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
글/생명강가(2008.9.22)
딸이 없는 우리 집에는
형제자매님 댁의 예쁜 딸만 보면
괜스레 부러운 눈총으로 바라보고
보는 것으로만 만족합니다.
그나마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아무나 얼싸안고 예뻐해도 흉이 안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므로
친근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문을 알지 못하고 궁금해 하다
어느 날 거울을 자세히 보고서야,
내가 어느새 나이 든 형제가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른 살 초반의 예수님을
사람들이 오십 세로 보았다던가?
나는 정말 그 오십이 되고 보니
겉사람은 후패해져 버린 느낌이고
속사람만 다행이 새로워집니다.
하은이네가 장성으로 이사 온지
벌써 3년째인가 봅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얼마 후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하은이가 벌써 3학년이 되었습니다.
교회학교 봉사하던 때 생각해 보면
3학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책임이 따르고,
자기 의견을 분명히 표현 할 줄 아는 시기입니다.
하은이네 아빠는 주님께서 장성으로 보내 준
특별한 형제님이요, 좋은 동역자입니다.
형제님에게는 귀한 딸만 둘이 있는데
그 중 작은 딸이 하은이 입니다.
하은이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요,
산소 같은 어여쁜 아이입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영 안에 기쁨이 생겨나니까요.
요즘엔 보랏빛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데
그 하은이가 움직일 때마다 집회소 안에
도라지꽃 송이가 흔들리는 것같습니다.
어제 주일날 고창에서 섞임집회를 갖고
학생 형제자매들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메밀꽃 들길을 신나게 달리며
나름대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 하람이도
하은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얼굴이 빨갛게 익도록 좋아했습니다.
어느새 하은이 아빠가 교대하여
하은이를 태우고 가로수 그늘이 있는
돌맹이 많은 흙길을 내달았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도 하은이를 태우고 저렇게 달려 봤으면..
그것마저 부러웠습니다.
시간이 되어 자전거를 반납하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형제님이
우리의 집회장소 초가지붕 평상 그늘로 왔습니다.
그곳에는 열띤 교통을 나누는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내 옆으로 다가온 형제님이 어이없어 하는 말
전국에서 메밀꽃 필 무렵에 맞춰 모여든 사진작가들이
하은이를 태우고 가로수 길을 내달리는
형제님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다시 한 번만 더 연출해 줄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부탁하더랍니다.
(물론 찍은 사진은 이메일로 보내 주겠다고..)
형제님이야 딸과 함께라면 그냥도 좋은 터라
당연히 한 번 더 타고 내려오려고 하였는데
뒤에서 하은이 하는 말..
“아저씨! 우리 바쁜데요.”
“...??”
그래서 할 수 없이 멋진 모델이 될 뻔했던
형제님은 “미안합니다” 하고 오던 길로
계속 달려와 버렸답니다.
하은이의 새침하고 야무진 대답으로
사진작가들의 부탁을 거절해 버린 모습을 연상하며
오랜만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사내아이들만 키워온 예전의 나였다면
끝까지 한번 멋지게 재연해 보자고 우겼을 텐데..
형제님은 뒤에 모신 공주님의 작은 감정에도
아무 말 없이 그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그런 좋은 아빠였습니다.
나도 지금쯤은 그렇게 할 수 있을 텐데..
그것도 부럽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글/생명강가(2008.9.15) 신발은 신발장에 서적들은 책장에 곡식은 논밭에 물고기는 물속에 오물은 쓰레기통에 거짓말하는 자는 어둠에 음란한 자는 더러움에 가증한 것들과 마귀는 불 못에 사람은 구속됨 안에(골1:14) 성도는 존귀함에(시16:3) 그리스도는 아버지 안에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요14:20) 이기는 이는 생명나무 앞에 내 마음은 주님께 신부는 신랑과 함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함에(마6:9) 아들들의 위치도 하늘들의 영역에(엡2:6) 우주만물은 질서대로 모든 생명체는 종류대로 창조의 원칙을 따라(창1장) 있어야 할 위치를 지키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이(딤전1:4) 아름다운 존재의 가치입니다.
형제님의 뜻
글/생명강가(2009. 10. 31)
스레트 오두막집에서
한 지붕아래 사는 동안
주 예수님을 전해 주심으로
보화를 주셨습니다.
수도물이 신기하였던
넉넉지 못한 형편임에도
아직 어린 내 마음속에
형제사랑 심었습니다.
철없이 굴던 형제를
아버지처럼 품으시고
말씀과 행동하는 믿음으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칠 년 전 이주하실 때
일생 주를 위해서 꼭 한 번
이주하시겠다던 그 뜻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