은 말입니다.


그러나 골리앗이 다윗을 업신여긴 것은 사실

그곳에 있는 형님들, 사울 왕, 이스라엘 병사들까지

모두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윗도 골리앗을 사실 무모하리만큼
업신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도대체 그 담대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 신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음은 골리앗의 빈정거림에 대한 다윗의 증언입니다.

나는 이 증언이 참으로 좋아 이번 기회에 외우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이야말로 여호와의 참다운 증인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블레셋은 육체의 강함을 통하여 방해하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나는 ‥이다’이신 여호와의 이름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므로 그의 삶 가운데서도 그 이름을

적극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임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다윗은 보아스, 오벳, 이새를 잇는 혈통 속에서 자라며
모세의
두루마리 책과 사사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키워 왔을 것입니다.


특히 출애굽한 조상들 중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여호수아와 갈렙이 기골이 장대한 아낙자손을 업신여기고

오히려 그들을 밥으로 여긴 이야기와 사사 기드온의 보리떡 한

덩어리에 대한 전쟁 이야기는 소년 다윗에게 큰 감동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골리앗은 가드에 남아있던
아낙자손의
후예입니다.(수11:22, 삼상17:4)


오늘날 사탄은 많은 환경들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죽음에
가두어 두고자 온갖 위협과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본문에서 골리앗과 블레셋의 최후를 증언

하였듯이, 우리도 주위에서 수시로 전개되는 영적싸움에서

사탄의 최후가 영원한 불 못임을 증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10)


그리고 다윗이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 몽돌 다섯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그 돌을 물매로 던져 골리앗을
이기었습니다.
몽돌 다섯의 수는 책임의 숫자로서 다윗은 평소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여 충성하는 사람임을 나타내 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삼상17:34-35)


그러므로 이기는 자는 어느 날 갑자기 되어 진 것이 아니고,

평소 밭을 갈고 맷돌질을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책임과

충성을 다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들의 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은

자들인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다른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전쟁의 현실만을 바라보고 적당히 화친을 청하고 전쟁을

회피하고자 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이기는커녕
맛을
잃고 버리워진 소금이었을 것입니다.(눅14:34-35)


오늘 날 우리는 사람의 계산방법으로는 터무니없는

하나님의 계산을 잘 순종하고 따르는 자입니까?
행여 사람의 계산방법으로

베드로처럼 주님의 길을 가로막고 서 있지나 않습니까?


나 자신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에 ‘육체에 생각은

죽음이지만, 영에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로마서 8장 6절
말씀이 내 마음에서 더욱더 새롭고,
그 주님의 이름을 찾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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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깊은 슬픔으로 치유된다.


-신경숙의 소설에서-


애정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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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안에서는 달콤하지만
안식과 평강이 없네
성령 안에서는 고통스럽지만
생명과 평강을 맛보네


-주 안의 형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