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날
글/생명강가(2009.10.4)
명절이 지나가고 나니
암울하던 마음속에
생수의 강 다시 흐르고
고요한 아침을 맞습니다.
아름답던 화원은 망가지고
사방은 폐허가 되었으나
값없는 생수의 강 흐르니
내 마음 기지개를 폅니다.
혼잡한 생각이 맑아지고
피곤하던 마음이 안식함은
폭풍과 홍수가 엄몰할 수 없는
굳건한 반석 때문입니다.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
주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어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니
반구의 소리 들립니다.
60. 아말렉과 싸우리라(출17장)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치니 그곳에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 지팡이로 호렙산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명하셨고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예표론에서 모세는 율법을 의미하고
지팡이는 율법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반석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에 의해서
매 맞은바 되심을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매 맞은 반석에서 흘러나온 생수는
그 영을 예표하고 있습니다(요7:37-39).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는데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아말렉과 싸우도록 지시하고 자신은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에 올라 아론과 훌과 함께 기도하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므로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찔렀습니다.
아말렉은 야곱의 쌍둥이 형이었던 에서의 후손(창36:12)으로
육체, 즉 타락한 사람을 상징합니다(창6:3, 롬3:20).
하나님의 눈에 아말렉은 하나님의 보좌를 거스르는 손과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손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 안에 있는 한, 하나님과 원수입니다(롬8:7).
교회생활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육체에서 나오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다루시기 어려운 것이 육체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중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객관적으로 그분의 기도하시는 팔은 피곤하지 않으나
체험적으로 기도하시는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할 우리의 팔은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을 강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론은 제사장 직분으로 지성소와 연관되고 유다지파에 속하는
훌은 왕권을 상징하므로 우리는 지성소에 참여하고 그 왕권에
굴복해야 합니다. 또한 돌은 건축을 위한 견고한 기초로서
우리는 주님을 견고한 기초 돌로 취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패배시킨 후,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였으며
하나님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16절)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이 야기시킨
좌절을 얼마나 엄중하게 여기셨는가를 보여줍니다.
59. 하늘의 양식(출16장)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수르광야의 마라를 거쳐 엘림까지 이르러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칠십 그루가 있는 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마라에서 쓴물을 치료한 나무는
주님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의미하고(벧전2:24, 갈6:14),
열두 샘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도록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흐르고 있는 생명을 표징합니다(요7:37-39).
또한 종려 칠십 그루는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자라나는 생명을 표징하고, 무성함과 만족 속에서 기뻐하며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생명을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신 광야에 이르니 이월 십오 일이었고
온 회중이 먹을 것이 떨어지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니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이 하늘로부터 보내어진
참 만나이심을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이신 그분을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만나를 먹도록 주신 것은
백성의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것임을 가리킵니다.
이전에 그들은 애굽에 있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와 함께
광야에 있습니다. 그러나 위치를 바꾼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의 음식물을 바꿈으로서
그들의 성분을 바꾸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기적, 즉 메추라기와 만나를 보는데
메추라기는 저녁에 왔고, 만나는 아침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탐욕을 채우는 메추라기를 보내신 것은
백성의 애굽적인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으나
하늘에 속한 음식인 만나를 내리신 것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16:35, 요6:57).
한편,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통하여 백성을 시험하여
그들의 상태를 드러내시기도 하셨습니다(출16:4-5, 16-30).
만나가 “하늘에서 비같이 내렸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성분이 우리에게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가늘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섭취하고 소화하고 흡수할 만큼 작은 분이
되심을 가리킵니다(요6:35, 눅2:12).
또한 이스라엘 자손이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한 것처럼
만나는 비밀한 것이었습니다(요3:8, 골2;2, 눅24:37).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다.”는 것은
만나가 우리에게 매일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줌을 의미하고
만나의 색과 맛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는
우리가 어떤 혼합물도 지니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만나를 먹음으로써 장차 흰 돌로 변화될 수 있음을 가리키며(계2:17),
그것은 꿀 섞은 과자처럼 항상 달콤했습니다(시119: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