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출애굽의 노래(출15장)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고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셨나이다.
주께서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셨나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나이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나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나이다.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
여호와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가 있나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이겠나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의 간담이 녹으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바위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실 것이니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 무궁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57. 구름기둥과 불기둥(출13:17-14장)
여호와께서 유월절에 애굽 땅에서 처음 난 것 곧
바로의 장자부터 생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치셨으므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스라엘 자손과 그들의 소유를
다 보내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나왔고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추며 인도하셨습니다.
요셉의 해골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나왔다는 것은
부활 안에 있는 생명을 상징하고, 성경에서 뼈는 파괴되지 않는
생명을 의미하므로 오직 부활 안에서만 탈출이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애굽에 있는 그분의 백성은
에스겔서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들과 다를 바 없었으며
그들은 부활하여 하나님의 군대로 형성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홍해를 건너는 것부터 사실상 그 부활을 의미합니다.
요셉의 해골에 대한 말씀 직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언급되는 것은(출13:20-22) 우리가 부활 생명 안에서 움직일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안내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 가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안에 있는 주님의 임재에 달려
있습니다(출33:14-17, 고후2:10). 왜냐하면 구름과 불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그분의 즉각적이고 살아있는 인도하심은
영을 표징하는 구름과 말씀을 표징하는 불을 통해 오기
때문입니다(고전10:1-2, 롬8:14, 시119:105, 요6:63, 엡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였더니,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바로가 마음이 변하여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하고 온 병거를 갖추고
온 지휘관들과 마병과 군대를 거느리고 바알스본 맞은 편
그 장막 친 데에까지 쫓아 이르렀습니다.
바로의 군병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또 모세를 원망하여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우리가 돌아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며 불평하였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명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미니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서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이스라엘
진 뒤로 행하니 구름기둥도 앞에서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맞도록 빛 가운데 행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길을 신실히 따르고 있을 때
우리는 핍박을 당하지만, 오히려 그분은 구름기둥과 하나 되어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바로와 그의 군병들은 홍해의 물속까지만 따라갈 수 있었을 뿐
홍해를 건너 공격할 수는 없었고, 모두 그 바다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탄과 세상을 침례로 장사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들이 홍해를 건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믿는 이가 침례를 받고 나면 세상에서 벗어났으므로
다시 돌아가 세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표징합니다.
56. 유월절(출12:1-13:16)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 모든 초태생을
심판하던 날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유월절입니다.
그들은 이 날 각 가족대로 어린 양을 취하여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고
그날 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처음 난 것을 다 칠 때에 그 피가 집에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표적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12: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서 넘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예표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린양이실 뿐 아니라 유월절의 모든 방면입니다.
그분은 어린양, 무교병, 쓴 나물이시며, 구속하는 피가
인방과 문설주에 발라진 집이시기도 합니다.
고기를 불로 굽는 것(출12:8)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심판의
거룩한 불 아래 고난당하심을 표징 합니다(사53:4, 10, 시22:14-15).
또한 어린양을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함께 먹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취하되 반드시 그분의 지혜, 그분의
활동과 움직임, 그분의 내적 애정과 느낌과 함께
그분 전체를 취해야 함을 표징 합니다(출12:9).
어린양을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는 것(8절)은
죄악된 것들을 제거하고 그것들에 대해 쓴 맛을 갖는 것이고,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는 것(22절)은
식물 중에서 가장 작은 우슬초만큼 작은 믿음이라 해도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함을 표징 합니다(왕상4:33, 마17:20).
우리의 유월절이 되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속하시어
하나님과 화해시키려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의 계속인 무교절을 칠일 동안
지켰다는 것은 우리가 회심한 날부터 휴거될 때까지
(칠일로 표징 된)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잔치와 생명의 풍성한 공급으로
누리는 절기여야 함을 가리킵니다(출12:16, 18-20).
무교절 기간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어떠한 누룩도
보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의식하거나 나타난 죄는
반드시 처리해야 함을 표징 합니다(출12:19, 13:7).
이 기간에 유교 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 총회에서 끊어져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의 교통에서 끊어지는
엄중한 처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일단 우리가 만약 어떤
드러난 죄를 묵인한다면 우리의 교통은 차단될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에서는 유월절에 이어
무교절이 뒤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회심했을 때 기쁨이 충만했지만 그 기쁨이 지속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죄 있는 삶을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